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愛/단편] [카밀세이]거짓된 진실. 진실된 거짓. for 티스님.

[황초아]

드디어, 세메이온이 일족과 합류했다.

카밀은 몇 번이나 이 순간을 상상했었다. 카밀은 세메이온이 얼마나 애타게 세이를 찾았는지 직접 두 눈으로 봤었기에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아스카란 자가 자신과 함께 서령까지 와서 거의 죽기 직전까지 피를 쏟아내며 세메이온을 되살렸을 땐 가슴이 뭉클했고, 클로네 일족은 이렇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카밀의 상상 속에서 세메이온은 세이를 만나는 순간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카밀은 세메이온이 얼마나 열심히 세이를 찾았었는지 세이에게 얘기해주다가, 자신도 그 만큼 열심히 찾았다고 슬쩍 말을 한다. 그러면 세이는 난처해하면서도 조금은 미소를 짓고 카밀은 참지 못하고 세이를 끌어안아 버린다. 그리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한다. 다시는 네가 할아버님 때문에 상처입지 않게 해주겠다고.

그 것이 몇 번이나 반복 된 카밀의 상상이었다. 지금까지 카밀은 당연히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저 사람 좋은 인물로 보이던 세메이온은 세이를 발견하는 순간 살짝 입가를 굳혔다. 그리고 아스카의 부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세이 앞까지 걸어가 두 손을 마주 잡고 한쪽 무릎을 꿇어가며 정중히 인사했다. 그건 약사로 가장해 세이를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궁정에서나 볼 법한 태도, 아니 주군에게 예를 표하는 기사의 자세였다. 유독 긴 그의 머리칼은 땅바닥에 흘러내려 더럽혀지고야 말았는데 아무도 신경 쓰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제 1 나이트 세메이온 라울. 세이라키아 로비니아 왕자님을 뵙습니다. 일전에 알아 뵙지 못했던 점, 그리하여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왕자님을 위험에 빠트린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부디 용서 마시길.”

조용하고 단정한 학자 타입으로 보이는 세메이온이 나이트, 그러니까 자신을 기사라고 지칭하며 세이에게 격식을 차려 절하는 것에 카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렸다. 카밀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세메이온에 대한 세이의 태도였다.

“일어나시죠, 세메이온님. 아스카님에게 사정은 다 전해 들었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전 무사히 발아를 마쳤고, 세메이온님은 다시 가수면에 빠질 때까지도 나이트로서의 의무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세이 또한 카밀이 알던 세이와 다르게 세메이온이 무릎 꿇고 인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마치 왕이 기사를 대하듯 세메이온을 대했다. 이건 카밀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나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카밀은 경악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카밀은 멋대로 끼어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건 황태자 에스테반 저하께 에드밀님이 보고를 올릴 때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아니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카밀은 세이와 세메이온님의 만남에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니 그 보다도 더욱 경건한 무언가가 있었다. 단아하지만 강인한 세메이온이 기사로서의 예를 표하는 것을 붉게 타오르지만 차가운 세이의 눈동자가 바라본다. 그 것은 일족마저도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째서? 아니, 어째서가 아니다. 세이는 클로네의 왕자고 세메이온님은 클로네의 기사니까 저런 것이, 당연한 거겠지?’

당연하게 보이지만 적응할 수 없는 광경에 엉거주춤 서 있던 카밀은 세메이온이 자신을 바라보고 그 시선을 따라온 세이와 눈을 마주쳤을 때에야 조금 긴장을 풀며 세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자신이 상상했던 대로 세이를 반갑게 안아 주며 자신이 한 다짐을 얘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것 마저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아아, 그래. 꼬마야.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우리가 곤란하지 않겠냐?”

아스카와 라스리프가 앞으로 나와 세이와 카밀 사이를 가로 막았다. 심지어 아스카는 순식간에 검을 뽑아 카밀을 겨누고 있었다. 카밀은 곧 소드마스터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던 유망주임에도 아스카가 검을 뽑는 순간을 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당했다.

