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레지오의 친목회로 8시50분에 충남 보령시에 있는 갈매못 성지로 승용차 두대가 출발하였다.
평일이고 고유가로 인해 길은 막히지 않아 11시10분에 바다를 전망으로 한 아름다운 성지에 도착했다
미사중에 작은 수녀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매료 되었으며 신부님의 강론에 더 깊이 빠져 들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성 다블뤼 안 주교, 성 오매트로 오신부, 성 위앵 민 신부, 배론 신학당의 집주인이며
전교 회장이던 성 장주기 요셉, 연풍 태생으로 다블뤼 주교를 도와 성교회 서적 번역 및 교회사 집대성에
큰 공헌을 했던 성 황석두 루가가 순교당한 곳으로 대원군은 북방에서 침략을 일삼는 러시아와 담판을
짓기 위해 불란서 주교를 불렀으나 공소에 나가 있던 주교가 이를 알지 못하여 지체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대원군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인다
다블뤼 안 주교는 신부와 교우들이 마구 잡혀 처형된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관에 나가 자수를 한다.
동료 신부들이 잡힐 것을 예상하고 오매드로 오신부, 위앵 민 신부에게 자수를 권하는 편지를 보내 이들도
자수하여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들이 서울에서 처형당하지 않은 이유는 때마침 고종이 병을 앓게 된 데다 그의 혼인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피를 서울 땅에서 흘리게 되면 불결하고, 혼사에 해롭다 하여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처형케 하였다.
서울에서 다시 압송되어 충청도로 내려오던 중에 큰 바위에 앉자서 다섯 성인이 막걸리로 목을 축이면서도
기쁘게 기도 드렸다 하여 오성바위라고 이름 지어졌으며 지금은 절두산 성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드디어 몇날 며칠을 걸려 충청도 보령 이곳에 도착한 다섯 성인은 수난주일 충청 수사(水使) 앞에서 배교를
거부한 안주교가 제일 먼저 칼을 받았고, 이어 오 신부, 민 신부, 황루가, 장 요셉이 차례로 치명하였다.
신부님의 강론에 빠져 그 시대를 체험한 듯한 전율을 느끼며 미사를 드리고 나와, 준비해간 점심을 단원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많은 분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우리들이 이렇게 마음 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모두
수긍하며 더욱 더 정성을 다해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를 바친 뒤에 성물방에 들러 순교자들의 피가 묻은 모래를
담은 묵주를 구입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구입한 묵주로 묵주기도를 드렸고 갈매못으로 삼행시를 지어보았다
갈- 갈매못 성지에 도착하니
매- 매우 안타깝게 돌아가신 많은 성인들의 생각과
못- 못에 박힌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정말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 깊숙이 묵상 해본다
첫댓글 갈~ 갈수있을까? 매~ 매도 맞으며 갈 수 있을까? 못~ 못 박힌 예수님 따라 갈 수 있을까?... 감히 우리의 서투른 신앙으로 엉겹결에 작은 목소리로 하는 신앙고백이 부끄러운 밤입니다^^*
기억에 남을 멋진 성지를 다녀오셨군요. 저에게도 좋은 추억의 한쪽을 자리하는 성지인지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