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이정 애 씨는 딸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이유 때문에
서로 떨어져 살아야만 했는데……. 그렇게 남편이 없이 살려면 딸의 생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상황 속에서도 항상 남편이
딸 경애를 데려간다는 불안감에 항상 불안 불안해했지만…….
결국 원치 않았던 그 생각이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딸 아이 경애를
빼앗기고 그 후로도 여러 번 경아가 살고 있는 곳에 찾아갔지만 남편은 반가워
하지 않고 경아와의 만남을 용납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4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이 흐르고……. 정애 씨는 서울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었다.
정애 씨가 다니는 교회가 있었는데 성당에서 만난 미국인이 정애 씨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보살펴주기에 정애 씨는 미국인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도 정애 씨는 딸 경애와의 연락을 끊고 싶지 않아서 시누이를 찾아갔다. 그리고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시누이에게서 편지 한통이 왔다. 편지의 내용을 보고
정애 씨는 한걸음에 한국으로 나와 딸 경아가 살고 있는 시누이의 집으로 향했다.
혼자 쓸쓸하게 마루에 앉아있는 딸 경아의 모습……. 뭔가가 외로운 모습의 딸…….
그 모습을 보고 정애 씨는 안아도 되냐 물어보고 서로 껴안았다.
그렇게 짧은 시간들을 보내고 딸 경아를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려니 정애 씨의 입이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결국 말을 꺼내게 되는데…….
딸 경아가 승낙을 한 것이다. 그렇게 약속의 의미로 정애 씨는
딸 경아에게 미국 동전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 기쁨도 잠시……. 정애 씨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정애 시는 머리를 크게 다쳐 한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인 남편이 중요한 것은 정애 씨라고 하며 정애 씨를 설득시켜
먼저 치료를 하러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딸 경아 씨는 성인이 되어있었다. 경아 씨는 두 번의 버림을 받고 나서
그 후로 부터는 엄마가 날 버리고 갔다는 마음이 커져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3년 울산 엄마는 끝내 돌아오시지 않았고 희망을 잃은 경아 씨는 엄마를 잊으려고 하였다…….
정말 경아 씨의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에게 두 번 버림받았다는 생각…….
정말 충격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것에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지금은 느꼈을 것이다. 이 두 모녀가 껴안는
모습을 보는 데 정말 감동적이고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었다.
그 동안 서로 얼마나 보고 싶었고 엄마 정애 씨는 얼마나 사과하고 싶었을까???
앞으로는 이 두 모녀가 다시는 이별이라는 상처를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첫댓글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죄송해요...
공지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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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공지 된 것 축하하고 글 잘 쓴다느 것 칭찬해주고 싶네..
우와 공지되엇네 축하축하축하 앞으로 잘써 나두 잘쓰게
잘썼네 나도 나중에 잘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