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나의 13세조 송음당(松陰堂) 안후지(安厚之, 1590~1664) 부군은 전라도 보성 땅 솔뫼[松山]에서 조선조 중기의 뛰어난 유학자인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1573∼1654) 선생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군은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경사(經史)와 예학(禮學)을 배워 가학을 충실히 이었고, 장성해서는 우계(牛溪) 성혼(成渾,1535~1598) 선생의 손녀사위가 되어 경기도 파주에서 생활하기도 하였습니다.
부군은 본가와 처가의 학문적 명성 속에서 성장하였으나, 광해군의 폭정과 인조 시대의 당쟁과 호란(胡亂)을 경험하면서 정치적인 꿈을 접고, 일생을 솔뫼의 옛집에 숨어 살면서 송음(松陰)이라 자호한 뒤 처사(處士)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정묘호란, 병자호란과 같은 국난을 당해서는 호남의병장으로 출정한 부친을 배종하여 우국(憂國)의 충절을 불살랐던 분입니다.
부군은 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정치적 경륜은 발휘하지 못했지만,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1597∼1673),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1606∼1672), 백주(白洲) 이명한(李明漢,1595∼1645),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1628∼1692) 등 당대의 석학이요 저명한 정치가들과 폭넓은 교유를 하였습니다. 또한 문희순(文希舜,1597∼1678), 이무신(李懋臣) 등 향촌 지식인들과도 교유하면서 나라를 걱정하기도 하고 자연을 찬미하는 시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부군의 시고(詩稿)는 사후에 즉시 출간되지 못하고 300여년이나 종가의 서고에 보관되어 왔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나의 조부 안태시(安泰時) 교장이 퇴색한 시고를 수습하여 정리하고, 다시 봉산(蓬山) 안종선(安鍾宣,1899~1992) 족숙에게 교정을 받아 1971년에 비로소 출간하였습니다. 이 《송음당시고(松陰堂詩稿)》가 이번 국역본의 저본(底本)이 된 것입니다.
부군의 유문(遺文)은 몇 십 수의 시로만 구성되어 있고 그 흔한 편지 한 통도 남아있지 않아 못내 아쉽습니다. 그러나 부군께서 “만 권의 책을 읽어야 대장부라 하리.[讀書萬卷男兒事]”라는 시를 통해 후손들에게 독서를 당부한 내용은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조부는 “훗날 부군이 남긴 시문 중에서 누락된 것들은 다시 찾아내어 중간했으면 한다.”고 소망을 피력한 바 있는데, 이번에 조부의 소망에 미칠 수는 없지만 《창랑집(滄浪集)》과 《석호유고(石湖遺稿)》 등에서 부군과 관련된 몇 가지 글을 추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 《국역 송음당시고》는 족제 강섭(康燮)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이창헌 교수가 국역을 맡아줘 간행하게 되었는데, 종손 재호(在祜)와 족제 강섭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팔순의 나이를 잊고 외람되게 발간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군이 남긴 시문(詩文)의 본뜻을 이해하여 숨어있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우리 가문의 귀중한 정신기록이며 소중한 문화유산이 대대손손 전해지길 바랍니다.
2014년 8월 일
13세손 세열(世烈)
《국역(國譯) 송음당시고(松陰堂詩稿)》를 내면서
《송음당시고》를 발간한지 4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한문에 익숙하지 못한 후생들은 시고의 내용을 알 수 없어 참으로 답답하였습니다.
마침 송음 선조의 4파(송화공파, 좌랑공파, 동복공파, 승지공파) 자손들이 모여 후손들과 후학들이 알아볼 수 있게 번역하자는데 뜻을 같이하여 4파의 대표가 이를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번역에 필요한 금액을 모금하기로 하여 많은 참여자의 후원으로 번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번역은 이창헌(李昌憲) 교수가 맡아 주었으며 이를 원본으로하여 산삭(刪削)과 보정(補正)을 하여 본고가 이루어졌습니다.
본고에 하자(瑕疵)가 있다면 이는 모두 저의 잘 못으로 인한 것이니 저를 질책해주시기 바라며 후일 보다 나은 번역본이 나왔으면하는 바램입니다.
송음(松陰)선조는 1590년(선조 23년) 보성 송산(松山-지금의 보성읍 우산리 솔뫼)에서 문강공(文康公)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1573∼1654)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세(1608년)에는 우계(牛溪) 선생[성혼(成渾,1535~1598)]의 아드님인 창랑(滄浪) 성문준(成文濬,1559∼1626)의 둘째 따님과 결혼하였습니다.
1611년 은봉 선조께서 솔가(率家)하여 서울로 올라오실 때에 상경하여 1614년 낙향(落鄕)하실 때 까지 서울에서 사셨습니다.
