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月留峰
<단체기념사진>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4. 5. 22. 07:00
2. 장 소 : 월류봉
3. 참석인원 : 26명
4. 등산코스 : 원촌리주차장 - 에넥스황간공장입구 - 월류봉 - 제1봉~제5봉 - 월류정 - 원촌리주차장
◆ 출발점(입구) ⇨ 800m ⇦ 월류봉 ⇨ 10m ⇦ 월류1봉 ⇨ 200m ⇦ 월류2봉 ⇨ 230m ⇦ 월류3봉 ⇨ 400m ⇦ 월류4봉 ⇨ 320m ⇦ 월류5봉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KBS춘천방송총국 ⇨ 월류봉 ▶ 거 리 : 284,7km ▶ 소요시간 : 3시간
- 다녀온길 : 중앙고속 - 영동고속 - 중부고속 - 경부고속 황간IC - 황간삼거리 - 옥포 삼거리 - 원촌리주차장
- 동원차량 : 강원 70바 1713 권 희 성
6. 오늘의 날씨
7. 활동상황
○ 07:00 --- KBS춘천방송총국앞 출발(음성휴게소 경유) ○ 10:07 --- 원촌리주차장 도착 ○ 10:16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10:18 --- 들머리진입 ○ 10:19 --- 한천정사 ○ 10:20 --- 우암 송선생 유허비 ○ 10:26 --- 원촌주차장 - 에넥스황간공장입구 구간 버스 운행 ○ 10:31 --- 에낵스황간공장입구 도착 ○ 10:38 --- 월류봉등산로안내도 갈림길 ○ 10:41 --- 등산로 진행방향 안내판 ○ 11:00 --- 월류1봉 ○ 11:01 --- 월류봉 ○ 11:37 --- 월류2봉 ○ 11:45 --- 월류3봉 ○ 12:04 --- 월류4봉 ○ 12:09 --- 점심식사 ○ 12:49 --- 월류5봉(우천리, 원촌리방향 갈림길) ○ 13:23 --- 동굴 ○ 13:29 --- 동굴 ○ 13:33 --- 동굴 ○ 13:38 --- 월류정 ○ 13:50 --- 초강천 도강 ○ 14:18 --- 원촌리주차장 도착 ○ 14:30 --- 하산행사 ○ 15:00 --- 원촌리주차장 출발 ○ 18:35 --- KBS춘천방송총국 앞 도착[문경(양평), 원주휴게소 경유]
Ⅱ. 지역특성
<월류봉에서 본 원촌리 전경>
1. 지역유래
- 월류봉이 있는 황간면은 신라시대에는 소라현(召羅縣)이라 하였는데, 소라라는 지명은 광평촌(廣坪村) 앞을 흐르는 소라천(召羅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통일신라 제 35대 경덕왕(757년)때 ‘물이 채워진 골짜기’ 라는 뜻에서 황간현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동현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경산부(京山府: 慶北 星州)에 소속되어 감무(監務)를 두었고 공양왕 2년(1390)에는 금산군(金山郡)에서 금화부곡(金化部曲)으로 이속시켰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경상도(慶尙道)에서 충청도로 이속시키고 청산현(靑山縣)과 병합하여 황청현(黃靑縣)이라 칭하고 감무를 두었다. 선조(宣祖) 26년(1593)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현감 박몽열(朴夢說)이 진주성(晋州城) 전투에서 패하고 한 사람도 살아오지 못하였으므로 현(縣)을 폐하여 청산현에 편입시켰다가 광해군(光海君) 13년(1621)에 다시 황간현으로 복귀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의 변화를 겪다가 고종 때(1895년)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 336군으로 개편됨에 따라 6개면 120개 동리를 관할하는 황간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총독부령에 의해 군 · 면이 통폐합됨에 따라 황간군을 폐지하고 군내면의 23개 동리, 서면의 18개 동리, 군동면의 상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황간면이라 하였다. 1947년에는 백자전리가 용산면으로 소속이 옮겨졌고, 1971년에는 난곡리(蘭谷里)를 난곡1구와 2구로, 1975년에는 용암리(龍岩里)를 용암1구와 2구로 분리하였으며. 1982년에는 신탄리(薪炭里)를 신탄1구와 2구로, 1985년에는 옥포동(玉浦洞)을 옥포1동과 2동으로 분리시키고, 1989년 매곡면 광평리를 편입시킴에 따라 현재 14개 법정리와 31개의 행정리, 43개의 자연마을로 편성되어있다.
