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이 약 1나노 미터(nm, 10억분의 1m) 크기의 단일분자 위에 얇은 절연층을 `이불덮듯이` 덮어 상온에서도 안정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찾아냈다. 약 100nm 크기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생각하면 단일분자 관측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향후 난치병 원인ㆍ치료법 개발 연구에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텍(포항공대) 물리학과 박경덕 교수 연구팀이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 화학과 서영덕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상온에서 나타나는 단일분자의 자세 변화를 세계 최초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데 성공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물질의 기본단위인 분자 하나의 자세를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공기에 노출된 분자는 주변 환경과 수시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때문에 `분자 지문`이라고 불리는 `라만 산란 신호`를 검출하기 매우 어렵고, 분자를 영하 200도 이하로 얼려 가까스로 신호를 검출하더라도 단일분자 고유의 특성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연구팀은 금 박막을 입힌 기판 위에 단일분자를 올리고, 매우 얇은 산화알루미늄(Al2O3)층을 그 위에 이불처럼 덮어 `꽁꽁` 묶는 방법을 창안했다. 그 결과 금과 산화알루미늄 사이에 갇힌 분자는 주변 환경과 분리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데다 움직임도 억제됐다.
이렇게 고정된 분자는 연구팀이 개발한 초고감도 탐침증강 나노현미경을 통해 관측됐다. 개발된 나노현미경을 이용하면 날카로운 금속 탐침의 광학 안테나 효과 덕택에 단일분자의 미세한 광신호도 정확히 검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일반적인 광학현미경의 해상도 한계(약 500nm)를 훨씬 뛰어넘어 1nm 크기의 단일분자가 누워있는지 서 있는지의 자세 변화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포스텍 강민구 연구원은 "제임스웹 망원경이 가장 먼 곳을 관측하여 우주의 기원을 밝힌다면, 본 연구팀의 단일분자 현미경은 가장 작은 것을 관측해 생명의 기원을 밝힐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 연구성과는 난치병의 원인 파악과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가 될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이나 DNA의 분자 배향(Conformation)을 나노미터 수준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료 위에 얇은 층을 덮는 방식이 매우 간단한데다 상온 또는 고온에서도 적용할 수 있어 그 응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한편, 이 연구에는 유니스트 이근식 교수, 엘함 올라이키ㆍ주희태 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김현우ㆍ엄태영 박사, 포스텍 물리학과 통합과정 구연정ㆍ이형우 씨 등이 참여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최근 게재된 이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허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