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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을 쫒는 "매의 눈"으로 시야를 확보하며, 시속 55키로를 넘나 드는 짜릿한 속도감을 즐기고 있는 어허라......
힘겹게 미시령 정상을 업힐 한 후, 九折羊腸(구절양장)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급경사의 미시령 옛길(속초 방향)을 down hill(다운 힐)하며, 다음 踏査地(답사지)인 권금성, 울산 바위를 향해 쾌속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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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 없는 썰렁한 모습의 용대리 매바위 인공 폭포*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공 폭포수가 쏟아 지지 않고 있었고,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된 아이언 웨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없이 썰렁한 분위기로 변한 "인제의 매바위 인공 폭포".........
이유를 알 수 없어 몹시 궁금하다. 왜일까? (아래 사진 참조)
몇 해 전 라이딩시 이 곳 용대리 매바위를 지나갈 땐 이렇게 시원한 인공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몇 해 전, 이 곳 인제의 매 바위에 들렸을 땐, 이렇게 시원하게 인공 폭포수가 떨어지고, "아이언 웨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었는데.......
Tip:아이언 웨이*
"아이언 웨이"는 원래 山勢(산세)가 험준하고, 암반 지역으로 둘러 싸여 고립되어 있거나 사람들에게 접근이 용이하지 못했던 지역에 설치 되어 전문적인 산악 등반,또는 암벽 등반의 기술이 없어도 다양한 연령과 능력의 한계를 가진 일반 대중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레포츠이다
아찔한 90도 경사의 매 바위에 설치 되었던 암벽 코스인 이 "아이언 웨이"는 암벽 등반 기술이 없어도 30분 교육을 받고 나면, 매 바위에 설치된 암벽코스를 쉽게 오를 수 있는 접근성이 강화된 모험 레포츠인 셈이었다
즉, 인공 암벽이 아닌 실제 이끼도 끼어 있는 천연 암벽을 오르는 레포츠인 것이다
Iron Way(아이언 웨이)는 "Via Ferrata(비아 퍼레타)의 영어식 표현"으로 산악 지대에서 보병들의 이동을 신속하게 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설치된 것이 유래가 되었다
Tip: 용바위: 인제군 용대리에 있는 용바위는 몸체는 여러 산을 걸쳐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 눈에 보기 어렵지만 머리 부분은 바위로 돌출되어 있는데,
갈 길이 바빠 그냥 지나치었다
*용대리 展望臺(전망대)*
이 용대리 전망대는 미시령과 진부령의 갈림길인 용대 삼거리의 매바위 인공 폭포 인근 광장에 설치 되어 있는데
약 4층 높이의 네모난 컨테이너 박스 모양으로 설치 되어 있다
용대리 황태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용대리 황태 홍보 전시관*
1,명태의 종류
* 생태:싱싱한 생물 상태의 명태
* 동태: 얼린 명태
* 북어(건태):말린 명태, 즉 명태의 수분을 뺀 상태의 명태
* 황태: 얼기와 녹기를 반복해 노랗게 변한 명태
* 백태: 하얗게 말린 명태
* 흑태: 검게 말린 명태
* 깡태: 딱딱하게 말린 명태
* 코다리:명태를 15일 정도 반 건조시켜서 코를 꿰어 파는 명태
* 노가리:명태 새끼
2,황태의 종류
* 낙태: 건조 중에 바람에 의하여 땅바닥에 떨어진 것
* 백태: 건조 시킬 때 날씨가 너무나 추워서 색깔이 하얗게 변한 것
* 찐태(먹태): 백태와 반대로 날씨기 너무나 따뜻해서 검게 된 것
* 파태: 머리나 몸통에 흠집이 생기거나 일부가 잘려 나간 것
* 무두태: 머리를 잘라 내고, 몸통만 남아 있는 것
* 통태: 작업중에 실수로 내장이 제거 되지 않은 것
* 황태채:귀차니즘 주부들을 위해 황태를 잘게 찢어 놓은 것
* 황태포: 통채로 황태를 두들겨 편 것
* 황태 머리:육수를 만드는데 최고라 함
3,명태의 유래
옛날 함경도 도백이 맛있게 먹은 생선 이름이 무엇이냐고 관리에게 물으니
그 관리는 明川(명천)에 사는 太(태)씨 성을 가진 漁夫(어부)가 잡아 올린 것이라고 말하니
明川(명천)의 “明(명)”과 태씨 어부의 "太(태)"를 합쳐 "明太(명태)"라 하게 되었다 한다
4 황태의 효능
황태는 명태보다 단백질이 두 배 이상 많고,콜레스테롤이 거의 없고, 신진 대사에 많은 도움을 주며,숙취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하며, 老廢物(노폐물) 제거에 많은 효과가 있다 한다
5, 황태의 탄생 과정
1980년대에만 해서도 15만톤에 달하는 생산량을 자랑하는 명태의 漁獲高(어획고)는 급기야 2008년도에 이르러서는 어획량이 “완전 제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의 황태는 100%로 러시아 산 명태로 만드는데,