<원촌리마을유래비>
- 오늘 등산기점 나들목이 있는 원촌리(院村里-서원촌, 서원말)는 본래 황간현 읍내면 지역으로 한천서원(寒泉書院)이 있었으므로, 서원말 . 서원촌(書院村)이라 하였다. 1909년 황간군 군내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티리를 병합하여 원촌리라 해서 영동군 황간면에 편입되었다. 행정리명은 원촌리이고 자연마을로 원촌(서원말), 사직단(社稷檀), 솔티(우티곡, 소재), 구터가 있다. 서원말 입구에는 우암 송시열이 강학하던 한천정사(寒泉精舍)가 있고, 그 아래는 기미정(己未亭)이 세워져 있으며, 송우암 유허 비각은 한천팔경(寒泉八景)인 월류봉 및 송천이 흐르는 곳에 위치한다. 또한 원촌리 50번지에 첨모재(瞻慕齋)가 있으며, 구터에는 또한 은진송씨(恩津宋氏) 재각(齋閣)이 있고 심묘사지(深妙寺址)가 서원말에 남아 있기도 하다. 사직당 마을의 송천(宋川)과 석천(石川)이 만나는 합수머리 지점에 있는 바위 그늘은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의 유적(遺蹟)으로서, 너비 약 10m, 높이 5~6m의 원촌교(院村僑) 북단 동쪽의 남향 바위다. 또한 구터마을 북서쪽 용산 방면으로 약 500m떨어진 밭 가운데 비교적 큰 고인돌이 있는데 덮개돌의 크기는 260×210×30cm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 원촌마을유래비 내용을 살펴본다. “원촌리는 천혜의 자연비경인 한천팔경(寒泉八景)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본래 황간군 군내면의 지역으로 한천서원(寒泉書院)이 있어 서원말, 서원촌(書院村)으로 불리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우티리를 병합하여 원촌리(院村里)라 하여 황간면(黃澗面)에 편입되었다. 행정명은 원촌리(院村里)이고 4개의 자연마을(서원말, 사직단, 솔티, 구터)로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월류봉(月留峰)을 포함한 한천팔경(寒泉八景)이 절경을 이루며,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학문을 하던 한천정사(寒泉精舍)와 기미정이 있고, 지방 유형문화재 46호로 지정된 유허비가 있다. 심묘사지를 비롯하여 구석기시대의 고인돌의 유적 유물이 있어 유구한 사적 마을 앞에는 상촌 추풍령과 상주에서 흐르는 물이 합수되어 이곳 원촌 앞을 회룡(回龍)과 같이 휘돌아 용산으로 흐르며 송천(초강천)의 줄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놓은 모양이 흡사 한반도지형을 빼어 닮았음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한천팔경은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院村里 서원마)의 산수가 수려하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옛 부터 선비나 묵객은 물론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팔경(八景)으로 월류봉(月留峰), 냉천정(冷泉亭), 법존암(法尊庵), 산양벽(山羊壁), 사군봉(使君峯), 청학굴(靑鶴窟), 화헌악(花軒嶽), 용연대(龍淵臺) 이다. 서원말 북쪽 마을로 1935년경에 여씨들이 영입하여 마을형성을 했던 사직단(社稷壇)이 있으며, 큰 소나무가 많아서 부르게 된 솔티와 구터가 있다. 고소득 작목(포도, 감, 곶감) 개발로 소득이 향상되어 살기 좋은 마을로 성장하였으며 월류봉 진입로를 시작으로 마을전체가 국화길, 살구나무 길과 솔티에 자리한 왕산에 소나무 길 산책로(산림욕장), 원촌리 한천팔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인 기룡대(起龍臺)를 신설하였으며, 2008년 국책사업인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전국 최우수 마을로 선정, 현 주민 56가구 115명은 역사 이래 대대손손이 자연과 어울러 풍성이 넘치는 원촌리의 전통을 계승하는 마을, 무궁다경(無窮多慶)이 지속되는 마을, 화합과 행복을 느끼며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을로 가꾸어 후세에 물려 줄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을 다짐하면서 마을주민 모두의 뜻을 받들어 이 비를 세운다.” 라고 새겨져 있다.
