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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벗들 2]
계곡과 남간
장경창
書羅別坐海鳳與谿谷酬唱詩帖後 (文谷集 卷二十六 / 題跋)
余嘗見《谿谷集》中,與羅同年應瑞酬唱諸作最多,而不知羅公爲何如人也?乙卯,余南遷過錦城,有羅生相器、世器手一帖來示,卽其王父南磵公與谿谷往復詩札也。南磵卽羅公自號,而谿谷少與同升庠,及其出牧于錦,則待以下榻之禮有倡斯和,至歸朝而猶遞筒相續云。谿谷文章、行業伏一世,平生不輕許人,而顧於南磵詩,稱以精詣,又前後詩中,每惜其抱屈,亹亹不休。觀於此帖,不唯得南磵之爲人,亦可見谿谷公愛士惜才之意矣。世道日下,雖欲復見前輩風流如此等事,烏可得耶?其亦可嘅也已。南磵之胤參奉君,屢使諸子請余識帖末,余許之而未副也。今參奉君遽不淑,余不忍已諾於逝者,遂書此以歸之。
나는 일찍이 《계곡집(谿谷集)》 가운데에서 동년(同年) 나응서(羅應瑞)와 주고받은 작품이 가장 많은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나공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을묘년(1675, 숙종1)에 내가 남쪽으로 귀양을 가면서 금성(錦城)을 지나게 되었는데, 나생 상기(羅生相器)와 세기(世器)가 시첩 한 권을 가져와 보여 주었다. 이는 그들의 할아버지 남간공(南磵公)과 계곡(谿谷) 사이에 오고 간 시찰(詩札)이었다. 남간은 바로 나공의 자호(自號)인데, 계곡은 젊어서 그와 함께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외직 금성 목사로 나와서는 탑(榻)을 내려 맞이하는 극진한 예로 접대하고 이렇게 창화하는 시들을 남겼다. 계곡이 조정으로 돌아간 뒤에도 계속 체통(遞筒)이 이어졌다고 한다. 계곡의 문장(文章)과 행업(行業)은 한 시대를 감복시켰는데, 계곡은 평생 동안 남에게 쉽사리 허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간공의 시를 보고서는 정예(精詣)하다고 칭찬하였으며, 또한 전후의 시에서 그의 억울했던 삶을 끊임없이 안타까워 하였다. 이 시첩을 보면 다만 남간공의 사람됨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계곡공께서 선비를 사랑하고 재주 있는 사람들을 아꼈던 마음을 볼 수 있다. 세도(世道)가 날로 추락하여, 비록 이와 같은 선배들의 풍류를 다시 보려고 해도 어찌 그럴 수나 있는가. 이 또한 개탄할 만한 일이로다. 남간공의 큰아들 참봉군이 누차 여러 아들을 시켜 이 시첩의 후기를 내게 청하였으나, 내가 허락만 해 두고 부응하질 못했다. 그런데 지금 참봉군이 갑자기 세상을 떴으니, 내가 돌아가신 분께 이미 허락해 둔 일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마침내 이를 써서 돌려보낸다.
별좌 나해봉이 계곡과 수창한 시첩의 뒤에다 쓰다
〔書羅別坐海鳳與谿谷酬唱詩帖後〕문곡집 제26권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고,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아들이다.
[주-D001] 나해봉(羅海鳳) : 1584~1638. 자(字)가 응서(應瑞), 호가 남간(南磵)이다. 장유(張維)와는 진사동방(進士同榜)으로서 특히 친교가 두터웠으니, 두 사람의 시를 모아 엮은 책이 《계간수창(谿磵酬唱)》이다.
[주-D002] 계곡(谿谷) : 장유(張維)의 호이다.
