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역을 여행할때 한번쯤을 들었을 장소인 충주댐. 충주댐을 둘레로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서 국내에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라는 점 외에는 달리 큰 관심이 없던 곳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충주댐이 건설될 당시 많은 마을이 강제적으로 수몰되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땅을 떠났다는 사실을 듣고 나니 충주댐이 완전히 새롭게 보였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고, 아는 만큼 여행의 시각도 달라진다.
충주댐은 1985년에 건설됐다. 댐의 건설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 약 40만 킬로와트의 전기가 생산되고, 충주·제천·단양 지역에 각종 용수가 공급됐다. 하류지역의 만성적인 홍수와 가뭄 피해도 막아줬다. 그러나 달의 이면처럼 댐은 생겼지만, 삶은 사라졌다. 충주댐 건설로 약 2,000만 평이 수몰됐다. 단양, 제천의 상당수 가구가 수몰되었고 특히 청풍면은 전체 27개 마을 중 25개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보상금을 받고 떠난 사람도 있지만, 고향을 떠나기 싫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집단 이주해 새로운 마을을 형성했다. 청풍면 물태리가 대표적이다.
산업화, 현대화는 어쩔 수 없이 개인의 희생을 동반하기도 한다. 어쩌면 댐 건설이 아니라도 또 다른 현대화의 물결이나 자연재해로 그들의 삶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속으로 사라져가는 고향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청풍면으로 향하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한가지 희망은 꽃피었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마을에 남아있는 문화재들은 미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놨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시대인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획기적인 조치였다.
그렇게 조성된 곳이 바로 물태리 동북쪽, 망월산성 자리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다. 수몰지역에 있는 옛 관아건물, 민가고택을 비롯해 보물 제528호 한벽루 등을 그대로 옮겨놔 문화재공원을 만들어논 것이다.
청풍문화재단지로 향하는 길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산허리 높은 곳에 난 도로는 충주호를 둘레로 굽이굽이 이어져있는데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맑은 바람에 밝은 달'(청풍)이라는 이름이 딱 들어맞는 풍경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의 풍경에 반해 그림과 기행문을 남겨놓았다.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다산 정약용 등이 이곳을 찾았다.
지금은 충주, 청풍, 신단양 나루터로 이어지는 유람선이 하루종일 운영되고, 충주호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케이블카도 운행되며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천 관광의 으뜸지가 됐다.
청풍문화재단지 입구 팔영루
팔영루 천정에 그려진 귀여운 호랑이
입장권을 끊고 청풍문화재단지 입구인 팔영루에 들어가니 안내원이 천장을 꼭 보고가라고 말한다. 팔영루는 예전에는 청풍 고을로 들어가는 성문이었는데 지금은 청풍문화재단지 출입문이 됐다. 천정을 보니 귀여운 호랑이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보통은 용맹한 호랑이를 그리는 법인데 신기해서 물어보니, 옛날 풍수도사이자 왕사였던 천공스님이 먼 훗날 청풍에 큰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나운 모습 대신 온순한 호랑이를 그렸다고 한다. 호랑이 그림 덕분인지 1970년대 한차례 수재외에는 청풍면에는 큰 수해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소소한 장소인데 여행자에게 설명을 해주는 안내원이 고맙다.
