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월 셋째주일 설교 4
“예수를 주(主)로 받은 자”
성경: 골로새서 2 : 6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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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말로, ‘내가 결혼한 내 남편은 어디 갔는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 남편은 자기를 참으로 사랑해 주고 위해 주는 좋은 남편이었는데 몇 해 지나니까 그 남편이 무언가 좀 변해 버렸습니다. 자기를 무시하고, 등한히 하고, 사랑치 아니하는 그런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처음 결혼했던 내 남편은 어디에 갔느냐?”는 말입니다. 같은 말을 아내에게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아내였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몇 해 가니까 마음이 변심되어 남편을 무시하고 등한히 하고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처음에 결혼했던 내 아내는 어디 갔느냐?”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이 새롭게 갱신되어 나가는 곳에 건전한 생명이 있는 모습이 유지되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해 ‘늘 새롭게 받는’ 갱신된 믿음을 가질 때, 확고한 믿음 가운데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은혜를 받을 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한 열심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랑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식어지고 처음의 그 사랑을 잃어버린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요한계시록 2장 4절에서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책망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과 은혜를 경험한 자들로서 하나님을 향한 진실 된 마음과 사랑을 지속적으로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6절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모신 자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족함도 있고,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인해 은혜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낙망가운데 헤매기도 합니다. 절망가운데 소망을 잃고 살아가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증언을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자는 다름 아닌 오늘날 우리 자신들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태어난 자는 거룩한 모양과 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 자가 행해야 할 원칙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 첫째, ‘복음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6절 말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는 말씀은 곧 ‘세상을 죄악과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주님이 육체를 입으시고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낮 지식으로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진리가 우리의 가치관이 되어지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치관으로 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복음대로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나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땅히 나를 굴복시킬 것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 뜻대로 살 것을, 다시 말해 참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회심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 전적으로 자기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모든 일상적인 삶을 복음대로 살면서 주님의 도움을 받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면 사도 「바울」 조차도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절)고 고백했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복음대로 행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복음대로 행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버릴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자아가 완전히 죽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받으셨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이 복음을 받았으니 이와 같은 고백을 하고, 언제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실천은 우리 믿음의 외적 표현인 것을 알고 복음대로 행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둘째,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7절 말씀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이 성장해야 함을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맞이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제 성도로서 사는 삶의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뿌리깊은 나무가 좋은 과실을 풍성하게 맺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깊이 박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아 크게 자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믿음의 열매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충만함, 우리가 그리스도로 충만할 때 그 안에서 충분하게 자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즉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살 때 신앙의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든든히 세움을 입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 교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말씀에 충실하지 못하고 세상의 가르침, 곧 영지주의자나 율법주의자들의 세속적 교훈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때문에 그런 세속적 가르침에 미혹 당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그 말씀 안에 굳게 서기를 바울은 권면하는 것입니다.
“뿌리를 박고”라는 말은 ‘확고히 서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유혹이나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흔들려 실족하게 되는 일은 우리의 믿음이 주님이 아닌 세상에 있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 외의 것을 붙들 때 흔들리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그래도 이 땅에서 우리들이 누려야 할 분깃들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은 그림자이며 모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만이 진짜입니다. 이것을 바라며 주님께 뿌리를 박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6절이 말씀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뿌리를 박고 있으면 주님이 우리를 세우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가 자신을 도와줄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내 편일까? 누가 내 적일까?’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부류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호수아 5장 13-15절에 보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전쟁에 임하는 여호수아 앞에 한 사람이 칼을 들고 서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여호수아」가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13절下)
그런데 사실 이 「여호수아」의 질문은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편이십니다. 주님은 내 편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편이냐, 하나님의 편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뿌리를 박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다면 우리가 주님께 뿌리를 박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주님 안에 뿌리를 박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세움을 입어” 그랬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 편에 서는 이 모든 일들이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신 없어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대견해하며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과 내 의지로 되어진 일이 아닙니다. “세움을 입어” 그랬습니다. 내 힘 내 의지로 된 일이 아니라 주님의 세움을 입어 되어진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 편에 설 수도 없고 주님께 뿌리를 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은혜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이 마음을 잃지 않을 때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나를 위해 이루어주신 일만 있을 뿐입니다. 주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는 것조차도 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간직하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셋째,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가르침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했습니다. 가르침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것은 진리에 대한 성숙한 이해가 없이는 만족스러운 기독교도, 안정된 교회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가 읽고 외운 그 말씀이 무슨 뜻이고, 오늘날에 어떻게 그 말씀을 적용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현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어떻습니까? 신앙이 샤머니즘적인 요소로 치장되어가고 있습니다. 신앙을 복을 받는 한 방법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는 현대 신앙인들의 심리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화를 당할까봐 믿는다’는 것과 같은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때만 되면 점쟁이를 찾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씀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설교를 들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마십시오. 설교는 주어진 말씀을 오늘날에 적용하도록 교훈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풀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늘날에 필요한 교훈으로 말씀을 재해석해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종인 목사(전도사)가 받아서 대언 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 교훈을 듣고 그 위에 믿음을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하는 이상한 말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의 말을 들어야 잘못되지 않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교훈을 받은대로”살아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기가 전하는 교훈대로 믿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울」이 말하는 ‘교훈’이란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잘못된 교훈을 무작정 믿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목회자의 설교라고 무조건 믿고 따를 수는 없습니다. 진리를 왜곡되게 잘못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저들이 이마에 ‘나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교훈만 믿어야 하는데 전하는 자가 어떤 자인지를 잘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핵심적인 몇 가지를 체크해보면 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 하느냐, 예수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느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핵심적인 복음에서 벗어난 교훈이라면 그 교훈은 거짓된 교훈이요 그 교훈을 전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로 복음을 전했지만 그가 전한 복음의 교훈들은 이것에서 벗어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환경에 맞게, 성도의 수준과 형편에 맞게, 교훈을 받는 대상에 맞게 한 가지 사실을 이렇게도 전하고 저렇게도 전했지만 그러나 그 핵심은 언제나 동일했습니다. 바울의 교훈은 모두 예수의 메시아 되심과, 세상에 오심과, 십자가, 부활 같은 핵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런 사실이 녹아있는 설교가 참된 교훈입니다. 포장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라도 그 내용물에는 순수하게 예수 그리스도만 들어있어야 참된 교훈입니다. 예수도 메시아이고 나도 메시아라는 교훈, 거짓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히브리서 5장 12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벗어버리고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들이 되어 선악을 온전히 분별하는 성도들이 되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이 주시는 교훈대로 믿고 주시는 교훈을 따라 믿음이 성장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그리스도 복음에 근거한 바른 교훈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가, 그래서 이단에 빠지지 않고 소중한 영혼을 잘 지켜내며 장차 주어질 큰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을 키워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가끔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잘못된 이단에 빠져 신세를 망치고 가족까지도 불행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올바른 교훈을 받았으면 그 인생이 축복으로 가득 찼을 터인데 잘못된 교훈을 받는 바람에 그 인생이 저주와 불행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복음대로 행하고,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주시는 교훈대로 믿음에 굳게 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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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설교전문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새생명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