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놈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내가 이제야 말하는데
너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영순이
좋아했지" 난 순간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 언제나 태양처럼 반짝이던 얼굴, 무심코 지나쳤다가도 어느 틈엔가 삐쭉이 내민 얼굴에 남모르게 미소 짓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영순이는 공부를 잘해서 교탁 바로 앞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단정한 머리에 얼굴은 동그러니 웃을 땐 선녀 같았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사랑을 마음속에 키워갔다.
서울로 이사하고 결혼하며 애써 잊은 줄 알았는데 동창 놈의 이야기에 나의 속마음을 들켜버려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동창 놈에게 몰아붙였다.
" 그래, 영순이는 잘살고 있지?"
"말도 마라, 영순이가 얼마나 공부도 잘하고 똘똘했냐?"
"근데 갸가 너무 세상을 일찍 나온 죄겠지" 그 시대는 여자는 공부시키지도 않고 남자 형제 뒷바라지하는데 딸들이 동원되던
시절이지 않았냐? 영순이도 지 보다 공부 못한 지 오빠 남동생 공부시킨다고 식모살이로 공장으로 돈 벌다가 나이차 결혼했는데 초등학교만 나온 여자가 어디 좋은 혼처를 만나기가
그리 쉽겠냐?
나는 걔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나도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누나와 여동생의 희생을 등에 업고 대학 나와서 순조롭게 사회생활했었지.
누나와 여동생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나가 형편이 어려워 조카의 등록금을 빌리려 왔을 때 나는 아내에게 미루고 짐짓
먼 산만 바라보지 않았던가.
"형님 애들 아빠가 월급쟁이인데 먼 돈이 있나요?
우리가 이리 사는 것도 친정에서 다 도와주어서이지요!"
누나는 두 번 다시 우리 집을 찾지 않았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살면서 나를 위해 희생했던 여자 형제를 의 고통이나 아픔은 애써 외면했다.
누나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누나가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주어서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배고픔을 몰랐다.
누나와 여동생이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오지 않았다면 아무 어려움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었겠는가!
나는 읍내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담한 요양원이 나를 맞았다.
나는 영순이 들 면회했다.
초라한 할머니가 요양사 손에 이끌려서 나왔다.
그렇게 맑고 초롱초롱하던 눈빛은
어데 가고 초점 잃은 눈동자가 나를 반겼다.
"아버지 어데 갔다 이제 오나요?
영순이는 아버지 생각에 한숨도 못 잦어요?"
영순이는 나를 어린 시절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영순이를 돌려보내고 원장님과 상담했다. 보증금 3억에 월 60만 원이면 평생 아무 염려 없이 요양원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서울로 올라와서 집이 25억에 매매가 되었다. 세 자식들을 불려서 내가 절반, 자녀들에게는 삼등분으로 나누어주겠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딸이 "큰오빠는 48평 사는데 내가 더 받아야 해." 큰애가 "나는 장남이야 내가 더 받아야지." 막내는
"난 아직 집도 없는데 내가 더 받아야 해." 하며 옥신각신 했다.
나는 이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한 푼도 못준다고 못을 박자 자식들도 나의 뜻에 동의했다.
양로원에 와서 지낸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영순이가 한 건물에서 생활하고 숨 쉰다는 것은 나에게 또 다른 기쁨이었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영순이 방
앞에서 서성거렸다. 영순이와 같이 밥을 먹고 양로원 잔디밭을 걸었다. 나는 어느 날 원장님이 나를 불렸다.
영순이와 내가 각별한 줄 아는 원장님이 "영순 할머니의 아드님이 치킨가게가 장사가 안되어서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합니다."
"영순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간데요, 글쎄." 영순이가 이곳을 나가면 아들이 사는 지하방에서 생활할 것이다. 낮에는 열쇠로 밖에서 문을 잠가서 햇볕은 보지도 못할 것이다. 먹는 것 또한 제때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사고가 날것이 염려되어서 가스불도 모두 다 잠글 것이다. 그 어두운 공간에서 죽을 날만 기다릴 것이다.
나는 영순이의 아들을 만났다. 나는 영순이를 오랫동안 사랑한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소개했다.
늦었지만 가족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보증금은 찾아가되 난 영순이와 이곳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안도의 표정이 영순의 아들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다음날 영순이의 손을 꼭 잡고 읍내
주민 센터에 들어가 혼인신고를 마쳤다.
나도 이제 누구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에 뿌듯했다.
아마도, 이것은 남자로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살았던 속죄 인지도 모르겠다.
아님, 나를 위해 누나와 여동생을 희생시켰던 용서의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죽은 아내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깊은 반성 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시대에 태어난 모든 딸들에게 돌려드리는 나의 마지막 양심 인지도 모르겠다.
영순이가 "아버지 맛난 것 먹으려 가요."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붉은 가루를 뿌리며 넘어가던 저녁노을이 걸음을 멈추고 우리들을 비추고 있었다.
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용량이 이것밖에 되지않아서요~
읽을때마다 느끼는데 나국화1님 은 타고난 글쟁이 같아요
매끄러우면서 세련된 단어설정
지나치지않게 적당히 들어간 형용사
정확한 문맥에 정돈된 주제...
저같은 사람은 범접하기 어려운 전문가의 글 입니다
대상 기대해요
앗싸!
대상보다 어깨가 하늘을 날라고 하네요
감사 김사
이것이 내가 말한것이 전달됬다는 환희~~~
치매에 걸린 초등학교 동창을 새 신부로 맞으시고 해 저무는 고갯길을 넘어가실 작정이군요. 박수를 보내면서도 눈에 눈물 글썽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오늘도 편안한 휴일되세요 ~
몇편의 글들을
몰아 읽었습니다..
소재도 다양하시고
글이 참 재미집니다..
이래서 타고난 글쟁이란
말이 있나봅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오늘도 편안한 휴일되세요 ~
요양원 ㆍ 인생길 마지막 정리하는 장소 ㆍ가고싶지 않은 장소 ㆍ 장작값 두둑히가지고 히말라야 언저리 네팔리언한테 부탁해서 하얀 설산이 보이는곳에 뿌려지는게 소망입니다 ㆍ
나국화님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정리됩니다 ㆍ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오늘도 편안한 휴일되세요 ~
3자녀들께 유산 분배후-
첫사랑과 혼인신고 대단하시며
능력있으신 어르신 존경스럽네요
선배님
마무리도 행복한 분이라 칭하고 싶어요
소설 작품 창작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부족한 글 읽어주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평온한 하루되세요 ~
세월이 많이 달라졌지요.
옛날엔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오면,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고 했지요.
암탉이 울면,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왜곡하는 게 사대부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여성들을 사회로 부터 폐쇄한 국가는
열등한 나라이죠.
남녀라도 실력으로 맞선 시대부터
우리 사회가 달라졌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마지막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그동안 무더운데 글읽어주셔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휴일되세요 ~
아이고 수고 하셨습니다
탈고 하셨군요 ㅎㅎ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탈고라니요 ㅎ
오늘 저녁시간도 편안하게 보내세요~
메세지도 있으면서 재미도 있어 쏙 빨려들어가 읽어내렸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오늘도 편안한 휴일되세요 ~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