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이야기] 05
S#1. 화장터 본관
화장구 속으로 관이 들어간다. 뚜껑이 닫히고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그 앞에 서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문호. 누군가 휴지를 내밀어 준다. 받으며 돌아보면 재명이다.
재명은 검은색이긴 하나 여전히 너덜너덜한 히피풍의 옷을 입은 채 별 감흥없는 얼굴로 태워지고 있는 관을 쳐다보고 있다.
무덤덤한 재명이 서운해서 문호 코를 팽 분다.
S#2. 화장터 야외 마당
누군가의 운구가 지나간다. 둘러싸 따라가는 식구들이 서럽게 울고 있다.
그 모양을 이만치 벤치에 걸터앉아 보고 있는 신과 경태.
경태는 이제는 고급 헤드셋을 머리에 걸치고 있다. 무릎에는 도만희의 영정을 대충 세워서 잡고 있다.
신 : 별루야.
경태 : (돌아보는)
신 : 이런 데 다시 오구 싶지 않았는데. 기분. 별루라고.
경태 : 그래도 삼촌. 나. 도재명 셋이서는 관을 들 수 없으니까 필요했습니다. 이구이사.. 아니다. 김신씨가.
최소한 네명이 있어야 관을 듭니다. 그러니까..
신 : 커피 마실래?
경태 : 맛없습니다. 이런데 커피.
신. 체..해서 일어선다.
//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는다. 한모금 마시며 돌아서다가 뭔가를 본다.
저만치에 총총 오고 있는 검은 옷의 은수.
눈을 가늘게 뜨고 본다. 아아 기억이 났다.
S#3. 회상 / 면회실
(아주 짧게)
은수 : 김신씨 맞죠? .. 형님이 김욱씨죠?
S#4. 화장터 야외
경태의 앞에 와 서는 은수. 영정 사진을 보는데 바로 눈물이 솟구쳐서 말을 못한다.
그런 은수 때문에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경태. 쭈삣거리며 일어나서 자리를 피할까 하는데.
은수 : 만희 아저씨. 아드님이시죠.
경태 : (도망가고 싶은 생각만)
은수 : 아저씬 어디 계세요? 죄송해요. 늦어서. 제가 너무 늦었어요? 아저씨 좀 보게 해주세요.
피하려는 경태의 팔목을 잡는 바람에 경태가 굳어버렸다.
은수 : 얘기 들었어요. 아저씨. 아드님 계시다구. 아저씨가 제 얘기 했었지요? 저 은수에요.
하는데 뒤에서 들리는 소리.
재명소리 : 아니. 들은 적 없는데.
돌아보면 거기 서 있는 재명과 문호.
재명은 무뚝뚝한 얼굴로 은수를 보며.
재명 : 뭐야. 이 여잔. 너, 아버지 여잔가? (기웃해서 살펴보는)
말이 막혀서 보던 은수. 난감해서 고개를 돌리다가 저만치의 신을 발견한다.
신이 커피만 홀짝거리며 흥미있게 구경하고 있다.
S#5. 야산
크지 않은 구덩이가 파여져 있다. (수목장을 하려는 중)
그 안에 유골단지를 내려놓는 재명. (유골을 뿌리는)
신과 경태가 나무를 들어 오는데 문호가 재명에게.
문호 : 뭐 할말 있으면 해. 니 아부지한테 마지막 인사.. 그런 거 해.
재명. 난처한 얼굴로 구덩이를 보고 섰다가 한 손을 든다.
재명 : 바이.
구덩이에 나무를 들여놓는 신과 경태. 삽으로 흙을 떠 메꾸는 문호. 재명은 그저 구경만 하다가 돌아보는 곳.
거기 은수가 커다란 생수통을 들고 낑낑대며 오고 있다.
문호 : 누구라고?
신 : 채동건설 회장 딸.
문호 : (가까워진 은수가 들으라는 듯) 그렇게 높은 분이 여긴 왜 와.
은수, 주눅이 들었지만 꿋꿋하게 물통을 든 채 기다린다.
문호 : (나무 주위에 흙을 팍팍 밟으며) 도재명아. 잘 들어라. 그 채동건설이란 곳이 니 아부지가 평생을 몸바쳐 일한 곳이다.
그런데 그런 니 아부지를 개같이 태워죽인 데가 바로 그 채동건설이란 말이지. 봐라. 장례식에 그놈의 회사에서
봉투 하나 보내곤 끝이다. 언놈 콧배기 하나 안 비춰. 뭐가 구린거야. 그런데 저 높은 아가씨가 왜 왔을까.
그것도 경호원 떼거지도 없이 혼자서 뭐할라고 오셨을까. 난 그 이유가 심히 궁금하네.
혹시 이번 살인사건에 대해 알려줄 말이라도 있으신가?
신이 슬쩍 은수를 본다. 은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저 서있다가
문호가 자리를 비키자 나무 주변에 물을 주기 시작한다. 물통이 무거워서 비틀거리며..
문호 : 내가 말이다. 이 야산을 사놓은 것은 나하구 내 마누라를 묻을라고 산 건데. 뭐 그 마누라란 것이 아직 없긴 하지만.
하여간. 이 귀한 땅에 니놈 아부지를 묻는 것은.. 야 도재명아.
재명이 혼자 털레털레 내려가고 있다.
재명을 쫓아가며 삽을 흔들어대며 계속 떠들어대는 문호.
문호 : 이 놈 뼛가루. 강물이나 고속도로 암데나 뿌려버리면 끝인데 왜 이러느냐. 내가 안 잊을라고.
내 친구 발싸개 놈. 어떻게 죽었는지. 안 잊을라고. 언 놈이 어뜩게 죽였는지 내가 기어코 밝혀낼라고.
경태도 슬그머니 문호를 따라 내려간다.
신은 가려다가 다시 돌아본다.
은수는 물을 뿌린 나무 주위의 흙을 손으로 꼭꼭 눌러주고 있다. 손이 흙투성이가 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훌쩍훌쩍 울고 있다.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관두고 은수를 내버려두고 신이 돌아서 간다. 가지만 마음이 좀 찝찝하다.
혼자 남은 은수가 울며 나무의 줄기를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S#6. 채회장 저택 마당
총총 달려 들어오는 은수.
S#7. 저택 내부
목도리 등을 벗어 대충 던지며 한쪽으로 달려가는 은수.
S#8. 도만희의 방
그다지 작지는 않은 넓은 방. 그러나 검소하고 별 장식이 없는 삭막한 느낌.
은수가 침대 사이드 테이블의 액자를 들어본다.
거기에는 열 살 남짓한 어린 재명이 젊은 시절의 만희와 함께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서랍을 열고 안의 것들을 들춰내는데 문 열리는 소리에 은수가 꿈쩍 놀란다.
도우가 들어서고 있다.
도우 : 뭘 그렇게 놀라.
도우는 웃고 있는데. 은수는 몸을 돌려 외면한다.
도우 : 아저씨 유품 정리할려구?
은수 : ... (물건들을 침대 위로 빼놓을 뿐)
도우 : 아저씨 장지 다녀왔대매?
은수 : ...
도우 : 나두 갔어야 했는데. 아저씨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아침부터 회의가 계속 잡혀있었어.
꼴통 이사들 설득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말이야. ....아저씨는 잘 보내드렸어?
은수 : ..
도우 : 은수야.
은수 : ...
도우 : (부드럽게) 왜 오빠를 안 봐?
은수 : (멈췄다가 역시 도우 쪽은 보지 않은 채) 아저씬.. 아버지 편이었어. 그치?
도우 : (웃는) 당연하지. 아버지 그림자로 이십년인데.
은수 : 아버진 오빠하구 사이가 안 좋구..
도우 : 사이가 안 좋다.. 소프트한 표현이네.
은수 : 아저씬 그냥 사고가 난거야. 교통사고. 브레이크 고장. 경찰에서 그렇게 말했으니까.
도우 : 그렇게 말했지. 경찰에서. (은수를 살피는)
은수 : 아저씨가 돌아가신 날. 오빠는 밤늦게까지 정원에 있었어. 울고 싶은데 울어지지가 않아.. 그러면서.
오빠가 힘들다 그랬어. 그때 우린 .. 나하구 아버진..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아직 몰랐는데.
도우 : (부드럽게) 은수야.
은수 : 아버지하구 오빠. 요즘 굉장히 사이가 안좋아. 그치? 근데 만희 아저씬 아버지 편이구.
말없이 은수를 보던 도우가 두 팔을 벌려 보인다.
도우 : 일루와. 오빠가 안아줄게.
은수 : (굳은 자세로 서 있기만)
도우 : 너 아저씨 때문에 슬퍼서 지금 지 정신 아니야. 그래서 아무 생각이나 아무렇게나 막 하구 있는 거야.
오빠가 안아줄게. 노래도 불러줄까?