낙향하실 때 큰 아들에게 처가인 파주(坡州)에서 살도록 말씀하셔서 파주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파주에서는 4남 4녀를 생산하였으며 (1남 1녀는 요절함) 성씨 (成氏) 할머니께서 돌아가신(1626년) 뒤인 1929년에 16년의 파주 생활을 마감하고 보성 송산으로 돌아 오셔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정묘호란(丁卯胡亂-1627년)과 병자호란(丙子胡亂-1636년)때에는 의병대장(義兵隊長)이신 아버님을 모시고 의병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뒤 고향에서 은둔의 생활을 하였으나 가문을 일으키기 위하여는 자식들이 벼슬을 하여야한다는 생각으로 자식들을 교육하여 네 아들 모두 관로(官路)에 나가 가문을 부흥시키셨습니다.
1666년(현종 7년) 향년 77세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번 시고를 번역하면서 먼저 한문본에서의 오류와 탈락등을 보정(補正)하였고 새로 창랑공(滄浪公)의 사위에게 주는 글과 동계(東溪) 박춘장(朴春長,1595∼1664)의 시를 추가하였으며 송화공(松禾公 안전安峑,1614~1686)이 좌랑공(佐郞公 안음安崟,1622~1685), 종제와 아들에게 주는 편지등을 추가하였습니다.
후생들의 이해를 쉽게하기 위하여 한시의 종류가 아닌 시의 내용으로 나누어 순서를 정하였고 제목도 붙였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며”는 병자호란때 의병에 참여해 진군하던중 삼전도(三田渡)의 치욕을 전해 듣고 울분을 토로한 “칼 던지고”와 토복(討復)의 의지를 갖었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에게 주는 시로서 그 당시의 선비들의 우국충정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시들입니다.
“파주에서는” 주로 파주의 생활과 관계 있는 내용으로 처가인 파주 눌로리(訥老里) 뒷산인 “파평산의 겨울 등산”, 손 윗 동서인 화당(化堂) 신민일(申敏一,1576∼1650)과 그의 아들인 은휴와(恩休窩) 신상(申恦,1598∼1662)에게 주는 시와 남매를 여의고 애끓는 마음을 적은 시들입니다.
“명사들과의 교유(交遊)”는 연양군(延陽君) 이시백(李時白,1581∼1660), 문정공(文靖公) 이명한(李明漢,1595∼1645),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 충헌공(忠獻公) 이숙(李䎘,1625~1690), 충경공(忠敬公) 윤문거(尹文擧,1606∼1672), 문충공(文忠公) 민정중(閔鼎重,1628∼1692),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1597∼1673)등 당대의 최고 엘리뜨들과의 교유를 알 수 있는 시들로 송음 선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시들입니다.
“입춘 날에는” 해 마다 입춘이 오면 소박한 한 해의 바램을 나타낸 시들입니다.
“고향에서 벗들과”는 고향에 사시면서 교유했던 이무신(李懋臣),문희순(文希舜,1597∼1678), 박진구(朴震耈), 전상로(全尙魯), 유극배(柳克培), 오이구(吳以求), 양우전(梁禹甸,1595~1672)등의 벗들과 주고 받은 시들입니다.
“고향의 정자와 고찰에서”는 고향의 도수암(道修庵), 개흥사(開興寺), 오봉사(五峰寺), 현학정(玄鶴亭), 봉갑사(鳳岬寺)등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들입니다.
“아비의 마음은” 아들의 잔치와 아들들에 대한 마음들을 표현하였고 “인생, 자연을 노래하다”는 인생에 대한, 자연에 대한 생각들을 읊은 시들입니다.
“먼저간 이들을 애도하며”는 먼저가신 친척, 친구 ,친지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 들입니다.
부록은 손윗 처남인 정혜공(靖惠公) 성직(成稷,1586∼1680), 처 고종인 충경공(忠敬公) 윤문거(尹文擧)와 문경공(文敬公) 윤선거(尹宣擧,1610∼1669)의 만뢰사(輓誄詞), 효헌공(孝憲公) 정방(鄭枋,1707∼1789)의 묘갈명, 《창랑집(滄浪集)》에 수록된 창랑의 사위(송음)에게 주는 글과 고향 친구인 동계 박춘장의 《동계집(東溪集)》에 수록된 송음께 주는 시를 수록하였습니다.
《소와유고(邵窩遺稿)》에는 송화공의 외숙인 정혜공 성직의 칠순과 팔순때의 헌수 시와 고종(姑從)인 병사(兵使) 양우급(梁禹及)의 죽음을 슬퍼한 조사를 수록하였고 동생인 좌랑공에 보낸 편지 2통과 종제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수록하였으며 효헌공 정방의 묘갈명을 수록하였습니다.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한 비용은 종손(在祜)과 문중 여러분들의 협조로 문중에서 지원 받았읍니다.
또한 발간사는 종손의 적극적인 권유로 《송음당시고》를 펴낸 왕재(往哉 안태시安泰時,1895~1985)의 장손인 세열(世烈) 족형이 수고를 해주시니 우리 문중의 목족(睦族)함을 볼 수 있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그동안 협조해주신 종친 여러분과 번역을 맡으신 이창헌 교수께 감사 드리고 이 작은 책이 우리에게 자긍심과 애족하는 마음을 가지게 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며 북한땅 장단(長湍) 망해봉(望海峰)에 있는 선영에 이 책을 봉정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2014년 가을
13세손 강섭(康燮)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