보통 3,4월에 러시아에서 잡은 명태를 割腹 作業(할복 작업:배를 갈라 내장물을 꺼내는 작업, 내장물은 명태의 창자로 창란젓을 만들고,명태 알로 명란젓을 만든다)을 끝낸 후, 크리스 마스경인 12월부터 3월까지 황태 덕장에서 속살이 노랗게 변할 때까지 추위에 얼렸다, 녹였다 하는 반복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진다
*용대리 황태 마을, 황태 덕장*
황태는 매서운 겨울철 눈보라와 청정한 바람 속에서 말리는 명태를 말한다
즉,매서운 추위에 명태는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가, 낮에는 따뜻한 햇볕에 녹게 되는데,
이렇게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황태가 탄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서 너달 동안 이런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을 하게 되면, 명태의 속살이 노랗게 변하여 비로소 "황태"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황테 덕장은 대관령 아래 평창군 일대, 고성군 거진항 일대에도 있으나
인제군의 매바위 인공 폭포의 인근에 있는 용대 3리 일대에 많은 황태 덕장이 몰려 있으며, 이 용대 3리에서 생산된 황태는 전국 생산량의 "약 70%를 생산"한다고 하니, 어마 어마한 황태 덕장이 용대리에 있는 셈이다
용대리에서는 1999년 제1회 용대리 황태 축제를 시작으로 매년 황태 축제를 연다고 한다
Tip: 황태 덕장의 “덕”은 널이나 막대기 따위를 나뭇가지나 기둥 사이에 얹어 만든 시렁이나 선반을 말하며
“덕장”은 물고기 따위를 말리려고 “덕”을 매어 놓은 곳을 말한다
*인제 용대리의 황태 식당들*
황태 식당 맛집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여러 황태 식당중 1978년에 문을 연 "용바위 황태 식당"인데, 이 곳은 용대리 삼거리에서 진부령 방향으로 약 400미터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황태 명인"인 연영숙씨가 황태구이 정식을 처음으로 개발하여 유명해졌다
용대리 대표 먹거리인 황태 집의 최고 인기있는 장소라 한다
*황태 이야기*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황태 국물"...
노란 빛을 지닌 황태는 원래 고산 지대인 "함경도 지방의 토속 음식"으로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함경도에서 남쪽으로 내려 온 避亂民(피난민)들이 인제와 속초지역에서 자리를 잡아 황태 덕장을 만들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황태는 하늘이 내린다“라는 말이 있듯이 황태가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사람의 손이 서른 세 번이나 간다는 굉장히 까다로운 음식이다
그리고 황태는 사람의 정성만으로는 않되고, 3개월 이상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이 유지 되어야 하고, 말리는 기간 동안 비가 오지 않아야 비로소 황태가 만들어 지는것이다
밤 동안 꽁꽁 얼었다가, 낮에는 녹았다를 겨우 내내 반복을 하고, 이듬 해 봄 바람이 불 때, 말려지는 것이다
이러한 최상의 기후조건이 맞는 지역이 인제군 용대리 일대인데,
인제군 용대 3리에는 58개소나 되는 많은 황태 덕장이 몰려 있다
황태가 무수히 걸려 있는 황태 덕장의 장관은 "12월~3월"에 볼 수 있다
*미시령 옛길 선바위*
용대 삼거리에서 미시령 옛길로 올라 가다 보면, 오른 편에 우뚝 솟은 멋진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미시령 선 바위이다 선 바위에서 조금 더 오르다 보면 도적 폭포가 나타난다
*도적 폭포 입구*
*盜賊 爆布(도적 폭포)와 盜賊 沼(도적 소)
인제군 북면 이른바 “미시령 옛길”에 꽁, 꽁 숨어 있는 祕境(비경)이 바로 盜賊 爆布(도적 폭포)와 盜賊 沼(도적소)이다
盜賊 爆布(도적 폭포)는 옛날 이 근처에 도적들이 많이 잠복을 하고 있다가, 미시령을 넘는 행인들을 掠奪(약탈)하였다 하여 붙여진 섬뜻한 폭포이다
이들은 행인들의 財物(재물)을 턴 다음, 폭포 아래에 있는 沼(소)에 빠뜨려 죽였다 한다
도적 폭포의 주변은 깍아 지르는 奇巖 怪石(기암 괴석)과 천혜의 절벽 사이를 맑고 깨끗한 폭포수가 곤두박질 치면서 우람하게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瀑布水(폭포수) 아래에 서면,폭포의 轟音(굉음)에 고막이 터질 것 같으며, 물보라가 크게 일어 나면서 오싹하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입구의 도적 폭포 팬션에서 30분 걸리며, 미시령 정상에서 용대리로 이어지는 1.5키로 지점에 있으므로 미시령 상층부에 해당 하는 곳에 있는 셈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미시령 옛길을 헉, 헉 대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업 힐에 정신 없을 때,
자전거 라이딩 사망 사고 현장을 발견하여
잠시 내려 숙연한 마음으로 목례를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최근 부쩍 늘어 난 자전거 사고 예방을 위하여 우리 라이더들은 안전 라이딩에 신경을 써야 할것 같다
*미시령 정상까지 이제 1키로*
나는 오늘도 굵은 땅방울을 흘리며 라이딩을 한다
미시령 정상까지 이제 1키로.......