- 한천팔경(寒泉八景)은 영동군 황간면(黃潤面) 원촌리(院村里 서운마)에 있는 곳으로 산수가 수려하고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예부터 선비나 묵객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月留峰, 冷泉亭, 法尊腐(법존암),山羊壁(산양벽), 使君峰, 靑鶴癩(청학굴), 努軒岳(화헌악), 龍測帶(용연대) 등이다.
2. 월류봉 살펴보기
<월류봉등산안내도>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일대는 금강 상류의 한 줄기가 굽이쳐 흐르면서 그윽한 산수의 풍광을 연출하는데 그중에서 여덟 경승지를 꼽아 한천8경이라 부른다. 한천팔경(월류봉)은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월류봉의 여덟 경승지를 일컫는데, 우암 송시열선생이 머물던 한천정사에서 이름을 땄다고 전해진다. 영동 한천팔경은 황간면 원촌리에 깎아 세운 듯한 월류봉의 여덟 경승지를 한천팔경이라 부르는데 우암 송시열 선생이 머물던 한천정사에서 이름을 땄다. 산 아래로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초강천이 흐르고 깨끗한 백사장, 강변에 비친 달빛 또한 아름다워 양산팔경에 비할 만하다. 한천8경은 월류봉, 화헌악, 용연동, 산양벽, 청학굴, 법존암, 사군봉, 냉천정으로 어우러져 있으며 우암 송시열의 사랑을 받았던 명승지로도 알려져 있다. 한천8경의 중심부는 제1경인 월류봉 일대다. 봉긋한 기압절벽으로 이루어진 월류봉의 의연한 자태 아래로 맑은 강물과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져 잔잔한 운치를 자아낸다. 봄꽃 또는 가을 단풍으로 수놓아진 월류봉을 화헌악(제2경), 월류봉 아래의 깊은 연못을 용연동(제3경)이라 일컫는다. 월류봉 일원은 한나절쯤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지만 하룻밤쯤 묵으면서 소요하면 더욱 운치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월류봉(月留峰)이라는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달뜨는 밤 월류봉에 걸린 달과 그 달빛이 비쳐 내리는 강변 풍치의 그윽한 낭만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월류봉등산지도>
- 충북 영동군 황간면 일대는 금강 상류의 한 줄기가 굽이쳐 흐르면서 그윽한 산수의 풍광을 연출한다. 황간에서 서북방으로 2Km 지점에 우뚝 솟아 있는 월류봉 밑 일대의 절묘한 산수를 가리켜 그중에서 여덟 경승지를 꼽아 한천팔경이라 한다. 한천팔경의 제1경은 월류봉이다. 월류봉은 절벽이 공중에 솟아, 높고 수려하며 그 봉우리에 달이 걸려 있는 정취는 진실로 아름답다. 또한, 깎아 세운 듯 똑바로 서있는 월류봉 밑을 맑은 물이 휘어 감아 돌고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하다. 달님도 쉬어간다는 층암절벽의 월류봉은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휘감고 있어,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도 한천정사를 지어 이곳에서 강학을 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천팔경은 동국여지승람에서부터 비롯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6권 충청도 황간현(黃澗縣) 불우조에 ‘심묘사(深妙寺)의 팔경(八景)’으로 기록되어 있는 곳이 바로 한천팔경이다
Ⅲ. 산길여정
<월류봉 전경>
- 충북 영동은 우리 모두산악회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기억된다. 영동에 있는 민주지산은 2008. 3. 27 인연을 맺은 이후 2010. 12. 2 연거푸 다녀온바 있고, 천태산은 2008. 11. 27과 최근 지난달 4. 3에 다녀왔다. 월류봉은 지난 4. 3 동행하셨던 이 미 정님의 추천에 따라 오늘 정기산행일정에 이름을 올려 처음 인연을 맺었다.
