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갈 5:16-26절
제 목 :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
일 시 : 2023. 6. 9.
갈라디아서 5:16-2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오늘의 말씀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두 가지의 욕망과 두 가지의 일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는 두 가지의 욕망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의 욕망이 있어서 서로 다투고 충돌합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안에는 성령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욕망이 있고 육체가 원하는 더러운 욕망이 있습니다. 둘은 서로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대적함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따라서 중심을 잡고 둘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지 않으면 삶에 많은 혼란이 오고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1.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안에서 서로 대적하고 싸우는 두 가지 욕망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절을 보시면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저주 아래에 있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2. 그러나 잘못하면 육체의 소욕을 따라 육체의 일을 행하고 육체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일을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육체의 일인데 사도 바울은 15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성적인 방종입니다. 그것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입니다. 부부관계와 가정을 파괴시키는 죄악입니다.
2) 두 번째는 종교적(신앙적)타락입니다. 우상 숭배와 술수(마술)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파괴시키는 영적인 음란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가짜 신을 따라다니는 것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죄악이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로 삼사대까지 저주를 받는 죄악입니다.
3) 세 번째는 사회적인 방종입니다. 그것은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분열)함, 이단, 투기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데, 이것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무시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상호간의 유대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죄악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방종이라고 합니다.
4) 네 번째는 술로 인한 방종입니다. 그것은 술취함과 방종인데 이러한 죄악은 범죄하고 싶은 충동으로 사람들을 이끌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자유를 사용하도록 이끌어 가기 때문에 성령을 훼방하는 육체의 일들입니다.
3. 반대로 성령을 따라 성령으로 사는 삶은 무엇입니까?
25절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말씀은 성령님 안에서 산다는 뜻이며 동시에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고 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라고 했습니다. 행하다란 행진하다, 걷다 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으면서 살게 되면 성령님과 하나되어 성령님과 함께 걸어다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님과 보조를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감동하시고 이끄시는 대로 산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이 원하시는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즉 육체의 사람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인 것처럼 성령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란 곧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성령 충만함을 술 취하는 것과 비교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술에 들어 있는 알콜의 영향을 받아서 술 취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육체의 정상적인 기능들이 마비가 되어서 여러 가지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음주운전을 하게 되면 사람을 치어서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드는 살인마처럼 살아갑니다. 그것이 술 취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은 성령님의 지배와 다스리심을 받아서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즉 25절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는 말씀처럼 살아가는 삶의 결과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서 주님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4.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의 또 다른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않는 삶입니다. 헛된 영광이란 헛된 영광의, 자기 기만의 라는 뜻입니다. 영광스러운 일이 아닌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일종의 자기 기만입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것을 마치 영광스러운 일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그런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노엽게 하고 서로 투기 하게 됩니다.
노엽게 한다는 말은 도전하다, 즉(함축적으로)자극하다, 노하게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투기하다란 질투하다, 투기하다 라는 뜻으로 서로 질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는 삶은 사람들을 노하게 하거나 질투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이 그렇습니다. 재산이 없고 청렴한 국회의원으로 알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코인에 투자해서 60억대 부자라는 사실이 들어났고 그것을 재산을 신고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살아가게 되면 참된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갈 뿐더러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세우고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그렇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