정상이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순 없지..........
*드디어 미시령 정상에 도착*
*彌矢嶺(미시령)*
미시령은 해발 고도 826 미터(도로표식:767 미터)로 북쪽에는 神仙峰(신선봉:1204 미터),남쪽으로는 黃鐵峰(황철봉:1381 미터)사이의 鞍部(안부:산의 능선이 말 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에 해당하는 고개이름이다
미시령은 인제군 북면과 고성군 토성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옛 56 번 지방 도로가 지나 간다(현재는 군도로 바뀜)
옛 56번 지방도로는 상당히 폭이 좁고, 가드 레일도 부실하여 겨울철에 눈이 내리면 가장 먼저 통행이 금지가 되었다
보통 한 번 통제가 되면, 봄에 눈이 녹을 때까지 장기간 폐쇄되기 일쑤다
특히 미시령 옛길인 "도적소 교차로~미시령 휴게소~원암 1 교차로의 11키로 구간"은 급한 경사와 수 많은 커브가 있어 상당히 위험하니, 이 구간을 라이딩할 때는 각별히 조심을 해야 한다
*나는 어허라다*
미시령 업힐에 성공한 후, 咆哮(포효)하고 있는 어허라.........
몇 해전......
나는 라이딩계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知人(지인)의 꾐에 빠져, 서울에서 미시령를 넘어 속초까지 새벽의 찬 이슬을 맞아가며 첫 장거리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첫 장거리 도전이었기 때문에 미시령 업힐은 성공하지 못하고 "끌바"를 해야하는 치욕을 당했지만, 속초까지의 완주 라이딩은 성공을 하였다
이 후.....
나는 猛虎(맹호)의 기세로, 破竹之勢(파죽지세)로 전국의 高山 峻嶺(고산 준령)을 헤집고 다니며, 라이딩 여행을 하기 시작 하였다.
백두대간의 52개령인 강원도의 만항재, 함백산,조침령,운탄 고도,운두령,구룡령,삽당령에서부터 저 멀리 지리산의 정령치, 성삼재(오도재, 지안재)까지 거의 모두 라이딩을 하였고, 평창 이효석 문학관을 찾아가기 위해 만나는 황재, 태기산....
