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06
"앉아있으면 너무 졸려 밤늦게까지 학교 복도를 걸어다니며 공부했어요." 전화기 너머 들려온 18세 소년의 목소리는 밝고 쾌활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사교육 한번 없이 하루 4시간 자면서 억척같이 공부해 '전교 꼴찌'에서 '전국 최고'가 된 올해의 수능 만점자 송영준(경남 김해외고 3학년)군의 뉴스가 혹한을 녹이는 훈풍처럼 날아왔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키운 아들은 대견스럽게도 일찍 철이 들었다.
▶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 송군의 인생 좌우명이다. "그 표현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좌우명으로 삼게 된 건 고등학교 때 공부하면서예요. 힘들 때마다 '이건 내가 뭔가를 얻기 위한 고통'이라고 마음을 다잡았거든요." 누나와 자신을 힘겹게 뒷바라지하는 홀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악물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평생' '열심히' 살겠다고 한다. 남들보다 머리가 좋지도, 형편이 좋지도 않고, 가진 재능은 오직 노력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 지난해 수능 만점을 받아 서울의대에 수석 입학한 김지명씨는 중학교 3년 내내 백혈병과 싸웠다. 고 1 때 완치 판정을 받고 그때부터 공부에 매진해 수능 만점을 받았다. 학원 한번 안 다니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모자라는 공부를 보충하고 학교에서 15시간씩 버텼다. 그의 노력 뒤에도 아픈 아들 뒷바라지하면서 "세상에 고마운 분이 참 많다"고 한없이 긍정의 마인드를 심어준 어머니가 있다.
▶ 재능 중에 으뜸의 재능은 '노력'이라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난관이 나를 굴복시킬 순 없다. 그 어떤 난관도 남다른 분투에 무릎 꿇는다'고 했다. 윈스턴 처칠은 '체력이나 지능이 아니라 노력이야말로 잠재력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라고 했다. 하지만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던 대한민국이 어느새 '노오~~~력해봤자 안 된다'고 좌절하는 사회가 되어간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우리 사회에 들어맞는지를 묻는 여론조사에 20대들 7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 부모 배경을 활용해 명문대와 의전원 입시에 유리한 경력을 만들고, 유급했는데도 장학금까지 챙긴 전 법무부 장관의 딸 뉴스는 청춘들의 좌절감을 증폭시켰다. 가난을 딛고 각고의 노력으로 수능 만점자가 된 영준이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후원 문의가 쏟아진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노력의 기적'을 모처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