[주-D003] 탑(榻)을 …… 예 : 후한(後漢)의 진번(陳蕃)이 다른 손님은 일체 접대를 하지 않다가, 현자인 서치(徐穉)가 오기만 하면 특별히 걸상 하나를 내려놓고 환담을 하고 그가 가면 다시 올려놓았다.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주-D004] 체통(遞筒) : 시문(詩文)을 죽통(竹筒)에 넣어 전한다는 뜻으로, 체는 여러 곳에 차례로 전하는 것이고, 통은 종이를 말아서 넣는 죽통을 가리킨다.
[주-D005] 억울했던 삶 : 나해봉은 1606년(선조39)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7년(광해군9) 별시 문과에 장원하였다. 그러나 정론(正論)을 썼다는 이유로 시관 권진(權縉)이 합격자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빼 버리자, 나해봉은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가 묻혀 살았다. 《南磵集選(追刻本) 卷1 年譜》
1. 동년인 나응서가 부쳐 온 시에 차운하여 수답하다[次韻酬羅同年應瑞見寄]
참으로 오랫동안 얼굴 한 번 못 보아서 / 不見羅生久
금강변의 그대 소식 늘상 궁금하였다오 / 長懷錦水秋
보내 온 시 받아보니 안온한 기풍 / 新詩較穩在
그동안 앓던 병 이제는 좀 나았는지 / 舊疾得瘳不
시내와 바위 보며 즐길 수 있으리니 / 溪石堪供玩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 아예 관심 밖이어라 / 簞瓢肯入愁
늙은 이 거사는 누가 가엾게 여겨 줄꼬 / 誰憐老居士
문 처닫고 눈 내린 듯 백발 이고 있는데 / 閉戶雪渾頭
[주-D001] 동년(同年) : 같은 해 같은 과거 시험에 함께 급제한 사람을 말한다.
[주-D002]일단사(一簞食)일표음(一瓢飮) : 매우 빈한한 생활을 말한다.《論語雍也》
2. 차운하여 동년 나응서에게 감사하는 시를 부치다[次韻寄謝羅同年應瑞]
과거 급제 동기생 의기투합했었는데 / 同榜曾投分
태수(太守)로 나가다니 이 또한 숙연(宿緣)이요 / 遨頭亦宿因
그대를 만나면 마냥 허물 없는데 / 逢君意莫逆
보내 준 시구 보니 참신하기 그지없소 / 贈我句還新
이별의 꿈자리 부질없이 길 찾나니 / 別夢空尋路
바퀴 돌 듯 이어지는 이별의 슬픔 / 離腸若轉輪
멈춘 구름 어떻게 잡을 수 있나 / 停雲不可攬
들보에 걸린 달 마음을 전해주네 / 樑月是傳神
[주-D001] 멈춘 구름 …… 전해주네 : 친구를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정운시서(停雲詩序)’에 “정운(停雲)은 친우를 생각해서 지은 시이다.” 하였고, 두보(杜甫)의 ‘몽이백(夢李白)’에 “落月滿屋梁 猶疑照顔色”이라 하였다.