영월에서 동강을 따라 정선 아우라지까지 가는 길목 ,해남 땅끝 마을 까지의 길목에서
만나는 수 많은 이름 모르는 고개등등등...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셀 수 없을 정도로 전국 각지를 무아 지경으로 헤집고 돌아 다닌 것 같다
그동안 아무런 사고 없었던 것에 감사할 뿐이다
*옛 미시령 휴게소와 미시령 옛길*
"九折羊腸(구절양장)"으로 굽이 굽이 이어지는 길....미시령 옛길
미시령 고개는 한계령과 함께 설악산의 "내설악의 인제와 속초의 외설악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로 한 때는 지나 가는 차량으로 언제나 붐볐으나 2006년 미시령 터널의 개통으로 “미시령 고갯길”은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없어 그야말로 추억속으로 사라져간 말 그대로 ”옛길“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미시령 정상에 있는 미시령 휴게소도 시설도 老朽化(노후화) 되고 ,많이 훼손된 채 쇠락하여 2011년 마침내 폐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시령 휴게소를 철거한 자리에 “생태 탐방 시설"을 조성할 예정이라 한다
이제 차량 통행이 뜸한 덕택에 수 많은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들이 이 곳 미시령에서 느릿 느릿 꼬불 꼬불, 눈과 마음을 호사 시키며 라이딩을 즐기게 되었다
*彌時坡嶺 詩碑(미시파령 시비)*
彌矢嶺(미시령) 標識石(표지석: 이승만 대통령 글씨) 뒷편에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李植(이식) 선생”의 詩碑(시비)가 세워져 있다
뜻밖에도 동쪽 산골 가는 길에 또 다시 미시령이 버티고 서 있구나
돌고 돌아 일백 굽이 건너야 할 강물이요
일천 겹 에워싸인 峻嶺(준령)이로세
한 발 삐끗하면 곧 바로 푸른 바다
손을 들면 잡히나니 푸른 구름
처음에는 디딜 땅도 없을 듯 겁나더니
하늘까지 오를 욕심 다시금 샘 솟는구나
***중략***
Tip:미시령의 옛 이름은 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 "彌時坡嶺(미시파령)"으로 적고 있는데, 풀이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가파른 고개”란 뜻이다
지금 현재 쓰고 있는 彌矢嶺(미시령)의 지명은 조선 후기 “여지도서, 즉 팔도의 읍지를 모아 만든 책”에서 처음 등장한 이름이다
*미시령 정상에서 속초 방향의 미시령 옛길*
미시령 정상에서 원암 1교차로까지 약 8키로 구간은 가파른 급경사로 짜릿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구비 구비 九折羊腸(구절양장)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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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의 싱그럽고 풋풋한 香氣(향기)는 몸에 감길 듯 내 주위를 맴 돌고, 연신 感歎(감탄)하며 저절로 벌어진 입은 다물 수가 없다
끝 없이 굽이 치며 흐르는 맑고 청정한 미시령의 溪流(계류)와 溪流(계류).. 그토록 힘들게 업힐 하며 올라왔던 라이딩 길목 길목은, 마치 뱀의 허리 처럼 구비 구비 휘감기며, 흰띠를 두른듯이 가물 가물하게 보였다,
끝 없이 이어지며,꾸불 꾸불 돌고 돌아가는 九折羊腸(구절양장:양의 창자처럼 이리 저리 꼬부라지는 험한 길)의 비단 길이었다
구비 구비마다 아름다운 風光(풍광)과 絶景(절경)을 演出(연출) 하고 있었다
雲上氣稟(운상기품:세속적이거나 천함을 벗어난 고상한 기질과 품성)의 枯死木(고사목)도 늠름하고, 꿋꿋하게 靑雲(청운)을 꿈을 품은 듯이, 하늘을 향해 선비의 氣槪(기개)로 뻗어 있는 모습이 여기 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여기가 정녕 天上(천상)의 仙女(선녀)가 노닐던 곳이 아닐런지....
여기가 정녕 神仙(신선)이 모여 산다는 武陵桃源(무릉도원)이 아닐런지.....
흡사 東洋畵(동양화)의 畵幅(화폭)속을 거니는 듯한 感興(감흥)이 솟아 났고
몸과 마음이 꽃 가마를 타고 虛空(허공)에 붕 뜬 恍惚(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아주 오래 전 感銘(감명) 깊게 읽었던 鄭飛石(정비석) 선생의 名隨筆(명수필)인 山情有恨(산정유한:금강산 비로봉 아래에 있는 마의 태자의 무덤을 찾아가는 내용)의 珠玉(주옥)같이 아름다운 구절, 구절이 머리에 떠 올랐다
나의 입가에서는 서툴지만 멋진 詩(시) 한 수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한참 동안 한가로히 神仙(신선) 놀음인양, 時間(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맑고 淸淨(청정)한 溪流(계류)바라 보기도 하고,수 십 굽이 峽谷(협곡)을 조망하고 있노라니