손 쓸 새도 없이 제압당한 카밀을 구제해 준 건 세메이온이었다.

“아스카, 검은 뽑을 필요 없습니다. 위험인물은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검은 집어넣으세요.”

“세온, 아파서 너무 물러진 거 아니냐? 세온 답지 않은 걸?”

불만이 많은지 투덜대는 라스리프를 노려보며 아스카는 조용히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라스리프와 아스카 둘 모두 카밀에 대한 경계를 풀진 않았다.

하지만 카밀의 가슴을 내리 찌른 건 카밀을 경계하는 라스리프의 눈빛도 아스카의 살기도 아닌 세메이온의 담담한 말이었다.

“아스카와 라스리프 당신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있지 않다고 해서 인간에게 당할 린 없지 않나요. 게다가, 세이라키아 왕자님의 친척분이십니다. 그 만큼의 배려는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세메이온의 말은 그들이 카밀과 다른 종족임을 다시 한 번 못 박는다. 카밀을 바라보는 세메이온의 시선에서 그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경고를 읽어내며 카밀은 입술을 깨물었다.

“세메이온님의 말이 맞습니다. 아스카님, 라스님 물러서주세요. 전 카밀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이.”

“아스카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에페스도 있으니까요.”

세이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결국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세이는 그들의 그런 행동을 당연하게 여겼다. 세이는 더 이상 외조부의 그늘에 짓눌려 가려질 존재가 아니었다. 외조부에게서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카밀이 지켜 줘야만 하는 존재도 아니었다. 세이는 이미, 아니 처음부터 카밀의 손 밖에 있었다. 인간보다 몇 배는 우월한 클로네. 그 것도 평범한 클로네가 아닌 왕자라는 신분. 언젠가 왕이 될 존재.

그래. 세이는 왕이었다. 그저 혈통에 의해 왕이 된 그런 수준이 아니라 세이 그 자체가 왕에 걸맞은 자였다. 본래도 세이의 뛰어난 머리는 왕에 걸맞았을 터인데 만나지 못한 그 짧은 시간동안 세이는 왕의 기품과 당당함마저 갖추고 카밀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에페스. 눈이 부십니다만.”

“갓을 벗어야 눈을 보고 얘기할 것 아닌가. 유일하게 그리워하던 자 일 탠데?”

“.......그렇군요.”

카밀이 상상했던 자리에,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세이의 곁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자가 있다. 한발 앞서 세이를 배려해주고 조용히 뒤를 지키는 이가 있다. 에페스의 오묘한 색상을 지녔기에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와 여유로운 미소에서 승자의 태도를 느끼며 카밀은 열등감을 느꼈다.

‘아니, 내가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가 승자처럼 보이는 건가.’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에페스만 노려보는 카밀을 보고 세이는 작게 한숨을 내 쉬며 그를 불렀다.

“카밀님.”

천천히 세이에게로 돌아오던 카밀은 문득 세이의 여전한 경어를 눈치채곤 이마를 찌푸렸다.

“.......이젠 카밀이라고 불러줘도 되지 않아? 넌 이제 왕자라며.”

“그러는 거기 인간 꼬마야 말로 세이에게 경어를 써야하는 거 아닌가?”

세이의 명에 물러섰지만 신경은 끄지 않고 있던 라스리프가 세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끼어들었다. 카밀은 그저 평소처럼 투덜댔을 뿐인데 라스리프는 정작 그 자신은 연초를 물고 불량한 태도로 있으면서 카밀의 어투를 지적해 들어온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자들도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의외의 인물에게서 지적이 들어와 그들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조금 지친 듯 나무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세메이온이 살며시 눈을 뜨며 당당히 대화를 엿듣고 있는 일족들을 바라봤다.

“그건 세이님께서 결정하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대화를 엿듣는 것은 좋은 습관은 아니지요. 제가 없는 동안 다들 너무 늘어지셨군요.”