은수 : (그저 벽을 보며 서있는)
도우 : 또뽑기 만들자. 쌍둥이 버선 도전해볼래?
은수 굳은 얼굴로 하던 일을 계속한다.
벌렸던 팔을 내리는 도우. 결국 웃음기가 가신다.
S#9. 도우의 차고창고
오토바이를 닦고 손질하는 케이. 여전히 무심한 얼굴.
오토바이에 타본다. 세워진 오토바이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기울이며 고속으로 달리는 흉내를 내본다. 싱긋 미소가 떠오른다.
그에게는 도우가 인생의 골이며 모델이다.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S#10. 뮤즈 앞
금일 휴업 팻말.
S#11. 뮤즈 내부
엘피 판이 돌아가고 있다. 음악이 흐르는 실내.
문호가 거칠게 오락가락하다가 멈춰서 보는 곳. 거기 신이 목도리를 두르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문호 : 어이.
신 : (보는)
문호 : 우리 경태 감방 동기인데다가 계속 잘 돌봐주었대고 갈데도 없대고 우리 경태가 원하고 그래서 먹고 자게 해주는데.
신 : (끄덕인다)
문호 : 공으로 먹고 자는 주제에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신 : ...그래도?
문호 : 고마웠다고. 운구도 해주고 장지에서.. 이것저것..
신 : (끄덕이더니 점퍼를 입는다)
문호 : 어디 가게.
신 : 돈 좀 벌라구요.
문호 : 노가다라도 뛸라고?
신 : 한 일억쯤 필요해서요.
문호 : ...얼마?
신 : 아니다.. 일억 오천 정도는 있어야겠네. 우리 형수님이 빚을 진 게 오천이라고 한 거 같은데..
문호 : 얼마를 벌겠다고?
신 : 일억. 어떤 여자가 자기 하루 불러내는데 일억 갖구와라 그러드라구요.
하더니 나간다. 어이없어 보고 있던 문호가 돌아본다.
이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오는 도재명. 히피옷 대신 말끔한 캐쥬얼 복을 입고 있다. 역시 검은색.
문호 : 넌 어디가게.
재명 : 헌팅.
문호 : 뭐?
재명 : 여자가 필요해.
나가려는 재명을 잡아 오는 문호. 카운터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들어보이며
문호 : 몇 번을 말해. 니 아버지 마지막 소리 내가 들었다구. 언놈이 니 아버지 죽이는 소리를 내가 이 핸드폰으루다가..
재명 : 헤이.
문호 : 그래 헤이. 내 말 좀..
재명 : 들어도 몰라.
문호 : 뭐가아.
재명 : 아버지 목소리 같은 거. 지난 십칠년동안 들어본 적 없으니까. 기억 못해.
문호 : (말이 막혔다)
재명 : (덤덤하게) 십칠년동안 본적도 없고. 전화 한통 한 적 없어. 그래도 매년 돈 보내줬으니까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거지.
그런 아버지 죽었다니까. 왔고. 바이 했고. 그걸로 내 일은 끝. 오케이?
하더니 나간다.
문호 하소연이라도 할려고 돌아보지만 경태는 노트북 삼매경에 빠져있다. 입까지 헤 벌리고. 수없이 많은 챠트를 빠르게 클릭중.
문호 속이 터져서 의자를 걷어차고 주저앉는다.
S#12. 사채업자 사무실 앞 / 저녁
이만치에 몸을 숨기고 보고 있는 신.
사무실 건물에서 나오는 사채사장. 옆에는 어깨들을 셋씩이나 거느리고 있다. 대기하던 차에 올라타고.
뒤에 또 하나의 차가 호위하며 출발해간다.
중호소리 : 출세했어. 새 사업을 시작했거든.
신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뒤쪽에 세워져 있던 봉고차의 조수석으로 올라탄다.
운전석에는 중호. 차를 출발시킨다.
중호 : 뭐라고 부르더라. 그게 애들 노는 거 같이 생겨가지구 오가는 현금이 장난이 아니라더만.
S#13. 상가건물
허술하게 생긴 건물.
도착한 사장은 두명의 사내와 지하로 내려간다. 다른 두명은 건물의 입구로 들어간다. 이층으로 갈..
그 모습을 이쪽 봉고차 안에서 지켜보는 신과 중호.
중호 : 사장이란 놈은 하루 두 번 가게에 들러. 저녁 이 시간에 한번. 새벽에 한번.
지하로 계단을 총총 내려가는 사채사장과 똘마니들. 문이 열린다.
시끄러운 게임소리가 들린다. 여러 가지 게임기들이 있는데 손님은 별로 없다.
입구 홀에 놓여진 게임기들은 죄다 애들용.
손님들도 별로 없다. 총쏘기 게임을 하던 어깨 하나가 사장을 보고 인사를 한다. 사장은 그를 지나쳐서 안쪽으로 간다.
거기 벽처럼 보이는 곳이 열린다. 벽지로 위장한 철문이 열린다.
철문 위에 보이는 CCTV 카메라.
S#14. 내부 홀
사장이 들어선다. 여기가 진짜 게임룸.
바다이야기와 경마 오락기 등의 사행성 도박기가 좌르르 놓여있다.
자욱한 담배연기. 시끄러운 게임기 소리. 초췌한 모습의 도박자들이 각각 게임기에 붙어 앉아있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자애가 담뱃재털이를 치우며 돌아다닌다.
사장이 그런 내부 모습을 훑어보며 안으로 이동한다.
안에는 창살을 한 카운터가 있어 상품권을 바꿔주고 있다.
카운터의 사내가 사장을 보고 얼른 인사를 한다.
사장이 거들먹거리며 창살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 여러대의 CCTV 모니터가 있어서 들어오는 입구며 홀 내부를 비추고 있다. 그 위로.
중호소리 : 저녁에는 애들 체크하러 들르는 거 같고. 새벽에는 수금하러 온댄다.
신소리 : 그럼 하루 중엔 새벽에 돈이 제일 많겠네.
중호소리 : 글치. 도박이란 게 원래 밤을 새면서 돈을 바치는 거잖아.
신소리 : 일주일 중에는?
중호소리 : 당연 월요일 아침. 은행 문 열기 직전. 금토일 사흘 번 돈이 한꺼번에 모여있는 순간.
S#15. 상가 앞 골목 / 밤
세워져있는 봉고차.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내. 운전석 쪽의 중호를 힐끔거리며 긴장한 얼굴이다.
기다리던 신이 돈봉투를 들어보인다.
사내는 쭈삣거리며 망설인다. 신이 봉투를 열어 안을 보여준다.
사내가 마음을 먹은 듯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신에게 준다. 들고 있던 아이스박스도 건네준다.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신이 사내가 쓰고 있는 야구모자를 가리켜보인다.
사내. 모자도 벗어서 던지듯 준다.
신이 봉투를 그제야 건넨다. 사내 빼앗듯 받고는 얼른 나가버린다. 뛰듯이 사라지는 사내를 보며
중호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더 이상 지원 못해. 여긴 우리 구역이 아니라서 골치 아파지거든.
신 : 여기까지로 충분히. 넘치게 신세졌어.
중호 : 혼자 되겠어?
신은 사내가 건넨 옷을 갈아입고 있다.
신 : 될지 안될지는 해봐야 알지.
S#16. 입구
이제 사내의 옷과 모자 박스 등으로 갈아입은 신이 지하실로 가는 계단을 내려간다.
S#17. 입구 홀
사내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며 신이 빈틈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CCTV에 얼굴이 보이지 않게 슬쩍 외면한다.
S#18. 내부 카운터
모니터에 신이 들어오는 모습이 잡힌다. 야구모자의 꼭대기만 보인다.
S#19. 내부 홀
신이 장사를 시작한다.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고 손님들에게 접근한다. 박스 안에는 박카스니 아이스커피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손님 중 하나가 돈을 내고 하나 사먹는다.
신이 슬쩍 돈을 거슬러주는 척 하며 고개를 감춘다. 그 뒤로 지나가는 사장. 그 똘마니들.
시찰을 마친 사장이 밖으로 나가고 있다.
사장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 신이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슬쩍 꺼내더니 단축 버튼을 누른다.
S#20. 봉고차
중호가 핸드폰의 울림을 확인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중호가 보는 앞에서 사채사장이 대기하던 차에 타고 출발하고 있다.
S#21. 홀 카운터
울리는 전화를 받는 직원.
직원 : 예에
중호소리 : 짭새 떴다.
S#22. 봉고차 내부
중호가 전화 중.
중호 : 네거리 터는 중이야. 5분 내 글루 뜰 거 같다.
전화를 끊어버린다.
S#23. 홀 내부
직원 : 여보세요. 너 누구야. 이봐..
하다가 전화기를 던지듯 놓으며 재빨리 비상 버튼을 누른다.
앵앵거리며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고. 직원들이 튀어다니며 손님들을 재촉한다.