초록 香氣(향기)가 가득찬 미시령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취해, 휘청 거릴 것 같았다
숨 죽일 듯, 고요하고 한가하고 아늑한 大自然(대자연)의 넉넉한 품에 안기어 永遠(영원)을 누리는想像(상상)을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絶景(절경)에 두 눈이 멀어 길을 잃고, 永遠(영원)히 彷徨(방황)을 하는 想像(상상)도 하였다
온통, 드 넓은 미시령 산자락이 이제 오색 빛깔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時期(시기)여서, 형형색색의 단풍 숲을 통채로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폐속 깊이 피톤치드가 가득 차, 초록 人間(인간)이 되어 버릴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世俗(세속)에서 傷處(상처) 받았던 내 靈魂(영혼)이 저절로 깨끗히 治癒(치유)되는것만 같은
그야말로 이루 形言(형언) 할 수 없는幸福(행복)한 기분이었다
힘겨운 업힐 후의 신나는 다운 힐의 행복한 감정은 이루 형언 할 수가 없다
*미시령 엣길에서 바라본 울산 바위*
우와! 우와! 드디어 우리나라 최대의 岩峰群(암봉군)인 "울산 바위"가 보이기 시작을 하였다
절세 미인이 골짝기에 고이 숨어 있다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항공 사진으로 본 울산 바위(873미터:명승 제100호)*(1)
* 울산 바위의 由來(유래)*
1,동국여지승람에는 기이한 봉우리들이 구불 구불하여 "마치 울타리를 친 것 같이 보인다" 하여 울산 바위라 하였다
2, 옛날 造物主(조물주)가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산인 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名山(명산)과 바위를 모집할 때, 울산을 대표하는 울산 바위가 금강산에 열리는 景勝 審査(경승 심사)에 참가하려고 먼길을 달려 왔으나, 거대한 몸집으로 시기를 놓쳐 고향으로 되돌아 가던 중, 설악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만 설악산에 주저 앉아서 "울산 지명을 따" 울산 바위라 하였다
3,바위가 많은 울산 바위에서는 산에서 바람이 통과하는 소리가 마치 하늘이 울고 있는것 같이 들려 “우는 소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變形(변형)이 되어 "울산 바위"이 되었다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울산 바위를 天吼山(천후산:하늘이 우는 산)이라고도 한다
Tip: 天吼地動(천후지동):
"설악 8奇(기)"의 하나로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면, 울산 바위는 하늘이 온통 찢어지는 듯 울부짖고, 땅이 갈라지듯 地軸(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의 신비함과 울림의 기이함을 말한다
*항공 사진으로 본 울산 바위(873미터:명승 제100호)*(2)
백두 대간의 등뼈로 억겁의 風霜(풍상)을 겪었을 저 울산 바위의 웅대하고 장엄한 위용을 보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은가?
이렇한 설악산을 혹자는 "隱者(은자)의 산"이라 했고(홍태유,. 설악산 유람기)
어떤 이는 지금까지 많은 名山(명산)을 다녀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금강산만이 설악산과 우위를 다툴 수 있고, 다른 산은 견 줄 바 못된다고 하였으며,
또한 어떤 이는 설악산을 "隱(은)" "聖(성)". "奇(기)" "靈(영)"
이 네 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설악산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隱者(은지)의 산"이요
德(덕)을 숨긴 君子(군자)같은 산이며, 산중의 산인 "聖人(성인)같은 산"이요
물과 돌들이 끊이지 않은 "奇異(기이)한 산"이며,
끝으로 설악산은 변화가 많은 물은 웅장하고 그윽하고 교묘하면서 신령스러운 "靈(영)적인 산"이라는
뜻이다
한편 울산 바위는 설악산 주차장이 있는 설악산 소공원에서 약 3.8키로로 편도 약 2시간 거리이다
울산 바위는 옛 기록에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 때, 산 전체가 雷聲(뇌성)처럼 울리어,. 마치 산이 울고, 하늘이 으르렁거리며, 우는 것같아 마치 하늘이 우는 산이란 뜻의 “天吼山(천후산)"이라고도 하였다
그래서 “우는 산”이 우리말을 漢字化(한자화)하여 蔚山(울산)이라 하였다는 說(설)이 있는등 다양한 說(설)이 존재한다.
