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용어500(13)백발가~백팔번뇌~범부~법안종
161. 백발가 (白髮歌): 작자미상
춘일이 뇌곤하여 초당에 누었더니 정신이 태탕하여 남가일몽 잠이들어
세상을 휘망하고 여취여치 못깨더니 문전의 일노옹이 양식달라 구걸하네
의복이 남루하고 용모가 초췌하여 행색도 수상하고 모양조차 괴이하다
뉘탓으로 늙었는지 근력없다 탄식하고 무슨공명 하였는지 꼴막서니 해괴하다
남의 말 참여하여 동문서답 가소롭다 귀먹은듯 핑계하고 딴전피기 일수로다
정강이를 볼작시면 비수검이 날이서고 팔다리를 볼작시면 수양버들 흔들흔들
아래턱은 코를차고 무르팍은 귀를치고 어린체를 하려는지 콧물조차 훌쩍이며
눌과이별 하였는지 지팽이는 무삼일고 신풍미취 취하였나 비척걸음 가관일다
비육불포 노래하며 그중에도 먹으려고 그중에도 입으려고 비백불완 문자쓴다
성명함자 무엇이며 거주지는 어디메뇨 보아하니 반명으로 무삼노릇 못하여서
남의농사 전혀믿고 문전걸식 어이하노 저 노인 거동보소 허회탄식 기가막혀
여보소 주인네야 걸객보고 웃지마소 젊어서 허랑하면 이러한이 나뿐일까
나도본디 양반으로 지체도 남만하고 세간도 남불잖고 인물도 잘났더니
사지가 성하면은 무슨일을 겁을낼까 우리도 청춘시절 부모덕에 편히자라
슬하의 교동으로 비금주수 길들여서 만하추동 좋은세상 꿈결같이 다보낼때
매양그러 할줄알고 포식완의 편히자라 인도를 못닦으니 행실이 무엇인고
사서삼경 던졌으니 공맹안증 그뉘알리 장삼이사 화류객을 행로에 잠간만나
원일견지 찾았으나 흑선흑우 놀러갈제 주루화각 곳곳마다 회조월석 때맞추어
주륙진찬 다갖추고 친구모아 노닐적에 한두 잔 세네배에 몇순배가 돌아갔노
주사청루 사랑삼아 여중일색 희롱이라
녹록한 선비들은 글은읽어 무엇하뇨 곤곤한 농부들은 밭은갈아 무엇하노
옷걱정 하지마라 가련한 여인네야 오릉년소 우리들은 십지부동 옷입는다
은안백마 금시동에 낙화답진 유하처오 잡기도 하려니와 오락인들 없을소냐
양금퉁소 세해저로 오음육률 가무할제 오동추야 명월천과 낙양춘색 벽도화를
차례로 늘여앉혀 각기소장 불러낼제 듣기좋은 권양가는 장진주로 화답하고
흥치좋은 양양가는 백구사로 화답하고 다정한 춘면곡은 상사별곡 화답하고
한가한 처사가는 어부사로 화답하고 화창한 여민락은 남풍시로 화답하고
처량한 노승가는 황계타령 화답이라 청아한 죽지사는 낙탄가로 병창하고
요탕한 정위풍은 노처녀를 돌려내며 구색친구 삼색벗과 곁들어서 오입할제
논인장단 판결사와 시비경계 깨뜨려서 호주탐색 좋은투전 오늘이야 매양으로
우리청춘 한평생을 귀뉘아니 믿었으리 인생부득 갱소년은 풍월중에 진담이요
인생칠십 고래희는 옛사람이 이른바라 삼천갑자 동방삭도 적하인간 하단말가
팔백새 팽조수는 고름이래 또없으며 금정오동 일엽낙은 춘풍이 날속인다
일월성신 광음중에 거울이 네그르지 육십갑자 꼽아보니 팔구에 둘이없네
백년삼만 육천일이 일장춘몽 아니던가 청춘이 어제더니 백발이 짐작하여
소문없이 오는서리 귀밑을 재촉하니 슬프다 이터럭이 언제온줄 모르겠다
친노가빈 처자들과 왜옥살림 하던땐가 엄동설한 이세상에 부귀공명 하던땐가
천리타향 객의수심 잔등독좌 하던땐가 전전반측 잠못들어 고향생각 하던땐가
팔년풍진 환란중에 주유천하 하던땐가 무정세월 약류파에 우리자연 늙었으니
어와청춘 소년들아 옥수홍안 자랑마다 덧없이 가는세월 넨들매양 젊을소냐
우리도 소년적에 풍신이 이렇던가 꽃 같이 곱던얼굴 금버섯이 절로나고
백옥같이 희던살이 황금같이 되었으며 삼단같이 검던머리 다박솔이 되었으며
명월같이 밝던눈이 반판수가 되었으며 청산유수 같던말이 반벙어리 되었으며
전일에 밝던귀가 만장풍우 뛰어놀며 일행천리 하던걸음 상투끝이 먼저가고
살대같이 곧던허리 길마가지 방불하다 선수박씨 같던이가 모탁속이 되었으며
단사같이 붉던입술 외밭고랑 되었구나 있던조업 도망하고 맑은총명 간데없어
묵묵무언 앉았으니 불도하는 노승인가 자식보고 공갈하면 구석구석 웃음이요