손님들이 돈을 갈무리하며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뒷문으로 도망친다. 다른 직원들이 뛰어다니며 오락기의 전원을 뽑는다.
하나둘 불이 꺼진다. 점차 어둡고 조용해진다.
그 와중에 신이 슬그머니 위치를 이동하며 카운터 쪽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카운터의 직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금고를 통째로 검은 비닐에 싸더니 옆의 쓰레기 투입구에 넣어버린다.
S#24. 투입구 내부
빠르게 굴러 떨어지는 비닐봉지 안의 금고.
터엉 소리를 내며 지하실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S#25. 홀 내부
직원 누군가에게 거칠게 밀려져 뒷문으로 나오는 신.
밀려나온 손님들이 겁에 질려 소리없이.. 몇번 당해봤다는 듯이 익숙하게 각자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한쪽 골목으로 밀려간 신. 빙긋이 웃으며 아이스박스에서 박카스 하나를 꺼내서 맛나게 마신다.
S#26. 바
성숙한 여자애 셋이 수다를 떨고 있다가 하나씩 이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우뚝 서서 언더락 정도의 술을 마시며 그녀들 셋을 노골적으로 보고 있는 재명. 웃지도 않고 마치 재보기라도 하듯.
여자들 어이없다는 듯. 낄낄대면서 재명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재명이 뚜벅뚜벅 그녀들 앞에 서더니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고는.
재명 : (영) 영어할 줄 아는 사람?
여자들 서로 쳐다보고 킬킬.. 웃겨... 하다가 그 중의 하나가.
여자 : 어 리틀 빗.
재명이 그 여자에게 손을 내민다.
다른 여자 둘 어머어머 웃는다. 그 여자 역시 웃으며 장난이라는 듯 재명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재명 정중한 매너로 여자를 바 쪽으로 안내한다.
여자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웃는다.
// 바
여자에게 칵테일을 밀어주는 재명. 자연스럽게 여자의 의자 등에 손을 두른 자세.
재명 : (영) 며칠 전 아버지가 죽었어.
여자 : (영) 농담이지? (하며 웃는)
재명 : (영) 그래서 기분이 더러워. 게다가.. 누군가 말하길 전문적인 킬러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거야.
여자가 재미있다고 하하 웃는다.
재명 : (여자의 건너편을 보며 영어) 저기 있네. 킬러.
여자가 저도 모르게 그쪽을 돌아봤다가.. 어디.. 하면서 다시 재명을돌아보는 순간. 기다리던 재명이 키스한다.
여자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재명의 품으로 녹아든다.
S#27. 호텔 방 / 아침
열려진 커튼으로 들어오는 햇살.
잠이 깨는 재명. 벗은 상체. 옆에는 벗은 어깨가 드러나 보이는 여자가 자고 있다.
재명이 손을 뻗어 침대 옆의 테이블에서 시계를 찾아 보려고 하다가 거기 놓여있던 지갑을 떨어뜨린다.
잠시 멈췄다가 엎드려 지갑을 주워든다. 또 좀 망설이다가 지갑 안 쪽에서 꺼내는 낡은 사진. (은수가 만희의 방에서 봤던)
어린 자신과 아버지가 찍은 사진이다. 오래 손때가 묻어 가장자리가 너덜거리고 변색도 된.
S#28. 남산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낮의 남산 길 풍경.
차의 뒷좌석에서 그 풍경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는 채회장.
운전석에 앉은 오이사가 백미러로 힐끗 채회장을 보고 조심스레.
오이사 : 도실장이 워낙에 음지에서 일하던 사람이라서 영안실에 회사직원들을 보내거나.. 그러진 못했지만요.
장례비는 충분히 건네 줬습니다. 그 아들이 미국에서 왔대니까 그리 쓸쓸한 장례는 아니었을 겁니다.
채회장 : 오늘의 내가 있는 건 도실장 덕이야.
오이사 : 그야.. (더 할 말이 없다)
채회장 : 날 위해 사람도 죽여줬어.
오이사 : 그런 말씀은 꿈에서라도 하지 않으시는 게..
채회장 : 나 대신 감옥에도 가줬고. 그러느라 하나뿐인 아들 미국에 보냈다 하더군.
오이사 : 아들 얘기는 저도 이번에 처음 들었.. (하다가 움찔 놀란다)
채회장 : (어느새 오이사 얼굴 옆에 얼굴을 들이밀며 그 귀에 대고) 그 다음은 나야.
오이사 : 예?
채회장 : 모르겠어? 지 애미. 도실장. 그 담이 나라고.
오이사 : 그.. 그건..
채회장 : 그럴 수는 없지. 내가 누군데. 나 채동수야. 나 아직 안 늙었어. 빈박스에 빈깡통 주어팔다가 대한민국 채동건설을
내 손으루 일궈낸 사람이야. 내가 평생 지은 아파트가 몇챈데. 그런 내가 지 새끼한테 당할 거 같나? 나 채동수야.
S#29. 요정 방
채회장이 깊이 고개를 숙여보인다. 그 옆에는 오이사.
채회장 : 채동숩니다.
그 앞에는 의원1. 2. (의원1은 전에 골프장에서 오이사가 만났던)
한복을 우아하게 입은 여인들이 우아한 몸짓으로 요리를 늘어놓고 있다.
의원2 : 장병탭니다.
의원1 : 아이구 우리 채회장이 장의원을 모를까.
의원2 : (괜히 딱딱한 얼굴) 건설회사에 계신 분을 저같은 분과에 있는 국회의원이 만나면 말 납니다.
의원1 : 누가 소문 내구 놀재? 점심이나 먹자는 거지. 이 집 요리가 아주 정갈해. 여기 요정 마담이 뭘 좀 알어.
채회장 : 불철주야 나랏일을 하시는 분들께 이 무식한 채동수가 해드릴 수 있는게 겨우 이겁니다.
(술을 따르며) 이렇게 술 한잔 올리는 거. 이 일본 사케가 한식에 안 맞을 거 같으면서 묘하게 어울립니다.
제가 이걸 두분 의원님 맛보시게 할라고요. 일본 니가타현까지 사람을 보냈드랬습니다.
의원1 : (맛보며) 오오 이정도면 그냥 사케가 아니네. 오~사케라구 해야지.
의원2도 마셔보고 끄덕인다.
그러는 사이 오이사가 재빨리 여인들에게 눈짓을 하고 여인들이 소리없이 다 물러난다.
의원2 : 채동건설이라면 지난번 선거때 우리 당을 물심양면 지원해주셨다는 거..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요즘 우리 당 국회의원들 힘 없습니다.
의원1 : 에헤.. 밥부터 먹자고. 다 먹자구 하는 짓인데.
채회장 : 역시 장의원님. 듣던 대로 칼이십니다. 그게 무엇이든 단도직입. 일도양단.. 하신다고.
의원1 : 단도직입. 일도양단. 한자루 칼을 들고 적진으로 곧장 달려들어 한칼에 두동강을 낸다.. 카아.. 나 이런 거 좋더라.
의원1이 떠드는 새 채회장의 눈짓을 받은 오이사가 두 개의 서류봉투를 꺼낸다.
채회장이 정중하게 하나씩 의원에게 내민다.
의원2 : 뭡니까.
채회장 : 이 무식한 채동수가 나랏일 하시는 분들께 또 무엇으로 응원을 해야 하나.. 고민해봤는데요.
제가 할 수 있는게 이런거 뿐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의원1 : (봉투 안을 들여다보며) 뭔데.
채회장 : 앞으로 지어질 아파트. 가장 큰 평수로다가 준비했습니다.
의원1 : 앞으로 지어질?
채회장 : 바로 착공할 예정입니다. 아주 간단한 절차 하나만 넘기면 바로 내일이라도 불도저 들어갑니다. 하하하.
아이구 술잔이 비었네.
하며 사케병을 든다.
의원 1,2가 서로 마주본다. 2가 슬그머니 제 잔을 들어 채회장의 술을 받는다.
S#30. 시장 먹자골목
오가는 행인들. 바쁘게 음식 배달을 나가고 들어오는 식당 사람들.
그 중에 학교 가방을 둘러멘 유리가 달려간다. 엄마의 식당을 찾아가는 중이다.
유리의 앞으로 배달물건을 잔뜩 쌓아올린 자전거가 온다. 좁은 골목 많은 사람들 사이를 위태롭게 오는 자전거.
어른들에게 가려져 자전거를 보지 못하고 달려가는 유리.
마악 자전거에 부딪힐 뻔 하는 순간. 뒤에서 유리를 허리를 번쩍 들어 옆으로 피하게 하는 손길.
유리가 버둥거려 손길을 벗어나 돌아보더니 아악 소리를 지른다.
신이 으으.. 시끄럽고 난처해서 주위를 본다. 행인들이 수상해서 본다.
유리가 다시 한번 아악 비명을 지르더니.
유리 : 삼초온.
소리지르며 신에게 달려든다.