세메이온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지적하자 그들은 딴 청을 피우며 혹은 투덜대며 얌전히 엿들을 수 없는 거리까지 물러섰다. 세이는 세메이온에게 고개를 숙여 작게 감사의 표시를 한 후 다시 카밀을 바라봤다.

“애초에 카밀님은 클로네가 아니시니 제게 경어를 쓸 필요는 없지요. 그러니 카밀님이 평소대로 말하셔도 전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세이 너도 말 놓지 그래? 이젠 신분의 차도 없잖아? 오히려 네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걸. 난 귀족, 넌 왕족인거니까.”

카밀의 말에 세이는 잠시 고민을 하는지 입을 다물고 카밀을 바라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카밀님은 동맹인 아스란 제국의 귀족이니 함부로 대할 순 없죠.”

“그럼 결국 나도 너한테 경어를 써야 하는 거 아냐?”

“카밀님은 제 사촌이니 그 정도야 봐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어코 자신을 편하게 대하지 않는 세이에게 카밀은 섭섭함보다도, 벽을 느꼈다.

정치. 세이는 카밀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있다. 자신과 카밀의 지위를 가늠하고 태도를 결정한다. 단, 이곳이 사적인 자리이고 상대가 친분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 카밀에게까지 제약을 걸진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의 입장은 고수한다. 만일에 대비해 틈을 보이지 않는다.

“서운하십니까.”

“.......잘 아네.”

세이는 작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건 카밀의 상상 속 미소와는 달랐다. 세이는 카밀에 대해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다. 세이는 카밀이 원했던 것처럼 당당하게 미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세이가 있는 곳은 카밀과 먼 곳이다. 그 곳에서 카밀이 모르게 세이는 변하고 있다. 그 것이 카밀은 불만이었다.

“보안부는 세이가 없어서 난리 났는데, 다시 올 생각 없어?”

“곤란합니다.”

“어째서?”

“가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내가 있는데도? 내가 널 원한다고 해도?”

조금은 당황해 보라는 의미로 카밀은 자기 나름의 직격타를 날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세이는 미동이 없었다. 오히려 예상했다는 듯 담담히 답했다.

“카밀님은 여성과 결혼 하셔야지요.”

“.......내가 그 아일린이라는 여성과 결혼하길 바라는 거야?”

“으음. 굳이 제 의견을 말하자면 그녀의 신분이나 외무대신의 정계에서의 영향력 외모 등을 고려한다면 카밀님에게 어울리는 상대이긴 합니다.”

“그건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지? 솔직히 레이디 아일린은 아랫사람에게 너무 막 대한다고! 사람을 신분만으로 평가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인간성 등은 싸그리 무시한 세이의 평가에 카밀은 역시 마음에 안 들 줄 알았다며 기뻐했다. 그런 카밀을 가만히 바라보던 세이는 한 숨을 내쉬었다.

“결혼하는 건 제가 아니라 카밀님이십니다. 물론 아일린 영애는 카밀님 마음에 들 만한 여인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녀 외에도 카밀님과 혼인하길 원하는 여인들이 많을 탠데, 그 중에 한 분 정도는 카밀님 마음에 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마 루스터 공작가를 그대로 망하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건 가문과는 상관없는 문제잖아! 난 그저,”

“전 상관있다고 봅니다. 루스터 공작가는 제 어머니의 가문이면서 아스란 제국의 중추에 서 있는 가문입니다. 그 가문이 헛된 생각으로 인해 망하고 루스터 가문에 기대고 있는 자들 또한 몰락하는 걸 바라만 보고 있을 순 없습니다.”

“헛된 생각이라니! 난 진심이야! 언제까지나 진심이었다고!”

카밀이 아무리 외쳐도 세이는 요동도 하지 않았다. 카밀의 진심어린 말은 세이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하고 그대로 되돌아오기만 했다. 오히려 세이의 붉은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 내리며 카밀의 가슴 깊숙이 비수가 되어 꽂혀 들어왔다.

“카밀님. 당신은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그저 네가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야!”