오른훈계 말대답이 대접하여 망령이라 어이아니 한심하랴 청천백일 빨리가니
일거월석 지날수록 늙을밖에 할일없다 인생한번 늙어지면 갱소년은 못하리라
인생한번 늙어지면 늙을로자 뿐이로다 진나라 분시서에 타지않고 남아있어
편작의 신술로도 백발환옥 못하였네 서복의 동남동녀 돌아온지 뉘들었노
불사약 어디있고 불노초 보았느냐 이리저리 해아리면 인력으로 못하리라
가는청춘 뉘막으며 오는백발 뉘제할까 진시황 한무제도 변통할길 없었으니
위엄으로 쫒을진데 헌원씨가 아니늙고 용맹으로 막을진데 팔장사가 아니늙고
도술로 막을진데 강태공이 아니늙고 진법으로 막으려면 손빈이가 늙었으며
긴창으로 찌르려면 조자룡이 아니늙고 인정써서 막으려면 도주공이 늙었으며
구변으로 막을진데 소진이가 늙었으며 문장으로 치려면은 한퇴지가 늙었을까
미주성찬 차려놓고 선대하면 아니올까 입담좋은 조맹덕이 빌어보면 아니올까
말잘하는 소진장의 달래보면 아니올까 할일없는 저백발아 불청객이 자래하여
소진의 청경서를 자랑할것 없건마는 부운같은 이세상에 백구지 과극이요
대해의 부평초다
권곤불로 월재에 백발인생 참혹하다 늙기도 섧은중에 흉들이나 보지마소
꽃이라도 쇠잔하면 오던나비 아니오고 나무라도 병이들면 눈먼새도 아니앉고
금의라도 떨어지면 물걸래로 돌아가고 옥식도 쉬어지면 시궁발치 버리나니
고대광실 좋은집도 파락하면 보기싫고 녹음방초 좋은경도 낙엽되면 볼것없다
만석군 부자라도 패가하면 볼것없고 조석상대 하던친구 부운같이 흩어지고
평생지교 맺었더니 유수같이 물러가니 문전냉락 안마희는 일로두고 이름이요
황금용진 환소색을 이러므로 이른바라 년부역강 하올적에 그런줄을 모르고서
무항산 무항심이 수신제가 나몰래라 부모의 버린사랑 일가친척 독부되어
친구벗님 꾸지람이 사면에서 일어나니 처자는 원망하고 노복은 도망하니
조업은 없어지고 가산은 탕패하고 남은것이 몸뿐이요 장만한게 백발이라
한탄하는 이백발이 인간공도 알건마는 북망산 상하봉은 볼수록 한심하다
적막강산 몇백년에 청산백골 매몰하니 부귀불음 빈천락은 도덕군자 몇몇이며
입절사의 하는영웅 충신열사 누구누구 그래도 늙었으니 늙은값이 있건마는
가소롭다 이내몸이 헛나이만 먹었으니 엊그제 즐기던일 모두다 허사로다
지각나자 늙었으니 후회막급 할일없다 이모양이 되었으니 슬프다 청춘에들
내 경상 볼작시면 그 아니 우스운가 광음을 허송말고 늙기전에 힘써보소
162. 백장야호, 백장해회 (百丈野狐,百丈懷海)
백장야호는 불락불매(不落不昧)의 이야기를 말 한다.
백장 대지가 상당할 때마다 한 노인이 법을 듣고 대중을 따라 나가곤 했다. 하루는 법을 듣고도 가지 않음에 백장이 노인에게 물었다.
‘거기 서 있는 이가 누구입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내가 과거 가섭불 때에 이 산에 있었사온데 그때 어느 학인이 대수행(大修行)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라고 묻기에,
“불락인과(不落因果: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니라 고 대답했더니, 뒤에 5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 저를 대신하여 일전어(一轉語)를 내려 여우의 탈을 벗겨주소서.”
백장이 말했다. ‘불매인과(不昧因果:인과에 끄달리지 않는다)니라’
노인이 깨닫고 예배하면서 말했다.
“내가 여우의 몸을 벗어 이 산 뒤에 두겠사오니 죽은 스님들의 전례대로 하여 주소서.”
백장은 유나를 시켜 대중에게 말하고 산에 가서 여우를 화장했다.
불락인과(不落因果)와 불매인과(不昧因果)에 대한 이 설화는 현재 우리 주변에서 일고 있는 깨달은 사람이 업에서 자유로운 것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에 명확한 답을 주고 있는 중요한 설화입니다.