그런 유리를 안아주는 신. 웃는다.
유리가 자기를 못 알아볼까봐 두려웠었다.
S#31. 명선의 떡볶이집
명선이 바쁘게 순대볶음이니 어묵 등을 손님들에게 나누고 있다.
좁은 식당 구석에 네다섯살의 누리가 스티로폴 방석 위에 앉아 몇 개 없는 블록을 쌓고 있다.
블록이 무너지며 하나가 바닥으로 구른다.
누리가 그 블록으로 손을 뻗는데 먼저 블록을 집어드는 신의 손.
바쁘게 떡볶이에 양념을 넣던 명선이 돌아본다.
누리를 안고 나서는 신. 유리는 신의 허리에 매달리듯 붙어있고.
신 : 애들하고 놀다 올게요. 어두워지기 전에 델구 오면 되죠?
명선이 뭐라 말하기 전에 신은 사람들을 헤치며 간다.
손을 잡고 매달려 가는 유리가 명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신이 나있다.
S#32. 대형마트의 어린이 놀이방
볼수영장의 볼 안에서 뭔가가 꿈틀거린다. 유리가 볼들 속에서 튀어나오며 깔깔 웃는다.
// 대형마트장에 마련된 무료 어린이 놀이방이다.
// 옆에서 제복 차림의 여직원 둘이 어이없어서 보고 있다.
볼수영장의 볼들 속에서 기어나오는 신. 아이들 노는 곳에서 애들보다 더 잘 놀고 있다.
유리가 신을 다시 볼 속에 묻는다. 으아.. 넘어지며 묻히는 신.
옆에서 누리가 까르르대고. 다른 애들까지 달려들어. 신을 공으로 묻는다.
신이 항복을 외치며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어대서 애들을 더 웃긴다.
간신이 기어나온 신의 시선이 옆의 미끄럼틀로 간다.
어떤 아이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다.
S#33. 동장소 회상
같은 장소. 어둡고 매장이 끝난 뒤의 시간.
바로 그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경아. 까르르 웃고 있다. 그 뒤에서 쫓아 내려오는 신.
경아는 아까의 관리 직원들과 같은 직원제복을 입고 있다. 한때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경아가 비명을 지르며 다른 놀이기구로 도망가다가 결국 잡힌다. 뒤에서 경아를 안은 신이 귓가에 묻는다.
신 : 그만 항복하지.
경아 : (웃음기로) 차라리 날 죽이시지.
신 : 너무 팅기면 나두 포기해버린다.
경아 : 과연.. 니가.. 날 포기할 수 있을까? (하더니 스윽 돌아본다)
신, 괜히 화난 얼굴.
경아가 돌아서며 신의 얼굴을 두손으로 감싼다. 그러며 속삭인다.
경아 : 눈.. 감아봐.
신이 눈을 감는다. 기대감으로 미소가 떠오른다.
경아의 손이 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타고 내려와 옷깃을 부드럽게 감아쥐더니 당긴다.
앞으로 점점 기울어지는 신.
순간 경아가 신의 옆으로 빠지며 민다. 볼수영장으로 빠지는 신.
허우적대는 신을 보며 웃는 경아.
신이 간신이 중심을 잡으며 경아를 잡는 듯 하다가 당겨버린다. 함께 볼들 위로 넘어지는 경아.
그런 경아를 감싸 안아 마악 키스하려던 자신.
더 이상 추억할 수 없는 아픔처럼 끊어지고.
S#34. 대형마트 푸드코너
유리와 누리가 입가에 잔뜩 자장면을 묻히며 먹고 있다.
그 앞에서 역시 자장면을 먹는 신. 주위에는 장보러 나온 주부들. 가족들..
유리 : 삼촌.
누리 : (따라한다) 삼촌.
신 : 왜.
유리 : 언니는 왜 안 왔어?
신 : (먹다가 멈칫)
누리 : 안왔어?
유리 : 경아 언니. 언제와?
누리 : 언제와?
신 : 글쎄.
유리 : 언니하구 싸웠어?
누리 : 싸웠어?
신 : 아니.
유리 : 근데 왜 안 와.
누리 : 왜 안와.
신 : (웃으며 휴지로 두 아이들의 입가를 닦아주며) 삼촌이 가서 물어볼게. 언제 유리하구 누리 만나러 올거냐구.
내가 델구 올게. 암만 바빠두.
유리 : 꼭 같이 와.
누리 : 같이 와.
신 : 꼭... 같이 올게. 됐냐?
유리 : (끄덕끄덕하고 자장면 먹는)
누리 : (끄덕끄덕하고 자장면 먹는)
신도 괜히 끄덕끄덕하고 자장면을 먹는데.. 어쩐지 우울해진다. 꾸역꾸역 자장면을 쑤셔넣으며 먹는다.
S#35. 호텔 멤버스 클럽앞 로비
케이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들어서는 도우.
여러개의 홀들이 방보다는 크고 볼룸 보다는 작게 나뉘어져 보이는 멤버스 클럽 앞.
도우네가 지나쳐가는 한쪽에 놓여진 안내판 중에 [채동건설 임시이사회 - 모란실]
S#36. 볼룸장 내부
그다지 크지 않은 회의겸 연회장을 만들어놓았다.
이미 테이블 앞에 앉아서 삼삼오오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중역들.
젊은 직원이 그들 앞에 회의자료를 잽싸게 돌리고 있다.
웅성이던 이들이 들어서는 도우를 보자 조용해진다.
중앙의 비어있는 자리 앞으로 가는 도우. 앉을 생각도 없이 선 채.
도우 : 채동건설의 대주주 여러분. 그리고 이사님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목시계를 보며) 이사님들께는 미리 한분한분 상세히 설명드렸으니까 긴 설명.. 안해도 되겠지요?
미소를 띄어 모두를 돌아보는데. 어쩐지 모두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도우의 시선과 마주치기를 피한다.
도우 : 박이사님.
박이사 : (난처해서 외면하는)
도우 : 긴 설명.. 다시 안해도 되겠지요?
박이사 : (흐음.. 마른기침만)
변이사 : 채상무.
도우 : 말씀하세요. (계속 미소는 짓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있다)
변이사 : 그러니까.. 대표이사를 새로 정하자 그 얘긴데.. 우리 회장님께서 그간 명실상부한 대표이사로
주욱 우리 채동을 이끌어 오셨는데.. 에.. 이 시점에 갑자기..
도우 : 변이사님.
변이사 : 그니까 내 말은.. 너무 갑작스럽게..
도우 : 잔인하시네요.
변이사 : 내가요.
도우 : 아들인 제가 이런 말, 공개적으로 꼭 해야겠습니까? 제 아버지, 채회장님. 정신적으로 회사업무를 맡기 어려우시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치매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계시다. 더 얘기해야 되요? 진단서에 내용증명이라도 떼올까요?
변이사 : 흠.. (외면하는)
도우 : 박대표님. 강대표님.
호명당한 자들 외면한다.
도우 : 박이사님.
박이사 : (괜히 자료만 뒤적이는)
도우 : 이상하네요. 여러분 중에 내 눈 똑바로 봐주시는 분이 하나도 없으시네. 며칠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요?
그 때 문 쪽에서 들리는 소리.
채회장소리 : 대체 무슨 일이 왜 있어야 돼?
채회장이 오이사를 거느리고 들어서고 있다. 앉아있던 자들이 분분이 일어난다.
당당하게 도우가 있는 중앙 자리로 걸어오며
채회장 : 박대표는 어째 날이 갈수록 골프가 줄어. 어제 그게 뭐야아. 뭐 ..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채회장이 웃자 백대포를 비롯 몇이 따라 웃다가 도우의 시선을 받고 헛기침을 하는 등..
채회장이 도우 앞에 서서 마주본다.
도우 : 어쩐 일이세요. 몸도 안 좋으시면서.
채회장 : 나? 몸은 좋아. 치매가 좀 걸렸을 뿐이지.
눈치없는 한사람이 재미있다고 웃다가 얼른 헛기침으로 감춘다.
도우. 옆으로 물러선다.
채회장 당연하다는 듯 그 자리에 앉으며
채회장 : 대마리 토지 제한 풀어놨단 얘기는 다들 들으셨지요. 그 땅 재계약했습니다.
도우. 놀라서 좌중을 본다. 모두 아는 얘기인 듯. 끄덕인다.
채회장 : 죄송합니다. 애비는 계약하고. 아들놈은 해지하고. 그걸 또 재계약하고. 그러느라고 돈이 이중으로 들었는데..
이게 참 골프하구 자식은 지맘대루 안된다더니. 여러분들 보기 부끄럽습니다. 널리 양해해주시고오.
어제 말씀드렸던 대박껀. 이제부터 설명해올립지요. 오이사.
오이사가 재빨리 뒤에서 버튼을 작동하자 커튼이 닫힌다.