“그럼 어째서 절 당신의 곁에 묶어 놓으려 하십니까. 정녕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시는 겁니까. 제가 당신의 곁에 있으면 전 허공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곳에서 홀로 싸우면서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겠죠. 오히려 잃어야 하겠죠.”

“내가 있잖아! 네 곁엔 내가 있을 거고, 넌 날 얻을 수 있어!”

뿌득.

세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뼈마디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에페스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격한 목소리가 세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연인으로서 동성애자라는 비난을 받고, 아스란 제국의 유망주를 타락 시켰다는 눈초리를 받고, 그걸 미끼로 제가 이뤄낸 성과와 받아야 할 권리와 보상을 깎아내리려는 공격을 받으면서 단지 당신을 얻는 것만으로 제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자신하실 수 있습니까?”

그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일족들이 그리고 카밀이 놀랄 정도로 세이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큰 소리로 비난 섞인 말을 내 뱉고난 후 세이는 격해진 호흡을 진정시키지 못해 가슴이 아파옴을 느꼈다.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에페스는 갑자기 세이의 굳게 쥐여진 주먹을 감싸잡고 조심히 풀어냈다. 얼마나 세게 쥐였는지 힘겹게 펴진 세이의 손가락들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에페스의 손길에 세이는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앞을 바라봤다가 카밀의 눈동자를 보고는 시선을 피했다.

“세이, 너 어째서 그렇게.......”

“변한 게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외면해 온, 아니 생각해보려 하지도 않았던 현실일 뿐입니다. 저에겐 알려 하지 않아도 온 몸을 짓누르며 다가온 현실.”

“하지만, 넌 오래 살잖아. 천년은 살잖아. 난 고작 몇 십 년 뒤엔 죽을 탠데 그 정도 쯤!”

차갑게 식어 내리는 세이의 눈동자를 보며 카밀은 아차 싶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한 말 중 무언가가 세이에게 상처 입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요를 되찾은 세이가 카밀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카밀님. 전 한 일족의 왕자입니다.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클로네의 평가로 이어집니다. 당신이 고작이라고 말하는 그 몇 십 년으로 인해 우리 일족은 잘못된 편견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 그런 잘못된 선례를 남길 생각이 없습니다. 게다가 언젠가 저는 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여성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전 저처럼 부모의 실수로 인해 아이가 괴로워하길 원치 않습니다. 아이가 아버지의 흔적을 되짚어 가며 혼란에 빠지길 원치 않습니다. 제 아이는 부모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사랑을 알 수 있길 바랍니다.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카밀님.”

토해내듯이 긴 말을 쏟아낸 세이가 잠시 숨을 가누다 입술을 깨물며 눈을 바닥으로 내리 깔았다. 무언가를 참아내듯 세이의 어깨가 떨렸다. 그 애처로운 어깨를 에페스가 붙잡아 지탱해 줬을 때 세이는 다시 시선을 들어 카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그리고 세이는 자신을 감싼 에페스를 거칠게 밀쳐내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 걸어갔다. 잠시 카밀을 바라보던 에페스가 고개를 흔들며 세이를 쫓아가고 일족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했다.

근처 나무에 기대어 서서 조용히 세이와 카밀의 대화를 지켜보던 세메이온이 라스리프와 아스카에게 일족을 인솔해 세이 뒤를 쫓아가라고 명했다. 그리고 세메이온 본인은 세이의 말에 충격 받아 멍하니 서 있는 카밀에게 다가왔다.

저 멀리 세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카밀의 눈동자가 멍하니 세메이온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은 분풀이가 담긴 말이 쏟아져 나왔다.

“당신들은, 클로네는 동성애에 편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제가 틀렸습니까? 당신들도 인간과 다를 바 없는 편견으로 가득 찬 종족이었던 겁니까? 제가 보기엔 분명 당신과 아스카도.......”

하지만 카밀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세메이온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파르르 흔들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진한 보라색 눈동자가 카밀을 바라보다 천천히 바닥으로 내리 깔린다.

