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후[皇后] -
[ 제 1 황후 ] 문공황후 박씨[文恭皇后 朴氏]
1. 아버지 : 삼중대광 박영규 2. 어머니 : 국대부인 견씨(후백제 견훤의 딸)
3. 시호 : 숙절(淑節), 효신(孝愼), 경신(景信), 선목(宣穆), 순성(順聖), 정혜(貞惠), 안숙(安淑) 4. 고려 태조황제의 제 17 비 동산원부인, 고려 제 2 대 정종황제의 제 2 황후 문성황후와 자매
5. 능호 : 안릉(安陵)
문공황후 박씨(文恭皇后 朴氏)는 고려 제 3 대 정종황제의 제 1 황후(皇后)이다. 성은 박씨(朴氏), 본관은 승주(昇州)이다. 그녀는 후백제 견훤의 사위인 삼중대광(三重大匡) 박영규(朴英規)의 딸이다. 제 3 대 정종황제는 문공황후 박씨(文恭皇后 朴氏), 문성황후 박씨(文成皇后 朴氏), 청주원부인 김씨(淸州院夫人 金氏) 3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문공황후와 문성황후는 친자매이다.
문공황후의 세 자매는 모두 고려 황실과 혼인하였는데, 한 명은 태조황제의 제 17 비이고 두 명은 정종황제의 제 1 , 2 황후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그리 흔하지 않은 사실로 문공황후의 집안이 고려 건국 초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태조의 후백제 호족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시호는(文恭)이고, 능은 안릉(安陵)이며 정종묘실에 합장되었다. 1002년(목종 5)에 숙절(淑節), 1014년(현종 5)에 효신(孝愼), 1027년(현종 18)에 경신(景信)·선목(宣穆)·순성(順聖), 1056년(문종 10)에 정혜(貞惠), 1253년(고종 40)에 안숙(安淑)의 시호가 거듭 추증되었다.
[ 제 2 황후 ] 문성황후 박씨[文成王后 朴氏]
1. 아버지 : 삼중대광 박영규 2. 어머니 : 국대부인 견씨(후백제 견훤의 딸) 3. 고려 태조황제의 제 17 비 동산원부인, 고려 제 2 대 정종황제의 제 2 황후 문성황후와 자매
4. 자녀(1남 1녀) * 경춘원군(慶春院君) * 공주(公主)
문성황후(文成皇后)는 고려 제 3 대 정종황제의 제 2 황후이다. 성은 박씨(朴氏), 본관은 승주(昇州)로, 생몰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후백제 견훤(甄萱)의 사위였으나, 후에 고려에 귀순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른 영규(英規)의 딸로, 정종황제의 제 1 황후인 문공황후(文恭皇后)와 자매간이다.
아버지 영규는 견훤이 장남 신검(神劍)과의 불화로 금산사(金山寺)에 유폐되자, 고려에 귀순할 뜻이 있던 차에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공략하자 고려의 공신이 되었다. 이후 큰 딸은 태조의 제 17 비인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이 되었고, 나머지 두 딸은 정종의 황후가 되었다.
이는 고려가 후백제를 통합한 뒤 신라 왕통을 계승한 박씨가문과의 혼인으로 황실의 위상을 높이고, 후백제 계열의 호족들을 효과적으로 포섭하려는 정략에 따른 것으로, 문성황후(文成皇后)는 뒤에 왕자 경춘원군(慶春院君)과 공주 1명을 낳았다. 경춘원군(慶春院君)은 광종(光宗) 때 정치적인 이유로 생명을 잃었고, 공주는 태조의 아들 효성태자(孝成太子)와 혼인하였다.
[ 제 3 비 ] 청주남원부인 김씨[淸州院夫人 金氏]
1. 아버지 : 원보 김긍률 2. 고려 제 2 대 혜종황제의 제 3 비 청주원부인 김씨와 자매
청주 호족 김긍률은 당시 충주 유씨와 더불어 유력한 호족 중의 하나였는데, 원래는 태조 생존시 혜종에게 딸을 시집보냄으로써 혜종세력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힘의 균형이 깨지고 서경파와 왕요에게 힘이 집중되자 정종에게도 둘째 딸을 후궁으로 보낸다. 말하자면 청주남원부인 김씨는 김긍률의 호신책이었던 것이다.
- 자녀 -
[ 적 1 남 ] 경춘원군[慶春院君]
1. 어머니 : 문성황후 박씨
957년 당시 광종의 살벌한 정치로 많은 신하들이 무서워했었는데. 어느 한 신하가 광종에게 아뢰니 흥화군과 경춘원군이 역모를 꾸민다고 하여 광종이 죽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반역으로 귀양간 흥화군과 경춘원군은 1달후였던 957년 5월에 시사받았다.
[ 적 1 녀 ] 공주[公主]
1. 어머니 : 문성황후 박씨
2. 남편 : 태조의 제 11 비 천안부원부인 임씨의 아들인 효성태자[족내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