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마지막 날-아프리카박물관, 세계자동차박물관
제주여행의 마지막 날, 느지막이 잠에서 깬 나는 침소를 벗어나 옥상으로 가 주변 풍광을 살펴봤다. 부슬비가 소리도 없이 내리는 우울한 봄날 아침이었다. 숙소인 「롯데아트빌라스」는 마치 숲속의 궁전 마냥 고즈넉이 물기 젖은 주변의 녹색에 잠겨 있었다. TV뉴스는 낮이나 되어서야 비가 그치겠다고 쉽게 믿기 어려운 일기예보를 내놓았다. 낭패도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설령 비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내린다 하면 진정 폭우 정도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그렇기만 하다면 못다한 제주 명소를 오전 중으로 몇 곳 정도는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억울함이 조금은 덜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10시 30분 우리는 짐을 정리해 숙소를 나섰다. 다시 찾을 수 있으려는지, 이것으로 내 생애엔 제주여행이 끝이 되려는지, 도시 장담할 수 없는 일이건만 어쩐지 다시는 내가 제주를 찾는 일은 없을 것 같은 막연하고 허탈한 생각이 기분을 미묘하게, 서글프게 했다.
“어디로 갈까요?” 딸애가 운전석에 앉으면서 내게 묻는다.
“어차피 공항으로 가는 길이니까 인근의 ‘아프리카박물관’으로 가보자. 똘똘이가 좋아할 것 같아.”
똘똘이가 좋아하면 나 역시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아프리카박물관’은 불과 30여 분의 거리에 있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대로 날씨가 개어버린 것일까.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당에 비가 오면 어떻고 개이면 어떻겠는가. 심술궂게 날씨가 은근히 사람을 약 올리네.
어제 저녁 만찬. 아들 내외가 시내엘 가서 장만해 온 것인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실제 맛도 있었다. 이걸 다섯 식구가 다 먹질 못해 남겼다. 소식하는 사람들로만 식구가 꾸려져서일까.
이른 아침(08:00)의 숙소 주변 풍경이다. 비도 그치고 안개도 많이 옅어졌다.
똘똘이 가족이 기념샷을 날리고 있다.
귀가를 위해 숙소를 나서고 있다. 이런 경우를 시원섭섭하다고 하는가.
도로에만 나서면 안개는 도시를 몽환 속으로 삼켜버린다. 10시 53분 현재.
아프리카박물관 건물로 말리의 「젠네대사원」을 모티브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젠네대사원」은 198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진흙으로 지어진 건물 중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아프리카박물관 건물은 아프리카 대륙 문화의 정통성을 훼손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아프리카」를 소개하고자 하는 박물관측의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사파리 파크(SAFARI PARK)
아프리카어로 ‘사냥을 위한 여행’이라는 뜻의 사파리(safari)는 현대에 이르러 ‘신이 허락한 자연의 품에 안기는 여행’을 의미한다.
아프리카박물관의 사파리파크는 아름다운 자연과 야생 속 동물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세계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한사 토이(HANSA TOY)로 꾸며진 사파리 파크는 각 동물들의 섬세한 생김새 묘사와 표정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이며 실제 크기의 동물 인형을 만지고, 타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체험코너를 통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게끔 꾸며져 있다.
아프리카 민속공연단 「잘리아」는 ‘젬베(Djembe)’라 불리는 서아프리카 전통 타악기를 중심으로 연주하는 세네갈 공연단이다.
「잘리아」팀은 세네갈 전통춤인 ‘쿠쿠댄스’를 비롯하여 젬베, 둥둥, 코라 연주를 통해 서아프리카의 열정적인 리듬과 신나는 아프리카 음악문화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우리 똘똘이도 작은 북을 건네받아 공연단의 리듬에 발맞춰 신나게 북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아프리카의 미술품과 유물전시
아프리카의 미술품은 구상적, 추상적, 신비적, 종교적인 면과 더불어 자유분방하면서도 활력있고 투박하면서도 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곧 다양하면서도 깊이있는 감상을 가능케 한다.
아프리카 미술은 20세기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피카소, 마티스, 드랭 등의 화가들은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큐비즘(입체파), 포비즘(야수파)을 창조하였다.
아프리카박물관에서 “세계자동차박물관”까지는 20여 분 거리였다. 모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도로를 주행하는 기분이 어느 듯 우울감을 몰아내고 있었다.
세계자동차박물관은 세계의 희귀 클래식 자동차 90여 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아마도 자동차 마니아인 어느 개인이 소장한 자동차를 기꺼이 남들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외는 이렇듯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똘똘이도 명차에 올라 탄 기분이 째지리만큼 흥분하였을 성싶으나 표정은 언제나 진지한 모드다.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 무료 교통체험장이 있어 어린이들이 보호자와 더불어 직접 전기자동차를 시운전하며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자동차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테마가 있는 체험장. 체험을 마친 어린이에게는 ‘어린이 국제 면허증’을 발급해 준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됐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자동차의 변신은 물론 자동차의 바퀴 또한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재질과 형태의 변화는 산업기술의 발전을 도모함은 물론이려니와 디자인에도 기꺼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동차의 전시는 4개의 분야로 나눠 시대별, 기능별, 디자인별로 다양하게 구분되어 관람객들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다.