“클로네이기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저희는 일족 밖에서 배우자를 찾아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출생률이 낮으니까요. 인구수가 줄어드는 건 일족의 가장 큰 걱정거리죠. 그렇기에 일족 내에서의 사랑은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관계를 당신에게 들킨 건, 그 때 저와 아스카 모두 심신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뭔가 더 반박하려던 카밀이 무언가를 눈치 채곤 경악했다.

“설마, 아무도 모르는 겁니까?”

“아는 자가 몇 있긴 하지만 그들도 모른 척 하고 있지요. 아니, 모른 척 해줄 걸 알기에 순순히 들켜줬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군요.”

그리고 잠시 입을 다물고 뭔가 말을 고르던 세메이온은 한숨을 내 쉬며 카밀에게 말 했다.

“당신은 세이님을 사랑할 각오가 부족하셨습니다.”

“전 그 누구보다도 세이를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세이님이 당신의 사촌이 아닌 왕자님이라는 걸 더욱 일찍 실감하셨어야 합니다. 세이님의 어깨에 놓인 짐의 무게를 이해하셨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결정하셨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세이님을 사랑하실 수 있는지를.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짓밟는 짓까지 할 수 있는지를.”

카밀은 세메이온이 하는 말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것은 세메이온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어떻게, 그런 걸 생각해 낼 수가 있습니까? 난 그저 세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스카는 일족을 위해 절 위험 속에 혼자 보내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제가 임무에 실패하고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세이님의 발아가 끝난 후에야 절 찾아올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사랑에 빠지지 않은 아스카가 할 법한 행동이기 때문이죠. 그 것이 아스카가 저를 위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는 온 몸의 피를 다 쏟아내면서까지 당신을 구해냈습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희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아, 그건 제 지위 때문이지요. 전 왕과 생명을 공유하는 나이트이기에 제가 살아 있어야 다음에 또 왕께서 큰 상처를 입는다 해도 즉사하진 않으실 태니까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스카 그는 그저 당신만을 사랑해서 왔을 수도.......”

세메이온은 그저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아스카가 위험에 빠진다 해도 자신은 일족의 안전이 보장되기 전엔 그를 구하러 가지 않을 거라고. 아스카 또한 마찬가지라고. 사랑하기 위해 그들은 일족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다고.

세메이온을 살리기 위해 아스카가 어떤 짓을 했는지 두 눈으로 봤던 카밀은 세메이온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건 자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하는 세메이온이 정말로 아스카를 사랑하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째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기에 몇 백 년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저희의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서로를 사랑함으로서 상처 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비난 받지 않는 대신 축복 받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너무 이상적이십니다. 혈통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랑이 축복받을 수 있다고 진정 생각하시는 건가요?”

“세이가,”

조곤조곤하면서도 날카로운 세메이온의 말에 이어서 어느 순간 다가온 아스카의 차가운 목소리가 카밀의 귓가에 와 닿자 그 냉기에 카밀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들 곁으로 다가온 아스카는 아까와 달리 세메이온을 부축하지 않았다. 세메이온도 그런 아스카를 못마땅해 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아스카가 마저 말을 끝내길 기다렸다.

“어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눈물 흘렸다고 에페스가 전해 달라는 군. 무엇 때문인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카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과 세이가 사랑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일 같은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이는 그 이상을 보고 있었다. 카밀을 사랑하게 된다면 쏟아질 비난과 그 비난이 미칠 영향들. 세이는 그 모든 것을 생각하고 눈물 흘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세이는 카밀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혼자 돌아가실 수 있으십니까. 원하신다면 동행을 붙여드릴 수 있습니다만.”

세메이온의 말에 카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누군가와 같이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홀로 남고 싶었다. 세이와 함께 갈 수 있을 줄 알았던 이 길을 타인과 걷고 싶지 않았다.

“그럼,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카밀님.”