- 오늘은 부부의 날과 소만을 넘기면서 맞이한 정기산행일이다. 부부의 날은 2003년 국회 청원을 거쳐 2007년부터 달력에 표시되기 시작한 법정 기념일이다. 부부의 해체를 막아야 고령화·청소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날짜에는 가정의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첫 주창자인 권재도 목사는 1995년 어린이날 “우리 엄마·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한 어린이의 TV 인터뷰를 보며 충격을 받아 ‘부부의 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小滿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이다. 양력으로는 5월 21일 무렵이고 음력으로는 4월에 들었으며, 태양이 황경 60도를 통과할 때를 말한다. 소만(小滿)은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의미가 있다. 이때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먹고, 냉이나물은 없어지고 보리이삭은 익어서 누런색을 띠니 여름의 문턱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4월이라 맹하(孟夏, 초여름)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고 했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왕성하게 성장한다. 이 무렵에 부는 바람이 몹시 차고 쌀쌀하다는 뜻으로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 2014. 5. 19 06:00발표 충청남북도 금주 기상전망은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가끔 구름 많겠고 기온은 평년(최저기온 : 10 ~ 15도, 최고기온 : 23 ~ 27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겠으며 강수량은 평년(강수량 : 1~4mm)보다 적겠다고 발표하였다. 날씨에 관한한 매주 연 타석 안타를 친 셈이다.
- 오늘은 오랜만에 마의 30명 선을 넘길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의외로 포기하신 분과 더불어 신청오류가 발생하는 바람에 졸지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늘도 지난주 지리산(바래봉)에 이어 적은 인원으로 장거리여정 버스운영에 대한 부담스러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따라 10:00경 원천주차장 도착을 예상했었는데 예상시간대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여 일상을 열었다. 원촌주자차장은 우리 일행 분들이 유일한 고객이었다. 원촌주차장 주변은 화장실. 급수전. 천막 등 편의시설, 원촌마을유래비. 월류봉표석. 월류봉관광안내도 등 안내시설, 월류정. 기미정. 파고라공원. 기룡대. 약수터. 소망기원탑. 1박2일 촬영지. 고인. 삼림욕장. 등 위락시설, 우암송시열유허비. 한천정사 등 문화재가 한데 어우러져 관광지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 오늘은 원촌주차장을 등산기점으로 위 등산지도 내용과 같이 원점회귀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주차장에서 한천정사, 우암유허비를 경유하여 초강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 후 에넥스황간공장 인근에서 초강천을 도강하여 월류봉등산로안내도가 있는 마을안길 갈림길로 진입하는 방향으로 안내준비를 했었다. 입산 전 공식행사인 일정안내와 단체기념을 남긴 후 일정대로 한천정사와 우암유허비 방향으로 진로를 선도하였다. 그러나 초강천변에 이를 즈음 갑자기 후미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바람에 발길을 되돌리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마을주민으로부터 주차장에서 에넥스황간공장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편리하다는 권고가 있었던 것이다. 마을주민의 권고를 받아드리는 것을 순리로 보고 원천주차장에서 에넥스황간공장입구까지 버스로 이동하는 방안으로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잠시나마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마을주민의 권고만 없었다면 초강천에 징검다리가 없을 경우 등산화를 벗고 건너는 한이 있더라도 안내 준비한 대로 강행하였을 것이다. 주차장에서 마을안길 갈림 길목까지 20여분이면 족하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버스를 타고 에넥스황간공장 입구에서 하차하여 갈림 길목까지 접근하는 시간대나 초강천을 도강하여 마을안길로 진입하는 시간대가 거의 비슷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초강천(草江)>
