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의 의의
족보는 같은 씨족 혹은 동족의 시조로부터 족보 편찬 당시의 자손까지의 계보를 기록한 책으로 족보를 통하여 종적으로는
시조로부터 현재의 동족원까지의 세계(世系)를 알 수 있고, 횡적으로는 현재의 동족 및 상호의 혈연적 관계를 알 수 있다.
족보는 성과 본관이 같은 부계친족을 동일 씨족의 관향을 중심으로 씨족의 발원에 대한 사적과 시조 이하 세계의 개통을
수록함과 동시 현존 동족원들을 망라하여 동족의 근원과 그분포를 알릴 목적으로 편수한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가계 (家系)의계승을 가장 종요한 가업으로 여겨왔는데,이것이 제대로 되어야위로는 조상을 높이고 아래로
는 자손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동체와혈연 가족의식이 특히 강한 우리 민족에게 족보는 개인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주는 근본이 되는 역사책으로 오늘날
에도 그 가치와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족보와 보학의 종주국이라자처할수 있는 중국이나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서양에서
족보가 나름대로 발달해왔는데, 영국, 프랑스,독일,스웨덴,네덜란드,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을 꼽을 수 있다.
나라마다 족보학회가 있어정기적으로 족보학 학술회의를 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족보학회는 1895년에 창립되어
미국 내에 수백 개소의 지회를 갖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보학은 족보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옛날에는 벼슬아치나 선비들의 교양 학문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보학은 사학은물론사회학, 정치학, 행정학,민법학, 민속학 등의 보조 학문으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즉 형치 권력의 이동이라든가 사회 계층의 변동을 연구하는 데는 물론 인사제도와 가족제도와 가족법, 자연부락의 조직 및생태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족보를 기초 자료로 삼게 된다.
보학은 모든 성씨의 관별(貫別) 또는 같은 뿌리를 가진 시조(始祖)의 혈통을 이어받아 오는동족의 씨족사적인 족보를 비롯하여 전기, 행장(行狀), 문집(文集)등의 기록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족보의 역사
족보는 한 종족의 계통을 부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나타낸 기록으로, 동일 혈족의 원류를 밝히고 그 혈통을 존중하고
계승하며, 자랑스러운 조상의 행적을 답습하고 동족간의 화목을도모하기 위한 한 가문의 역 사책 이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성이 중복되고, 한 성씨를 가진 자손들의 숫자가 늘 어나면서 그 계통을 밝히기가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그 계통을 일목요연 하게 밝히기 위해 계보를 만들었는데, 우리조상들은 고려시대에 이를처음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가붙이가 많 아지고 문벌의식이 높아지면서 족보만들기가 유행했다.
이는 조선시대에 유교를 숭상하면서 신분질서가 강화되고, 제사의식 등 조상승 배사상이 퍼지며, 문벌이 강화되고 남녀의 차별이
굳어지게 된 시대풍토를 반영한 것이기도하다.
우리 나라의 족보는 중국의 성씨제도(姓氏制度)인 한식 씨족제도(漢式氏族 制度)를 근본으로 삼고 발전하여 정착했는데, 그 시기는 1,000 여 년 전인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인 것으로추정된다. 족보는처음 귀족사이에서 가첩(家牒)이나 사보(私報)로 기록하여 왔는데,이러한 가계기록은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중기에 오면서 족보 형태를 갖추는 가승(家乘),내외보(內外譜),팔고조도(八高祖圖)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발간된 족보는 조선초기인 세종 5년(1423)에 간행된 문화류씨락족보(文化柳氏永樂族譜)로알려져 있으나
그 서문만 전할 뿐이다.그후 성종 7년(1476)에 간행되어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있는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가 최초로 가장 체계화된 족보로 알려져 있다. 또 문화류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도 명종17년(1562, 10책)년에 간행되어 오늘날 까지 전하데,
완벽한 체계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외손까지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후일에 여러 족보를 만드는 데 좋은 모형이 도었다.
이밖에 조선초기 간행된 족보는 남양홍씨(南陽洪氏,1454),전의이씨(全義李氏,1476), 여흥민씨(驪興閔氏, 1478), 창녕성씨(昌寧成氏,1493), 등의 족보가 있다.
조선초기의 족보는시대상황을 반영하여 친손, 외손의 차별이 없이 모두 수록하고 있으며, 선남후녀(先男後女)에 관계없이 연령순위로 기제하고 있다. 족보가 더욱 일반화되기는 조선시대 중엽(1567~1608)부터이다. 문벌이 강화되자 각 문벌들은 일족의 유대를 공고히 하기 방편으로 족보를 동원하였고,이것이 족보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족보는 조선후기,헌대로 오면서 천민과 양반 사이의 신분이 엄격했던 조선초기와는 달리 본인과 후손의 사회적 신분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증표구실로 뚜렸한고증도 없이 미화하거나 과장,조작하여 간행하는 일들이 많았다.