3. 나응서가 석류와 함께 시를 부쳐 왔기에 차운하여 사례하다[羅應瑞寄石榴有詩 次韻以謝]
귤만 중시하고 석류는 경시하는 / 重橘輕榴實
불공평한 그 논의를 언짢게 늘 여겨 왔소 / 常嫌論未公
향기를 다툰다면 조금쯤 떨어져도 / 鬪香雖或遜
맛으로 말하면 대충은 서로 같고 / 言味略相同
게다가 농염한 그 꽃 색깔 하며 / 況有穠葩艷
익어 가는 붉은 껍질 사랑스럽지 아니하오 / 兼憐老殼紅
서신과 함께 멀리서 온 진귀한 선물 / 珍苞隨遠信
한 번 깨물자 갈증 모두 해소됐소 / 一嚼解消中
4. 차운하여 나 동년 응서에게 답하다[次韻答羅同年應瑞]
영 너머 편지 한 장 오늘 처음 받아보고 / 一札初從嶺外來
그대 생각에 침침한 눈 번쩍 뜨였소 / 昏眸今日爲君開
고매한 이 어떻게 미관 말직에 매이리요 / 高才肯受微官縛
오골이라 속물들 시기 정말 언짢았겠지요 / 傲骨眞嫌薄俗猜
시수는 갈매기와 사는 것이 당연하고 / 詩瘦定應同海鶴
유산은 야매(野梅)를 싫어하지 않는 법 / 儒酸元不厭江梅
애달퍼라 늙은 이 몸 병으로 골골하다니 / 自憐老子淹衰疾
청황이 목재임을 일찌감치 알았건만 / 早信靑黃是木災
회남 소산의 뜻 일찍 간직하고 / 早識淮南有小山
시냇가에 오래전에 삼간 모옥(三間茅屋) 지으신 분 / 溪邊舊築屋三間
금석성(金石聲) 능가하는 상송(商頌)의 선율이오 / 商歌韻發勝金石
청랑한 옥 소리 초 나라의 곡조로세 / 楚調詩成響玦環
아양떠는 서대초(書帶草) 봄에 절로 자라나고 / 草帶媚人春自長
손님 하나 없이 낮에도 닫힌 사립문 / 荊扉無客晝常關
언제나 다시금 진번탑을 내려놀까 / 何時更下陳蕃榻
헤어진 뒤 그리운 정 편치를 못하외다 / 別後相思苦未閑
[주-D001] 오골(傲骨) : 자존심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성격을 말한다.
[주-D002] 유산(儒酸) : 빈궁(貧窮)한 독서인(讀書人)을 말한다.
[주-D003] 청황이 …… 알았건만 : 몸을 해치는 관직 생활을 일찍 그만두지 못했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 “백 년 된 나무를 깎아 제기(祭器)를 만들면서 갖가지 색칠을 하여 꾸미고 나머지 토막들은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제기와 나머지 토막들 사이에 미추(美醜)의 차별은 있을지 몰라도 본성을 잃은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百年之木 破爲犧尊 靑黃而文之 其斷在溝中 比犧尊於溝中之斷 則美惡有間矣 其於失性一也]”라 하였다.
[주-D004] 회남 소산의 뜻 : 산림(山林)에 은거하려는 뜻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회남왕 안(淮南王安)이 천하의 준걸들을 모아 시를 짓게 한 뒤 《시경(詩經)》의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를 본떠 소산(小山)과 대산(大山)으로 시를 분류하였는데, 소산에 속하는 초은사(招隱士)라는 시 속에 굴원(屈原)을 흠모하며 산택(山澤)에 은거하려는 뜻이 담겨 있는 데에서 유래된 고사이다. 《楚辭 卷8 招隱士》
[주-D005] 금석성(金石聲) …… 선율이오 : 빈한한 생활 속에서도 맑은 절조를 고수하고 있음을 말한다. 증자(曾子)가 위(衛) 나라에서 누더기 옷을 걸치고 신발을 끌며 상송을 부르니, 그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여 마치 금석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曳縱而歌商頌 聲滿天地 若出金石]는 고사가 전한다. 《莊子 讓王》
[주-D006] 서대초(書帶草) : 한(漢) 나라 정현(鄭玄)의 제자들이 책을 맬 때 썼다는 길고도 질긴 풀 이름이다.
