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이만의 선택 -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
체코와 그 수도인 프라하는 이미 모차르트 시절부터 독일-오스트리아의 음악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아 탄탄한 기반이 구축되어져 있었지만, 이곳 출신의 작곡가로서 역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작곡가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의 음악이 유럽 곳곳에서 번져가기 시작하면서 체코 역시 베드르지히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와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řàk)이라는 두 사람의 뛰어난 작곡가를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안토닌 드보르작(1841. 9. 8 ~ 1904. 5. 1)은 시골의 푸줏간 아들로 태어났지만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 교육을 받고서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그는 브람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선배인 스메타나가 리스트의 영향으로 교향시 같은 표제적이고 묘사적인 음악에 치중한 반면, 자신은 좀 더 체계적이고 진부하달 정도의 전통적인 음악적 조형성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9곡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3곡의 협주곡들이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작곡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메타나처럼 그 자신이 어릴 적부터 사랑해 온 체코와 보헤미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에 기반을 둔 애국심이 그의 음악 전반을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민족주의적 체코의 음악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남긴 협주곡은 전술한 것처럼 3곡인데, 각각 피아노와 바이얼린, 그리고 첼로를 위한 것들입니다. 앞의 두 곡도 그의 ‘전통적 조형성 - 소재의 민족성’이란 구성으로 이루어진, 나름대로 괜찮은 곡이지만 아무래도 그를 대표하는 협주곡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첼로 협주곡일 것입니다. 아니, 이를 넘어서서 그의 첼로 협주곡은 고전음악사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첼로 협주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50분이나 걸리는 대곡이며, 기교적으로나 표현으로나 독주자들을 거의 지쳐 빠지도록 만드는 이 협주곡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최절정기에 나온 음악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곡이 체코가 아닌 미국에서 씌여졌다는 것입니다.
그가 51세가 되었을 때 신생국가로서 아직은 음악적으로 걸음마 수준이었던 미국에서는 대신에 많은 우수한 음악가들을 초빙하여 자신들의 내적인 성숙에 기여하도록 하였는데, 드보르작 역시 이러한 연유로 해서 뉴욕에 있던 국민 음악원의 초청으로 3년간 이곳의 원장이 되어 신대륙의 음악 발전에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조국의 산천을 사랑했던 드보르작은 어느날 아이오와 주에 있는 스필빌이란곳을 가게 되었었는데, 여기서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단순히 보헤미아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사는 동네가 아니라, 그 자연의 풍광이 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체코의 고향 마을과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죠...그래서 그는 3년이란 짧고도 긴 세월동안 종종 이곳을 찾아와 향수를 달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의 마음과 더불어 그가 미국에서 처음 접하게 된 음악적 요소들인 인디언의 선율과 리듬, 또한 흑인들의 멜로디 등은 절정에 이른 그의 창작력에 큰 보탬이 되었고, 이러한 요소들에 의하여 그를 대표하는 말년의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Z noveho sveta)’ 와 현악 4중주곡인 ‘아메리카(America)’, 그리고 바로 첼로 협주곡 나 단조 작품 104번이었습니다.
고향과 고국 산천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담긴 보헤미아적 소재와 신세계에서 만난 새로운 자유로운 선율과 리듬감이 브람스나 차이꼽스끼 같은 작곡가들의 전통적인 조성감 위에서 만나 펼쳐지는 광대한 협주곡의 세계가 바로 이 곡의 특징이자 궁극적인 설명일 것입니다...이러한 큰 스케일을 큰 화폭에 담기 위해서 결국은 첼로는 지극히 남성적인 활력과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하기에 이 곡은 절정에 이른 창작력과 함께 흔히들 ‘세계적인 첼로 협주곡’의 반열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빅터 허버트(Victor Hubert)란 당시 제법 유명했던 연주자의 연주를 듣고서 이 협주곡에 대한 착상을 시작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와 친했던 동향의 첼리스트 비한(H. Wihan)과 함께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보헤미아 지역을 돌며 함께 연주여행을 한 적이 있었으며, 이때의 추억이나 거쳐갔던 곳곳의 풍광에 대한 기억도 큰 몫을 했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미국 생활동안 거의 대부분을 완성시켰으며, 체코로 돌아와서는 프라하에서 수정과 탈고를 거쳐 첼리스트였던 H. 비한(H. Wihan)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그의 조언을 따라 마지막 부분 등을 수정하여 마침내 악보가 출판되었고, 1896년 3월 런던 필하모니아 연주회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이 이루어졌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많은 역할을 했던 비한이 사정이 생겨서 자신이 초연연주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영국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레오 스턴(Leo Stern)이 독주를 맡았습니다.