- 원촌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첫 눈에 들어오는 풍광은 월류봉과 월류정이 초강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 모습이었다. 월류봉 앞을 유유히 흐르는 초강은 영동군의 심천면과 황간면에 있는 하천이다. 상촌면 삼도봉 북사면에서 발원하여 고자천 · 장교천 · 석천 · 송천으로 불리다가 심천면 심천리와 초강리에서 심천과 초강이 되어 금강 본류인 고당강에 합류한다. 지명은 조선 시대에 대체로 심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초강으로도 표기되어 있다. 초강은『해동지도』에 '초강서원'이 표기되면서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여지도서』에 '서일면 대초지리(大草旨里)'라는 관련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조선지지자료』에는 "초강(艸江)은 서일면 대초지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현재의 초강리(草江里) 지명으로 존속되고 있다. 초강의 다른 이름인 심천은 조선 시대의 여러 지리지와 고지도에 이른 시기부터 기록되어 표기자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심천(深川)은 고을 서쪽 15리에 있으니 고당포로 흘러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관련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이후『해동지도』에 '심수천(深水川)'이,『여지도서』에는 '심천진(深川津)', '심천교(深川橋)', '심천원(深川院)'이, 그리고『대동여지도』에는 '심천진(深川津)', 『1872년지방지도』에는 '심천교(深川橋)', '심천점(深川店)'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심천원과 심천점의 등재는 이곳이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가는 중요한 길목임을 말해 주고 있다. 최근 문헌인『한국지명총람』에는 '심천면 심천리'와 '심천', 그리고 고유 지명으로 '지프내'가 기록되어 있어 일관된 표기자가 나타나며, 심천이 '지프내'의 훈차 표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천정사 전경>
- 한천정사는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50에 있다. 원촌주차장에서 에넥스황간공장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대문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한천정사는 1999. 9. 15 지방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우암(尤庵)송시열[(宋時烈)조선 숙종 때의 문신(1607~1689)이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이다. 17세기 중기 이후 붕당 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 노론의 영수로 활동했다. 1689년 왕세자가 책봉되었을 때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했다가 후에 사사되었다. 저서에 우암집(尤庵集), 송자대전(宋子大全) 등이 있다.]선생이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 일컫는 아름다운 절경을 음미하면서 서재(書齋)를 짓고 글을 가르치던 곳이다. 한천팔경은 사군봉(使君峰), 월류봉(月留峰), 산양벽(山羊壁), 용연대(龍淵臺), 화헌악(花軒嶽), 청학굴(淸鶴窟), 법존암(法存庵), 냉천정(冷泉亭)으로 이름 붙여진 그 모양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후세에 우암 선생의 제사를 모시고 글을 가르치는 한천서원(寒泉書院)이 세워졌다가 고종 초에 철폐된 후 유림들이 1910년 한천정사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건축양식에서 옛 기법이 잘 유지되고 있으며, 소라천(召羅川), 장교천(長橋川), 중화령(中化寧)의 물이 이 부근에서 합류하여 월류봉과 어울려 선경(仙境)을 이루는 장소에 위치하여 우암 선생의 기상과 자취를 살필수 있는 곳이며, 이미 그 이전 고려시대 때 사찰이 있었던 자리로 생각되는 석탑(石塔)의 부재(部材)가 일부 남아있다.
<우암 송시열 유허비>
- 우암유허비는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110 있다. 한천정사 앞 길 건너 초강변에 자리한다. 1977. 12. 7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이 비석은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이 이곳에 잠시 은거하며 학문을 가르치던 곳을 알리기 위해 정조 3년(1779)에 세운 것이다.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맛배지붕집의 비각 안에 있다. 선생은 한천팔경의 하나인 이곳에 초당을 짓고 한 때 강학하였다. 후손과 유림들에 의해 유허비가 세워졌다. 그 후 이곳에는 한천서원을 세워 우암을 향사하였으나, 고종 초에 철폐되었고, 1910년에 한천정사를 세웠다. 송시열의 본관은 은진(恩津), 호는 우암(尤庵)으로 김장쟁(金長生)·김집(金集) 이후 기호학파를 이끌면서 서인·노론의 영수로 활약하였다. 비신(碑身)의 높이 200㎝, 폭 70㎝, 두께 20㎝로 보호각 안에 있다. 1875년(고종 12)에 세웠으며, 마을 앞 강 언덕 밭 가운데에 있다. 비문의 각자(刻字)는 ‘尤庵宋先生遺墟碑(우암송선생유허비)’, ‘崇禎紀元後百三十六年己卯九月日立(숭정기원후백삼십육년기묘구월일립)’, ‘百五十三年丙辰六月日改磨立(백오십삼년병진유월일개마립)’의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월류봉 전경>
- 월류봉은 달 月(월) 머무를 留(류)자를 쓴다. 이름 그대로 달이 머문다는 의미를 갖는 산이다. 이름 뜻 그대로 달이 머물다 간다는 이 봉우리는 달이 머물러 갈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이곳에선 달이 서쪽으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능선 흐름을 따라 서쪽으로 흐르듯 달이 머물다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 높지 않지만 빼어난 비경을 지닌 월류봉에 거는 기대가 자못(생각보다 훨씬) 컸었다. 비록 야경을 볼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 월류를 그리면서 한천팔경 풍광에 흠뻑 취해보았다.
