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푹 눌러쓴 까만 야구모자 아래의 가늘게 떠진 눈으로 옆으로 질머맨 가방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지갑을 찾았다. 그리곤 만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CD 1장이랑 테잎 한개, 만 오천원입니다."
직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돈을 받아들고는 거스름돈을 앨범 위에 올려두었다.
바다는 앨범을 가방에 집어넣고는 서둘러 음반 매장을 빠져나왔다. 부산에서
가장 큰 신나라 레코드 점은 안승호 3집 음반 발매일과 함께 레코드 점을 찾
은 사람들의 발길로 몸을 이리 저리 치이고 부대낄 만큼 북적대고 시끄러웠다.
"하아....."
매장에서 나오자 아주 약간은 한산해진 틈에 바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자기 손에 쥐어진 하얀 브로마이드와 매장에 붙어있는 브로마이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까맣고 어두운 배경에 승호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
업된 브로마이드였다. 승호의 얼굴은 많이 초췌해졌고, 일부러 그런 건지는
몰라도 사진의 승호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담아내고 있지 않았다.
2집과 별반 달리진 헤어스타일은 아니였다. 여전히 귀밑보다 길게, 멋드러지게
자른 금발머리는 그의 콧등에 예쁘게 그려져 그 곡선을 그렸고 반쯤 감고 있는
눈은 그 아래로 길게 뻗은 눈썹과 어울리는 조화를 이루며 퇴폐적이면서도 뇌
쇄적인 타락천사 같은 눈빛을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한참이나 브로마이드를 바라보던 바다는 걸음을 옮김과 동시에 손으로 가방 안
에 집어둔 방금 산 CD를 꺼내 CDP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이어폰을 귀에 꼿고는
PLAY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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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승호 3집 앨범. 감사하는 분들께. -
먼저 SM기획 이수만 사장님과 정해익 실장님. 정우형, 경식이형, 재범이 형.
3집 앨범을 위해 갖은 노력 아끼지 않으셨던 킹레코드 녹음실 관계자 분들.
언제나 저를 향해 따뜻한 손길 내미시는 부모님. 사랑하는 친구들과 많은 형,
누나들. 힘들 때면 저에게 구원의 손길 내미셨던 하느님. 감사합니다. 못난
저를 멋있게 만들어 주시는 코디네이터분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사람. 영원
히 저를 사랑해 주실거라 믿는 많은 팬 분들께 이 세 번째 앨범을 바칩니다.
땡스 투를 읽어 내려가던 바다의 눈이 어느 한 구절에 멈췄다.
'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사람 '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사람.....?
한참이나 그 구절을 다시보고, 다시본 끝에야.... 바다는 가사집을 접으며
무릎 위에 올려놓은 가방 위에 고개를 파뭍을 수 있었다. 바다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이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지하철 때문이겠지... 라며 그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엎드려 있는 평범한 까만 모자의 아가씨에게
신경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검은 박스티 밖으로 나온 하얀 팔에 쥐여져있는 그 기다란 가사집이
덜커덩 거리는 지하철 바닥으로 미끌어지듯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바다는
그것을 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낡은 워커 틈새에서 흔들 흔들 거리는 가
사집은 지하철이 바다가 원하는 곳이 도착할 때까지 그 곳에 있어야만 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
그건,
언제나 지평선을 경계로 서로의 푸르름을 마주대하고 있는....
.....바다였다.
+++++++++
"어? 실장님 머리 자르셨네요. 아깝다..."
"너무 길면 지저분해 보이잖아. 그냥 잘라봤어요."
유진은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며 마우스를 깨작 거렸다. 활짝 열어놓은 사무실
창문 틈새로 스며든 봄 바람이 그녀의 연갈색 머리카락을 살랑, 흔들며 지나
쳤다. 허리에서 더 길게 뻗어내리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가슴 부위까지 짧아진
상태였다. 고개를 숙이면두 팔 사이로 흘러내리던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아
약간은 허전한 감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일하기에 불편한 모양은 아닌지라 꽤
유진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 그리고 실장님. 처리해야 할 문제가 생겼는데요, 아직 상부에서 지시는
없는데... 아마 곧 내려올 거에요."
"...뭔데?"
"불법 상표 도용 문제요."
"... 우리 상표 멋대로 가져다 붙이는거?"
"예. 요즘 그거 문제 꽤 심각하거든요. 샤넬이나, 구찌 같은것도.. 요즘엔
진짜같은 가짜가 판을 쳐서 매출이 많이 줄었잖아요."
"후... 가뜩이나 골치 아픈데...."
"변호사 고용한 다음에 돈만 주면 될거에요."
"변호사?"