특히1909년 민적법(民籍法)이시행되면서 누구나 성(性)과 본(本)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아라 족보를 사고 팔거나 훔치는일이 있어 동족 및 상호의 혈연적 친근원소(親近遠疏)의 관계가 의심스럽게 된 점도 있다.
축보의 유래 와 변천사
축보는 중국 왕실의 왕실계통의 제왕연표를 기술했던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주나라 때부터 발달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보학은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사마친의 사기 (史記 ) 의 영향을 받으면서 후한 이후부터 고관을 배출하던씨족들이 늘아나게 되니 문별과 가풍을 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생기계 되었고, 버슬에 오르거나 승진과 혼인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로써 각 종족은 자신의 가문의 문벌과 계통을 기록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의 고려 때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의종조에 김관의의 왕대실록 이 그 효시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족간에 족보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고려사의'열전'에 부자 관계가 밝혀저있어 후대에 나온 각 씨족들이족보를 만드는 근원이 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책을 관청에 보관하여관리를 선발하거나 과거에응시하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결혼하는 데에도 이용하였는데 그 기록문서는 종부시라는 관청에서 관리하였을 만큼신분 제도의 유지와 관리에 중히 쓰였다.
중국의 최초의 족보
북송의 대문장가인 소순, 소식,소철 삼형제에 의해 만들어진족보는 '소보(蘇譜)'라 불릴 만큼 뛰어나서 후세의 표본으로삼아졌으며, 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학문으로서보학을 연구하기에 이른넜다.보학 연구의 선구자라고불남조의 제나라 사람 가희경
(賈希鏡)은 3대가 모두 보학에 밝았는데, 중국 전토를 총망라하여1백질7백권에 달하는방대한저서를 만들어내니 이것이사인족보의 시초로 가장 정확한 계보로 일컬어진다.
우리나라 최초 의 족보
우리 나라 에서 동성동본의 혈족 전부를 체계적으로 망라한 세보가 등장 하기 는 1400년 들어서 이다 .
기록에 전하는 우리 나라 최초의 족보는 423년 (세종 5)의「문화류씨영락보」 인데 서문만 전할 뿐 전하지 않는다 .
현존 하는 최고의 족보는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안동 권씨 성화보 와 」「 화 유씨 가정 보 」 를 꼽는다 .
1476년 (성종 7) 에 간행 된 성화 보는 중간본만 전해지며 , 이보다 86년 늦은 1562년에간행된 문화 유씨의 가정 보는 완벽한
체계를 갖추었을뿐 아니라 외손 까지도 상세히 기록 되어 있어 그 후에 여러 족보 를 만드는데 좋은 모범 이 되었다 .
족보 의 변천사
족보는 처음부터 왕실의 왕족계보에서 시작되어 유력한 씨족의 전유물 이었으나 , 우리나 라의 경우 유교를 바탕 으로 한 안정된
신분제 사회를 구현했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양적 으로 질적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수많은 성씨와 관향에서 족보를 편성하고 간행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
우리 나라 에서 역대 왕과 왕족 의 계보를 체계화하여 남긴 최초의 문헌은 신라 말기 최치원 이 저술한「제왕연대력」 이다.
이후 고려시대 에는 초기 부터 성씨 체계의 토대를 마련 하였고 중엽 이후에는 왕대실록 , 선원록 등이 작성되었다 . 종부시 를
중앙 부서에 두고 왕실의 보첩류를 맡아보게 하여 왕대 연표와 왕자들에 대한 전기 등 을 수록 하여 왔다 . 조선조에서도 종부시를 두었으며 ,1412년(태종 12)에 「선원록」과「종친록」을 만들었고 종실내부에서 적서의 명확한 구분 을 위하여 「 국조 보첩」,「 당대선원록 」 , 「 열성 고조도」 , 등과 외척과 부마를 수록한「돈녕보첩」을 편찬하였다.
1679년 (숙종5)에는 선조의 친손인 낭원군 반(半)의 상소로「선원계보기략」의 간행되었는데, 이 책은1931년에 이르기까지 각 왕대에서 교정보완되어 신하들에게 반포되었다. 1680년에는 선원록 50권이 출간되었는데, 이후 왕실에서는교정청을 수시로 별도 설치하여 수정업무를 보았고, 1757년부터는 종부시에서, 1864년부터는 종친부에서 주간하여 그 업무를 맡아보았다.