카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 한 세메이온은 뒤돌아 일족이 간 곳을 향해 걸어가려다 잠시 휘청 이며 넘어질 뻔 했다. 그런 그를 붙잡아 부축한 건 아스카였다.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세메이온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스카는 그를 안아 올리곤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시 카밀과 마주 친 세메이온의 눈동자는 혼자 남은 카밀을 향해 살짝 미소 지었지만 곧 지친 듯 아스카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하지만 일족의 시선이 닿는 곳에 도착하면 세메이온은 아스카의 부축 없이 혼자서 걸어갈 것이다. 아스카 또한 그런 세메이온을 말리지 않을 것이다.

카밀은 그들을 보며 그제야 느꼈다. 자신이 자각하지 못했던 벽을.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책임을. 자신에게 부족했던 세이에 대한 배려를.

“또....... 나는 널 이해하지 못한 건가. 그리고 나는 또 널 놓칠 수밖에 없는 건가.”

세이의 무거운 짐을, 세이의 크나큰 상처를, 세이의 감춰진 눈물을,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 세이의 마음을 카밀은 알아채지 못했다. 오로지 세이와 자신 사이에 놓인 벽에만 집착하며 세이의 곁에 다가가는, 아니 세이를 자신의 곁에 데리고 오는 것에만 집착을 했다.

그리고 결국, 카밀은 그 두 손으로 세이를 잡을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벽 너머의 세이는 카밀이 물러나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마음마저 찢어버리며 카밀을 상처 입혔다. 그 말들을 내뱉기 위해 세이가 얼마만큼의 고통을 집어 삼켰을지 카밀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보내줄게.”

카밀의 목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힘들지만, 아프지만, 보내줄게.”

흐려지는 시야에 눈을 깜박이며 카밀은 세이가 사라진 저 먼 곳을 바라봤다.

세이 앞에서 세이가 스스로를 상처 입히기 전에 해줬어야 했을 말들을 혼자 중얼거리며 카밀은 뒤돌아서서 세이와 정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신에, 행복해야 해. 세이. 함께할 수 없는 대신, 행복해져야만 해. 내가 널 사랑하는 만큼.”

카밀의 귓가에 환청일 것이 분명한 세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행복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전 떠나갑니다.’

바람이 분다.

전해지지 못할 말들을 흩어내는 바람이 불어 숲을 뒤 흔든다.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하는 두 청년의 눈물을 기억한 숲이 그들을 대신해 흐느끼고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이 슬픔을 노래한다.

“세이라키아, 널 사랑하겠다. 영원토록.”

‘사랑했습니다. 카밀 폰 루스터, 당신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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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날_카밀세이_추종자분들_뒷통수치기.txt 를 제목으로 정할까 1분 고민했음요.

아니면 만우절날_카밀이_뒷통수치기.txt 도 좋고요?? 뭐 생각은 했었다고요 아하하^-^

글은 신나게(?) 써놓고 제목을 못 정해 한참을 시름시름한 단편 되겠습니다. ㅠ.ㅠ

어... 이거 티스님 리퀘인데 말이죠. 사실 티스님 썰을 별냥이가 쓰게 하려고 수 쓰다가 뒤집어 썼.........OTL??

네, 그래서 티스님 썰은........ .... .. ... ... ... ... 이걸 어떻게 요약하죠? 크크크??

굳이 요약하자면 : 세온이 세이에게 무릎꿇고 왕자님을 뵙습니다 하는걸 보며 깜놀한 카밀이가 세이에게 다가가다 일족들에게 튕김을 당하면서 자신과 세이 사이의 거리에 대해 깨닫는, 이렇게 카밀 괴롭히기. : 가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전 맘놓고 현실드립하면서 카밀이를 갈궜(?)어요, 오늘따라 공부가 안되서 그런지 잘 써지더니 끝까지 손이 안 멈추더라구요.(응?)