도인이라 여겨지던 큰 스님들이 병색을 보이거나 별다른 신묘할 것 없는 죽음을 맞이하면 속았니 어쩌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불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부처님도 돌아가실 때 병색을 보이셨고, 많은 조사스님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인과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과를 받아도 그것에 끌려 다니지 않았을 뿐이지요.
☀ 백장 회해(百丈懷海:749~814 혹은 720~814)
당대 스님. 백장은 주석한 산이름. 속성 왕(王)씨. 복건성 복주 장락(長樂)출신이며 속성은 왕(王)씨이다. 20세에 서산 혜조(西山慧照)에게 출가, 남악의 법조(法朝)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음. 사천성 여강(廬江)에서 대장경을 열람하고, 마조 도일(馬祖道一)에게 참구하여 인가를 받음. 그의 저서로는 백장청규(百丈淸規)가 유명하며 제자에는 위산 영우, 황벽 희운 등이 있음. 원화(元和) 9년 정원 17일 입적.
법명은 회해(懷海)인데 일반적으로 백장(百丈)선사라 일컫는다.
백장 선사가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불상을 보고 절을 한 후 불상을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이것은 누구입니까?”
“부처님이시다.”
이에 어린 백장이 말했다.
“모습이 사람을 닮았군요, 저도 나중에 이렇게 되겠습니다.”
위인은 어릴 때 그 싹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백장은 어려서 부터 과연 도통할 자질이 넘쳤던 같다. 그래서 당당히 중국 선맥을 잇는
조사(祖師)의 반열에 올랐던 것이리라.
백장 선사는 대주혜해(大珠慧海)와 더불어 마조도일(馬祖道一)선사의 문하이고 선종 제9대 조사이다. 백장(百丈)은 이른바 마조(馬祖)의 3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마조선(馬祖禪)을 계승하고 있으므로 백장의 수증관(修證觀)의 기본적 구조는 마조 선사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백장 선사도 마조 선사와 마찬가지로 도(道)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 오염되지만 말라고 말하고 또 심성(心性)은 오염됨이 없이 본래 그 자체로 완전하니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한다면 곧바로 여여한 부처이다 라고 했다.
이처럼 수인증과(修因證果)의 점수(漸修)를 부정하고 설법과 문답을 통한 직지인심(直指人心)에 의한 돈오견성(頓悟見性)을 가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 백장 선사는 혜능 대사에게서 시작되고 마조 선사에게서 완성된 이와 같은 새로운 양식의 중국선(中國禪)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일을 해냈다.
6조 혜능 대사의 직제자가 제7조 남악회양(南岳懷讓)선사이고 그 제자가 제8조 마조도일이다. 그리고 백장해회이고 그 다음이 황벽(黃檗)이고 이어서 임제(臨濟) 이렇게 선맥이 이어진다.
백장 선사는 강서성 홍주 대웅산(大雄山) 일명 백장산에 대지성수선사(大智聖壽禪寺)를 건립했다. 이 산에 백장 100장(丈)이나 되는 높은 반석이 있어 백장산(百丈山)이라고도 불렀고 선사 또한 이 백장산에 계셨다고 해서 백장 선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대지성수선사가 선원(禪院)으로는 최초의 사찰이다. 이 당시 선종은 아직 교단으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선승들은 강사( 講寺)나 율사(律寺)에 의탁해 생활하고 있었다.
이에 백장은 대지성수선사에 백장청규(百丈淸規) 고청규(古淸規)를 제정해 교단조직이나 수도생활 규칙 등을 성문화 했다.
그의 수도 생활은 매우 준엄해 하루를 무위(無爲)로 지내면 그날은 굶는다. 일일부작일일불식 一日不作一日不食이고 할 정도로 엄격 했다. 이후 선종은 본격적으로 총림(叢林)을 세우고 그에 걸맞은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선이 더욱 유행하는 계기가 됐다.
백장은 이와 같이 해서 선승이 거주하는 총림(叢林) 체제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 절의 구조는 이제까지의 절들과는 달리 방장(方丈) 법당(法堂) 선원(禪院) 승당(僧堂)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갖추고 수행승들이 체계적으로 모여 수행하는 총림(叢林)의 큰 사찰 공간을 갖춘 것이었다.
선원(禪院)에는 불전(佛殿)을 두지 않고 법당만을 두었으며 화주(化主)인 장로는 방장에 거주하고 학인 대중은 모두 승당에서 생활했다.
이러한 총림(叢林)의 구조는 곧 그 속에 거주하는 대중이 혜능과 마조 선사에 의해 새로 확립된 중국선(中國禪)에 걸맞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절에서 교화의 주인이고 학인들의 스승인 장로가 거주하는 방을 유마거사(維摩居士)의 예를 빌려 방장(方丈)이라 하고 불상을 모신 불전을 세우지 않고 부처와 같은 존재인 조사(祖師)가 설법하는 법당을 두었으며 모든 학인들에게 법랍(法臘)에 따라 자리를 배정해 동등한 입장에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승당을 두었는데 승당은 곧 학인들이 먹고 자고 공부하는 생활 공간이다. 총림(叢林)의 이러한 구조는 곧 선종 승려들의 선원(禪院)을 반영하고 있다.