특히 「 국조 보첩」에는 태조아래의 세계와 함께 왕과 왕비의 존호, 탄생,승하 ,능침 , 자녀등에 관하여 기재함은 물론 종친간의 배위,혼인관계,생몰 년월일 등도 상세히 알 수 있도록기록되어 있다. 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세계 최고의보첩기록술로 평가되고 있다.
왕실 을 중심으로 하여 몇몇유력한 씨족만이 지녔던 족보가조선시대에 들어와 더욱 편성과 간행이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동성불혼과 계급내혼제의 강화, 소목질서 및 존비구별의명확화, 적서의 구분 등의 신분세습구조의 강화와 안정을위해 지배계급인 양반층에게 족보의의미가 더욱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선조조에 이르러서 족보의일반화는 더욱 촉진되는데, 당쟁이가열되어 점차 문벌간의 대결이라는 양상을 띠게 돈 것이 큰요인이라고 보여진다. 이 과정에서 족보는 혈통을 존중하고동족끼리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큰 역활을 하였다.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의 전란을 겪는 과정에서 종래의 엄격했던 신분제도가 해이해짐에 따라 동족의 명부라고할 족보를 만들어 다른 혈혈통을사칭하는 것을 막으려는필요성이 생긴 것도 수보사을 활발하게 한 하나의 요인이다.
오늘날에는 대가족제도의붕괴와 핵가족화로 족보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약화되고 쇠퇴하였으며, 한자 위주의 어러운 내용으로 인하여 한글세대인 젊은이들에게 더욱 거리가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 보첩을 한글로 풀어서 만들거나 유적 유물의 사진을 중심으로 한 사진첩이나 비디오 영상매체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의 활발한보급으로 각 종친회를 중심으로 하여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와 자료제공도 점차 늘어나고있다.
족보의 종류
족보는 동족의 세계(世系)를 기록한 역사이기 때문에 족보를통하여 종적으로는 시조로부터 현재의 후손까지의 세계와관계 를
알 수 있고,횡적으로는 현재의 같은 혈족간의 상호 혈연적친근원소(親近遠疏)의 관계를알 수 있다.
족보에 수록되는 동족 범위에의하여 보첩을 구분하면 일반적으로 한 동족(同姓同本)의전체를 수록한 계보(系譜)와 한족동족안의
분파(分派)의세계(世系) 만을 숫록하는 파보(派譜).국내 족보 전반을 ㅇ앙라하는계보서(系譜書)등 크게 3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보첩(譜諜)의 일반적 명칭은세보(世譜),족보(族譜),파보(派譜),가승(家乘),세계(世系),중간보(重刊譜),속보(續譜),대동보(大同
譜),가보(家譜),가승보(家乘譜),계보(系譜)등 약60여 종이나된다.
대동보(大同譜)
대동보는 동성동본의 한 씨족을 시조에서 그 자손에 이르기까지 조상 순서대로 적고 파(派)를 구분하여 파별로 기재한 것이므로 세보 또는 대동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파보는 한 씨족에서 갈린 각 파의 계통록으로서 자기파만을 위주로 기재했으므로 파보 또는 지보라 부른다.
현재 전해지는 족보의 원조로는 15세기말에 이루어진 안동권씨 족보와 16세기 중엽의 문화유씨 족보를 꼽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관료사회가 형성되면서 양반층들이 문벌을 위해 대거 족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족보는 화수회·종친회·종약회 등에서 관리하며 대개 30년, 또는 불가피한 경우 50년마다 편수·간행한다. 종회에서 족보 간행을 결정하면 따로 대동보소를 조직하고 실무 책임자로 유사를 둔다. 유사는 일족에게 단자를 보내라고 공고 또는 서신을 띄운다.
단자에는 계파를 쓰던 아버지·할아버지의 이름, 본인의 나이·이름, 배필의 성씨, 자식의 나이와 이름, 사위의 이름, 사위 아버지의 이름, 본인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기일 및 묘에 관계되는 내용을 적는다. 할당된 경비도 함께 보내야 하며, 단자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수단이라 부른다.
족보 중에서도 대동보는 한 씨족을 망라했기 때문에 가문과 문벌을 중시하는 양반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자기 집안의 내력을 이해하고 조상을 잘 아는 일은 사람된 도리로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나, 이것이 도에 지나쳐 문벌자랑을 통해 현실적으로 이득을 얻으려 한다거나 양반 행세를 빌미로 권세를 누리려 하는 등의 폐단도 매우 많았다.