- 영동 한천팔경을 눈여겨보면 이 월류봉의 곳곳을 세분화하여 일컫는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한천팔경 중에서도 산세가 빼어나고 준수한 면모를 지녀 첫손에 꼽히는 월류봉이 당연지사 제1경이고 제3경인 용연동은 월류봉 아래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소를 지칭한다. 또한 제4경 산양벽은 단애를 이룬 월류봉의 기암절벽을, 8경은 우암 송시열(1607~1689)선생이 즐겨 찾던 명승지 월류봉을 감상하며 머물렀다는 한천정사를 일컫는다.
<한반도지형>
- 11:00를 넘기면서 월류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월류봉 직전 월류1봉에서 10여m 지점 암봉이 월류봉이다. 월류1봉에서 월류봉 방향으로는 출입을 통제하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새로운 우회로가 나 있다. 월류봉 정점에 서면 초강천 물줄기와 더불어 원촌리일원과 에넥스황간공장 구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월류봉 정상에는 매 주 다른 산 정상에서 보아 온 정상석이나 표주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 월류봉에서 내려다본 초강천 건너 길게 뻗은 지형이 한반도를 닮아 눈길을 끈다. 금강 지류인 초강천(한천)이 굽이쳐 흐르는 이곳은 울창한 수풀과 농경지가 조화를 이뤄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지정한 솔티고개가 인근에 있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적합한 장소라고 한다. 그 밖에 한반도지형이 있는 곳은 정선읍 덕송리 조양강변, 정선읍 귤암리 동강변, 옥천군 동이면 청마리, 옥천군 서면. 안남면, 진천 초평저수지, 신안 중도, 경북 성주 댐, 무안군 몽탄면, 해남군 송지면 등에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180 선암마을 앞 주천강과 평창강이 합쳐지기 전 굽이진 곳에 빚어진 한반도지형을 단연 으뜸으로 친다. 삼면의 바다와 동고서저 현상을 뚜렷이 보이는 형상이 한반도지형을 쏙 빼 닮았기 때문이다.
- 월류봉에서 월류5봉까지 이르는 구간은 점심시간 포함 1,16km/1시간50여분 걸렸다. 짧게는 10m 길게는 400여m 간격으로 연이어진 오르내림의 연속이었지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를 갖췄기 때문에 쉬엄쉬엄 노닥대면서 풍류를 즐길 수 있었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월류정 앞 초강천변에서 점심식사를 해도 무리함이 없을 듯 싶었다.
- 월류5봉 정상 분기점은 오늘 일정 중 중요지점으로 점지해 뒀던 곳이다. 이곳에서 원촌리주차장 방향으로 곧바로 하산할 수도 있고, 우천리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길게 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날머리 징검다리 유무가 관건이었지만 도강지점 수위가 낮아 크게 염려할 바 없었기 때문에 족욕을 겸해 도강을 결심하고 당초일정대로 원촌리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다.
- 월류5봉에서 월류정 앞 도강지점 일부구간은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안전시설물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겨울 심설산행이나 한여름 비가 내릴 때에는 조심해야할 구간이다. 주차장이나 월류정에서 올려다봤을 때에는 탐방로가 있으리라고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이었다. 하산 도중 연이어 동굴 세 곳을 지난다. 어떤곳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길었다. 등산지도상에는 폐기된 광산으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어느 동굴이 폐기된 광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월류정>
- 월류정은 영동군 황간면 월류봉길 45 암봉에 앉아있다. 월류봉 맨 왼쪽 봉우리에서 내려온 산줄기의 끝자락에 월류정이란 정자가 날아갈 듯 앉아 있는 모습이 오가는 행인의 눈길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다. 주차장에서 접근로가 없어 초강천 건너 월류봉에서 뻗어 내린 암경과 정자가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넣으면서 만족해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은 날머리가 월류정 앞이었기 때문에 월류정에 올라 소요하는 영광을 보너스로 얻었다. 이 정자는 예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2006년에 지은 것이다. 물은 월류정의 백호쪽에서 흘러와 청룡쪽으로 돌아 나가고 있다. 또한 월류정 일원은 사계절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월류정에서는 초강천 건너 우암유허비각이 거침없이 건너다보였다.