대중은 승당에서 살면서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모두 모이고 장로의 상당설법(上堂說法)이 행해지면 모두가 열을 지어 앉아서 듣고 장로와 학인이 또는 학인과 학인이 서로 빈주(賓主)가 되어 손님과 주인이 돼 선문답(禪問答)을 주고받으며 공부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설법과 문답에 의한 수행의 구체적인 실천 모습이 완성된 것이고 백장이 새로 세운 총림(叢林)은바로 그러한 실천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혜능에서 시작하고 마조에서 완성된 언하변오(言下便悟)의 새로운 중국선(中國禪)이 백장에 와서는 외적 형식까지 완성을 봤던 것이다. 이제 새로운 중국선은 내외적으로 전성기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많은 제자가 그에게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황벽희운(黃檗希雲)과 위산영우(潙山靈祐) 수좌 두 사람이 걸물로서 뒷날 이들의 계통에서 임제종(臨濟宗)과 위앙종(潙仰宗)이 시작 되었다.
이상과 같이 백장 선사는 선종 사찰의 전형을 만들어 선종의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고 814년에 시적(示寂) 하셨는데 세수 95세였다.
163. 백팔번뇌 (108煩惱)
중생이 가지고 있는 온갖 번뇌를 108가지로 열거한 것을 말한다. 원래 108 이란 ‘많다’는 뜻으로 쓰여 진 숫자다. 그러나 불교의 교리가 심화되면서 108 이란 숫자의 산출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은 주관이 객관을 만나 어떤 것을 인식한다.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 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六根)이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色,聲,香,味,觸,法)의 육경(六境)을 대하면 순간적으로 ‘좋다 好’ ‘나쁘다 惡’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平’ 는 세 가지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좋은데서 즐거움을 느끼고(락수,樂受) 나쁜데서 괴로움을 느끼고(고수,苦受)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데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정을 느낀다.(불고불락,不苦不樂) 이렇게 육근은 각각 여섯 가지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36종류(6X6)가 된다. 이 36종의 감정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있음으로 108가지의 번뇌로 풀이된다.
다른 해석으로는 수행을 통해 번뇌를 제거해 가는 방법으로 108번뇌를 설명한다. 즉 생각에 의한 88가지의 번뇌와 의지에 의한 10가지 번뇌 그리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갖는 10가지 번뇌를 합쳐 108번뇌로 표현하기도 한다. 결국 108번뇌는 모든 번뇌를 지칭한다.
164. 번 (幡, pataka)
불, 보살의 위덕과 무량한 공덕을 나타내는 깃발과 같은 형태이다. 불전을 장엄하기 위하여 법당의 기둥이나 번간(幡竿)에 매달아 뜰 가운데 세운다. 혹은 천개나 탑의 상륜부에 매달아 높은 곳에서 나부껴 사람들을 불교에 귀의케 하는 역할도 한다.
번신(幡身)의 형태는 상하가 긴 직사각형이고 번두(幡頭)는 이등변 삼각형이 변형되어 꼭지점 부분의 모서리는 모죽임을 하였고 양쪽의 매듭장식은 번신의 하부에까지 내려왔으며 번두와 번미(幡尾)는 간략화되어 번신과 분리되지 않고 마치 선을 돌린 것처럼 되어 있다.
<본서 십이지상의 번화 참조>
☀ <불교사전의 번(幡)>
번(幡)은 불교에서 부처와 보살의 위덕을 나타내고 도량(道場)을 장엄, 공양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깃발.
번(幡)에 사용되는 색깔은 청ㆍ황ㆍ적ㆍ백ㆍ흑의 다섯 색이다. 고대의 것은 그 형태를 잘 알 수 없으나 근래에는 법회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종이에 범서(梵書)를 쓰고 이를 노끈에 매달아 전각 주변에 걸게 된다.
불경에 기록된 번의 종류는 관정번(灌頂幡)ㆍ정번(庭幡)ㆍ평번(平幡)ㆍ사번(絲幡)ㆍ옥번(玉幡) 등 다양하다.
관정번은 관정 의식에 사용되는 번이며, 정번은 비를 청하기 위하여 옥외에서 기우제와 같은 의식을 집행할 때 사용된 번으로 짐작된다.
평번ㆍ사번ㆍ옥번 등은 재료에 따르는 명칭으로, 평번은 넓은 비단으로 제작되고, 사번은 여러 가닥의 실을 묶어서 만들며, 옥번은 금속과 옥석을 서로 연결하여 만들어진다.