짙은 남성적인 우수, 그리고 저음역을 기준으로 해서 쌓아올려져 아주 튼실하고 두꺼운 관현악의 울림과 대립적이지 않고 어우러지면서도 또한 동시에 자신만의 소리를 내어주는 독주 첼로의 소리는 죽음을 5개월 앞둔 브람스로 하여금 이렇게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첼로 협주곡을 그가 쓰다니...! 만일 내가 이 곡을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나도 첼로 협주곡을 하나 써보는건데...”
그리고 드보르작 자신도 이 곡의 전체적인 구도와 표현감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듯, 이 곡을 지휘할 때마다 늘 스스로 감동하곤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어쨌거나 이 곡은 첼로의 대가들을 비롯하여 젊은 신예에 이르기까지 많은 첼로 연주자들이 궁극적으로 꼽는 협주곡이 되었으며, 따라서 역사적인 연주 음반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한때 첼로의 최고봉이었던 파블로 카잘스(Pable Casals)를 비롯, 므스찌슬라프 로스뜨로뽀비치(Мстислав Ростропович)는 공식, 비공식 녹음을 무려 8차례나 내고 있고, 피에르 푸르니에(Pierre Fournier)나 모리스 장드롱(Maurice Gendron) 같은 온건한(?!) 연주자들도 녹음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소개하려고 하는 음반 3장은 모두 반주를 본고장의 바츨라프 노이만(Václav Neuman) 지휘 체코 필하모니(Česká Filharmonie)가 맡은 것들입니다. 바츨라프 노이만(1920. 9. 29 ~ 1995. 9. 2)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체코의 지휘자로서 비올라로 시작하여 체코 지휘계의 거장이자 동시에 비엔나 음악원의 객원교수로서 이론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는 프라하 출신으로 프라하 음악원에서 바츨라프 탈리히(Václav Talich)를 사사하였으며, 스메타나 현악 4중주단의 초기 멤버로 활약하다가 1948년 공산화에 따라 체코 필하모니의 상임었던 라파엘 쿠벨릭(Rafael Kubelik)이 서방으로 떠나자 이 자리를 처음 이어받아 1950년까지 지휘를 맡았습니다.
이후 칼스루에나 브르노 등지에서 지휘를 하던 그는 1956년 베를린의 코미세 오퍼 극장의 지휘를 맡게 되었으며, 1961년부터 드레스덴 국립가극장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까지 맡아서 큰 활약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에는 프라하 실내 관현악단을 창단하였으며, 63년부터는 카렐 안체를(Karel Ancerl:1908 ~ 1973)과 더불어 체코 필하모니를 공동으로 맡다가 그가 죽던 1995년까지도 이 단체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프라하 아카데미와 비엔나 아카데미에서 지휘과 수업을 맡아 후진양성에도 힘써왔었지요.
그는 명실공히 체코의 대표 음반회사인 수프라폰(Supraphon)의 간판으로서 많은 음반을 남겼었는데, 특히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그리고 마르티누같은 체코 출신의 작곡가들의 관현악곡을 알리는데 앞장서왔습니다.
맨먼저 소개하려고 하는 것은 안겔리카 마이(Angelica May)란 여류 첼리스트가 독주를 맡았던, 디지털 음반입니다. 안겔리카 마이는 서독 출신으로서 5세때부터 바이얼린과 피아노를 배웠었지만 나중에는 슈투트가르트의 고등음악학교에 진학하면서 첼로로 전향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운좋게도 파블로 카잘스의 눈에 띄였으며, 그의 개인적인 제자가 되어 지도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기량이 향상되었고, 마침내 카잘스 국제 콩쿨에서 우승을 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드보르작과 마르티누의 첼로 협주곡을 바츨라프 노이만이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니와 연주하면서 대단히 좋은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스승인 파블로 카잘스의 권유로 오데온 삼중주단에서 실내악 활동을 하기도 하고 뒤셀도르프와 비엔나의 음악학교에서 가르치는 등 바쁜 일정 중에서도 그녀는 체코의 ‘프라하의 봄’ 축전에 늘 참가하면서 체코의 음악을 알리고 연주하는데 앞장섰고, 이로 인하여 체코 정부로부터 스메타나 훈장과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런 특이한 이력을 가진 그녀는 1983년 4월 8일부터 10일 사이에 프라하 소재 예술인의 집에 있는 수프라폰 스튜디오에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하게 됩니다. 반주는 당연히 바츨라프 노이만이 이끄는 체코 필하모니였지요...