[주-D007] 진번탑(陳蕃榻) : 현사(賢士)를 대접하는 의자. 후한(後漢) 진번이 태수로 있으면서 다른 빈객은 일체 사절하고 서치(徐穉)가 올 때에만 특별히 의자를 내려놓았다가 그가 가면 다시 올려놓은 고사가 있다. 《後漢書 徐穉傳》
5. 차운하여 나응서에게 부치다[次韻寄羅應瑞]
쭈글쭈글 희끗희끗 그대나 나나 어슷비슷 / 皺面霜髭較略同
부침의 세월 사십 구 년 살아왔다오 / 浮沈四十九年中
하늘 끝에서 추억하는 그대의 깊은 우정 / 天涯每憶曾懸榻
이별 뒤로 잦은 시통(詩筒) 싫어할 리 있으리까 / 別後寧嫌數寄筒
먼 하늘 가을빛 나주(羅州)의 산하 / 錦里湖山秋色遠
경운(慶雲) 붉게 비치는 도성의 궁궐 / 鳳城宮闕霱雲紅
대붕(大鵬)과 같은 그대의 기질 알고말고요 / 知君自由排風質
언젠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리다 / 霄漢他時路逕通
6. 차운하여 나 동년 응서에게 수답해 부친 시 두 수[次韻寄詶羅同年應瑞 二首]
남은 생애 도학 공부 점점 성취될 가망 없이 / 殘年學道轉無成
그저 다투지 않는 한가한 몸 얻었어라 / 但得閑身處不爭
뇌락(磊落)한 그대 흉금 누구와 얘기 할까 / 落落襟懷誰共語
요란한 취거들 먼저 울게 놔두시라 / 紛紛觜距任先鳴
넘기 힘든 산골 마을 이별의 꿈 선연한데 / 關山難越饒離夢
자주 멀리 서찰 보내 위로해 주는구려 / 書札頻來慰遠情
남쪽 지방 문인 중에 그대 같은 이 얼마 될까 / 南國詞人如子少
오언만 어찌 유독 장성이리요 / 五言寧獨是長城
만사는 오직 조물(造物)의 손에 맡겨야지 / 萬事惟應聽化工
시 짓느라 곤궁했던 십 년 세월 알고말고 / 十年知爾坐詩窮
일찌감치 새장 속을 빠져 나와서 / 將身早脫樊籠外
옛 글 보며 득의만면 하시는구려 / 得意都憑竹素中
산승(山僧)과 손 잡고서 매화 찾아 눈길 걷고 / 雪徑尋梅携衲子
저공 따라 상수리 줍는 단풍나무 숲 / 霜林拾橡趁狙公
한가한 시간 정녕 사색 깊이 했으리니 / 閑來定有潭思作
아낌없이 바람결에 글 한 통 부쳐주오 / 莫惜因風寄一通
7. 꿈속에서 어울려 노닌다는 나응서의 시를 받고 차운하여 부치다[次韻寄羅應瑞 來詩有夢裏相尋之意]
안개 속의 표범 문채 이제 막 이루고서 / 霧豹初成滿體斑
송죽(松竹)의 절조(節操) 탈없이 사립문 지키고 계시는가 / 松筠無恙護柴關
명모호치(明眸皓齒) 숨긴 남국의 가인이요 / 佳人南國閟皓齒
늘상 안색 좋은 동방의 빈사로세 / 貧士東方常好顔
병중에 전한 시통(詩筒) 모두 몇 편이었던가 / 病裏傳筒凡幾首
꿈속에 헤맨 산길 천 번도 더 넘었소 / 夢中迷路更千山
현안의 새 생활을 아시고 싶소이까 / 欲知玄晏新生活
붓과 벼루 옛날 사업 모두 손을 놓았다오 / 舊業全疎筆硯間
[주-D001] 안개 …… 이루고서 : 숨어 살며 문덕(文德)을 닦고 있다는 말이다. 안개비 내리는 7일 동안 남산의 표범이 사냥하러 나가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 털이 상하지 않게 보전하면서 문채를 이루기 위함[南山有玄豹 霧雨七日而不下食者 欲以澤其毛而成文章也]이라는 말에서 기인한 것이다. 《列女傳 陶答子妻》
[주-D002] 현안(玄晏) : 평생 병으로 시달리면서도 독서와 저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진(晉) 나라 황보밀(皇甫謐)의 호로, 계곡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8. 나응서에게 화답하다[和羅應瑞]
부용검처럼 번뜩이는 그대 재질 / 錯落芙蓉劍
목숙만 널려 있는 그대의 밥상 / 闌干苜蓿盤
잘 살고 못 사는 것도 운명일지라 / 窮通自有命
한가로이 낚싯대나 드리우구려 / 閑處且投竿
지붕 위론 푸른 솔이 시렁처럼 얹혀 있고 / 簷外靑松架
시냇가엔 울타리마냥 둘러쳐진 하얀 대숲 / 溪邊白竹籬
성긴 머리 기우뚱 오건을 눌러쓰고 / 烏巾欹短髮
저녁 바람 부는 대로 그냥 몸을 맡기노라 / 一任晚風吹
[주-D001] 부용검(芙蓉劍) :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지녔다는 보검 이름이다.
