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 이란 애칭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기 개그맨 남희석, 그의 고향이 보령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고향 사람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도 이미 알고 잇는 사살일 게다. 그의 결혼 소식이 세간에 화재가 되기 이전부터 몇몇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나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보령 이야기를 많이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첫딸 이름을 ‘보령’ 이라고 지을 만큼 고향사랑이 특별한 남희석을 최근 출연 중인 SBS연예오락 프로그램 ‘맨Ⅱ맨’ 의 촬영 현장에서 만나 보았다.
▶뒤늦게나마 결혼과 득녀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 고향의 신문사에서 저를 찾아주시니 그저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최근 근황은...?
▷요즘엔 두 프로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팠거든요.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 입이 돌아가는 바람에 한 7개월 가량 쉬었습니다. 2-3개월 입원을 해도 잘 낫질 않아서 일본에 가서 치료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뭐 그렇게 지냈습니다. 지금 은 다 낳아서 다시 활동을 재개 했습니다.
▶그럼 쉬는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고향 웅천에 가 있었습니다만.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봐 벼칠 쉬다가 올라와Ttmqslke. 웅천에 있는 동안 남포 방조제에 가서 낚시도 하고 대천해수욕장도 가 보았습니다. 제가 워낙 낚시를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몸이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시절 이야기 좀 듣고 싶네요.
▷ 대창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열할 살 때 웅천을 떠났죠. 저희 집이 좀 살았거든요.(웃음) 지금은 목욕탕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중국음식점을 했었습니다. 웅천에 석재공장이 많잖아요.중국집이 많이 않던 시절이라 장사가 꽤 잘 됐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돈 좀 버셨죠.(웃음)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된 계기는?
▷그 당시 서울로 유학가는게 무슨 유행 같은거 였어요, 아시겠지만 그땐 그랬거든요. 웅천에서 좀 사는 집(?) 아들이니까. 그리고 제가 장남이고 또 어른들한테 우스개 소리도 잘하고 말도 또박또박 잘하고, 그러니까 뭐 천재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자취를 했죠.
▶고향하면 생각나는 있다면?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만큼 텔레비전에서 고향이야기 많이 하는 사람도 드물겁니다. 전 제 고향을 사랑합니다. 아니 좋아한다고 해야겠지요. 아버님이 중국집을 하시다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때 불이나서 한마디로 망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인심을 잃진 않으셨나 봐요 동네 어른들이 도와주셔서 금방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성금을 모아 재기할 수 있다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분들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잇습니다. 아버님은 그것을 발판으로 목욕탕을 개업하셨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보령시민신문을 보면서)산문에 광고도 나오네요. 아버님께 여기에 광고 실으라고 할까요?(웃음) 목욕탕이름은 백마장입니다. 여관을 겸하고 있는데, 아주 모법 업소입니다.
▶고향 보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를 타고 보령에 들어설 때면, ‘만세보령’이라고 새겨진 돌을 보게 되는데, 참 맘에 듭니다. 보령이란 뜻 자체가 좋고 뭐, 제가 촌놈이라 그런지 아무튼 전 보령이 좋습니다. 그런대 사실 지금은 좀 고향에 삐져 있어요. 충청도 사람은 삐지면 오래 가거든요. 저도 충청도인지라. 하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대천해수욕장에서 하는 머드축제에 한번 초청 받아서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접이 좀 그렇더군요. 제가 대접받으려고 간 것은 아니지만 고향의 축제라서 큰맘 먹고 내려간 건데, 높으신 분이 오셔서 앉을 의자가 부족하다고 제가 앉아 있던 의자를 뺏어가더군요, 사람을 초청해놓고 좀 심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
▶아, 그런일이 있었군요. 첫딸 이름을 ‘보령’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좋아서요, 보령이란 말이 좋았어요. 처음에 집사람한테 아이 이름을 좀 지어보라고 했더니 감감 무소식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보령’ 어때? 하니까 ‘애 이름가지고 장난하지말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자꾸 불러보니까 괜찮은거예요. 제달이 커서 보령에 살 가능성은 사실 희박하잖아요. 그렇더라도 보령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어요. 훗날 언제라도 아빠 고향에 내가면서 ‘보령’이란 이정표나 표지만을 보면 뿌듯하지 않겠어요? (아주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표정으로) 아들 낳으면 이름을 ‘대천’으로 지을까 해요. ‘남대천’, 멋있지 않나요. 맘에 안드세요? 안드시면 ‘충남’ 이나 ‘웅천’으로 알까요? ‘남웅천’ ‘남충남’
