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소프라노 이윤숙, 김은정, 김지현, 조경화, 이현정, 이미경(왼쪽부터)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고향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봄이 되려면 아직 두세 달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꽃이 피었다. 이윤숙, 김은정, 김지현, 조경화, 이현정, 이미경이 한 무대에 올라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첫 소절을 부르자 객석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내로라하는 정상의 성악가 6명이 소프라노, 메조, 알토 세파트를 맡아 보여준 여성복3중창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옆 사람이 부르면 슬쩍 뒤를 받쳐주고, 또 그 옆 사람이 노래하면 살짝 밀어주며 멋진 화음을 이어간다. ‘내 목소리가 최고다’라고 뽐내지 않는 배려가 돋보여 더 좋다. 중간 중간 돌림노래 스타일을 넣었다. 노랫말이 귀에 쏙쏙 박히며 감동은 두배 세배 네배다. 어느새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새싹이 돋았다. 노랫말이 묘사한 풍경은 썰렁한 겨울이지만 “고향집 눈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봄이오면 가지마다 꽃잔치 흥겨우리” 하이라이트에서 결국 마음속 꽃망울이 터진다. 김재호 시, 이수인 곡의 ‘고향의 노래’는 이날만큼은 봄의 세레나데였다. 노래가 끝나자 “그래 올해는 꽃처럼 더 행복할거야”라는 희망과 기대가 온몸을 감쌌다. '아리수 가곡제'가 2017년 새해의 문을 활짝 열었다.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서울문화사와 아리수사랑 공동주최로 열린 '제7회 아리수 가곡제'는 수준 높은 출연진과 탄탄한 프로그램으로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가곡 공연으로는 드물게 430여석 전석매진이라는 히트를 기록했고, 2시간30분의 황홀을 경험한 관객의 얼굴에도 꽃이 피었다. 성악가 12명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한국 가곡을 선보였다. 소프라노 이미경·이현정·조경화·김지현·이윤숙·김은정, 테너 강무림·이현·이정원, 바리톤 송기창·석상근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준비해 기쁨과 위안을 선물했다.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 겸 여성경제신문 발행인도 특별출연했다. 김정주 아리수사랑 가곡카페 대표가 전체 진행을 이끌고 피아노는 정영하가 맡았다. | | | ▲ 바리톤 송기창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청산은'을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오프닝은 바리톤 송기창이 ‘아리수사랑(신달자 시, 이안삼 곡)’으로 열었다. 아리수는 옛 한강을 의미하며 아리수 가곡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된 곡이다. 한해도 빠지지 않고 개근한 그는 7년째 이 노래를 부르며 화려한 막을 올리는 주인공이 됐다. 해학적 가사가 빛나는 ‘명태(양명문 시, 변훈 곡)’에서 애드리브 느낌을 한껏 살린 ‘소주를 마실 때 카아~’하는 부분에서 관객들도 카아~하며 후렴구로 따라했다. 또 ‘청산은(나옹화상 시, 한지영 곡)’을 부를땐 탐욕을 벗어놓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라는 주제가 마음을 울렸다. | | | ▲ 바리톤 석상근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별을 캐는 밤'을 노래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알려진 성악가’ 바리톤 석상근은 ‘별을 캐는 밤(심응문 시, 정애련 곡)’과 ‘아리랑(경기민요, 백현주 편곡)’을 노래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석상근의 목소리가 ‘별을 캐는 밤’에 얹혀지자 여심은 흔들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이토록 고스란히 전달되니 안넘어올 여자가 어디 있으랴. ‘아리랑(경기민요, 백현주 편곡)’은 같은 가사를 3번 반복해서 불렀다. 처음과 두번째는 느리면서 차분하게, 마지막 세번째는 신나고 힘차게 연주했다. 마지막 흥겨운 부분에서는 리듬에 맞춰 고개를 흔드는 관객도 있었다. | | | ▲ 테너 이정원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내 마음 그 깊은 곳에'를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테너 이정원은 시원함의 끝판을 보여줘 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문득 생각난 사랑(최동호 시, 한성훈 곡)’은 강약 조절을 적절히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가사 중 ‘홀로 노래하던 사람’에서 ‘홀로 노래하던’은 계속해서 커지고 ‘사람’에서는 작아져 깊은 감동을 줬다. 김명희 시, 이안삼 곡의 ‘내 마음 그 깊은 곳에’에는 혼이 담겼다. 실제로 방금 이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처럼 불렀다. 마음이 통했을까. 