[주-D002] 목숙(苜蓿) : 한 무제(漢武帝) 때 장건(張鶱)이 서역(西域)에서 가져 왔다는 말먹이 풀 이름으로, 변변찮은 채소 반찬을 가리킨다.
[주-D003] 오건(烏巾) : 옛날에 은거하던 사람들이 즐겨 쓰던 까만 모자를 말한다.
9. 나 동년 응서가 울분을 토로한 시에 차운한 세 수[次韻羅同年應瑞遣憤三首]
듣건대 서융이 또 포비를 하였다니 / 聞說西戎更飽飛
중국 조정 계책이 모두 잘못되었도다 / 漢庭籌策總成非
오활하다 육식인(肉食人) 끝내 무슨 도움 줄까 / 迂疎肉食終何補
강호의 포의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네 / 愧殺江湖一布衣
전쟁터 새 귀신들 원한 어린 호곡(號哭) 소리 / 沙場新鬼尙煩寃
오 년 세월 뼈저린 치욕 대지에 쌓였어라 / 五載深羞積厚坤
어떡하면 그 옛날 한비 장군(漢飛將軍) 다시 얻어 / 安得當時漢飛將
서쪽 관문 부는 추풍 홀로 막아 내게 할까 / 秋風獨鎭國西門
북쪽 요새 어느 때나 오랑캐 먼지 씻어 내고 / 塞北何時掃虜塵
황량한 변방에 봄빛을 다시 보게 할꼬 / 窮荒再見一般春
은은한 주악(奏樂) 속에 상 받을 자 누군지 알고말고 / 歌鍾受賞知誰是
긴 밧줄 청할 사람 특별히 따로 있으리라 / 欲請長纓別有人
10. 또 화운한 절구 두 수[又和二絶]
남쪽 하늘 지키고 선 소미 별자리 / 南天還有少微星
누구라서 솔 뿌리 늙은 복령을 알아 보랴 / 誰識松根老伏苓
지금도 기억나는 시냇가 집 옛날 편액(扁額) / 溪舍舊題猶記得
어느 때나 사람 향해 청안(靑眼)을 떠 보이실까 / 幾時雙眼向人靑
보잘것없는 인생살이 그야말로 창해일속(滄海一粟) / 處世眞同海粟微
소망과 다르게 살아온 일 백발이 되도록 느껴 왔소 / 白頭長覺寸心違
최근 몇 년 들어 터득한 장생의 뜻 / 年來會得莊生意
풍진 세상 향해서 시비 따져 무엇하리 / 不向風塵問是非
11. 나 동년 응서에게 화답하여 주다[和贈羅同年應瑞]
반평생 앉아서 닳고 닳은 관영탑(管寧榻) / 半生穿盡管寧牀
금수와 같은 해낭의 시 그 또한 여사로다 / 餘事奚囊錦繡章
풍진 세상 지기 적다 한탄을 마오 / 休恨風塵少知己
두우(斗牛) 간의 용광을 알아 볼 이 있으리다 / 斗間應有識龍光
책상 치며 장단 맞춰 제멋대로 읊조리다 / 狂吟拍碎讀書牀
그대의 시 받고 나면 화답하기 겁이 나오 / 每得君詩怯和章
그동안 안검 당하신 게 정말로 괴이하오 / 翻訝向來遭按劍
어둠 속에 주옥이 절로 빛을 발하는 걸 / 暗中珠玉自生光
12. 차운하여 나응서에게 부치다[次韻寄羅應瑞]
쭈글쭈글 희끗희끗 그대나 나나 어슷비슷 / 皺面霜髭較略同
부침의 세월 사십 구 년 살아왔다오 / 浮沈四十九年中
하늘 끝에서 추억하는 그대의 깊은 우정 / 天涯每憶曾懸榻