설악산 시인으로 현재 설악산 품에서 잠들고 있는 "이성선 시인"은 울산 바위를 이렇게 노래 하였다
*天吼牛(천후우)의 울음*
저녁 산에서
소 울음 소리가 크게 들려
고개를 돌리니
수천 마리 소가 등을 맞대고 가는
산 능선들 가운데서
達磨(달마)가 天吼牛(천후우)를 몰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우주 앞에 구름 옷 벗어 버리고
막 새로 태어나는 설악산
**(이성선 시인)**
"명승 제100호"로 지정된 이 울산 바위는 거대한 岩峰(암봉)으로 속초시 설악동과 고성군 토성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높이 873미터로 설악산 풍경을 대표하는 수직 암봉이다
둘레가 4키로에 달하며, 6개의 거대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봉우리 정상부에는 항아리 모양의 구멍이 5개가 있다 한다
頂上(정상)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세찬 바람이 분다
울산바위는 웅장하지만 이상하게도 위압적이거나 두려움을 주지 않고, 그저 편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친구처럼 느껴진다
산에서는 이정표 거리를 믿지 말라는 俗說(속설)이 있다
이제 정상까지 5분 거리라는 팻말을 보고도 한참을 꾸역 꾸역 올라가는 수고를 해야했다
*雪嶽洞(설악동) 소나무(천연 기념물 제351호)*
속초에서 설악동으로 들어가는 길목, 즉 설악산 탐방 안내소 앞 삼거리에 있는 이 명품 소나무는 樹齡(수령)이 500년으로 높이 16.5 미터, 둘레 4.03 미터의 크기로 훤칠하게 잘 생겼지만, 下體(하체)에 비해 上體(상체)가 약간 빈약한 느낌이 든다
지상 2 미터에서 분리된 큰 가지 2개는 枯死(고사)했고,지상 8 미터에서 크게 2개의 가지로 갈라져 있다
나무 밑둥에 돌을 쌓으면 長壽(장수)한다는 俗說(속설) 때문인지 주변 길가에는 돌이 많이 쌓여 있다
설악동 마을의 서낭당 나무였으나, 마을은 사라지고,나무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며, 설악동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香城寺(향성사) 3층 석탑(보 물 제144호)*
신흥사 전신인 향성사 옛터에 남아 있는 이 3층 석탑은 후박하고 온아한 품격과 옥개석등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은 거의 직선에 가깝게 단조로운 처리를 하였다
설악동 소공원으로 들어 가는 입구인 "설악 캔싱턴 스타 호텔" 앞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曺溪禪風 始原道場 雪嶽山門(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
설악 소공원 입구에 있는 높이 14 미터,가로 17 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曺溪禪風 始原道場 雪嶽山門(조계선풍 시원도량 설악산문)은 2014년 신응수 대 목장의 총괄로 세워진 木造 山門(목조 산문)으로, 글씨는 서에가 김양동 선생의 작품이다
*統一 念願 舍利塔(통일 염원 사리탑)과 두 그루의 금강 소나무*
설악산 국립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는 이 統一 念願 舍利塔(통일 염원 사리탑)과 금강 소나무는
원래 탑은 없었고, 두 그루의 금강송만 있어 시원한 느낌과 餘白(여백)의 美(미)가 있어 주위 경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신흥사 관계자들이 無知(무지)하게도 이 두 그루 금강송 앞에 美的(미적) 정통성도 없는
비균형적인 통일 염원 사리탑 세워 놓아 답답함을 느끼게 하여 경관을 망쳐 놓았다
문화적 수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金剛松(금강송) 두 그루를 배경으로 세워진 이 統一 念願 舍利塔(통일 염원 사리탑)은 설악산의 맑은 정기와 부처님을 향한 불심을 합하여 우리 민족의 완전한 통일과 불국 정토 건설을 염원하는 두 마음을 담아 세웠다 한다
*반달곰 조형물*
신흥사 입구에 있는 이 반달 곰 조형물은 대표적인 "인증샷" 장소이다
지리산 국립 공원에서 현재 “種 復元(종 복원)” 작업이 진행중인 천연 기념물 제329호인 반달 가슴 곰(반달 곰)은 북극 곰과 불 곰(큰 곰)에 비해 현저히 몸집이 작고 가슴에 "V자형"의 흰 무늬가 있다
성질이 매우 온순하며 먹성이 좋다 한다
(지리산이 아닌 설악산에 왜 이 반달 곰 조형물을 세워 놓았는지 약간 의아스럽다)
*토왕성 폭포 가는 갈림길*
설악동 소공원의 반달곰 조형물이 있는 곳에서 부터, 길이 신흥사, 울산바위로 가는길(오른 쪽)과 토왕성 폭포로 가는 길(왼쪽)이 나뉘어 진다
토왕성 폭포는 암장 등반 허락을 받고 갈 수 있으나, 최근 토왕성 폭포를 1키로 떨어진 지점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생겨 누구나 볼 수 있다(설악동 소공원에서 약 2.,7키로 지점)
Tip: 토왕성 폭포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해 비치니 붉은 안개 피어 오르고)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아득히 폭포수를 바라보니 긴 강이 하늘에 걸렸네)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물줄기 내리 쏟아 길이 삼천자)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 듯 하네)
중국의 詩仙(시선)이라 불리는 李白(이백)은 廬山 瀑布(여산 폭포)의 비경에 취해 이런 시를 남겼지만
조선 숙종 때 문인인 김창흡은 "土王城 瀑布(토왕성 폭포)를 중국의 천하 명산이라고 자랑하는 廬山 瀑布(여산 폭포)보다 낫다"고 하였다
Tip: 대승 폭포
*대 승 폭 포*
몇 해전 한계령 라이딩 때 답사한 대승 폭포의 위용!
