발 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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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2일
고문 허암(虛庵) 서정규(徐晶圭)
이번에 발간하는 『이천서씨명암공파보』는 『이천서씨교리공파보(1989년)』에 수록된 33개 문중 중, 교리공의 5대손 명암(鳴巖)공 강원감사 서인원(徐仁元)을 비조(鼻祖)로 하는 명암공파 9개문중의 파보이며 교리공파보가 발간 된지 15년 만에 착수하여 20년 만에 발간되는 파보이다.
족보는 30년 주기로 발간되는 것이 통례이나 15년 만에 착수하게 된 사유는, 수원선영의 보상금으로 거금이 조성되자, 춘천문중 단독으로 관리하던 종중 재산을 명암공파 각 문중을 포함하여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하고, 1994년 회칙을 개정, 명암공파종친회를 확대 개편하여 명암공파만의 독자적 파보발간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또한 교리공파보에 심각한 오류가 발견 되여 바로잡을 필요성이 있었으며, PC와 인터넷, 인쇄술의 발달로, 한글로 된, 읽기 쉬운 족보를 용이하게 편찬할 수 있다고 보아,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번에 족보를 편집하면서 경험해 보니, 옛 조상들이 교통 통신은 고사하고 한문을 붓으로 써서 족보를 편찬하든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6.25. 직후 그 열악한 시기에 전국의 19개 파문을 소집하여 정유보를 발간하신 밀양의 영구(永九)공, 교리공파보를 출간하신 운하공, 태원공, 상일공에게 감사하며 경의를 표한다.
이번에 편찬하는 이 파보의 특징은, 기존의 족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족보로서, 기존의 족보가 형제를 우선 기재하는 5-6 단 횡간체제로 기재되었으나, 이 족보는 할아버지-아버지-아들-손자 순으로 기재하는 가계우선으로 편집하였으며, 아들 딸 구분 없이 모두 등재하였고, 개인별 천연색 인물사진을 넣고, 신상명세를 가급적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묘소는 좌향과 소재지 지번을 표기(일부 경위도 표기)하고. 사진을 등재하여 먼 후손들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주소, 전화번호, E-mail 주소를 기재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이번에 발간되는 이 족보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간되는 가계별 앨범식 한글 족보라 하겠다.
족보를 편집하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또 많은 새로운 사실(史實)을 밝혀 기술하여 보람도 있었으나, 횡성 문중 4형제중 막내 덕창(悳昌), 득창(得昌)공의 후손들, 특히 수오공의 오라리 참배시, 아들 4형제를 데리고 와서 제수를 차려 놓고 기다리던 경백(景栢)공이, 그 후 기록이 없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 길이 없어 안타깝고, 포천문중 공적공의 차자 통천문중이 이북에 있어 족보에 누락 되었으니, 후일 족보를 발간할 때는 통일이 되어 등재되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교리공파보에 등재되었던 학담문중은 현지종친들이 ‘우리 문중이 아니다’하여 삭제하였으나, 혹시 위에서 언급한 득창 덕창공의 후손들이 아닌지 개운치가 않다.
효양산 시조공의 옛 사진을 보고, 오늘날의 그 장엄한 묘소가 있게 된 내력을 후손들에 전했으면 해서, 대종회약사를 기술하려 했으나 준비부족으로 하지 못했다. 몹시 안타깝다.
그동안 협조해주신 여러 종친들과, 종학, 재봉고문님, 끝까지 교정을 보아주신 종만, 종우회장, 대규 부회장, 편집위원장 인구이사, 서문을 써 주신 대종회 재석 부회장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파격적인 가격으로 인쇄를 맡아주신 나의 고교 동창 강원도민일보 안형순 회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끝으로 이 『이천서씨명암공파보』에 등재된 모든 족친들과 그 가정에, 그리고 모든 이천서씨 족친과 그 가정에, 사랑과 축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하며, 자자손손 그 자손들이 번성하기를 기원한다. 부디 종훈에 따라, 착하고, 근검하고, 지혜로우며, 용감한,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후손들이 되기를 바라며, 이제 장장 5년간에 걸친 『이천서씨 명암공파보』발간작업을 마친다.
첫댓글 수고하셨슴니다.....
대단한 일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만드신 자료를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