이별 뒤로 잦은 시통(詩筒) 싫어할 리 있으리까 / 別後寧嫌數寄筒
먼 하늘 가을빛 나주(羅州)의 산하 / 錦里湖山秋色遠
경운(慶雲) 붉게 비치는 도성의 궁궐 / 鳳城宮闕霱雲紅
대붕(大鵬)과 같은 그대의 기질 알고말고요 / 知君自由排風質
언젠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리다 / 霄漢他時路逕通
13. 나 동년 응서에게 수답하다[酬羅同年應瑞]
병중에 시 읊기도 본래 어려운 일 / 病裏吟詩也自難
흰 수염 비비 꼬려 해도 반이나 떨어져 나갔어라 / 霜髭欲撚半凋殘
오늘 아침 기운 내어 한번 붓을 잡고 / 今朝作意聊拈筆
정인에게 부치노니 잘 살펴보아 주오 / 寄與情人仔細看
서신 보낸 은근한 뜻 잘 알겠소만 / 書到殷勤意可知
끔찍이도 병부의 시 좋아하니 괴이하오 / 怪君偏愛病夫詩
부끄러워라 쓸모없이 늙어 온 몸 / 自慙却老元無賴
거울 속의 흰머리 몰라보게 늘어났네 - 보내온 시에 “흰머리 사이로 흑발이 나게 하였으면[願使白間生黑絲]”이라는 구절이 있었으므로 그 뜻에 답한 것인데, 이는 대체로 자소(自笑)하면서 동시에 자탄(自嘆)한 것이었다. - / 鏡裡新添滿鬢絲
14. 차운하여 나 동년 응서에게 수답해 보내다[次韻寄詶羅同年應瑞]
최근 몇 년 쇠한 데다 병까지 겹쳐 / 年來衰與病兼加
머리는 온통 흰 서리 눈엔 허공꽃 / 鬢有繁霜眼有花
홀연히 전해 주신 벗님의 서신 / 忽見故人書信到
종이 가득 시필들 반쯤 외로 누웠구려 / 滿牋詩筆半欹斜
청천 굽어보는 그대의 집 늘상 생각나나니 / 幽居長憶俯晴川
도시 속에 감추어진 조그마한 별천지(別天地)라 / 城市中藏小洞天
벼슬길 올라 승부 겨룰 생각이 어찌 나리 / 肯向宦途爭利鈍
멋진 시 누가 잘 짓는가 그것만이 관심이리 / 獨憑詩態鬪淸姸
15. 차운하여 나응서에게 수답하면서 생강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다[次韻詶羅應瑞兼謝餉薑]
재주도 감정도 이제는 남김없이 쇠한 몸 / 才情衰歇頓無餘
서쪽 창가 꽂힌 책들 내버려 둔 지 오래 됐소 / 抛却西窓滿架書
아직도 시 짓는 데 열심인 우리 벗님 / 唯有故人能好事
서신에다 멋진 시편 매번 부쳐 주는구려 / 每將佳什伴雙魚
멀리서 보낸 햇생강 어찌나 고마운지 / 新薑遠寄意重重
시냇가 별장 채마 밭에서 금방 캐낸 것이리라 / 知自溪莊露圃中
홀연히 생각나는 금강의 그 별미(別味) / 忽憶錦江風味別
불그스름 여린 싹들 금제작회의 맛이라니 / 金虀斫膾嫰芽紅
16. 또 화운한 절구[又和絶句]
비단 껍데기 둘러싸 추위도 곧잘 이겨 내고 / 錦殼周包巧耐寒
속에서 튀어나오는 둥글둥글 옥구슬들 / 拆來瓊粒自成團
조갱에 견준 그대의 시 정말 잘못됐소 / 君詩錯擬調羹事
