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의 격> 사카모토 와카 / 이미정 / 한빛비즈 (2024)
[My Review MDCCLXII / 한빛비즈 145번째 리뷰] 광고의 꽃이라고 불리는 '카피라이터'에 대한 책이다. 딱히 '광고문안(카피)'을 잘쓰는 비결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과 카피가 '어떻게' 작성되는지, 그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안내서라는 소개가 더 적절하다. 그렇다면 좋은 카피는 '어떤' 것일까? 그건 바로 '진심'이 묻어 있어 쉽게 '공감'이 가고 긴 '여운'을 남겨 모두의 '기억'에 오래 남는, 또는 '한번' 보면 딱하고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예로 저자가 직접 작성한 카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가자, 동북으로]라는 JR 히가시니혼 신칸센철도를 홍보하는 문안이었다. 일본은 사상 유래가 없는 '지진해일 피해'로 동북지방이 큰 화재를 겪었는데, 일본정부는 이곳 동북지역의 신칸센 철도를 빠르게 복구하여 피해지역의 경제를 회생시키려 노력하였다. 허나 동북지역은 화마가 다 쓸고 지나간 탓에 '지역경제'가 더디게 회생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광고문안으로 '피해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동북지역의 경제회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카피라이터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단 6글자만으로 재난을 극복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이 책을 '카피라이터 지망생'만 읽으라고 하기엔 아쉽다. 분명 책의 내용은 '카피라이터'가 갖춰야 할 사고법과 표현법, 그리고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세 등등 유용한 팁이 가득 담겨 있지만, 학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범학문적인 연구가 펼쳐지는, 이른바 '통섭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인데, 어찌 이 책을 '카피라이터가 되는 법'으로만 읽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까닭에 '전문직업인'이 갖춰야 할 사고법과 표현법, 그리고 자세 따위는 서로 통하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두루두루 지식을 섭렵해두는 것은 공부하는 학생이나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인을 비롯해서 서로 연관이 없을 듯한 '직업인'일지라도 유용한 일이 틀림없다. 나는 아이들에게 '독서토론논술'을 가르치는 선생이면서 동시에 '아마추어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다. 리뷰를 써서 짭짤한 수익을 내지 못하니 분명 '프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리뷰어로 활동하면서 '카피라이터'에 관한 지식을 읽어가다보니 일맥상통한 점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리뷰어로 활동을 하다보면 이른바 '공짜책'을 받아 리뷰를 쓰는 경우가 참 많다. 그 '공짜책'을 받기 위해서 출판사 이벤트에 선정이 되어야 하는데, 보통 '인상적인 짤막한 댓글'로 신청을 받고, 그 '댓글의 참신함'만으로 이벤트 선정을 하는 곳이 상당히 많았었다. 물론 지금에는 그런 이벤트가 드물어졌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블로그의 '조회수(인기도)'를 살펴보고 홍보가 더 잘 될만한 유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변했지만 말이다. 암튼 내 경우에는 '댓글신청'으로 선정된 적이 참 많았다. 그리고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는 편인데, '책 살 돈'이 넉넉치 못했던 시절에는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여 욕구해소를 했었는데, '최신간'을 보고 싶을 땐 어쩔 수 없이 부담이 되어도 사서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침맞게 내 빈약한 지갑을 걱정하듯 '리뷰 이벤트' 붐이 일어나는 바람에 발빠르게 이곳저곳 신청을 하곤 했었다. 다행히 [평범한 리뷰가 아닌 독특한 리뷰를 원한다면 나를 뽑아달라. 안 뽑아주면 두 번 다시 신청하지 않겠다]는 반협박(?)적인 신청댓글이 인상적이었던지 덥석 뽑아주더니 오래지 않아 이곳저곳에서 선정이 되면서 '연간 200여 권 이상'을 공짜책을 받아 리뷰를 하는 리뷰어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청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밋밋한 신청댓글'로는 선정되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타계하기 위해서 나는 '평범하지 않은 신청글'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신청글'을 짤막한 '이야기'로 바꾸어 썼고, 그 이야기속에 '신청책'에 대한 남다른 사전지식을 뽐내거나 겉표지나 책제목만 보고도 책내용을 미루어 짐작하는 등 좀더 치밀한 전략으로 신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속에는 '꼭 보고 싶다'는 나만의 열의를 뿜뿜했고 말이다. 그 가운데 '성냥팔이 소녀'를 차용해서 써낸 신청글도 있었는데, 그 신청글을 써서 '책선정'에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용을 살짝 소개하자면 이렇다.
"책 좀 주세요. 책 좀 주세요. 책이 정말 보고 싶어요. 아이, 추워"
"소녀야, 넌 이 추운 한겨울에 왜 맨발로 있느냐?"
"책이 정말 보고 싶은데...책 살 돈이 없어서 그래요. 아이, 시려"
"너에겐 책보다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신발과 장갑을 주는게 더 나을 것 같구나"
"아니에요. 저는 그래도 책이 더 좋아요. 책 좀 주세요"
"정말 책을 좋아하는 아이구나. 그래 무슨 책이 보고 싶으냐?"
"네, 제가 보고 싶은 책은 <만화로 보는 웹툰 스토리 작법>이에요"
"오, 한빛비즈에서 얼마전에 출간한 새책이구나. 그래, 그 책이 왜 보고 싶으냐?"
"네, 그 책은 [재미란 무엇인지]부터 유용한 지식을 [더 쉽고 더 유쾌하게] 일러주는 웹툰형식의 책이기 때문이에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유용한 지식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그 책만이 아닐텐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한빛비즈>에서 출간한 교양툰이 얼마나 재밌고 유익한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세욧!"