대승 폭포는 한계령의 장수대에서 북쪽으로 1키로 지점에 있다
금강산의 구룡폭포,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이다
*新興寺 一柱門(신흥사 일주문)*
원래 寺刹(사찰)의 一柱門(일주문)은 分別心(분별심)을 버리고 淸淨(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신흥사는 설악동의 대표 사찰로 당나라에서 佛道(불도)를 닦고 귀국한 "慈藏律師(자장율사)"가 652년에
“향성사“로, "義湘大師(의상대사)"가 ”선정사“로 창건을 하였지만, 번번히 燒失(소실)되었고, 이를 가슴 아파하던 세 스님이 신의 啓示(계시)로, 이 新興寺(신흥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신흥사 統一 大佛(통일 대불)*
이 거대한 통일 대불은 좌대 높이 4.3미터,대불 높이 14.6미터로 청동 108톤이 사용되었다 한다
청동좌불대상 몸안에는 "대불 몸속 법당"이 있다
*신흥사 四天王門(사찬왕문)*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안양암, 내원암,흔들 바위, 계조암, 울산 바위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
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까지는 그다지 길이 험하지 않으나, 이 후 울산 바위에 이르기 까지는 가파른 험한 계단이 이어지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안 양 암*
울산 바위로 올라가는 초입 길목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인 안양암의 柱聯(주련)은 한글로 쓰여져 있었다
"如來(여래)의 한량없는 그 모습
모든 중생들 안락케 하는 캄캄한 번뇌 없애 버리고‘
온갖 것 두루 두루 비치며“
*악기를 만드는 나무*
우리나라 나무중 뒤틀리지 않고 나뭇결이 매우 아름다우며, 불에 잘 타지않고, 습기에도 강한 오동나무는 재질이 뛰어나 옛날부터 가야금,거문고, 경대.문갑등을 만드는 고급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마당에 梧桐(오동)나무를 심었는데, 성장 속도가 빨라, 딸이 시집 갈 나이가 되면, 가구재로 쓸 수 있어서 장롱을 만들어 함께 보냈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 가시면 "梧桐 喪杖(오동 상장)"이라 하여 喪主(상주)는 오동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사용하였다 한다
*內 院 庵(내원암)*
울산 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인 안양암을 지나서, 그리고 계조암 못 미쳐서 있는 이 신흥사 부속 암자인 "內 院 庵(내원암)"은
아무도 찾지 않은 적막한 분위기의 암자이다
의상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부터 흔들 바위가 있는 계조암까지는 약 600 미터이다
나는 저 아래에 있는 부자 절인 신흥사보다 가난한 절인 이렇게 허술하고 허물어 질것 같은 한가한 분위기의 사찰이 너무 좋다
허나 아래에 있는 신흥사와 비교되어 너무나 초라하다
*흔들 바위 초입의 赤松(적송) *
흔들 바위가 있는 계조암이 다가오니, 웅대한 울산 바위가 곧 손에 잡힐듯, 바로 뒤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탄탄이 짜인 像(상)은 금강산이 勝(승)하다고 하겠지만, 너그러이 펴인 맛은 설악산이 도리어 勝(승)하다고 설악산을 찬양 하였다
*繼祖庵(계조암)*(1)
高嶽峨菴(고악아암)
智人所居(지인소거)
(높은 산 험한 봉우리는 지혜있는 사람들이 거쳐야 할 곳이요)
碧松深谷(벽촌심곡)
行者所棲(행자소서)
(푸른 소나무 깊은 계곡은 수행자가 살아 갈 곳이다)
**원효 대사**
목탁 바위를뚫고 석굴 사원을 지은
繼祖庵(계조암)은 석굴앞 "쌍용 바위"는 대문 역할을 하고,그 옆에 있는 "식당암"이라는 곳에는 약 백여명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큰 바위인데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盤石(반석)이다
그리고 흔들 바위는 이 식당암 반석위에 놓여져 있다
계조암으로 올라 가는 돌 계단은 번뇌를 하나 하나 탈각시키는 修行者(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繼祖庵(계조암)*(2)
"神通第一羅漢石窟(신통제일나한석굴)"이라고 쓰여진
이 글씨는 古峰(고봉) 스님의 글씨로
이 곳은 중생들의 간절한 소원을 곧 잘 들어 주는 靈驗(영험)있는 神通力(신통력)을 가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달마 대사(선종의 시조)의 둥근 형상을 닮았다 하여 "達磨峰(달마봉:635미터)"이라 이름이 붙여진 달마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繼祖庵(계조암)은 중생의 無明(무명)을 밝히는 목탁 바위의 목탁속에 들어 있어 다른 절보다 일찍 공부를 끝낼 수 있어 祖師(조사)칭호를 얻을 만큼 법력이 높은 원효대사,동산 스님,봉정스님,지각 스님등을 계속하여 배출하여 繼祖庵(계조암)이라 하였다 한다
즉 이름 높은 祖師(조사)들이 이 곳에서 깨달음을 얻고 대 자유인의 길을 걸어 갔다