재료에 따라서 여러 형태의 번이 만들어지겠지만 모두 다 불전 장엄을 위하여 현괘(懸掛)되는 것은 동일하다.
즉, 장엄 용구로 활용된 것이지만 불교 공예의 분야에 널리 활용되었다.
165. 번뇌 (煩惱)
번뇌의 산스크리트어 원어 클레샤 (klesa)는 ‘마음을 더럽히는 것’ ‘해치는 것’ ‘괴롭히는 것’을 의미하고 때에 따라 염, 오, 오염, 혹(染,汚,汚染,惑) 등의 한자로 번역되기고 한다. 또한 원어가 다르긴 해도 한자의 결(結:마음을 결합시키는 것), 액(軛:마음을 묶어 놓는 것), 폭류(暴流:홍수처럼 사람을 밀어붙이는 것), 계(繫:마음을 얽어매는 것), 개(蓋:마음을 덮는 것) 등도 번뇌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마음을 더럽히고 괴롭히는 것은 번뇌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번뇌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업(業:행위와 그 뒤에 남는 잠재적인 힘 즉 행동과 언어와 생각으로 지은 행위의 결과)과 그 업에 의해서 초래되는 결과인 괴로움도 마음을 더럽히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번뇌와 업과 괴로움(惑,業,苦 또는 三道)을 합쳐 잡염(雜染:원어는 ‘samklesa’이고 합체번뇌라는 정도의 뜻) 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번뇌에도 시대에 따라, 문헌에 따라 여섯 가지로 이야기되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명쾌한 느낌을 주는 여섯 가지 근본 번뇌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탐 (貪, 라가)
‘탐욕’이라고도 번역된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집착, 탐욕, 욕망을 말한다. 혹은 ‘탐탁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나 그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진 (瞋, 드베샤)
‘진애’라고도 번역된다. ‘탐’과는 반대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혐오, 기피 또는 분노를 말한다. 혹은 ‘싫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나 그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3) 치 (癡, 모하)
십이연기의 첫 번째에 놓이는 무명(無明, 아비디야)과 같은 뜻이다. 제행무상 등의 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근본적 무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앞의 탐, 진과 동격의 번뇌가 아니라 그 두 가지 번뇌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번뇌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번뇌라고 생각되므로 흔히 이들 세 가지는 따로 취급되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또는 ‘삼불선근(三不善根)’이라 부른다.
성도(成道)를 위해 수행하고 있던 석가모니불을 교묘한 말로 유혹해서 그 수행을 방해하려 했다는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세 딸들의 이름이 바로 이 삼독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즉 첫째 딸의 이름인 라가는 탐욕(貪慾)을 뜻하고, 둘째 딸의 이름인 아라티는 혐오(嫌惡), 분노(忿怒)를 뜻하는 말이고, 셋째 딸의 이름인
트리슈나는 갈애(渴愛)라로 번역되지만 종종 무명, 무지(無明,無智)의 뜻으로 쓰인다.
그리고 삼독은 여간해서 끊을 수 없고 꾸준한 수행의 반복에 이해서만 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수도소단(修道所斷)이라 한다.
(4) 견 (見, 그리슈티)
‘치(癡)’ 때문에 생기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견에는 나(자기의 본체)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 ①유신견(有身見), 사물을 상(常,영원)과 단(斷,일시적)과 고(苦), 낙(樂) 등의 양극단(邊)에 놓고 보는 ②변견(邊見), 인과응보(因果應報) 등을 부정하는 ③사견(邪見), 자기의 견해만이 옳다고 하는 ④견취견(見取見), 다른 종교가 주장하는 금계(禁戒)에 따르려고 하는 ⑤계금취견(戒禁取見) 등 오견(五見)이 있다.
이들은 올바른 견해를 가짐으로서 비교적 간단하게 끊을 수 있으므로 견도소단(見道所斷)이라고 한다.
(5) 의 (疑, 비치키차)
업이나 그 과보 혹은 불, 법, 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대해 확신이 흔들리는 것이나 의혹을 품는 것이다. ‘견’과 조금 비슷한 면도 있으나 그보다 훨씬 뿌리 깊다.
(6) 만 (慢,마나)
자만, 자부심으로 남을 경멸하고 스스로를 믿어 마음이 우쭐거리는 것을 말한다. 아만(我慢)ㆍ비하만(卑下慢)ㆍ증상만(增上慢)등으로 분류된다.
이상의 여섯 근본 번뇌를 여러 관점, 여러 국면에서 더 세밀하게 나누면 이른바 백팔번뇌가 된다. 범종을 칠 때 108회를 치는 것은 이 백팔번뇌를 일일이 끊기 위해서라고 한다.
백팔번뇌를 정말로 끊게 된다면 그때에는 열반, 적정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166. 범망경 8복전(梵網經八福田)
범망경에서는 진정으로 복을 많이 받는 방법을 여덟 가지 복전(福田)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해 복 많이 받는 방법을 소개해 보겠다.