노래를 끝낸 후 인사를 마치고 완전히 퇴장할 때까지 환호는 멈추지 않았다. | | | ▲ 테너 이현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를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브라보~'를 많이 받은 테너 이현은 ‘능소화 사랑(노유섭 시, 박영란 곡)’과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 이안삼 곡)’를 선보였다. ‘능소화 사랑’은 임을 보기 위해 줄기를 감아 올라 꽃을 피운 애절함에 묻어나는 노래다. 정확한 발음으로 곡의 내용을 전달해 이해하기 쉬웠다.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하라는 절절한 사랑이 뜨거웠다. | | | ▲ 테너 강무림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산노을'을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벨리니, 볼피 등 국제 콩쿠르 1위에 빛나는 테너 강무림은 ‘산노을(유경환 시, 박판길 곡)’과 ‘목련화(조영식 시, 김동진 곡)'를 불러 열정 가득한 무대를 보여줬다. ‘산노을’의 쓸쓸함을 덤덤하게 표현해 공감을 이끌어 낸 그는 이어진 ‘목련화’에서 변신을 했다. 마지막 구절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에서 화려한 고음으로 마무리해 많은 찬사를 받았다. | | | ▲ 바리톤 이정식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눈'을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특별출연한 바리톤 이정식은 ‘가고파(이은상 시, 김동진 곡)’와 ‘눈(김효근 시, 곡)’을 중후한 목소리로 소화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한 ‘가고파’를 잔잔하게 노래하자 마음은 어느새 산골, 강변, 바닷가 등 저마다의 그곳으로 달려갔다. 겨울이면 항상 듣게되는 ‘눈’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불러 금방 하늘에서 흰 손님이 쏟아질 것 같았다. | | | ▲ 소프라노 이미경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꽃구름 속에'를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소프라노 6명이 들려주는 목소리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이미경은 ‘우리의 행복(서영순 시, 이안삼 곡)’과 ‘꽃구름 속에(박두진 시, 이흥렬 곡)’를 밝고 경쾌하게 노래했다. ‘우리의 행복’은 사랑에 대한 기쁜 마음을 드러내며 동시에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곡이다. 행복함이 가득한 얼굴로 불러 관객 마음에도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꽃구름 속에’는 밝고 경쾌한 곡이다. 노래 시작 전 피아노 반주가 나오자마자 이미경은 리듬에 몸을 맡겼다. 중간 부분에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어 한겨우내 움치고 떨며 살아온 사람들 서러운 애기 서러운 애기 아~ 까맣게 잊고’ 라는 부분에서 박자가 느려지더니 다시 밝고 경쾌하게 마무리됐다. | | | ▲ 소프라노 이현정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옛날은 가고 없어도'를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이현정은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시 중 하나인 ‘엄마야 누나야(김소월 시, 이영조 곡)’를 슬픈 음색으로 불러 애틋함을 적절하게 그려냈다. ‘옛날은 가고 없어도(손승교 시, 이호섭 곡)’는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노래다. 그는 뉘우침 후에 오는 평안한 마음을 얼굴 표정으로 보여주며 부드럽고 포근한 음색을 뽐냈다. | | | ▲ 소프라노 조경화가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강 건너 봄이 오듯'을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조경화는 풍부한 성량과 깊은 성숙미를 가지고 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 임긍수 곡)'과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 최영섭 곡)'을 연주했다. ‘강 건너 봄이 오듯’의 반주는 듣기 편안했다. 음량이 시원시원해 곡 전달이 명확했다. ‘그리운 금강산’에서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몇몇~해" 부분을 부르자 관객들이 조용히 따라 불렀다. | | | ▲ 소프라노 김지현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어느날 내게 사랑이'를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힘이 있으면서도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김지현은 ‘사랑아 대답하라(심응문 시, 정덕기 곡)'와 ‘어느 날 내게 사랑이(다빈 시, 이안삼 곡)'를 부드럽지만 힘차게 노래했다. ‘사랑아 대답하라’는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화자와 달리 대답이 없는 청자에게 사랑에 대한 답을 달라고 애원하는 곡이다. ‘어느날 내게 사랑이’에선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줬다. 