서생을 그만 시디신 맛에 비유하시다니요 / 却稱書生一味酸
17. 차운하여 나 동년 응서에게 수답해 부친 시 두 수[次韻寄詶羅同年應瑞 二首]
남은 생애 도학 공부 점점 성취될 가망 없이 / 殘年學道轉無成
그저 다투지 않는 한가한 몸 얻었어라 / 但得閑身處不爭
뇌락(磊落)한 그대 흉금 누구와 얘기 할까 / 落落襟懷誰共語
요란한 취거들 먼저 울게 놔두시라 / 紛紛觜距任先鳴
넘기 힘든 산골 마을 이별의 꿈 선연한데 / 關山難越饒離夢
자주 멀리 서찰 보내 위로해 주는구려 / 書札頻來慰遠情
남쪽 지방 문인 중에 그대 같은 이 얼마 될까 / 南國詞人如子少
오언만 어찌 유독 장성이리요 / 五言寧獨是長城
만사는 오직 조물(造物)의 손에 맡겨야지 / 萬事惟應聽化工
시 짓느라 곤궁했던 십 년 세월 알고말고 / 十年知爾坐詩窮
일찌감치 새장 속을 빠져 나와서 / 將身早脫樊籠外
옛 글 보며 득의만면 하시는구려 / 得意都憑竹素中
산승(山僧)과 손 잡고서 매화 찾아 눈길 걷고 / 雪徑尋梅携衲子
저공 따라 상수리 줍는 단풍나무 숲 / 霜林拾橡趁狙公
한가한 시간 정녕 사색 깊이 했으리니 / 閑來定有潭思作
아낌없이 바람결에 글 한 통 부쳐주오 / 莫惜因風寄一通
18. 동년인 나응서가 부쳐 온 시에 차운하여 수답하다[次韻酬羅同年應瑞見寄]
참으로 오랫동안 얼굴 한 번 못 보아서 / 不見羅生久
금강변의 그대 소식 늘상 궁금하였다오 / 長懷錦水秋
보내 온 시 받아보니 안온한 기풍 / 新詩較穩在
그동안 앓던 병 이제는 좀 나았는지 / 舊疾得瘳不
시내와 바위 보며 즐길 수 있으리니 / 溪石堪供玩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 아예 관심 밖이어라 / 簞瓢肯入愁
늙은 이 거사는 누가 가엾게 여겨 줄꼬 / 誰憐老居士
문 처닫고 눈 내린 듯 백발 이고 있는데 / 閉戶雪渾頭
[주-D001] 동년(同年) : 같은 해 같은 과거 시험에 함께 급제한 사람을 말한다.
[주-D002]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 : 매우 빈한한 생활을 말한다. 《論語 雍也》
19. 차운하여 나생 해봉과 작별하다[次韻別羅生海鳳]
같은 병 앓는 시인의 애처로움 / 同病憐詞客
뼈만 앙상한 채 시상(詩想)에 골몰하네 / 吟詩瘦骨稜
예장의 유자를 만난 듯하고 / 豫章逢孺子
회해의 진등을 마주 대한 듯 / 淮海有陳登
온통 배어나는 삽상한 기운 / 爽氣渾堪挹
맑은 가슴속 씻어 낼 것도 없네 / 淸襟不待澄
하늘 끝 객지에서 헤어지려니 / 天涯聚散地
남 몰래 눈물이 가슴을 적시누나 / 別淚暗垂膺
[주-D001] 해봉 : 나응서(羅應瑞)의 이름이다. 응서(應瑞)는 자(字)이다.