어느새 준비되어있던 프로젝트를 밀고 들어오는 직원.
채회장 : 이거 하나면 올해 대한민국 건설 우리 채동의 손으로 흔들어놓을 수 있을 것인데.
오이사 : 잠시 불을 끄겠습니다.
채회장 : 아 끄기 전에. 너. (도우를 본다)
도우 : ..
채회장 : 방금 상무이사 자리에서 해고됐다. 지금부터 오가는 얘기, 고위급만 들어야 되는 얘기니까.. 나가.
도우 : (말없이 보는)
채회장 : 나를 제치고 이 회사를 먹을 생각이었으면 제대로 했어야지. 모질라. 아주우.. 하급이었어.
치매 걸린 이 늙은이가 보기에두 아주 웃겼어.
그 소리에 몇몇이 아부하듯 웃는다.
도우 : (고개를 숙인다) 그랬던 거 같습니다.
채회장 : 나가.
도우. 중역들을 돌아본다. 모두 시선을 피한다.
도우 : 여러분께 잘 배웠습니다. 기억하지요.
하더니 문으로 나간다. 케이가 대기하다가 문을 열어준다.
도우가 나서는데 불이 꺼지고 들리는 소리.
채회장소리 : 중국에 주..뭐?
오이사 : 주하이입니다.
도우 문이 닫기기 전에 슬쩍 뒤를 본다. 프로젝트에 떠있는 광대한 땅 (주하이의) 사진.
채회장 : 그래. 거기. 주하인가 뭔가. 이게 얼마짜리냐. 그래서 여러분들께 얼마씩 돌아가느냐.. 하면 말이에요.
문이 닫긴다.
S#37. 볼룸 앞 복도
닫긴 문 앞에서 도우가 좌우를 둘러본다.
거기 중역들을 모시고 온 비서나 보좌관들이 수근대다가 도우를 보더니 시선을 피한다. 안의 상황을 다들 알고 있는 듯.
도우. 빙긋이 웃는다. 웃으며 걸어간다.
그 앞에서 얼른 길을 비키는 비서들.
미소짓는 도우의 얼굴이 점점 차가와진다.
S#38. 도시
수없이 사람과 차들이 지나가는 빌딩의 도시에 밤이 오고. 새벽이 온다.
S#39. 오락장 입구 / 새벽
어둠이 아직 남아있는 거리. 신문배달하는 자전거가 지나가고.
사채 사장의 차가 서고. 내린다. 전날과 비슷한 패턴.
같은 사내들이 사장을 호위하고 있다.
S#40. 오락장 내부
여전한 오락장의 시끄러운 소리들. 제법 성업중이다. 담배연기 자욱하고.
그 한 구석에는 밤을 새고 지쳐 졸고 있는 사내도 보인다.
그 중앙을 지나가는 사장.
사장의 눈에는 띄지 않는 구석에서 박카스를 팔고 있는 신. 슬쩍 사장을 살핀다.
사장은 카운터 쪽으로 간다.
철창 안으로 들어가고. 컴퓨터 화면과 장부를 대조하며 하루밤의 수익을 살피고 있는 사장.
신. 음료수 장사를 하며 입구 쪽으로 슬그머니 이동하며 사장의 호위들, 오락장의 직원들의 위치를 살핀다.
이제 사장과 카운터 직원은 금고의 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신이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는다.
문을 지키는 직원이 신을 수상쩍게 돌아본다. 너무 일찍 나가고 있다.
S#41. 오락장 외부
지하 계단을 빠르게 올라오는 신. 핸드폰 단축번호를 누르고 있다. 어딘가에 전화가 걸렸다.
신 : 수고하십니다. 어제 제보했던 사람인데요.
얘기하며 신은 건물의 뒤로 돌아가고 있다. 돌아가며 슬쩍 이층을 올려다본다.
이층에는 조금 열려져 있는 창문이 보이고, 그 창문 안으로 지나가는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사장을 수행하는 사내들 중의 하나.
S#42. 이층 창문 내부 실내
작은 사무실용 공간. 그러나 철제 책상 두어개에 낡은 소파세트.
사내 하나는 삼분 라면을 먹고 있고. 하나는 소파에 뻗어 자고 있다.
라면을 먹는 사내는 창 밖의 거리를 습관적으로 내다본다. 새벽의 거리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S#43. 오락실 내부
카운터 안.
금고의 돈을 꺼내 세던 직원. 옆의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서.
직원 : 네에... 여보세요. 너 누구야?
S#44. 뒷골목
신이 전화를 하고 있다.
신 : 내가 누군지는 알거 없고. 내가 방금 경찰에 전화를 했다고. 경찰청 소속에 스텔스 부대라구 있는 거 아냐?
거기가 느네같은 불법 영업장 단속하는 데래. 그래서 글루 전화했는데 말이다. 금방 올거야. 워낙 기동성이 좋은 데라니까.
이번 기회에 느네 콩밥 좀 먹어보라구. 아 참.. 요즘은 콩밥 잘 안 주더라. 콩이 비싼가봐.
S#45. 오락장 내부
직원이 전화에 대고 성질을 낸다.
직원 : 이 미친새끼. 너 어제 장난전화질 한 놈 맞지? 이 새꺄. 너 어디 소속이야. 야. 어이. 여보세요.
사장이 뭔가해서 돌아본다.
사장 : 뭐야.
직원 : 아닙니다.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하는데 옆의 빨간 비상등이 미친 듯이 번쩍이기 시작한다.
사장 : 뭐냐고 이게!
S#46. 이층 방
라면 먹던 놈이 미친 듯이 비상벨을 눌러대고 있다. 그 옆에는 먹던 라면이 나동그라져 있고.
그가 보는 창문 아래에 마악 도착하는 경찰 기동대 차가 보인다.
사내가 후다닥 소파에서 자는 놈을 발로 찬다. 자던 놈이 겨우 깨서 보는데. 이미 먼저 사내는 점퍼를 집어들고 밖으로 튀고 있다.
어어.. 해서 창문 밖을 본다.
거기 기동대 차에서 우루루 내리는 경찰들.
S#47. 오락장 밖의 홀.
순식간에 밀고 들어오는 경찰들. 지키던 직원이 도망을 가려다가 바로 붙잡힌다.
일반 오락기계들 옆의 벽처럼 보이는 철문을 발견하는 요원. 안에서 잠겨있다.
미리 준비된 해머로 문을 내려치는 요원들.
S#48. 오락실 내부
철문이 밖에서 쾅쾅 내려쳐지고 있다. 안에는 비상 사이렌이 울려퍼진다.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손님들을 뒤늦게 피신시키느라고 난리다.
사장이 다급해서 비닐 봉지에 현금을 쓸어넣고 있다. 도망친다.
똘마니들이 손님들 사이로 사장을 먼저 피신시키느라 애를 쓴다.
S#49. 후문
도망쳐나오는 사장과 직원들. 손님들. 맨 앞으로 뛰던 직원이 멈춘다. 으아..해서 돌아 뛴다.
도망치던 출구로 막아서며 들어오는 경찰 요원들.
사장이 미친 듯이 옆의 사람을 밀치며 다시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가슴에는 커다란 돈봉지를 한아름 안고 있느라 힘들다.
S#50. 오락실 내부
두꺼운 철문이 거의 덜렁거리고 있다. 여전히 거칠게 문을 내려치고 있는 해머 소리.
튀어들어온 사장이 카운터 안으로 달려들어간다. 거기 모니터들에는 바로 문 앞까지 진입해온 경찰들이 보이고 있다.
순간.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거의 동시에 사장이 돈봉지를 쓰레기 투입구에 던져 넣는다.
우루루 밀려들어오는 경찰들. 뒷문에서 쫓겨들어온 직원들과 손님들. 그 뒤로 밀려드는 경찰들.
순식간에 포위되는 사람들. 하나씩 분리되어 체포되는 와중에 사장이 큰소리를 치고 있다.
사장 : 아니 왜들 이러십니까. 여긴 건전한 오락장입니다. 뒤져보세요. 우리 오백원짜리 오락하는 데에요.
여기가 무슨 도박장이라구 아이구 이러지 맙시다. 어디 관할입니까? 예? 경찰서장들 다 내 형님인데..
사장이 거칠게 체포된다.
S#51. 지하 쓰레기장 (혹은 밀공간)
어두운 공간에 삐이걱 소리. 빛이 들어온다.
좁은 공간으로 들어서는 그림자. 신이다.
신이 거기 던져져 있는 돈봉지를 주워든다.
어깨에 걸쳐 메고 조용히 다시 빠져나간다. 문이 닫기고 다시 어둠.
S#52. 뮤즈 앞
경태가 오락가락. 신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를 봤다. 길 건너 벽에 써있는 낙서. 그 앞에 가서 자세히 본다. '다 쥑일거야' 라고 써있다.