강하게 불러야 할 곳을 강하게 부르고 약하게 불러야 할 곳을 약하게 부르는 정공법을 선택했음에도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기본기가 탄탄했기 때문이리라. | | | ▲ 소프라노 이윤숙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나의 별에 이르는 길'을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이윤숙은 학구적이며 폭넓은 레퍼토리로 인정받는 세련된 음색의 소유자다. ‘나의 별에 이르는 길(박수진 시, 김애경 곡)'과 ‘그대 그리움(정성심 시, 박경규 곡)'을 선보였다. ‘나의 별에 이르는 길’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곡으로 부드럽고 침착하게 소화했다. ‘그대 그리움’을 부를 때는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전달됐고 관객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 | | ▲ 소프라노 김은정이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나팔꽃'을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무대를 압도하는 김은정은 조선민요인 ‘울산아가씨’와 ‘나팔꽃(고옥주 시, 임긍수 곡)'을 연주했다. ‘울산아가씨’를 부를 때 또랑또랑 하면서 신나는 느낌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나팔꽃’은 맑고 투명하게 불렀으며 고음이 시원하게 쭉쭉 올라갔다. | | | ▲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에서 김정주 아리수 사랑 가곡카페 대표가 진행을 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
출연진이 함께 부른 '희망의 나라(현제명 시, 곡)'를 마지막으로 ?醍?27곡의 노래를 마친뒤, 성악가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은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내년 콘서트에 대한 기대도 드러냈다. 테너 이정원은 “한국 가곡이 어려움이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부흥이 되고 있는 것이 영광스럽다”며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좋은 곡으로 한해를 활기차게 시작하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소프라노 이미경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 좋았던 가곡제다”면서 “가곡의 부흥을 위해 아리수가 힘써주는 것과 많은 관객분이 찾아와 주신 것도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소프라노 김은정은 “실력이 뛰어난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이 자리에 서서 영광이고 감동이다”라며 “앞으로 한국 가곡이 더 많이 불려지고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노래 만든 시인·작곡가 대부분 참석해 의미 더해 | | | ▲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제7회 아리수가곡제'을 마친 뒤 출연 성악가와 작사가, 작곡가 등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
이날 콘서트는 마무리도 훈훈했다. 모든 공연이 그렇듯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은 조명을 받지만 정작 멋진 노래를 만든 작사가와 작곡가는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역시 '아리수 가곡제'는 달랐다. 객석 맨 앞자리를 작사가와 작곡자들에게 내줬고, 관객들에게 한사람 한사람 소개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했다. 음악회를 마친 뒤에는 출연 성악가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해 멋진 애프터무대를 연출했다. ‘문득 생각난 사람’의 최동호, ‘나의 별에 이르는 길’의 박수진, ‘별을 캐는 밤’ ‘사랑아 대답하라’의 심응문, ‘능소화 사랑’의 노유섭, ‘우리의 행복’의 서영순, ‘나팔꽃’의 고옥주,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의 문효치, ‘어느날 내게 사랑이’의 다빈(김정주) 시인 등이 행복하게 포즈를 취했다. 현재도 활발하게 곡을 쓰고 있는 작곡가들도 자리를 빛냈다. ‘나의 별에 이르는 길’의 김애경, ‘별을 캐는 밤’의 정애련, ‘사랑아 대답하라’의 정덕기, ‘눈’의 김효근, ‘우리의 행복’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어느날 내게 사랑이’의 이안삼, ‘청산은’의 한지영, ‘그대 그리움’의 박경규, ‘능소화 사랑’의 박영란 작곡가 등도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었다. ‘고향의 노래’를 작곡한 이수인 선생은 몸이 편찮아 부인 김복임 여사가 대신 참석했고, ‘명태’를 작곡한 변훈 선생님의 아들인 변용범씨도 자리를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