[주-D002] 예장의 유자 : 유자(孺子)는 후한(後漢) 서치(徐穉)의 자(字)이다. 벼슬에 응하지 않고 남주(南州)의 고사(高士)로 일컬어졌으며, 태수(太守) 진번(陳蕃)으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았는데, 그의 고향이 바로 예장(豫章)의 남창(南昌)이다. 《後漢書 卷84》
[주-D003] 회해의 진등 : 회해(淮海)는 강해(江海) 혹은 호해(湖海)와 같은 뜻으로서, 뜻이 원대하고 호방하여 속인들과 왕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진등(陳登)이 허사(許汜)의 방문을 받았을 때, 말 상대도 해 주지 않으면서 자기는 높은 침상 위에서 자고 허사는 낮은 곳에 눕게 하였는데, 뒤에 허사가 유표(劉表) 및 유비(劉備)와 얘기하면서 “陳元龍湖海之士 豪氣不除”라고 불평했던 고사가 전해 온다. 원룡(元龍)은 진등의 자(字)이다. 《三國志 卷7》
20. 또 화답한 절구 두 수[又和二絶]
처마 끝이 툭 틔어 전망이 썩 좋으니 / 簷虛足延望
침상이 좁아서 편한 잠자리 못 되어도 / 床窄劣容眠
이 속에서 살아가면 그런대로 족한 것을 / 箇裡生涯足
구태여 계연의 계책 물어볼 게 뭐 있겠소 / 那須問計然
새 집으로 옮긴 것도 기쁘려니와 / 且喜新居就
찾아오는 옛날 제비 얼마나 또 어여쁜지 / 仍憐舊燕來
책을 베고 낮잠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나서 / 枕書眠白日
약초 캐러 푸른 이끼 밟고 간다오 / 行藥踏蒼苔
[주-D001] 계연의 계책 : 치부책(致富策)을 말한다. 계연의 계책을 써서 월왕(越王) 구천(句踐)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범여(范蠡)는 수만 금을 모아 거부(巨富)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貨殖列傳》
21. 나 동년 해봉의 시냇가 정자에 차운하여 제하다[次韻題羅同年海鳳溪亭]
시내 위엔 푸르른 뫼 묻노라 몇 층인고 / 溪上靑山問幾層
개울가 작은 정자 대나무로 엮었고녀 / 溪邊小築竹爲棚
한여름에 시원한 그늘 짙게도 깔렸으니 / 已憐長夏凉陰滿
가을철 삽상한 기운 안 보고도 알겠도다 / 不待淸秋爽氣澄
높은 베갯머릿 속진(俗塵) 어찌 얼씬할까 / 高枕自無塵事到
닫힌 문 속물들 미워서가 아니라오 / 閉門非爲俗徒憎
단표 외에 따로 있는 그대의 낙을 알고 말고 / 知君樂在簞瓢外
황권 뒤적거리면서 친구 얻으려 함이로세 / 黃卷開時正得朋
[주-D001] 나 동년 해봉(羅同年海鳳) : 동년(同年)은 동방 급제(同榜及第)한 사람을 가리킨다.
[주-D002] 단표(簞瓢) :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나오는 “一簞食 一瓢飮”의 준말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생활을 뜻한다.
[주-D003] 황권 : 책을 가리킨다. 옛날에 좀이 슬지 않도록 황벽(黃蘗) 나무의 즙을 짜서 서책에 발랐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나해봉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응서(應瑞), 호는 남간(南磵). 나주 출신. 아버지는 궁궐도감 나덕양(羅德讓)이다. 강항(姜沆)의 문인이며 한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도 학문을 익혔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7년(광해군 9) 별시 문과에 장원하였으나 정론(正論)을 썼다는 이유로 시관 권진(權縉)이 합격자 명단에서 빼버렸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다.
1629년 동당 별시에 급제, 별제(別提)를 지낸 뒤 병자호란 때 다시 격문을 돌렸다. 장유(張維)와는 진사동방(進士同榜)으로서 특히 친교가 두터웠으며, 두 사람의 시를 모아 엮은 시집인 『계간수창(谿磵酬唱)』과 아울러 시문을 모은 『남간집(南磵集)』·『남간집선(南磵集選)』이 전한다.
[출처] [계곡제 발표1] 교유(交遊), 장유와 나해봉 /장경창|작성자 가장 작은 상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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