"알았다, 알았어. 그렇담 내 그 책을 선물로 주마"
"정말 고맙습니다. 꼭 알찬 리뷰로 보답할게요"
이 책 <카피의 격>에도 '성냥팔이 소녀'에 대한 예시가 적혀 있기에 오랜만에 다시 적어 보았다. '기본 포멧'은 이런 형식이었지만 꽤나 다양한 변주로 써먹었기에 '이벤트 선정'과는 무관하게, 늘 신선하게(?) 써내려가는 내 신청댓글에 관심이 폭발하기까지 했었다. 이밖에도 (") 요로케 생긴 '도둑고양이'를 등장시켜서 이벤트 책을 훔쳐오는 스토리를 전개시켜 이벤트 담당자를 혼란케 했었고, 적당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무작정'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었다. 어쨌든 '책을 보고 싶다'는 내 진심을 담았기에 이벤트 담당자도 '초보'였지만 성실한 리뷰어였던 나에게 기회를 많이 줬던 것 같다.
어쨌든 훌륭한 카피는 '진심'을 바탕으로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럴 듯한 문구'를 쓰거나 '과장이 담긴 문구'로 쓴다면 결코 '탁월한 한마디'가 될 수 없다. 길게 쓸 필요도 없다. 군더더기 없이 '진짜 전하고 싶은 것'만 남겨 짧게 전달해야 더욱 강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훌륭한 카피에 걸맞는 '뛰어난 제품'이어야 소비자의 신뢰를 잃지 않을 것이다. '뛰어난 제품'이 틀림없다면 그에 걸맞는 '훌륭한 카피'로 제품의 가치를 더해주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카피를 작성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다. 10글자도 안 되는 짧은 문구를 쓰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직접 작성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창작의 고통'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탁월한 한마디'를 만들기 위한 '사고법'과 '표현법'에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저자는 '떠오르는 것'을 바로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 머릿속에도 남겨두지 못하는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을 리 없기 때문이란다. 이는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이지만 이유를 '듣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광고의 힘'이 짧지만 오래 기억되는 것이란 점을 단박에 이해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카피라이터들이 저자의 방식대로 하지는 않는단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잊어버리지 않게 바로바로 적어 두었다가 마땅한 문안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들춰보는 방식을 쓰는 카피라이터들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방식대로 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저자의 방식으로 리뷰를 작성하고 있기에 정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일방적인 주장'만을 담은 카피를 작성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건을 파는 쪽에서는 '자신의 제품'이 자식처러 느껴져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다고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물건을 사는 쪽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제품을 놓고 늘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카피를 할 때에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공감'을 끌어내야 한단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의 '공통점'을 살펴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대목으로 카피를 작성해야 더 효율적이란 말이다. 그리고 공감은 더 나아가서 '공명'을 일으키게 된단다. '공명'이란 "여기, 여기 붙어라"라는 것처럼 팬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공명'은 되도록 긍정적 표현으로 나타내면 더 효과적이란다. 이를 테면, 애써 부정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를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게 되면 '공명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의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한다. 그런데 이때 상사는 직원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려 하고, 부하직원은 '더 적은 일'을 하려 들 것이다. 이럴 때 상사가 좋아하는 부하직원은 "그러면 제 업무가 늘어나겠네요"라는 부정적인 표현이 아닌 "그럼 제 업무의 폭이 더 넓어지겠네요"라고 긍정적인 표현을 쓰는 쪽일 것이다. 비록 같은 맥락의 대답이지만,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일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 표현'을 쓰면 상사는 부하직원이 믿음직스러울 것이고 인사고과에도 높은 점수를 줄 것이다. 부하직원도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투덜대기보단 '긍정적 표현'을 씀으로써 유능한 직원이란 평가를 받을 테니, 마냥 손해보는 일은 아니게 될 것이란다. 물론 현실적인 상황에서 늘 이렇게 '낭만적인 귀결'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산포(三方)요시'라는 말이 있단다. 일본어로 '요시'는 '좋다'는 뜻이니,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세 방면으로 좋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때 "파는 사람에게 좋고, 사는 사람에게 좋고, 세상에 좋아야 한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을 모토로 삼은 상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뜻으로 '홍익인간'이란 표현이 있으니 비슷한 뜻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고조선부터 '국가정책'으로 쓰던 표현이고, 일본은 '상도덕' 관점에서 쓰던 표현이니 쓰임새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오늘날 기업문화의 윤리적 차원에서 꼭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피라이터도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것에만 치중해서 카피를 만들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더 이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제품을 쓴다는 자부심까지 헤아려서 카피를 만들게 되면 더 좋을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멋진 기업으로 널리 알려진 '파타고니아'의 제품을 쓰는 사람들이 바로 그렇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그럼에도 제품 자체가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으니 아예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한 덕분에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끈 브랜드가 되지 않았느냔 말이다(<파타고니아 이야기> 한빛비즈 참조)
이밖에도 이 책에는 '카피라이터'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지혜가 담겨 있다. 카피라이터가 꿈인 지망생이라면 '직접적인 지식'을, 그밖의 사람들이라면 '간접적인 지혜'를 얻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언제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그런 진심을 담아 자신의 '카피'를 소개하였고, 그 카피를 만들게 된 '과정'을 낱낱이 밝혀내어 독자들에게 '유용한 팁'을 전수해주었다. 꼭 글을 쓰는 일이 아니더라도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알아두면 좋을 '마음가짐(자세)'도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https://blog.aladin.co.kr/728876216/15516696
https://sarak.yes24.com/blog/zizi0908/review-view/19781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