경태 고민을 하다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침을 묻혀서 쥑의 ㅣ 선을 지우기 시작한다. 아예 쭈그려 앉아 열중한다.
겨우 쥑이 죽 자가 된다. 아직 마음에 안 든다.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죽자의 ㅜ자 옆선을 좀 더 길게 뻗어그린다. 좀 마음에 든다.
그때.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
은수소리 : 저기요.
경태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고 보면. 은수가 한손에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다른 손에는 바퀴달린 여행가방을 끌고 서 있다.
은수 : 아 맞게 왔나부다. 안녕하세요. 회사에서 여기 주소를 알려주더라구요. 만희 아저씨 아드님 여기 계시죠?
경태, 뮤즈 안으로 도망칠 생각으로 옆걸음질을 치는데.
은수 : (주소에 이름 적힌 종이 다시 보며) 도..재명씨. 여기 안 계세요?
경태 간신이 은수의 옆을 지나쳐 가는데.
은수 : 만희 아저씨 유품 가져왔어요. 그 아드님께 드려야 할 거 같아서.
경태 할 수 없이 멈췄다.
은수 : 저... 채은수라구 해요. 저번에 장지에서 뵜었는데. 저 안 좋아하시는 거 아는데요. 이것만 전해드리고 갈게요. 부탁드려요.
경태 뭔가 대답을 해야 할 거 같아서 머리에 쓰고 있는 헤드셋의 연결줄을 더듬더듬 찾아쥐고
어딘가 접속할 데를 찾느라고 우왕좌왕. 그러다가 에라. 은수가 끌고 있던 가방의 손잡이를 나꿔채서 들들 끌고 뮤즈 쪽으로 간다.
S#53. 뮤즈 내부
일층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다.
두세명 정도 밖에는 안 되보이는 손님들이 여기 저기 앉아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거나 졸고 있다.
백수로 보이는 남자. 도로공사의 안전복을 입은 남자. 등.
바에서 커피를 준비하던 문호가 놀라서 본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들들 소리를 내며 가방을 끌고 들어온 경태가 홀의 한쪽에 있는 이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가방을 낑낑 들고.
그 뒤를 어리숙하게 따르는 은수. 문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여보인다. 문호. 뜨거운 커피물에 데어 아 뜨거.
S#54. 이층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가방을 여는 은수.
그 옆의 소파에 나른하게 퍼져서 남의 일처럼 보고 있는 재명.
저만치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는 경태.
은수 : 옷은 다 못 갖구 왔어요.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두 혼자 갖고 오긴 많아서. 그냥 신사복 몇벌하구.. 그리구 이거.
(시계를 들어보이며) 고장났나봐요. 근데 서랍에 잘 보관되어 있길래.. 갖구 왔어요. 혹시 사연이 있는 시계인지두 몰라서..
그리구.. (뒤지는데)
어느새 올라온 문호.
문호 : 뭐냐. 이 상황은.
경태 : (뭔가 설명하려하지만 말이 안나온다. 손짓만 하다 만다)
은수 : (못 들은 척 가방을 뒤지다 구두상자를 꺼낸다) 그리구 이건.. 이 안에 있는 걸 제가 쪼끔 봤는데..
문호 : (버럭) 뭐하는 거냐고. 저 냄새나는 부잣집에 딸래미가 복장 터져 죽어가고 있는 내 집에서!
은수 : (결국 말이 막혀 손에 든 상자만 들여다보고 있는)
재명 :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지금 이 여자가 내 아버지하고 얼마나 친했는지 자랑중이야.
별로 부럽지 않으니까 대충 그만뒀으면 싶은데 끝이 없네.
문호 : 이봐 아가씨. 들었지? 그만 두래. 그리고. 집에 가거든 아버지란 작자한테 똑바로 말해. 나. 박문호. 다 알고 있다.
비록 지금은 심증만 있지만 조만간 물증까지 다 밝혀낼거다. 기다려라. 나. 조용하게 살라고 손 씻은지 오년 삼개월 됐는데
이런 내가 지금 잠에서 깨어나구 있어. 뭔 말인지 알아?
은수 : (상자를 재명 앞에 놓아주며 작게) 아저씨.. 아드님을 많이 그리워하셨어요.
재명 : (웃는다)
은수 : 아드님 만나러 가세요. 하구 제가 그랬었어요. 그랬더니.. 너무 훌륭한 아들이라 감히 보러 갈 수가 없다구.. 그러셨어요.
(눈물이 어려서 재명을 본다) 많이 아주 많이 보고 싶어하셨어요. 제가 알아요. (일어서서 머뭇거리다가) 죄송해요. 전...
하다가 그냥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계단을 내려간다.
문호 더 뭐라 못하고 보다가 재명을 돌아본다.
재명은 다시 소파에 길게 늘어져 편한 자세를 잡더니 눈을 감는다.
S#55. 시장 먹자 골목
시끄러운 장터의 소리. 호객소리.
김을 내는 순대. 뒤적여준지 오래되서 위가 마르고 있는 떡볶이.
손님이 하나 사먹으려고 안을 기웃거리다가 반기는 주인이 없자 그냥 가버린다.
S#56. 가게 내부
명선이 어쩔줄 모르고 보고 있는 것. 탁자 위의 종이백이다.
길다란 탁자에 거리를 두고 어색하게 나란히 앉은 중호.
중호 : 모자라면 말하랩니다.
명선 : (조심스레 종이백 안을 들여다본다. 현금이 가득 들어있다. 얼른 다시 밀어놓는다)
중호 : 전했으니 이만 갑니다. (일어서는데)
명선 : 우리 삼촌. 형기 마치고 나온지 열흘도 안됐어요. 머물 집. 방 한칸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삼촌에게 어떻게 하면 이런 돈이 생겨요?
중호 : (묵묵.. 의자 등에 걸쳐놓았던 겉옷을 입는)
명선 : 물어보지 마요? 그냥 받아요? 친구분은 아시죠? 이거 무슨 돈인지.
중호 : 친구는... 아닙니다.
명선 : 도로 갖구 가세요. 나 아무리 염치가 없구 나밖에 모르는 여자래두 애들 삼촌. 두 번씩이나 나 땜에 형무소 보낼 수는 없네요.
중호 : (묵묵...)
명선 : 못 받겠어요. 이런 돈. (일어선다) 갖고 가세요.
중호 : 형수라는 분.
명선 : 네?
중호 : 나 그놈 똘마니 아닙니다. 그렇다고 오천원 받고 택배 뛰는 것도 아니고.
명선 : (그제야 당황해서) 아..
중호 : 아까도 말했지만 친구도 아니지요. 그러니 도로 갖고 가라. 마라.. 그러시면 안됩니다.
명선 : 죄송해요. 전 그냥..
중호 : 가보겠습니다.
하더니 그냥 간다.
명선 붙잡지도 못하고 본다. 돈이 든 종이봉투가 덩그러니 남아있다.
명선,. 봉투를 보다가 보다가 그 앞에 다시 앉는다. 봉투를 끌어당겨 다시 안을 들여다본다.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보다가 그런 자신이 한심해서 다시 봉투를 밀어놓는다.
S#57. 가게 밖
이만치에서 중호가 슬그머니 명선쪽을 살펴보고 있다.
중호의 시선에서 명선을 봉투만 바라보고 있다.
중호 명선을 보는 자세로 한 손을 주욱 옆으로 뻗는다. 마악 지나가던 남자 고등학생 둘 중에 하나가 잡힌다.
중호 : (여전히 보지 않고) 얘들아.
학생 : (겁에 질려 보는)
중호 : 떡볶이 먹어라. 저 집꺼가 맛있다.
S#58. 골든크로스 복도
오마담이 살랑살랑 걸어간다. (바로 앞의 시장 분위기와는 대별되는 화려하고 조용한)
S#59. 대기실
영업시간이 가깝다. 아가씨들이 각자 이리저리 앉아서 화장을 고치고 있다.
요란한 차림을 한 연희가 살랑살랑 춤스텝을 밟으며 들어온다. 한쪽을 본다. 구석 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경아.
연희가 옆으로 다가 앉으며.
연희 : 좀 올랐어?
경아 : ..
연희, 경아가 보는 신문을 슬쩍 넘겨본다. 주식의 동향에 대해 실린 기사들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연희 : 뭐 살라구? 응? 뭐 살건데?
경아 : (신문을 넘겨주고 일어선다)
연희 : 그러지 마라 좀. 어차피 너두 손님들한테 정보 들어서 사는 거잖아. 같은 처지에 우리끼리 같이 알면 좋잖아.
이제 아가씨들이 다 쳐다보고 있다.
연희 : 너 증권해서 한달에 몇천씩 벌어댄다며. 같이 좀 벌자구.
경아 : (거울 앞으로 가서 화장을 고치며) 같이 버는 건 좋은데. 같이 잃으면. 나 원망하지 않을 자신 있어?