- 월류정에 올라 소요하며 즐길 때가 좋았다. 휴식이 끝나고 나면 초강천을 건너는 부담을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도강하면서 족욕 삼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었는가 하면 물밑 바위에 붙은 청태의 미끄러움과 씨름하며 몸의 중심을 잡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도강 체험은 지난해 7. 23 천축산 들머리 도강 이후 처음이었다.
- 오늘 하산예정시간은 일정운영시간을 4시간으로 잡고 14:30까지 예고했었는데 후미까지 하산예정시간 이전에 여유 있게 홈인하였다. 볼 것 다 보고, 먹을 것 다 먹어가면서 소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 앞으로 이런 코스 또 어디 없나요? 자주 좀 선정해 주세요. 란 기분 좋은 주문을 받으면서 고무된 분위기 속에서 일상을 갈무리하였다.
Ⅳ. 주요(주변)볼거리
- 오늘 주요(주변)볼거리 편은 “노근리평화공원”을 선정하였다.
<노근리평화공원>
- 노근리평화공원은 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에 위치한다. 노근리 평화공원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과, 과거성찰과 반성의 공간, 과거 · 현재 · 미래가 어우러지는 평화와 인권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 조성배경
- 과거 노근리사건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넋과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위로함과 동시에 희생자 및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도모하고, 우리 근대사의 잊힌 과거를 정당하게 재평가하는 한편 사건내용을 올바르게 기록하여 노근리사건의 진실을 국민에게 바르게 알리고 인권 및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을 건설하고자 함이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노근리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의 결과물로써 노근리사건 특별법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 조성의의
- 노근리사건특별법 제1조에 의하면 노근리사건의 희생자 및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줌으로써 인권신장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노근리평화공원"은 노근리사건특별법 제3조 3항에 의거하여 위령탑 건립 등 위령사업에 관한 공원을 조성함으로써 희생자를 위령하고 인권 및 평화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데 있다.
◆ 사건개요
-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영어: No Gun Ri Massacre)은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 사단 7 기병 연대 예하 부대가 1950년 7월 25일 ~ 7월 29일 사이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기관총 발사를 시작하여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실제 경험했던 생존피해자와 유족들로 1994년에 구성된 노근리 미군 민간인 학살 사건 대책위원회에서는 사망자 135명, 부상자 47명 모두 182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400여명의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위키백과>
Ⅴ. 특기사항
- 홍 옥 자 산처녀님 부침개 협찬
Ⅵ. 산행을 마치고
<월류산하>
- 5월 산행일정 중 묘봉, 소백산 도솔봉, 지리산 바래봉으로 이어진 장거리여정 강행군에서 쉬어가는 코스로 잡은 산이 바로 월류봉이었다. 비록 버스운행시간 3시간이란 접근성에서 다소 지루함을 느꼈지만 산행시간이 짧은 가운데 달님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의 빼어난 풍광과 함께 풍류를 여유롭게 즐기면서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하산구간 중 일부구간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산행, 즐거운 산행으로 갈무리 해 주시고, 일정운영상 야기된 우발사안을 감수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히 감사드리면서 월류봉에서의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좋은 산 추천해 주신 이 미 정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산 많이 추천해 주실 것을 주문해 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에서
풍류를 즐기신 모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강의 번거로움을 감수해 주시고
일정운영에 협조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산 추천 해 주신 이 미 정님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산 많이 많이 추천해 주시기바랍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정선 두위봉에서 뵙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오후 일정이 바빠 서둘러 마쳤습니다.
대장님 좋은 설명과 안전 산행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후기를 통해 하루의 일상을 다시금 펼쳐놓고 미소를 머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어제의즐거움을 떠올리며 잘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대장님 항상 감사합니다.
월류봉이 아름답네요.
항상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문해 주시고, 읽어주시고,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어제까지의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후기를 이제서야 읽다보니 그날의 즐겁고 후미에서 느긋했던 일상이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월류봉 참 즐거운 산행 이였습니다~~~감사합니다^^
항상 바쁘신 총무님 !
이 때나, 저 때나 언제 방문하시려나 하고 손꼽아 기다렸는데
드디어 월욜 새날이 밝으면서 댕겨가셨네유 ~~~
보리차도 맛있었고, 닭 알도 맛있었고,
둘 둘이 모인 후미 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