첫째, 불법승 잘 공경하면 복이 저절로 찾아온다.
불(佛)은 불가설(不可說) 불가설(不可說) 미진수(微塵數) 부처님이 있다 해도 이 사바세계는 석가여래 부처님이 교주니까 석가여래 부처님이
불(佛)이고, 법(法)은 부처님의 팔만대장경이 법이고, 승(僧)은 비구, 비구니가 승인데, 이 불법승 삼보(三寶)를 공경할 줄 알아야 복을 받는다.
진리적으로 말하면 심청정시불(心淸淨是佛)이라. 마음이 청정한 것이
부처요 팔만사천 무진한 부처님이 있다 해도 사람의 마음이 청정(淸淨)한 그 자리가 참된 부처인 것이다.
심광명시법(心光明是法)이라. 마음이 광명스러운 것이 곧 법이다. 팔만대장경이 법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광명(光明)스러운 그 자리가 곧 법이다. 그리고 승은 비구, 비구니가 승이지만 진리적으로 말하면 정광(淨光)이 처처무애(處處無碍)라. 맑고 광명스러운 것이 처처에 걸림이 없는 무애(無碍) 그 자리가 곧 승이다.
둘째, 효양부모(孝養父母)이라.
자식 된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복을 받는다.
우리가 법을 먼 데서 구하지 말고 내 부모가 곧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성을 가져야 복이 온다.
그런데 요즘 보면 부모 된 사람은 자기 자식이 감기라도 들면 신약(新藥)과 구약을 가리지 않고 온갖 약을 먹여서 병을 낮게 하려고 하는데, 자식은 부모가 감기가 들어서 콜록콜록 하고 뒷방에서 아파 누워 있어도 나이 많은 사람에게 으레 있는 천식(喘息)이나 노병이라고 해서 약 한 첩 안 쓴다. 이러해서는 복을 받지 못한다.
셋째, 급사병인(給事病人)하라.
어떠한 사람이든지 병든 사람이 있거든 내 힘 있는 데까지 구완을
해주면 복을 받게 된다. 복 이라는 것은 내가 노력하고 행하고 닦고 증득해서 복을 갖는 것이지, 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복 파는 사람이 그냥 복을 한 덩어리 집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부처님은 내 몸을 위해서 이 세상에 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났다고 했다. 그러니 남을 위해서 수고스러운 일을 많이 하고, 남을 도와서 좋은 일을 많이 해주면 그것이 복을 짓는 일이다.
넷째, 구제빈궁(救濟貧窮)하라.
가난하고 궁한 사람을 구제해주면 복이 받는다.
가난하고 궁해서 복을 못 짓는 사람에게 내 힘닿는 데까지 그 사람을 도와주면 그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다섯째, 광로의정(廣路義井)하라
평원광야에 물이 없는데 우물을 파서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다 먹도록 해주면 복이 된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 물이 없거든 돈을 내어 우물을 파서 동네 사람이 다 먹도록 해주면 그것이 곧 복을 짓는 것이다.
여섯째, 건조교량(建造橋梁)하라.
많은 사람들이 개울에 다리가 없어서 발을 걷고 건너다니는 데, 어디든지 다리를 놓아서 발을 걷지 않고 건너가도록 해주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일곱째, 치평험로(治平險路)하라.
험한 길에 닦아서 다른 사람이 다 잘 다니도록 해주는 것이 복이 된다.
요새 새마을운동이 모두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하는 것인데 예전에 길을 닦으려고 하면 누가 땅을 내놓았던가.
돈을 내고 논밭을 내어 길을 넓혀서 수레도 다니고 자동차도 다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돈이 있으면 모든 험한 길을 닦아서 사람들이 잘 다니도록 해주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여덟째, 무차법회(無遮法會)하라.
법회를 열어서 어떤 사람이 오든지 법문을 듣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복을 짓는 것이다.
167. 범부 (凡夫) ☀ 불교에서 나온 말
평범한 사내, 범인(凡人)을 말하며 범어 ‘prthag-jana'의 번역으로 이생(異生)이라 직역하기도 한다.
이생이란 여러 가지 번뇌나 견해에 의해서 갖가지 업(業)을 일으킨 뒤 갖가지 과보를 받아 여러 세계에 태어나는 존재라는 뜻이다.
지혜가 얕고 우둔한 중생,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며, 모도(毛道) 또는 이생(異生)이라고도 한다. 또한 불교의 수행단계 중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지혜가 열려서 사제(四諦. 苦ㆍ集ㆍ滅ㆍ道)를 보는 지위를 견도(見道)라고 하는데, 견도에 이르지 못한 사람을 범부라고 한다. 따라서 범부는 사제의 도리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 지혜가 얕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범부를 이생(異生)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번뇌와 옳지 않은 견해로 갖가지 업을 쌓아 그 과보로 여러 세계에 태어나는 존재라는 의미이고, 어리석고 번뇌에 얽매여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이라는 뜻이다.