그녀의 첼로 운궁은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의 특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단하고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보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유려하고 조금씩 단절되는 느낌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흐름이 좋은 연주를 들려줍니다. 1악장은 어떤 남성 첼리스트와 견주어도 떨어지지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2악장에서 조금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는 바람에 전반부에 비하여 후반부가 좀 늘어져보이는 격이 되어버렸습니다. 3악장은 1악장만큼 열정적이지 못하고 조금씩 멈칫거리며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조금 안타깝습니다...마치 실제 연주회에서 1,2악장에서의 역주를 거치고나니 3악장에서 힘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이 곡은 왠만한 여류 첼리스트가 완벽하게 연주해내기란 힘든 점이 많습니다만, 워낙 이 곡을 녹음한 여류 첼리스트가 드물고 전체적인 흐름과 감정상의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연주인 듯합니다.
이보다 앞선 1975년 11월과 이듬해인 1976년의 1월에 걸쳐 바츨라프 노이만이 이끄는 체코 필과 함게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한 것은 요세프 후흐로(Josef Chuchro)였습니다.
요세프 후흐로(1931. 6. 3 ~ )는 첼리스트로서, 독주보다는 특히 실내악에서 성가가 대단히 높은 연주자입니다...그는 프라하 음악원에서 배웠는데, 카렐 프라보슬라프에게서, 다음으로는 밀로슈 사들로에게서 각각 수학하였습니다. 1950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제때 처음 데뷔하여 명예상을 받았으며, 이후 1951년 베를린 국제 콩쿨과 1953년의 부쿠레시티 국제 콩쿨, 그리고 1955년의 ‘프라하의 봄’ 콩쿨에서 1등상을 받으며 그의 성가를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그는 바이얼리니스트 요세프 수크(Josef Suk)와 피아니스트 요세프 할라(Josef Hala)와 함께 수크 트리오를 결성, 본격적인 실내악 연주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피아니스트가 얀 파넹카(Jan Panenka)로 바뀌고 나서 그들의 트리오 연주 솜씨는 세계적인 것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였으며, 스메타나와 드보르작 등 자국 음악가의 작품들과 함께 슈베르트, 모차르트 등의 작품들을 연주, 녹음하여 많은 인기를 모았고, 자신은 파넹카와 더불어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녹음하기도 하였습니다.
1970년대부터는 프라하 음악원에서 자신만의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후학을 기르는데 전념하게 된 그는 연주 스타일이 실내악과 잘 들어맞는, 뛰어난 융화성과 더불어 부드럽고 밝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쪽입니다.
그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은 일견 그와 잘 맞지 않을 것으로 보여지지만, 의외로 그의 음반은 새로운 드보르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악장부터 조금 템포를 넉넉하게 잡으며 강하고 직설적이기보다는 유연하고 유장하게, 내적인 열정을 보이면서 외견상의 화려함보다는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긴 호흡의 너울이 치는 바다를 대하는 느낌의 연주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도는 연주라기 보다는 넉넉하고 여유로우면서도 탄탄한, 편안한 느낌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섭니다.
2악장에 들어가면 그 뚜렷함이 가장 잘 나타나는데, 끊어질 듯 하면서도 유연하게 이어지는 아름답고 애수에 찬 감정의 이입은 후반부에 이르러 첼로 독주부가 아르페지오를 펼치는 부분에서 느려짐에도 불구하고 전혀 단조롭다거나 나태한 느낌이 없이 분명한 그리움의 감정으로 다가섭니다. 3악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소간의 활력과 외면적으로도 풍겨지는 에너지가 방출되긴 하지만 1,2악장에서의 감정과 같이 과격함이나 거칠음과는 거리가 멀게 격조가 느껴지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그의 첼로 소리는 마치 수크 트리오에서처럼 관현악단과 함께 2중주를 연주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나 므스찌슬라프 로스뜨로뽀비치 류의 강한 연주를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실내악을 선호하시는 분들이라면 피엘 푸르니에의 연주와 함께 꼭 한 번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은 그런 연주입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노이만/체코 필하모니와의 협연은 밀로시 사들로(Milos Sádlo)와의 것입니다. 후흐로와의 녹음 이후 1년여만인 1976년 10월에 역시 프라하 예술가의 집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불과 한 달전 밀로시 사들로가 야르밀 부르그하우저(Jarmil Burghauser)에게 관현악을 의뢰하여 새롭게 출간되었던 첼로 협주곡 1번을 첫 녹음한 후 2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녹음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 분들은 의외라고 생각하실 거라서 잠시 설명드리자면...