한 세기를 풍미한 최고의 명차로 손꼽히는 메르세데스 벤츠, 벤틀리, 롤스로이스 그리고 최고의 스피드를 갈구하는 남자들의 로망 이 세상 최고의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도 자태를 뽐내며 얼굴을 내밀고 있다.무엇보다 일천한 대한민국의 자동차 역사 가운데 초창기의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음은 감격스럽다.
자동차 역사상 전설의 명차로 기억되는 ‘Benz 300SL’, ‘Patent’, ‘Bayard’의 아름다운 위용과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있으며,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태엽자동차에서부터 시작된 자동차의 무한 변신, 진보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흔치않은 유쾌한 체험이다.
미국 대통령이 타던 차일까. 나라도 크지만 미국차도 크기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효시가 된 「시발택시」. 드럼통을 두드려 차체를 만들고, 중고 지프 엔진을 얹어 만든 걸작(?)이다. 오늘날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이 되었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자동차박물관을 물러나오니 시계가 오후 1시 30분을 넘어 있었다. 이로써 제주 탐방은 끝을 맺었고, 점심식사를 위해 딸애가 유명한 흑돼지 맛집이라며 익히 아는 듯 차를 몰았다.
가까운 곳인 줄 알았더니 40분이나 걸렸다. 꼬불꼬불 돌고 돌아 식당에 도착하니 소문에 어울리지 않게 식당은 자그만 하고 조금은 허름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손님이라곤 우리가족들 뿐이었다. 아무려면 어떠랴, 친절하고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으면 짱이지!
솔직히 실망했다. 맛도 맛이려니와 식당주인 혼자서 서빙하고 주방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영 불편했다. 어떤 맛 칼럼니스트가 소개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질과 광고가 이토록 괴리가 있을 줄이야. 하긴 내 입이 좀 별나긴 하지.
공항으로 가는 길, 비가 내리고 안개는 무어라 말하기도 어렵지 않게 온통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변덕도 심하다, 제주의 날씨. 전부터 알고 있기는 했다. 제주도를 둘로 나뉘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날씨가 달랐다. 그나마 서귀포시의 날씨가 온화한 모양인지 제주에서 감귤을 사려면 서귀포산이 맛있으므로 그걸 사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공항근처 렌터카 대여소에 도착하니 4시15분, 렌터카를 반납하고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곧바로 공항으로 왔다. 탑승을 하려면 약 한 시간 반의 여유가 있었다. 며느리는 미리 수속을 밟아 탑승장에서 대기하는 것이 낫다하기에 그러려니 하고 우리는 따를 뿐이었다. 대기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면서 졸음이 슬금슬금 엄습해 왔다. 어지간히 곤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별로 크게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몸에게는 제대로 힘이 들었나 보았다. 그제야 문득 내가 온전한 몸이 아니었음을 돌이킬 수가 있었다. 허리며 무릎관절이 갑자기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것도 여행이랄 수가 있을까. 아내의 칠순 덕택으로 아이들이 마련한 모처럼의 가족여행이었는데 그놈의 봄비 때문에 망쳐버렸으니 언짢은 투정이 나올 만도 했다. 아쉬움이 큰 여행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의 정성이 빛바랜 듯해서 더욱 가슴이 저렸다. 돈도 들일만큼 들이고, 수고는 수고대로 했음에도 정작 부모님 마음에는 흡족함이 미진할 터인즉 민망함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하는 심정들이겠지만 그런 마음 씀이 갸륵해서라도 만면에 웃음꽃을 피워 주어야 마땅할 듯했다. 더더구나 시대상황이 젊은이들을 암담케 하며 저네들 생존전략을 세우기에도 숨가쁠 지경인데 부모세대가 덤터기를 씌우게 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아닐 것이었다. 우리 내외는 충분히 만족한 듯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 하였다. 정말이지 자식들 앞에 베푼 것은 없으면서 부모라며 대접을 받으려니 뒷골이 간지럽고 얼굴에 철판을 깔은 듯 낯 두꺼움을 내심으로 부끄럽게 감수해야 했다.
새아기가 말했다.
“아버님, 어쩌다 보니 이번 여행은 너무 아쉽게 진행되어 죄송해요. 금년 가을에 명재(똘똘이) 고모 결혼하게 되면 그때 우리 다시 제주도 여행 와요.”
라는 새아기의 말을 되받아 나는
"이번에 늬들 애 많이 썼다. 덕분에 제주도 안개는 실컷 보았지 않니.”
“ㅋ ㅋ ㅋ…”
똘똘이는 무슨 뜻인 줄 모르면서도 우리 따라 저 나름으로 박장대소 한다.
사람이란 어차피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이 아니던가.
우리의 삶 자체가 고달픈 여정에 비유된다. 일생이 길 위의 나그네다. 시인 천상병은 소풍(消風)이라고 말하더라만 여행이든 소풍이든 한 곳에 머물러 있음이 허락되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안식 없는 일회성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 곰곰이 생각하노라면 이제 나도 여행의 끝자락에 와 있다는 느낌으로 깊은 숨을 몰아 쉴 때가 있다.
“모든 것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를 향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보는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씩, 욕심도, 꿈도, 주변의 어지러운 삶의 찌꺼기들을 버려 가노라면 한 결 떠나기 수월하리라. 여행은 우리에게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며, 진정으로 갖고 떠나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결국 여행이란 인간에게 지혜의 삶을 발굴케 하는 위대한 여정이라 할만하다.
첫댓글 마치 제주도에 있는듯한 사진과 글
잘보고 갑니다 ~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그러다 불현듯이 당장 행랑을 챙겨 제주도로 가실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