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마지막 탐방
경주와 가까운 포항에 살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수도권에 살았다면 경주 남산은커녕 경주 곳곳에 산재한 문화재를 제대로 보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포항에서 경주까지 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주 곳곳을 쉽게 돌아볼 수 있었다. 남들은 한 번도 오르기 힘든 경주 남산을 다섯 번 넘게 오르락내리락했던 것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노천박물관이 바로 경주 남산이며, 어디에서 오르든지 신라시대 만들어진 환상적인 걸작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산 마지막 탐방은 서남산의 틈수골에서 시작해 고위봉에 오른 뒤, 칠불암을 거쳐 염불사지로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앞선 두 번의 남산 탐방에서 남산의 북쪽에 해당하는 금오봉을 봤다면, 이번엔 저 멀리 남쪽에 있는 고위봉에 오른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고위봉에 오르는 것이 금오봉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기 마련이다. 경주시내에서 거리가 더 멀뿐더러 고위봉에 갈 수 있는 용장골이나 틈수골에 가는 버스도 상대적으로 적다. 애초에 동남산으로 가는 버스는 서남산보다 적어 많은 사람들이 서남산을 통해 고위봉으로 오른다. 서남산의 틈수골에서 등산을 시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였다.
국립공원 이야기 39 - 5cm의 기적, 열암곡 마애불상
경주 동남산 남쪽에 있는 열암곡에는 열암곡 석불좌상이라는 불상이 있었다. 노곡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석불좌상은 머리가 없는 채로 발견되었지만 일부분을 찾아낸 뒤 복원하기 시작했다. 석불을 복원하던 도중 엎어져있는 바위를 발견하게 되었고, 정말 우연히도 아래를 본 사람에 의해 이 바위가 단순한 돌이 아닌 신라시대 만들어진 마애불상임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은 '5cm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주에서 일어난 큰 지진에 의해 엎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은 높이가 6m이며 무게도 70톤에 달한다. 불상의 오뚝한 코가 바닥 암반과 고작 5c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엎어진 덕분에 풍화와 침식 같은 자연의 섭리도 거스를 수 있어 불상의 얼굴을 비롯한 모든 부분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열암곡 마애불이 세워져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칠불암 마애불에 버금가는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열암곡에는 중장비가 들어가기 어려워 70톤이나 되는 바위를 들어 올리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발견된 지 10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애불은 바위 아래에 숨어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테지만 연구 목적을 위해서 불상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열암곡 마애불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경주 남산에서도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열암곡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될 것이다.
남산 최고의 걸작을 찾아서
남산에서 상대적으로 가기 쉬운 계곡을 모두 탐방하고 나니 고위봉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들만 남게 되었다. 신라 시대에도 왕궁이 있는 중심지와 상대적으로 멀었던 고위봉은 북쪽의 금오봉과 비교하면 문화재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고위봉의 문화재를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 많다. 천룡사지와 염불사지의 석탑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산 중턱에 있는 칠불암에는 국보로 지정된 남산 최고의 걸작 칠불암 마애불이 있다. 게다가 2007년에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상은 기적처럼 살아남아 신라시대 예술의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지 전해주고 있다.
천룡사지는 무너진 석탑 하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절터였다. 무너진 석탑을 1990년에 복원하였으며, 1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이다. 몸돌 아래 있는 괴임의 크기가 층이 높아지면서 작아지고 있는 점과, 지붕돌의 낙수면이 경쾌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점을 볼 때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한다.
천룡사지에서 북쪽으로 꺾어 열반재에 가면 고위봉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높이가 495m인 고위봉은 형제 격인 금오봉에 비해 약간 높지만 보이는 경치는 금오봉보다 못하다. 경주시내는 금오봉에 가로막혀 볼 수 없으며, 논밭으로 가득한 평야만 눈에 띄기 때문이다. 전망은 별로인 대신 고위봉에 다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어 자연에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고위봉에서 동남산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칠불암이라는 암자가 나온다. 암자는 세워진지 얼마 안 된 건물이지만 칠불암이 유명한 이유는 신라 시대 만들어진 오래된 불상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높이 4m가량 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위에 사방불을 모시고 뒤쪽의 병풍바위에 삼존불을 새긴 형태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했다. 화려한 연꽃 위에 앉아있는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을 실감 나게 표현하였다. 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리고 왼손은 배에 올린 형태다.
좌・우 협시보살은 크기가 같고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는 옷을 입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 괜히 국보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다른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도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원래 불상이 들어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을 걸로 추정이 되며,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들이 이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칠불암 (七佛庵)이라는 암자 이름도 일곱 부처를 모신 암자라는 뜻이다.
칠불암에서 곧장 하산하면 염불사지가 나온다. 염불사지에는 동서삼층석탑이 있지만 거의 파손된 것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는 떨어진다. 그럼에도 염불사지가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복원된 두 삼층석탑이 있어 신라의 옛 절터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염불사지에서 북쪽을 향해 걸어가면 서출지와 통일전이 나온다. 서출지에 내려오는 전설은 다음과 같다. 신라 소지왕 10년 (488)에 쥐가 와서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라고 해서 왕이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가 보게 하였다. 신하는 까마귀를 쫓는 도중 연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신경이 팔렸다. 그 사이 까마귀의 행방은 사라져 신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줬다고 한다. 왕은 봉투에 쓰인 대로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 집을 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궁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임을 당했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서출지 (書出池)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가을에 은행나무길로 유명한 통일전을 지나 길을 따라 쭉 걸으면 망덕사지가 나온다. 망덕사지는 경주 낭산(狼山)의 기슭에 자리한 절터로 사천왕사와 마주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19년 (679)에 중국 당나라가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이를 물리치기 위해 사천왕사를 짓자, 당나라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이를 부인하기 위해 사천왕사 건너편에 '당나라의 덕을 우러른다'는 의미로 망덕사 (望德寺)를 지어 보여주었다.
현재 절터에는 동・서 목탑터와 그 북쪽으로 강당터, 금당터, 남쪽으로 중문터, 그리고 이를 둘러싼 회랑터가 남아있어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쌍탑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망덕사는 황룡사・사천왕사・황복사와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로서 그 의미가 크다.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문화재는 망덕사지 당간지주로 표면에 아무런 장식을 두지 않는 대신, 지주 바깥면의 모서리를 줄어들게 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내었다. 기둥머리는 안쪽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곡선을 그리고 외부로 6cm쯤 깎여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아직 발걸음이 닿지 못한 열암곡
망덕사지를 끝으로 경주 남산 탐방도 마무리되었다. 다섯 번 정도 남산을 오르면서 수많은 불상과 탑, 절터를 보았지만 제각각 가지고 있는 매력이 다르고 남산의 새로운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어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직도 남산에서 내가 가지 못한 유일한 계곡은 열암곡이다. '5cm의 기적'이라 불리는 열암곡 마애불상이 세워지기 전에 그 기적을 눈으로 보고 싶은데 아직 그 기회가 오지 않았다. 세워지고 나서 부처님의 얼굴을 직접 맞대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어찌 됐든 다음에 경주를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열암곡을 통해 남산에 올라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