파보(派譜)
파보(派譜)는 동일한 계통의 시조에서 갈라진 해당 파계(派系)만을 수록하는 족보이다. 이는각파의 문중의
후손에 대해 상세히 수록할 수 없는 대동보와구별된다. 즉 각 파문에서 윈하는 명단만을 등재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세보(世譜)
세보(世譜)는 동일 종파 이상의시조 이하 각파를 동보로 함을말하는데 내용은 파보와 동일하며, 대부분 동일 계파의 계통
만을 수록하는 경우라도 각 분파조를 밝혀 어느 몇 대조 세대에 갑파,을파가 갈리어 갔다는것과 분파조의 행적 등을 명기
해 수록 편수하는 것이다. 세지라고도 한다.
가승보
가승보(家乘譜)란 시조 이하 중조, 파조를 거쳐 본인에 이르기까지의 직계 존속만을 수록한 가첩이다.
시조로부터 자신까지 이어져오는 직계를 계통적으로 기록한 계보이므로 방계의 혈연 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본인의 고조부 이하는 전부 수록해 재종,삼종,형제 자매까지알아볼 수 있다. 본인을 중심으로 편친하되, 시
조로부터 시작하여 자기의직계존속과 비속에 이르기까지 이름자와 사적을 기록한 것으로보첩편찬의 기본이
되는 문헌이다.
계보(系譜)
계보(系譜)란 다른 가첩류와 달리 시조 이하는 동족간의 계통과 소목을 밝히기 위해 명(名),휘(諱),자(字)만을 수록한
분파계열도를 말하는데, 요즈음은 족보를 수록 편수할 때 거의가 분파계열도를 족보의앞부분에 등재해 세대의 소목을 알리
는 데 참고가 되도록 한다.
만성보(萬姓譜)
만성보(萬姓譜)란 각 성씨의 관향별로 시조 이하 중조, 파조 등족보에서 큰 줄기를 추려내어
집성하여 요약 수륵한 것으로 만성대동보라고도 한다.
팔고조도(八高祖圖)
팔고조도(八高祖圖)는 4대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및 외할아버지,외할머니를 계통적으로 배열한 도표로서 할아버지,할아버지,외할아버지의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를 도표식으로 기록한것이다. 이는 보통 족보의 기록순서와 반대인데, 족보는 시조로부터 밑으로 퍼져 내려오는데 비해 팔고조도는 나로부터위로는 거슬러 올라가며 기록한다.
족보의 구성
족보 편찬위원회에서 의결한 보규에 따라 편찬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 순서가 정해져 있지않으며, 다만 다음과 같은
순서에 의해 구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표지
표지의 색갈은 황색 계통을 쓰는데, 이는 흙을 상징한다.
족보의 제본 방법은 삼강오륜(三綱五倫)에 기반을 둔 것으로, 세가닥으로 꼬인 실로 책을묶어 삼강(三綱)을, 책을 꿰매
기 위해 뚫은 다섯 개의 구멍으로 오륜(五倫)을각각 상징한다.
표지에는 족보의 명칭만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림 및 사진
사진은 주로 시조, 중시조,파조등의 사당이나 묘지를 촬영하여 수록한다. 산도(묘소도)는시조이하 현조 또는 파조의 분
묘의 위치와 지형을 그린 도면으로 옛날에는 산의 지형과 묘지늘날에는 축적지도나 자척도를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을
먼져, 다음에 신도(묘소도)를 게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시조로부터 이하 현조와 파조의 영정을 싣고, 조상
이 제향된 서원이나 사우, 영당또는 신도비, 정문, 제각 등의 유적을 싣고, 조상이 거처하던 정자도 유적편에 실어준다.
서문
족보를 발간할 때문에 책머리에 실린다. 서문의 내용은 주로편찬 경위서 및 족보의 의의,시조의 발상과 씨족의 연원, 역대
조상의 위훈, 족보창간이후 증수한 연혁, 수보서문 및 수보(修譜)하게 된 동기, 시문을 쓴 분의 소감, 후손에 대한 당부 등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직계후손 중에서 덕망과학식이있는 사람이 기술하는 것이 보통이나 다른 집안 사람으로서 학식이 풍부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에게 글을받아싣기도한다.
━신보서 : 족보를 발행할 당시
의 서문
━구보서 : 창간 이후 수보할 때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연호는 서기로 주를 달아 둔다.
범 례
족보의 내용을 아는데 도움을
주는 말이나 족보의 규모, 편찬
순서, 자손 배열의 순서 등을 기
록한다. 책 속의 중요 내용, 주
의사항, 일러두기 등을 알기 쉽
게 기제하는 것이 보통이다.