《화엄경(華嚴經)》에는 범부들은 심신이 괴로우면 갖가지의 악행을 일으키기 마련이니 몸에 병이 있거나 평등한 도리를 몰라 차별을 일으키고 고뇌하게 되는 경우, 삼업(三業)으로 갖가지 악을 짓게 된다고 한다.
168. 범일조사 (梵日祖師)
범일조사(810~889)는 신라의 큰스님으로 품일(品日)이라고도 한다.
속성은 김이고 계림의 관족(冠族)이다. 15세에 출가하고 20세에 서울에 가서 비구계를 받고, 흥덕왕 때에 김의종(金義琮)을 따라 당나라에 가 염관 제안에게 뵈이자 제안이 말했다.
‘어디서 왔는가?’ ‘바다를 건너 왔는가, 육지로 걸어왔는가?’
‘바다도 건너지 않고, 육지로 걷지도 않고 왔나이다.’
‘두 길을 밟지 않고 어떻게 왔는가?’
‘해와 달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이 무슨 장애가 있으리까?’
‘참으로 동국의 보살이로다.’
범일이 물었다.
‘어떻게 하여야 성불하리이까?’
‘도는 닦을 것 아니요, 더럽히지만 말 것이며 부처다, 보살이다 라는 소견을 짓지 말지니 평상한 마음이 도(道)니라.’
이 말에 크게 깨닫고 6년 동안 섬기었다.
명주도독(溟洲都督) 金公의 청으로 40여 년을 굴산사에서 지냈다.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이 다 중사(中使)를 보내 국사로 모시려고 서울에 오라고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나이는 80세, 법랍은 60세 시호는 통효(通曉), 탑호는 연휘(延徽)이고 선종 9산문 가운데 사굴산의 개조이시다.
169. 범천왕 (梵天: Brahman)
초선천(初禪天) 즉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의 우두머리를 범천왕이라 한다. 범천은 청정, 적정, 이속(淸淨, 寂靜, 離俗)등으로 부르며 우주의 창조신인 브라흐만이다.
석존에게 귀의하여 부처에게 제일 먼저 설법을 청하고 항상 그 설법의 자리에 참석하여 법을 듣고, 또 제석천과 함께 천부(天部) 가운데 주존으로서 불법 수호의 역할을 맡고 있다.
범천의 형상은 ‘거울을 들고 있다’ ‘4면 4수로 오른손에는 연꽃과 보주, 왼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연꽃을 들고 있다’라고 적혀있다. 대체로 정병을 들고 있는 분이 범천이다.
170. 범패 (梵唄)
범패(梵唄)와 어산(魚山)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지만 화청(和請)은 음악적 특징이 다른 말이다. 범패는 일반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그 첫째는 안채비소리이고 둘째는 겉채비소리이다. 또한 겉채비소리에는 짓소리와 홑소리가 있다.
① 안채비소리
오늘날 흔히 어느 사원에서나 들을 수 있는 염불가락인데 요령이나 “목탁”을 치면서 낭송하듯이 한문(漢文)으로 된 산문(散文)을 큰 굴곡 없이 일정한 형식으로 촘촘히 읽어가는 형식의 소리이다.
이러한 예는 주로 재(齋)를 주관하는 법주(法主)나 병법(秉法)스님이
축원문을 읽을 때 흔히 사용하는 염불이 안채비소리이다.
② 겉채비소리에는 짓소리와 홑소리로 나누어진다.
우선 짓소리는 홑소리에 비해 남성적인 기상을 가진 꿋꿋한 긴 소리이며 장엄한 소리이다. 대개 여러 명의 전문적인 범패스님들이 합창으로 부르며 때로는 삼현육각(三絃六角)을 곁들여 부르는데, 이러한 형식을 갖춘 짓소리는 범패 가운데에서 가장 장엄한 소리이다.
이 짓소리는 허둘품이라는 독창 부분이 있어서 범패스님들이 서로 목을 쉬게 하는 기능과 아울러 음악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으며, 어장(魚丈)이 있어서 손가락이나 입모양으로 지휘를 하기도 한다. 짓소리는 한 옥타브가 훨씬 넘으며 대개 낮은 음으로 시작하여 목을 풀면서 차츰 높은 음으로 이행한다.
홑소리는 대개 한 옥타브 정도의 음역으로 독창하며, 짓소리에 비해 규모가 적고 자비성(慈悲聲)이라고 하는 부드럽고 가벼운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다. 짓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푸는 소리이며, 처음으로 소리를 배우는 사람들이 이 홑소리를 부르게 된다.