왜 중간에 아스세온이 끼어들어가 있냐고 물으시면 저런 카밀 가슴에 이중으로 못 박는 말을 누구한테 시킬까 고민을 해보니 세온이 가장 어울릴거 같아서...........는 핑계구요 사이드로 아스세온 쓰고 싶었어요. 시름시름....... 사실 제 머릿속 아스세온은 저런 경향이 강해요. 아스세온 글 쓸 땐 그래도 나름 이상을 섞어서 중화 된 걸 쓴단 소리...(응?)

아.. 이제 포포님 리퀘만 남았나! 근데 전 어제, 언제 받았나 모르겠는 니샤님의 리퀘를 발굴했고! (....) 이 두개는 해피해피 분위기라.... 저 공부좀 하면서(...) 천천히 쓸래요..키키..키....OTL

감상 비평 지적 받습니다. 댓글과 소감도 감사히 받아요-

[포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흡흡흡슬퍼영ㅠㅠ초아님새드물은 여운이ㅠㅠ 전 오늘도 학원에서 이생각에 시달리겟찌....'ㅅ'...보배로운소설로 눈정화합미당!

[황초아]

아하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작위정신]

음... 세이의 성이 바뀌어 있네요.. 저거 진짜 성인가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하하하... 애잔하긴 해도 좋네요...하아~

[황초아]

아, 라휄 성이 저거라기에, 저걸로 써봤어요, 발음이 왠지 예쁘지 않나요? 하하 감사합니다~

[데스티ny]

우와.ㅠㅠ 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역시 저는 세이가 좋아요.;ㅂ; < 무슨상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황초아]

저도 세이 좋아요 //_ // 크크

[En쏘니]

세이의 성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이의 진자 성인가요?

[황초아]

라휄 성이 로비니아라기에 써봤어요 하하. 나이트인 세온에겐 이 쪽이 익숙하지 않을까 싶어서.....근데 챗방에서 언뜻 봤던걸 기억에 떠올려서 쓴거라 틀릴지도 몰라요. 쿨럭.....

[호타루]

아악...ㅠㅠㅠㅠ현실성이 있어서 더 무서워요 흐규흐규....잘 보고가요.세이라키아 로비니아....어색한데 예쁘네요 헤헤....

[황초아]

예쁘죠! 전 개인적으로 그 이름이 더 어울린단 생각이 들어서...헤헤... 음.. 세이와 카밀의 수명 차 때문일지 아니면 둘 다 자손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전 카밀세이를 잘 못 쓰겠더라구요;;

[[P]Dana]

..앞부분 좀 읽다가.. 맘이 너무 아파서.. 우리 카미리가 너무 불쌍해서..ㅠ 그냥 쭉 내려왔습니다..ㅠ 그로디망 얘들아..ㅠ 찌망 라스리프는 왜 거기서 끼어들어서 우리 카미리한테 뭐라고 해요? 그런 놈일 줄 몰랐긔..ㅠㅠㅠ

[황초아]

키..키키.. 다 못읽으셨군요. 아하하... 너, 너무 괴롭혔나 덜덜... 세온과 합류할 때 즈음이면 마물족과의 싸움도 꽤 격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다들 세이 보호(?)에 열성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그렇게 써 봤는데.. 하하...;; 6권에서 라스의 '이런 나도 충견이긴 하거든'이 꽤 인상깊었던지라 일부러 라스를 넣어봤어요, 그러니까 라스 미워하지 마세요, 흑흡.. 차라리 절.. 흑흡..(응? 아하하;)

[다온]

후후+_+ 안구정화 하고 갑니다+_+

[황초아]

하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

[[P]애눌]

^,^ 레알 제가 사랑하는 전개네요.. 초아님 숨겨왔던 저의 사탕 드릴까요? 헤헤.. 아이고 좋네여.. 헤헤.. 레알 깨알같은 라스리프도 좋구요 헤헤...

[류스즈]

디게 잘쓰셨네요... 능력자 인정

[[M]世]

검사 완료:)

[까막눈물샘]

우아 진짜 잘쓰셨네요^0^
카밀세이한테 뿅 갔어요ㅠㅠ 더불어 아스세온한테까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