드보르작이 임시 국립 가극장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인 1865년에 당시 첼로 파트에서 연주를 하던 친구 루데빗 페르(Ludevit Peer)를 위하여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였었는데, 이 악보는 피아노 반주로만 되어 있었으나 페르에게 헌정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악보는 분실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대영 박물관에서 발견이 되었으며, 1929년에 브라이트코프 운트 해르텔(Breitkopf & Härtel) 악보사에서 출간이 이루어졌었습니다.이 악보를 본 밀로시 사들로는 독주부는 그대로 두고서 일부 관현악부분에 손을 댄 다음, 야르밀 부르그하우저에게 의뢰하여 드보르작의 스타일 그대로 관현악화 달라고 하였고, 이렇게 해서 나온 새로운 협주곡을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1번으로,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나 단조 작품 104번을 2번으로 해서 녹음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밀로시 사들로(1912. 4. 13 ~ 2003. 10. 14)는 첼로에 있어서 대를 이은, 체코를 대표하는 첼리스트이자 교수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아버지 파벨에게서 수학하여 프라하 음악원을 마친 그는 1931년 영국 국제 콩쿨에서 일약 우승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체코 3중주단을 결성하면서 실내악쪽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당시 프라드에 머물고 있던 파블로 카잘스를 찾아가서 서유럽의 밝은 운궁을 더 배우고 오면서부터 그의 음악적 세계는 더 성숙해지고 더 넓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체코 3중주단의 제 1 바이얼린이 사샤 베치트모프로 바뀌면서 일급의 실내악단으로 세계적인 초청을 받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교편을 잡고 있던 모교 프라하 음악원에서의 제자인 후흐로 대신 수크-파넹카와 함께 수크 트리오에서도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쇼스따꼬비치와 오네게르, 하차투랸, 마르티누 등의 첼로 협주곡들을 연주하기도 하였고, 다비드 오이스뜨라흐와 더불어 녹음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은 대단한 인기를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프라하 음악원의 권위있는 교수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위에 전술한 드보르작의 초기 첼로 협주곡을 복원연주한 것 뿐만 아니라 그는 1961년에 처음 발견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다 장조를 손을 봐서 1962년 5월에 열린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제에서 세계초연을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연주하는 드보르작은 우리가 생각하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답습니다...1악장에서 그는 조금은 직설적으로 슬라브적인 울림을 그대로 들고 들어섭니다. 단단하고 분명하면서도 무조건 거칠다거나 무뚝뚝한 그런 모습이 아니라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보헤미아의 슬라브적 정서를 한껏 우리들에게 안겨주는데, 대단히 익숙하고 분명한 영상을 우리들에게 전달해줍니다. 적절한 외면적인 힘과 ‘싸나이 가슴을 울리는’ 듯한 내적인 감정의 솟음도 함게 느낍니다.
2악장에 들어서면 그가 무조건 직설적이고 기교에만 능한 연주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낍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한 흐름은 한층 더 기품이나 격조라는 것이 느껴질 만큼 유연하고 우아하게 포장되어 우리들에게 다가섭니다. 내적인 감정의 아름다운 표출이 이루어집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절절함이 이러한 격조감에 밀려서 사무치는 아름다움의 격이 떨어진다고나 할까요...?