繼祖庵(계조암)은 대표적인 "轉石洞穴(전석동혈)"로 바위와 바위가 서로 맞대고 있어 하나의 자연 동굴을 형성하고 있다
繼祖庵(계조암)은 주위 경관으로 보아 天惠(천혜)의 聖地(성지)임을 누구나 금방 눈치챌 수 있다
Tip: 轉石洞穴(전석동혈)
"雪嶽(설악) 8奇(기)"의 하나로, 繼祖庵(계조암)의 바위와 같이 바위와 바위가 서로 맞대고, 하나의 자연 동굴을 형성하고 있는 신비로움을 말한다
*繼祖庵(계조암)*(3 )
목탁 바위속의 관음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으로 협시 보살로 좌,우에 관세음 보살과 대세지 보살을 모셨다
옆의 삼성각에는 나반 존자상이 봉안되어 있다
繼祖庵(계조암)의 식당암*
우각석(흔들 바위)를 받치고 있는 이 繼祖庵(계조암)의 식당암은 약 백여명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큰 바위인데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盤石(반석)이다
* 繼祖庵(계조암)앞의 거대한 岩壁(암벽)*
繼祖庵(계조암)앞에 있는 사람을 압도하는 이 어마 어마한 岩壁(암벽)에는 무수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熱河日記(열하일기:박지원이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의 생일 축하 사절로 청나라에 다녀온 일을 적은 여행기이다. 당시 건륭제가 피서 산장인 열하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열하까지 다녀 왔다, 열하는 현재의 하북성을 말한다) 로 유명한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 서정보등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한 "繼祖庵(계조암)"이란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尹師國(윤사국)의 글씨라 한다
*흔들 바위*
흔들 바위는 설악동 탐방 센터에서 약 2.8키로 지점인 繼祖庵(계조암) 앞 마당에 있다
밀면 흔들리지만, 떨어지지 않는데
臥牛岩(와우암)의 머리 부분에 있어 "牛角石(우각석:쇠뿔 바위)"이라고도 한다
흔들 바위는 원래 쇠뿔처럼 2개가 있었는데, 風水地利家(풍수지리가)가 佛家(불가)의 靈氣(영기)가 넘쳐 흘러 이를 시기하여 1개를 떨어 뜨렸다 한다
신기하게 크고 둥근 바위를 한사람이 밀던 100사람이 밀던 움직이는 정도가 같다
(흔들 바위는 계조암에 있는 바위인데, 왜 사람들은 계조암보다는 흔들 바위에 더 열광하는 걸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울산 바위는 흔들 바위 바로 뒷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약 1키로 거리이다
Tip: 巨岩動石(거암동석) "雪嶽(설악) 8奇(기)"의 하나로 흔들 바위와 같이 거암 괴석이 움직이는 신비로움을 말한다
*소나무 눈물을 흘리다*
송진은 소나무가 다쳤을 때 분비되는 무색 투명한 액체이다
송진은 예로부터 약으로 쓰였으며 호롱불을 밝힐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 때는 비행기 연료로 무분별하게 채취되었으며
산에 살던 화전민들은 "코쿨"이란 난로의 원료로 송진을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설악산 소나무들에는 이 때 채취했던 흔적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끈적 끈적 흘러 내린 송진은 아마도 소나무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설악산의 男(남)...서어나무*
"설악산의 男(남)이라는 서어나무"는 오래되고 잘 보존된 숲에서 자라난다
서어 나무는 매끈하게 빛나는 회색 껍질이 특징이며, 보디 빌딩한 선수처럼 근육미가 느껴져 서어 나무를 말할 때 "근육질의 거인"이라는 별명을 쓴다
서어 나무 목재는 매우 고급스러워 피아노 공명판으로 사용되거나 건축용 목재로 사용한다
*설악산의 女(여)...사람주 나무*
"설악산의 女(여)"라는 사람주 나무"의 껍질은 밝고 매끄러운 것이 여자의 피부와 같고,가을의 단풍은 참으로 고와, 부끄러워 하는 여인의 얼굴빛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나무이다
울산 바위를 오르다 보면 하얀색을 띤 사람주 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설악산 단풍*(1)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이원규 시인)
*설악산 단풍*(2)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放下着(방하착)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을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하게, 우리도 물이 드느날 (도종환 시인)
************************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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