연희 : 얘 왜 이래. 내 손님 구십프로가 코스닥 상장사 사람들이야. 나두 주식이란 거 알만큼 알어야.
경아 : 알만큼 알면 혼자 힘으로 해. 그래야 쪽박을 차도 덜 억울하지.
문이 열리며 오마담이 들여다본다.
오마담 : 제니. 나 좀 봐.
경아 오마담을 따라 나간다. 문이 닫기기도 전에 연희 성질 나서.
연희 : 재수바가지. 싸가지. 으이구. 그래 너 혼자 잘 먹고 잘 싸다가 잘 죽어라야.
S#60. 복도
오마담이 청소도구를 들고 지나가는 웨이터들이 안들리게 경아에게
오마담 : 채상무. 지 회사에서 쫓겨났댄다. 지 아부지가 쫓아냈대.. 부자간에 조선왕조 오백년 찍는 것두 아니구.
세력 싸움하다가 아들이 한수 눌린거지.
경아 : 그런데요.
오마담 : 니가 맡을래?
경아 : (보는)
오마담 : 사실은 내가 좀 들이대다가 포기한 상태야. 채상무 여자한테는 워낙에 관심이 없어서 게이가 아닌가 했는데
것두 아닌 거 같구. 니가 한번 잡아보라구.
경아 :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을 잡아서 뭐하게요.
오마담 : 알면서 왜 그래. 우리 지난달 매상 삼십프로는 채상무가 끌고 온거야. 그런 고객이 우울할 때는 제대로 접대를 해야지.
경아 : 그래서 왕조를 다시 찾게 도와주라고요?
오마담 : 뭐 도와줄 건 없을거야. 채상무. 알잖아. 삼국지로 치면 조조. 배트맨으로 치면 조커. 절대 누구 아래 있을 사람이 아니지.
S#61. 룸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룸.
거기가 마치 자기 서재나 되는 듯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던 도우가 고개를 들어 본다.
들어선 경아가 문을 닫고 문가에 기대 선 채 도우를 본다.
경아 : 나한테는 관심이 좀 있다면서요?
도우 : (보기만)
경아 : 오마담이 잘못 알았나. ...아니에요?
도우 : 그래서요?
경아 : 그래서 저보구 상무님을 맡으래요. 현재 아버지에게 쫓겨나서 심기 불편하니까 이 기회를 잘 잡아서 비벼봐라.
혹시 나중에 아파트 하나 건질지 아느냐.
도우 : (여전히 웃지 않는) 아파트 필요해요?
경아 : (역시 웃지 않는) 줄래요?
도우 : (뚜웅하니 보다가 무시하고 다시 책을 본다. 별로 대꾸할 필요도 안 느낀다는 듯)
경아 : (기웃해서 책의 제목을 본다) 의외네. 경제나 증권 책 볼 줄 알았더니. 비트겐슈타인이에요?
도우 : 아는 거에요. 아는 척 하는 거에요?
경아 : 엄청나게 돈 많은 재벌집에서 태어난 철학자. 거기까지만 알아요.
도우 : 철학과 나왔어요?
경아 : 아뇨. 철학과 다니는 남자애한테 관심이 있었죠. (테이블에 걸터앉으며 얼음물 따르는) 재벌집 애라구 해서 관심을 뒀었는데
알고보니 재벌집에 머어어언 친척이드라구요. 전셋집에 산대나.. 그래서 철학공부는 거기서 끝.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도우와 떨어진 소파의 한쪽 끝으로 가더니
소파 위에 올라앉아 온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박고 가만 있는다.
도우.. 무시하고 책을 계속 읽는다. 그렇게 각자 있는 두사람.
문에 노크소리. 열리더니 웨이터가 고개를 들이밀고 도우에겐 꾸벅.
웨이터 : 죄송합니다. 제니.. 제니..
경아 웅크려 고개를 무릎에 박은 자세로 손만 들어보인다.
경아가 나올 거 같지 않자 웨이터 조심스레 경아 옆으로 가서 속삭이듯.
웨이터 : 그 놈이 또 찾아왔는데.
경아가 고개를 들어본다.
웨이터 : 돈 갖구 왔다구 방 달래. 방 줘?
책을 읽는 자세로 도우. 신경이 쓰였다. 돌아본다. 마침 도우를 돌아보던 경아와 눈이 마주친다.
S#62. 다른 룸
한쪽에 앉아있단 신이 고개를 들어본다.
들어서는 경아. 서서 신을 본다.
신 : 감기 들었냐?
경아 : ..
신 : 얼굴이 왜 그래? 말해봐. 목소리 들어보게.
경아 : (시를 외는 어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어보인다. 시체의 심장을 안고.
신 : .... 감기는 아닌 거 같고. 술병인가.
경아 : 국문과 조기준이 기억나? 그 인간이 나한테 써줬던 시야. 오성그룹 손자라구 해서 공 좀 들였었는데
유학간다구 휭 날라버린 놈.
신 : ...넌 말만 그러잖아. 말로만 재벌 잡는 게 인생의 목표라구 큰소리쳐대구. 그럼 난 그거 헛소린줄 알면서두 욱해서 삐치고.
그게 우리 놀이였잖아.
경아 : (보는)
신 : 근데 너 남자라군 나밖에 모르잖아.
경아, 재미없는 얼굴로 걸어오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가방을 내려다본다. 열어본다. 현금이 가득 들어있다.
제대로 묶지도 않고 세지도 않은 듯한 현금뭉치.
경아 : 은행 털었니?
신 : 비슷해.
경아 : 나 하루밤 살려구?
신 : 응.
경아 : (가방을 밀고 그 자리에 앉아 신을 본다) 나 하루밤 사서 뭐하게.
신 : 안구 키스하구 섹스하구 손잡고 자구. 자다 깨서 또 안구 키스하구..
경아 : 그 담엔?
신 : ...
경아 : 또 은행 털러 갈라구?
신 : ..있지 경아야. 나 감방에서 맨날 니 생각했다. 사실은 너보단 형을 더 많이 생각하구.
복수를 찐하게 계획하구 그럴려구 했는데. 근데 그건 하늘에 별 같아서 잘 뵈지두 않구 그냥.. 너만 생각났어.
내 품에 니가 어땠는지. 니가 어떻게 날 만졌는지.. 니가 어떻게 웃었는지..
경아 말없이 신을 본다. 신도 온순하게 앉아 경아를 본다.
그리고. 그런데. 문이 조금 열려있다.
경아 : (손을 뻗더니 흘러내린 신의 머리를 쓸어 올려준다) 큰일났네. 김신..
신 : 너 하나만 내 옆에 있어주면 나 이 염병할 세상에서 착하게 살 수 있어. 아무도 원망하지 않구. 미운 놈은 다 잊어먹구.
벽돌 나르고 붕어빵 구워 팔면서 착하게 살 수 있어. 너한테 백만원짜리 가방은 못 사주겠지만 맨날맨날 ..고맙다구 말할게.
고맙다구.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구. ...내 옆에 있어주라.
경아 : (아픔으로 보다가 낮게) 그러지 마.
신 : 경아야.
경아 : 한달은 행복하겠지. 길면 석달? 니 옆에서 붕어빵 구우면서 웃기도 할거야. 근데.. 그 다음은 어뜩해.
경아 미소짓는데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리려 한다. 스윽 닦아내더니 일어선다. 이제 큰소리로.
경아 : 괜찮아요. 별 일 없을 거 같네요. 이 남자 이래뵈두 디따 힘이 세서 걱정했는데요. 그새 많이 어른이 됐나봐요.
(문을 돌아보며) 지켜봐줘서 고마워요.
문이 열린다. 거기 도우가 서있다.
신이 굳어져서 일어선다.
경아가 문쪽으로 간다.
도우는 무심한 얼굴로 신을 안다는 내색도 않고. 열린 문을 잡아주어 경아가 나오게 한다.
신 : 채도우.
도우 : (이상하다는 듯 신을 본다) 날 알아요? 이상하네.. 난 기억에 없는 분인데.
신, 무너지는 마음으로 경아와 도우를 본다.
도우는 신에게 약간 고개를 숙여 예를 보이더니 경아의 어깨를 감싸고 간다. 경아는 신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S#63. 뮤즈
음악이 흐르고 있는 뮤즈. 손님이라고는 한쪽에 앉은 아줌마 한분. 아줌마는 뜨개질을 하고 있다.
문이 열리더니 노숙자 차림의 사내가 들어선다. 자연스럽게 한 구석의 자리로 가더니 앉는다.
그를 힐끗 보고는 바의 문호가 커피를 준비한다.
진한 커피를 커다란 잔에 담고는 달걀의 노른자를 깨넣는다. 예전의 모닝커피.
커피를 노숙자에게 갖다 준다.
굽신거리며 받아드는 노숙자. 그래도 양복 차림.
문호가 낮게 묻는다.
문호 : 신청곡은?