3악장은 역시 균형잡힌 감정의 분명한 표출입니다...조금 조심스럽게 풀어간다는, 교수님다운 고지식함이 묻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흐름과 크게 요동치는 굴곡을 잘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아예 대슬라브적인 로스뜨로뽀비치같은 연주에 비한다면 일렁거림이 크지는 않지만, 탄탄함으로 승부를 하고 있습니다. 2%가 모자라는 듯한 감정상의 큰 흐름이 못내 아쉽지만, 역시...체코를 대표하는 연주자로서의 풍모를 당당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더 좋다는 연주도 엄청나게 많지만, 체코 본고장의 뛰어난 반주와 독주를 중심으로 들어보는 맛도 나쁘진 않습니다. 노이만은 마이와의 연주에서는 조심스럽게 튀어나가지 않도록 잡아주고 독주 첼로와 잘 어우러지게끔 대단히 신경을 쓰는 모습입니다.(그럼에도 부분부분 조금씩 따로 노는 듯한 곳이 있긴 합니다만...) 후흐로와의 연주에서는 앞서에도 잠시 밝혔듯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듯 맞추어갑니다. 독주자-반주단체 서로가 호흡을 맞추어서 듀오를 하듯 어우러지게 하는 소리는 일품입니다. 특히 2악장에서의 역연은 정말이지 노이만의 반주 지휘자로서의 역량을 느끼게 해줍니다.(물론, 이것이 너무 밀착된 것이라 답답하게 와닿는 분도 있겠지요...)
사들로와의 협연에서는 시원시원하게 유장하게 풀어갑니다. 더 뭐라고 평을 달기가 머쓱할 정도로 가장 분명하고 정확하게 교과서처럼 반주부를 이끕니다. 1970년대와 80년대 체코 필하모니의 합주능력은 최상으로 보여집니다. 다소 거친 맛이 있긴 하지만 그로 인하여 체코 음악의 표현능력이 살아나는 듯도 하기 때문에 단점이라 말하기는 뭣하네요...독주자에 따라 기본적인 해석은 똑같지만 어우러짐에 있어서 차이를 분명하게 두며 녹음을 할 수 있는 것은 악단과 지휘자의 능력일 것입니다.
본고장의 연주가 다 최고는 아니라는 것이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에서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들의 소리를 들어본다면 그곳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울림과 선율과 리듬을 느낄 수 있기에 또 재미있습니다.
= 2007. 10. 30
첫댓글 노이만이 지휘하는 첼로 협주곡 듣는갑다 싶었더니만.....음악도 쫌 올리놓지.........ㅠㅠ
니가 찾아서 연결 쫌 해놔라! 유튜브나 다른 공식 루트에서만 찾아서...(하도 불법 불법 해놔서 웹하드 폐쇄했다......)
하루종일 컴푸타 앞에 앉아서 일하다 와서 이 내용 다 ~ 읽으려니 눈이 아파서 ..... 슈렉님 말씀 다 ~ 좋은 것 같슴니더. ㅋㅋㅋ 아뭏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은 저의 가을 레파토리 1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요 ~
긍께로...눈이 아파 다 익지 아니해도 그냥 슈렉이 조~~~타! 뭐...이런 말이죠? ㅎㅎ*^^v
언제 이걸 다 정리하셨대요? 대단해요~ 전 개인적으로 후후로 연주를 좋아합니다. 푸르니에도 괜찬구요^^
머릿속에야 정리가 다 되어 있지...저넘의 귀차니즘땜시 글쓰기가 싫어서 문제지만...후흐로 연주 듣고 많이 놀랬다. 정말 부드러움의 극치!!! 이렇게 해석할수도 있구나...^^
와.. 보석함을 열어서 보석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의 글. 감사합니다. 음악연주에 있어서 개인적 취향도 있겠지만, 연주자의 국적같은게 중요한가 봅니다. 자국 작곡가의 곡은 자국연주자가 하는게 연주하는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고루한지는 모르겠지만, 예술이나 그속에 베어 있는 정서는 민족정서을 포함하고 있기에, 영 근거없는 생각은 아닌것 같습니다. 희영님의 보석같은 추천음반을 기회 닿으면 꼭 들어봐야겠습니다...
꼭 자국민 연주가 최고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최소한 정서적 표출에 있어서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해보려고 쓴 글입니다. 그래도 로스뜨로뽀비치 연주 딱 나오면 거기 미치뿌지만......ㅋㅋㅋ
퍼감을 허락하시면 좀 데불고 갈께요!!!(물론, 출처밝히구요)
어어어...데불고 가믄 여기가 비쟎유...? 안되쥬......시방 여기 원본은 놔두고 카피를 갖고 가셔야쥬......(뭔 말인지...!@#$%^&*...^^;)
아가야 손 잡듯 살포시 카피녀석을 데불고 갑니다...쌩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