팔영루를 통과하면 오른쪽에는 민가의 고가들이 있고 왼쪽으로는 관아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남한 3대 누각으로 꼽히는 보물 한벽루가 있다. 한벽루는 청풍문화재단지의 하이라이트인 만큼 최대한 아껴두고자 먼저 고가부터 둘러봤다.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4057970_thumb.JPG)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4349916_thumb.JPG)
청주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에서 가져온 고가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4408077_thumb.JPG)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4501217_thumb.JPG)
보통의 한옥마을에서 봤던 흔한 스타일이라 지나치려 했더니 청풍김씨의 가옥이 눈에 띈다. 청풍김씨는 조선시대 대단한 권세가문이었다. 수많은 대제학들을 배출했는데 특히 왕후를 두명이나 세웠다.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와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다. 명성왕후는 오히려 숙종의 어머니이자 장희빈을 내쫓는 인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명성왕후의 간택이야기는 유명하다. 왕비가 처녀일때 하루는 어머니가 꿈을 꿨고, 조상님이 나타나 '내일 찾아오는 손님을 극진히 모시라'고 했다. 다음날 진짜 한 선비가 찾아오자 처녀는 이 선비가 과연 어머니가 꿈속에서 들은 귀인이 맞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녀자가 감히 먼저 물어볼 수 없던 시대였다. 처녀는 궁리끝에 밥상에 뉘(도정안된 볍씨) 15개를 얹어 올렸다. 선비는 이걸 보고 "뉘시오 라고 나의 정체를 묻는게로군" 하고 금새 눈치채고 반찬으로 나온 생선을 네 토막으로 잘랐다. 처녀는 생선이 네 토막인것을 보고 어사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어사는 세자비 간택을 나온 인물이었고, 이 일로 처녀는 현종의 비가 되었다. 요즘 들어도 "참 센스있는 여자네"라고 감탄할 정도로 명성왕후가 어렸을 적부터 얼마나 총명했는지 엿볼 수 있다.
고가를 지나면 제천역사문화관과 수몰역사관이 있다. 평범한 전시관이지만, 수몰 역사관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수몰 당시 주민들의삶을 보여주는 사진자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몰되기 전 마지막 잔치를 위해 모인 여인들의 모습을 보면 한동안 사진 앞에서 발길을 돌리기기 어렵다. 며칠후면 고향이 사라진다는 슬픔에 잔치에 모인 여인들의 표정은 전혀 흥겹지가 않다.
수몰되기 전 마지막 마을잔치에 모인 아낙네들(수몰역사전시관 내)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4646430_thumb.JPG)
공덕비, 송덕비들
한벽루에 도착했다. 진주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남한 지역 3대 누각에 꼽힌다. 정확한 건축연도는 알수 없으나 고려 시대 주열이라는 사람이 한벽루를 읊은 시가 있어 아마도 그 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특히 태종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이 '한벽루기'라는 명문을 남겨놓기도 했다. 수많은 문인들이 한벽루를 찾아 청풍호반의 멋진 풍광에 반해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한벽루 정면 현판은 조선 후기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것이다. 또 이황, 유성룡, 정약용을 비롯해 고산 윤선도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찾았다. 특히 유성룡은 임진왜란 중 한벽루에 들러 <숙청풍한벽루>를 남겼는데, 전란 중 비통해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애닮기만 하다.
누각에 머무는 나그네 잠 못 이루는데
긴 밤 추상같은 바람소리와 서걱이는 낙엽소리만 들리네
두해 동안 전란속에 외로이 떠다니며
만가지 계책을 마련하느라 머리는 백발이 되었네
(오늘 한벽루에 오르니) 서러운 두어 줄기 눈물 끝없이 흐르네
아스라한 난간 기대고 북쪽만 바라보네
남한지역 3대누각인 한벽루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1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4829939_thumb.JPG)
우암 송시열선생이 쓴 한벽루 현판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1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5032575_thumb.JPG)
한벽루가 청풍문화재단지의 꽃이지만, 한벽루 뒤에 펼쳐져있는 나즈막한 망월산성과 망월루도 꼭 들러보자. 망월산성은 삼국의 치열한 각축장이었던 중원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많은 고대 성곽들 중 하나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청풍문화재단지의 으뜸이다.
금남루
물태리석조여래입상
망월산성 오르는 길의 연리지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1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5457142_thumb.JPG)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1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5521099_thumb.JPG)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1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5601590_thumb.JPG)
망월루
망월루에서 바라보는 청풍호반 풍경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2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4%2F30%2F20220430225751331_thumb.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