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재봉틀
이애자
노루발 외발도
엄마와 발맞추면
달깍달깍
힘든 걸음도
드르륵 달려가지요
혹시나
길 잃을까 봐
실을 꿰고 가지요
풀각시
청상의 어머니 밤낮없는 삯바느질로
외할망 손에 크던 콩알만한 오누이
쌍무덤 상석에 앉아 넌 어멍 난 아방
아버지 빈자리는 여섯 살 누이가
겨를 없는 어머니 빈자리는 한 살 터울 동생이
온전히 가족을 이룬 넌 어멍 난 아방
제주 사람
부러, 바람 앞에 틈을 내준 밭담돌 보라
어글락 다글락 불안한 열 맞춤에도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는 엇각을 지니고 있다
보리개역*
- 개역하는 날
비 칠칠
유월 장마
솥뚜껑
뒤집어 놓고
어머니
타닥타닥
보리 볶는
부엌에
땀 촐촐
토다 앉아서
닷 되 부주
보태던
* 미숫가루의 제주어
백동백
밀항 간 할아버지 끝내 둥지 따로 트셨다
삼백예순날 광목 수건 머리에 질끈 동여
난간에 잠시 걸쳤던 외할머니 짧은 생
마음 깎아 고독사孤獨寺 절 한 채 지으셨다
스스로에게 입힌 내상을 다스리려다
외고집 화근이 되어 더 큰 그늘 만드시고
힘을 잃고 나서는 눈빛은 온화해져
이따금 할아버지 동박새로 앉았다 가면
북받친 하얀 속울음이 마당귀를 적셨다
하늘이 솔짝
- 일곱 살
어머니 쌀가게 쌀 한 줌 솔짝 담아
서문다리 건너다 헛디뎌 쏟은 주머니
싸락눈 발악이 풀어 어린 죄를 묻으셨다
어머니 쌀가게 오 원짜리 솔짝 꺼내
사탕가게 기웃대다 뒤집힌 오 원의 누명
둥근 달 슬며시 띄워 어린 죄를 감싸셨다
바다와 바닥
하늘이 묵지 대고 바다를 베낀 걸까
바다가 묵지 대고 하늘을 베낀 걸까
짙푸른 곤룡포 자락 금박 입힌 밤바당
자리 하나로 한자리하지 않았더냐
방어 하나로 한철 방어하지 않았더냐
그 많던 자리도 방어도 북상 중이라는구나
가파도 혼끝 잡고 마라도 혼끝 잡아
둥글게 몰아가고 둥글게 몰아오면
멸치떼 구덕 하나쯤 모슬포 인심이었다지
송악산 무릉리 지나 신도 앞바당까지
환해장성 돌을 쌓는 돌고래떼 앞세워
해 지는 모슬포 바다 황룡포를 펼치자꾸나
옥돔
모슬포 사람이면 바람 자국 하나쯤
오장육부 헤집는 염장의 고통쯤
광풍에 납작 엎디어 바짝 마른 세월쯤
지슬*
요 눈만 붙은 것들 배롱헌 날 있을까
까마귀떼 까악까악 까맣게 휘젓다 가면
입단속 몸단속하며 죽어 산 세월 알까
알드르 새벽하늘 탄피처럼 박힌 별
알알이 문드러져도 일일이 도려내
묵묵히 산 날들이 몬 데작데작 곰보네
그 눈만 붙은 것도 배롱헌 날이 있어
한 줄 한 줄 갈아엎어 곱게 친 이랑마다
쌍시옷 거꾸로 써도 싹은 자라 제구실하네
* 감자의 제주어.
- 이애자 시인의 시조집 『풀각시』 (2022. 한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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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자 시인의 시조집 『풀각시』
안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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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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