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개선문~콩코르드 광장~마들렌
성당)
< 2014. 4. 9
>
개선문은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끝 12개의 방사상 대로의 중심부인 샤를 드골
광장(1753~1970년에는 에투알 광장이라 했음)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전승기념
구조물이다.
1806년 나폴레옹의 명으로 장 샬그랭과 장 아르망 레몽이 설계했고, 나폴레옹이
죽은 후인 1836년에야 완성되었다.
프랑수아 뤼드가 전면에 조각으로 장식해놓은 '1792년 용사들의 출정'(일명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이
유명하다.
개선문의 안쪽 벽에는 각 전투에 참가했던 600여 명의 장군이름이 새겨져
있다.
개선문의 바닥에는 무명용사묘가 설치되어 '영원한 불길'이 언제나 타오르고
있다.
샹젤리제 거리는 동쪽의 콩코르드 광장 오벨리스크에서 서쪽의 샤를 드골 광장 에투알
개선문까지 2km의 길이다.
샹젤리제 거리의 카페 'Fouguet's 는
1901년 에 오픈했으며 유명 인사들이 즐겨찾던
명소이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본
개선문
1755년 앙제 자끄 가브리엘에 의해 설계된 이 광장에는 원래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루이 15세 광장”으로
불리었다.
1793년 1월 21일 프랑스 혁명 중에는 루이 16세가 이곳에서 처형되었고,
10월 16일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형장이기도
했다.
1795년 화합, 일치라는 뜻인 “콩코르드(Concorde)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공식 이름이 된 것은
1830년이다.
광장의 중심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룩소르(Luxor)
오벨리스크(클레오파트라의 바늘)가 놓여 있다. 기원전 12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이집트 테베(Thebes, 현재의
룩소르)의 람세스 신전에 있던 것으로 1829년 이집트의 총독이자 군사령관이던 알바니아 출신의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선물하였다.
프랑스
국회의사당
프랑스
해군성
크릴론
호텔
좌우 대칭건물인 크릴론 호텔과 프랑스 해군성
사이로 보이는 마들렌 성당
마들렌 성당에서 본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와
국회의사당
마들렌성당은 막달라 마리아 성당이다. 이 성당은 루이 15세 때인
1764년에 착공했다가 중단된 뒤 나폴레옹 1세 때인 1806년 프랑스 군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시 착공하였다.
그리스 로마시대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나폴레옹은 신전풍의 사원을 짓기 위해 기존의
건물을 모두 허물어 버렸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집권할 때 완성되지 못하다가, 오를레앙 공(公) 루이 필립(Louis Philippe )
때인 1842년이 돼서야 비로소
완공되었다.
건물 모습은 도리스 양식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하였다. 길이는 180m, 높이는 19.5m이며, 52개의 코린트식 원기둥이 하얀 직사각형의 사면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삼각형 박공 위에 조각된 앙리 르메르의 <최후의
심판>
마리아 막달레나의
승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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