결론적으로 짓소리는 홑소리에 비해 선율형도 훨씬 크고 다양하며, 아랫배에 힘을 주어 꿋꿋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반탁성(半濁聲)의 우렁차고 엄숙한 소리이다. 그리고 이 짓소리는 인도와 티벳, 몽고, 일본의 범패와도 유사한 것으로 보아 가장 원형에 가까운 범패라고 생각된다.
범패는 보편적으로 재(齋)라고 하는 불교 의식용 음악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기본적인 재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종류를 살펴보면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 예수재(豫修齋), 수륙재(水陸齋), 영산재(靈山齋)등이 있다.
171. 법륜 (法輪)
부처님의 교법(敎法)으로 일체 중생의 번뇌를 씻는 것을 법의 수레바퀴로 표현했다. 초기 불교의 교단(敎團)에서는 부처님의 설법(說法)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중국에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분류하는 교상반석(敎相判釋)에 많이 붙여 사용하였다.
대표적인 주창자(主唱者)로는 축도생. 길장. 진체. 현장등이 있다.
⌾ 축도생은 부처님의 일대교설(一代敎說)을 선정법륜(禪定法輪). 방편법
륜(方便法輪). 진실법륜(眞實法輪). 무여법륜(無與法輪)의 사법륜(四法)
으로 分類하였고
⌾ 길장은 근본법륜. 지말법륜. 섭말귀본법륜의 3법륜(法輪)으로
⌾ 진제는 전법륜. 조법륜. 지법륜의 3법륜(法輪)으로
⌾ 현장은 사제법륜. 무상법륜. 요의법륜의 셋으로 분류(分類)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법륜설을 널리 채택한 고승(高僧)은 신라
원효(元曉)스님이다. 원효는 그의 저서(著書)인 <열반종요(涅槃宗要)>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등에서 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 길장의 3종 법륜(法輪)에 대해서
o 근본법륜이란 부처님이 처음 성도(成道)하여 화엄회상(華嚴會上)에서 보살(菩薩)들을 위하여 일인일과의 법문을 말한 것이고,
o 지말법륜은 복이 엷고 조기가 둔한 무리들이 그 깊은 일인일과의법문 (法門)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일승(一乘)을 삼승(三乘)으로 나누어 설한 것이라 했다.
o 섭말귀본법륜은 부처님이 40년 동안 삼승(三乘)의 법문(法門)을 설하 여 그들의 근기(根機)를 향상시킨 뒤에 다시 삼승(三乘)을 일승(一乘) 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설한 『법화경(法華經)』등의 가르침이라 했다.
⌾ 진제의 3법륜에 대해서
o 유상법륜은 오직 성문승(聲聞僧)을 지향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서 사 제(師弟)를 근본으로 하여 법륜을 즐기는 교법(敎法)이며 『아함경(阿含 經)』이 이에 해당한다.
o 무상법륜은 보살승(菩薩僧)을 지향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서 법의 공 성(空性)을 근본으로 하여 법륜(法輪)을 굴리는 교법이며 『반야경(般若 經)』이 여기에 해당한다.
o 무상무상법륜은 삼승(三乘)을 모두 지향하는 이를 위한 것으로서 법공 (法空)과 무자성(無自性)을 근본으로 하여 법륜을 즐기되 위가 없고 더 받아들일 것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을 붙였으며 『해심밀경(解 深密經)』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172. 법안종 (法眼宗)
‘불법(佛法)의 바른 깨달음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바르게 봄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을 사상적 특질로 하고 있는 법안종의 개조(開祖)는 법안문익선사다.
선종(禪宗) 5가(家) 가운데 가장 늦게 성립된 법안종(法眼宗)은 육조혜능ㆍ청원행사ㆍ석두희천ㆍ천황도오ㆍ용담숭신ㆍ덕산선감ㆍ설봉의존
ㆍ현사사비ㆍ나한계침ㆍ법안문익ㆍ천태덕소ㆍ보자문수ㆍ보자행언
ㆍ청량태흠ㆍ영은청용ㆍ귀종의유ㆍ백장도잠ㆍ정덕지균 등 63명의 걸출한 선사들이 배출됐다.
선교융합적인 종풍이 강한 법안종(法眼宗)은 개조인 법안문익이 화엄(華嚴)과 선(禪)의 융합을 뒤를 이어 법안종을 개화(開花)시킨 인물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태덕소는 천태(天台)와 선(禪)의 융합을,
<종경록>등 1백권을 남긴 대 저술가인 영명 연수선사는 선(禪)과 정토 교(淨土敎)의 융합을 꾀했다.
“저 바위는 마음이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각하는 그대는 저 무거운 바위를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니 얼마나 무거운가.”
한 달 내내 참구하던 법안스님이 나한선사에게 말했다. “선사가 말한
불법에 대해 할 말도 없고 설명으로도 알 수 없는 이치 같습니다.”
나한선사가 말했다.
“참다운 불법을 논하자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크게 깨우친 법안스님은 여러 곳에서 수행에 몰두하다 강소성 청량원에서 그 가르침을 널리 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