▶ 끝으로 보령에 대해서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 사실 보령을 무척 좋아하는 놈입니다. 고향이라 그냥 좋아요. 산도 좋고 물도 좋잖아요.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해수욕장 말고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없다는 거예요. 가끔 지인들과 대천해수욕장에 가기도 하는데, 지금은 한와콘도도 생기고 교통도 좋아져서 사람들이 많이 찾긴 하지만 회 한 접시 먹고 나면 더 먹을 것도 볼 것도 없어요, 그게 제일 아쉬워요. 서해안 고속도로도 개통되었으니까 보령 시장님 이하 관계자 분들이 보령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그런 특색있고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바쁘신데 고향 신문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희석의 어투 그대로를 최대한 옮기면) 아이구, 뭐, 지가 더 감사해요. 지두 보령 놈이니께, 그리고 지 고향이니께 서운 한것도 막 말혀두 되는 거지유? 지가 뭐 눈치 볼 거 없잖아유, 지가 말 막 혔더라두 이해해 주세유.
*****기자의 말*****
남희석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 으로 재미있고 끝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갈 무렵 프로그램 쵤영에 들어간다는 방송국 관계자의 말이 그만 남희석 그와의 인터뷰에 종지부를 찍는 신호가 되고 말았다.
악수를 하고 뒤돌아서 가는 그이 약간 초췌한(몸 상태가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최근엔 약간의 감기 증세로 약을 봉용하고 있었다) 뒷모습을 보면서 잘 나가는(?)연예인으로서의 남희석이 아니라 잘 아는 고향 후배 한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따뜻해졌다.
남희석, 그는 어린나이에 고향을 떠났지만 드러나지 않게 고향에 대한 관심-아니 욕심이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이 아주 많았다
“대천해수욕장이 사실 조개껍데기로 이루어진 백사장 말고는 뭐 자랑할 게 있나요? 물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대천이 발전하려면 대천해수욕장의 바가지요금부터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결국 아픈데를 지고 말았다 ‘ 대천해수욕장의 여름철 바가지요금’ 은 대천해수욕장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기 때문이다.
그이 이야기는 전혀 거침이 없었다. 거향 친구들끼리 만나고 편하게 나누는 이야기처럼 고향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풀어 놓았다
“강개미 회라고 아세요? 보령에는 이거다 할 특산물이 없는 것 같아요. 강개미 회는 보령 말고는 찾아보기 gal들거든요. 이런 걸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개발하여 특화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대천해수욕장과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는 곳이 더 개발되었으면 합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더라도.... 얼마 전 몸이 아파서 쉴 때 고향에 갔는데, 어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공동묘지인데, 잘 꾸며 놓았더라구요. 공동묘지하나라도 잘 꾸며 놓으면 그것이 볼거리가 되는 것 아닌가요. 아무튼 보령을 아름다운 도시,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어하는 도시로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기스타의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모습에서 또 고향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참다운 보령인 한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노력하려고 해요. 개그맨이란 직업이 사실 쉽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도 만들어내야 하고, 또 남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고...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하든, 또 변해야 생존하듯, 개그맨 남희석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방송 녹화가 잠시 쉬는 틈에도 방청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분위기를 이끄는 그이 모습일 보면서 개그맨으로서의 남희석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다.
“고향이란 거, 아늑하고 푸근한 것 아닙니까?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전 어쩔 수 없는 보려 사람입니다.” 라며 남희석 특위의 하회탈 웃음을 짓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고향 바닷가에서 맡을 수 있었던 그 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