세 덕
시조 이하 특출한 조상의 행장
기(行狀記),묘지명(墓誌銘),신
도비명(神道碑銘),교지(敎旨),
국가로부터 받은 특전, 서원과
사우에 제향한 봉안문(奉安文)
및 상향축문, 유시,유묵, 국가에
올리는 소문 등 조상이 남기신
문헌 등을 빠짐없이 싣는다.
문벌록(門閥錄)
한 가문의 지체를 높이기 위한
기록을 싣는다 . 원향록 (院享錄), 후비록(后妃錄),부마록(駙
馬錄),공신록(功臣錄),봉군록
(封君錄), 증시록(贈諡錄), 기사록(耆社錄),청백리록(淸白
吏錄),삼사 삼공록(三師 三公
錄), 문형록(文衡錄),호당록(湖
堂錄), 상신록 (相臣錄), 등단
록으로는 (登壇錄), 효자 효부
열녀록 (孝子孝婦烈女錄), 문
과록 (文科錄)등 가문을 빛낸 조상에 대한 기록 등을 수록
한다.
목 차
일반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의 다음에, 서문의 앞에 노인다.
목차 대신에 색인표 또는 인명
색인표를 만드는 문중도 있는
데, 그 형식이나 내용은 목차와
차이가 나다 있다.
항렬도
문중에서 정한 독특한 항렬자
를 세수(世數) 별로 기재하는 것으로 혈족의 방계(傍系)에 대
한 세수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항렬자(行烈字)는데 문중
에서 정하는데, 보규에 따라 족
보를 편찬할 때 일정한 대수(代
數)의 항렬자의 그 사용법을 미
리 정해 놓아 후손들이 이에 따
르도록 하는 관례로 되어 있다.
세계도
시조로부터 분파된 계열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도표로서 파계
도,세계도,세계도표, 상계도라
고도 부른다.시작했다 시조에
서 현재(말손:末孫)까지의 순서
적인 계통만을 대체적으로 파
조(派祖)까지 도식하는데, 휘
(諱)자만 사용하여 그리는데,
손록(孫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파조 밑에 면수(面數)를
기록해 둔다. 게재하는 위치는
자손록 바로 전에 넣어 손록과
연결해 보는 것이 편리하도록
하며, 족보를 볼 때 세와 대를 판단하는데 필수적 이다.
시조로부터 분파된 계열을 쉽
게 알 수 있도록 도식한 표를 말
한다.
득관 세전록 및 관향
시조의 발상과 득성(得姓), 득
관(得貫)의 유례를 서문(머리
말)에 상세히 기록하지만 따로
득성관과 본관의 연유를 수록
하고,시조의 고향인 지명(地名)
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변
화해온 연혁(沿革)을 연대별로
기록 해두는 것이다.
자손록(子孫錄 ) 은 시조 이하 모든 자손을 계대에 맞추어 해
당 족보의 규직에 맞게 기록한 것으로 족보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이며 보첩의 대부분을 차
지한다. 시조와 비조로부터 시
작하여 1간을 같은 대로 하여 보통 6간으로 되어 있는데,처음
에 이름자가 나오고 이어서 출
생과 사망연도가 표시되고 70 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면 향년, 70 세가 넘어 사망하면 수라하
여 방서란에 기록한다. 또시호
와 관직이 기록되고, 비필이라 하여 배우자를 표시하는데 보
통 배자만을 기록하며, 본관과 아버지 이름자와 관직이 기록
된다. 또한 묘소가 기록되는데 소재지와 방위, 석물 등을 표시 며, 합장 여부 등도 기록하는 것
이 보통이다. 혹 출후, 출계라고 하는것은 다른 집으로 양자로
간 경우이고, 양자로 들어온 사
람은 계자라 기록되며, 서얼로 입적되었을 경우에는 승적이라
고 표시한다.
발문 및 임원록
발문은 책 끝에 본문 내용의 대
강이나 그에 관계된 사항을 간
략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편집
을 끝내고 난 후의 소감 등을 피
력한다. 그 특수성에 비추어 서
문 다음에 싣기도 하지만 책의 맨 끝에 싣는 것이 상례이다. 임 원록에는 족보간행위원, 편찬위
원회 임원, 임원 명단 등을 기재
하며, 직위, 성명, 파명, 주소 등
의 양식을 가진다. 임원록과는 별도로 족보에 수록될 명단을 거두어들인, 즉 수단유사 (收單有司 )를 별도로 기재하는 경우 도 있다.
부 록
옛 용어로 기록된 족보의 연대, 관직, 지명 등을 현대인이 이해
하기 어려우므로 족보를보는데
도움이 되도록 연대표, 고려와 조선시대의 관직표, 품계표, 가
정의례, 유적명칭 등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