노숙자 : (곡목 신청. 작품 번호까지 상세하게 주문. 곡은 뒤의 분위기에 맞게..)
문호 진지하게 끄덕이고는 앨범 쪽으로 간다. 칠판에 작품명을 멋진 글씨체로 적으면서 문득 이층을 올려다본다.
S#64. 이층 거실
여전히 소파에 널부러져 있는 재명. 등만 보이는 상태.
열려있는 방문 안으로 경태의 모습이 보인다. (예의 경태방)
몇 대의 모니터를 보고 있다. 모니터 하나는 뉴욕증시 챠트.
아래층에서 바뀐 곡목의 (신청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뒤척이며 돌아눕는 재명. 자고 있지 않았다. 뜨여있는 눈.
그의 눈에 테이블 위에 아직 놓여있는 가방.
그 옆에 고장난 낡은 시계가 보인다. 멈춰져 있는 시계 바늘.
S#65. 김포공항 회상
아버지 만희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바로 그 시계. 지금처럼 낡지 않고 제대로 작동이 되고 있다.
어린 열두살 재명의 키에 바로 보이는 위치.
십칠년이 젊은 도만희가 손을 들어 그 시계를 본다.
재명의 시선에서 올려다보이는 커다란 아버지다.
만희가 들고 있는 작은 배낭을 재명의 등에 메어준다. 여권이며 표도 손에 쥐어준다.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더니
만희 : 엘에이 공항에 내리면 창 아저씨가 마중나와 있을 거다. 말이 안 통하겠지만 걱정마. 영어든 중국어든 배우면 돼.
단 한국말만 잊지 마.
재명 : 갔다 언제 와요?
만희 : 올 거 없다. 내가 갈 거니까.
재명 : 언제요?
만희는 대답없이 재명을 보다가 일어선다. 재명의 등을 밀어보낸다.
몇걸음 가다가 재명이 돌아본다. 우뚝 서서 보고 있는 만희.
재명. 주춤주춤 더 걷는다. 게이트로 들어서려다 돌아본다.
아버지는 이미 등을 돌려 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가려져 보이다말다 한다.
뒷사람에게 밀려 들어가며 재명은 열심히 아버지를 눈으로 쫓는다. 이제 안 보인다.
S#66. 거실 현재
시계를 들어 보는 재명. 흔들어보다가 틱 던지고 돌아 엎드린다.
엎드린 재명의 시선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구두상자가 보인다. 열어본다. 그 안에는 편지들이 가득 들어있는데
맨 위에는 액자에 담긴 사진이 있다. 재명과 아버지가 함께 찍은.. 재명이 늘 지갑에 넣어다니던 바로 그 사진이다.
재명. 저도 모르게 일어나 앉는다.
편지봉투 하나를 열어 본다. 털어내자 사진이 또 한 장 나온다. 엘에이의 중국식당 앞에서 찍은 어린 재명이다.
사진 속의 재명은 카메라를 향해 심술난 듯 찡그리고 있다.
S#67. 회상 식당 앞
중국인 창씨가 어린 재명을 카메라 렌즈로 보면서.
창 : (중국말) 웃어. 치이즈. 치이이즈.
어린 재명은 창을 보며 굳었던 얼굴이 오히려 찡그려진다. 사진 속의 그 얼굴이다.
그 위에.
형사소리 : 아무래도 미국 드라마를 많이 보신 거 같은데요.
S#68. 경찰 내부
사복 형사가 모니터 속의 자료를 보며 앞에 앉은 재명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형사 : 거 머냐. 씨에스아이? 그런 드라마를 보면 현장만 박박 훑으면 살인사건이 해결된다.. 그건 드라마고요.
이런 사고 경우에는 그런 과학수사팀이 출동하고 그런 거 없고요. 뭐.. 절벽에서 떨어진 사고차량이 워낙 전소를 해버려서
사체 부검같은 것도 별 의미가 없었고.. 보자.. 여기 이런 거 있네요. 스퀴드마크.. 그 사고 직전에 바퀴자국 같은거요.
그딴거로 봐서.. 또 타고 남은 차를 조사해보니까 이게 브레이크 고장이 아니었는가... 이래 추정이 된거네요.
그 앞에 묵묵히 앉아있는 재명.
형사가 안됐다는 듯이 재명에게 마시려던 녹차캔을 밀어주며.
형사 : 아드님이시라고요.
재명 : ...
형사 : 뭐. 이해합니다. 이런 불의의 사고 같은 경우 유족분들께서는 참 납득하기가 어렵지요.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S#69. 중국식당 내부
와아.. 중국 갱단이 밀려들어간다.
내부에서 식사중이던 다른 갱단의 두목급들이 불시의 습격을 받고 탁자를 발로 차서 방어물을 만들거나 도망치거나..
다른 손님들 중에는 백인도 있는데. 모두 아우성을 지르며 피하고 탁자 아래로 엎드리고 난리다.
창씨가 재빨리 한쪽으로 몸을 피하며 늘 있었던 일인 듯 노련하게 골동품 장식을 들어 피신시킨다.
그 앞으로 누군가 칼을 들고 달려지나간다.
당하던 패거리 중에 누가 총을 꺼내 든다.
S#70. 식당 내 살림집 거실
밖에서 들리는 총소리.
고등학생쯤 된 재명이 작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한국 드라마다. (2천년 정도에 방영되었던 한국 드라마로)
밖에서는 총소리에 비명소리 난리가 났는데.
재명은 전혀 겁도 내지 않고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를 따라하고 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창씨.
중국말로 시끄럽게 떠들며 들고온 골동품을 한쪽에 놓더니 소파 뒤로 몸을 숨긴다.
창 : (중국말) 재밍. 재밍. 빨리 숨어.
재명. 아쉬운 듯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창을 따라 소파의 뒤로 넘어 들어간다.
간발의 차이로 밖에서 누군가 쏘는 총탄이 문짝을 뚫는다.
경찰이 오는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가까워진다.
S#71. 경찰서 마당
경찰차가 지나가고.
녹차캔을 마시며 재명이 한쪽 계단에 걸터 앉아 있다.
재명은 여러장의 사진을 보는 중이다.
사진 속에서 고등학생인 재명이 쿵푸를 배우는 모습. 다음 사진에서 재명의 대학 졸업식 당시의 모습.
창이 계속 도만희에게 보내준 사진들이다.
사진의 뒤를 본다.
거기 도만희의 별로 잘 쓰지 못한 글씨로 꼼꼼하게 적어놓은 글들.
-- 내 아들 열두살
-- 내 아들 열일곱살.
-- 내 아들 대학졸업식.
재명 녹차를 마저 마시고. 후우 긴 숨을 내쉰다. 품에서 뭔가를 꺼낸다. 비행기표다. 미련없이 죽죽 찢는다.
클래식 음악 한 곡조가 마악 클라이막스를 향해 올라간다.
S#72. 뮤즈 내부
최고조로 올라가서 열기를 내뿜던 음악.
경태가 얼른 턴테이블의 바늘을 내린다. 실내가 조용해진다.
경태가 머뭇거리며 돌아보는 곳.
문호가 헤에 해서 보고 있다.
문호 : 뭘 한다고?
그 앞의 재명. 우뚝 선 채.
재명 : 리벤지.
경태 : 리벤지. 알이브이이엔쥐이. 복수.
문호 : 누구한테.
재명 : 찍어줘.
문호 : 찍어?
재명 : 아무나. 그래서 그 놈을 차에 태워 절벽에 굴리게 해줘. 그러면.. 잊을 수 있을 거 같아. 내 아버지.
문호 :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는다. 나름 심각하게 생각해보더니) 한 놈이 아니라면. 그 상대가 아주 거대하고 엄청난 거라면.
재명 : 크고 강한 놈일수록 좋지.
신소리 : 이를테면 채동건설 같은 거 말입니까?
돌아보면 신이 들어서고 있다.
신 : 저 친구 아버지. 채동건설에서 일하다가 사장님 말대루라면 거기서 죽인 거래매요.
문호 : 그렇지. 내가 그리 말했지. 왜? 그게 사실이니까.
문호가 있는 카운터 앞까지 온 신. 들고온 가방을 거꾸로 들더니 그 앞에 쏟아붓는다. 쌓이고 넘치는 돈.
이게 뭐야 해서 보는 문호와 경태 앞에서.
신 : 그 복수전. 나도 낍시다.
문호 : 이건 뭔 돈인데.
신 : 판돈. 종자돈. 아무 걸루나 불러요. (재명을 본다) 이거 일억으루 사천오백억짜리 채동을 벼랑으로 밀어볼 생각인데. 어때.
신을 살피듯 보는 재명.
신이 한손을 들어보인다.
경태.. 자기가 그 손에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지만 용기를 못내서 우물거리다가 제 손으로 부여잡는다.
문호가 재명을 돌아본다.
재명 이윽고 비식 웃더니 기다리는 신의 손에 하이파이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