"예, 요즘 유능한 변호사 분이 계신대 그렇게 일처리가 확실하고 군더더기
없다고 많은 업체에서 부르거든요, 그 분 만나보세요."
"...시간 나면."
유진은 짧게 대답하곤 여자가 내미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힐끔 쳐다본
그 사각형 하얀 명함 위엔 낮익은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 변호사 문 정 혁 ]
+++++++++
"와아아~~~ 날씨 좋다!!!"
수영은 두 팔을 번쩍 올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곤 한적한 고수부지 대로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오랜만에 나온 지원과의 나들이(?) 였는데, 덥다며 풀러내
린 체크무늬 남방을 허리춤에 둘러매곤 보기에도 추워보이는 하얀 반팔에 청바
지 차림의 수영은 정작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소리만 내질렀다.
"그래! 나쁜 놈아! 요즘엔 만나지도 못했잖아... 전화도 안하고... 무슨 일개
형사가 그렇게 일이 많다고 난리야? 너... 계속 그렇게 나가단 아예 니 얼굴
영원히 안 봐버리는 수가 있어. 은지원... 까불지마."
"하하.. 알았어, 오랜만에 나왔으니깐 그래. 네 말대로 기분 좋다."
지원 역시 방방 뛰며 함박 웃음을 짓는 수영의 얼굴 보기가 그리 좋은건지
웃음을 거두지 못하며 두 팔로 뒷 머리를 감싸며 앞으로 내질러 뛰어가는
수영의 뒷 모습을 흐뭇하다는 듯 바라봤다. (.. 딸을 둔 아빠의 마음. -.-;)
하늘로 날아오르는 짙은 회색빛의 비둘기떼와 그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다는듯
환하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수영의 모습은 정말 예뻤다. 청명한 하늘에 그림자
를 그리는 날개짓과 휘날리는 붉은 머리의 작은 아가씨의 모습은 한 폭의 그
림처럼 그렇게 지원의 눈망울에 맺혔다.
"밥 줘."
"아까 점심 먹었잖아. 돼지야."
"아니... 비둘기 밥 주라고.. --;"
지원은 수영의 머리를 콩 쥐어박으며 언제 사온건지 비둘기 밥 한봉지를 그녀
에게 내밀었다. 얼빵한 표정으로 받아는 수영은 금새 환하게 웃는 얼굴로 탈
바꿈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그것들을 비둘기가 모여있는 근처에 뿌렸다.
콕 콕 콕 콕
금새 그 사이로 몰려드는 몇 마리의 비둘기들은 서로 먹기에 정신이 없는 모습.
그 모습에 웃음을 감추지 못한 수영은 이번엔 공중으로 먹이를 뿌렸다. 사방으
로 튀어오른 먹이는 곧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비둘기들의 입안으로 들어갔고,
어느새 빈 봉지가 되버린 껍데기는 수영의 손 안에서 구겨져 근처의 쓰레기통의
소유물이 되버렸다.
"지원아! 우리 저거 타자."
"어?"
"모터 보트. 나 예전부터 저거 너무 타고 싶었단 말야,"
"알았어~ 알았어~ 타자, 타."
지원은 수영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뛰어가듯이 그 곳으로 향했다. 환하게 웃는
한 쌍의 연인의 웃음이 3월의 봄 하늘빛의 그림을 그리듯 고수부지 주변을 하늘
빛으로 적셔간다.
+++++++++
"스티브, 저것 좀 봐. 아까부터 위를 올라다 보고 있는 사람들인데, 약간 수상해.
몇시간 째 저기서 저러고 있는다구."
"응?"
혜성은 빈 담배곽을 구겨뜨리며 브라이언이 손짓하는 창가 근처로 발을 옮겼다.
그가 가리키는 아랫 쪽엔 평복을 차려입은 몇몇 사내들이 서로 무언가로 연락을
취하며 자꾸만 혜성이 묶고 있는 방 윗쪽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안기부 요원들 같은데. 그리 나쁘진 않군. 어쨌든 우리가 묶고 있는 곳까진
제대로 알아냈잖아."
"어떻게 할래?"
"..... 오자마자 일 벌려놓는건 우리에게도 안좋아. 뒤로 조용히 빠지자. 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 때 처리해. 애들에게 모두 연락해. 그리
고 되도록이면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게 더 좋겠지. 우린 일 처리 하러 나
온거지, 조무래기들과 소동이나 피울려고 나온게 아니니깐-."
".... 그래, 그럼 뒤로 빠지자."
혜성은 브라이언의 어깨를 툭 친다음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까만 서류 가방을
들곤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느다란 올의 금발머리는 앞머리가 길게 드리워 혜성의 하얀 얼굴선을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턱선을 소유한 그의 하얀 얼
굴은 차거워 보이는 무표정의 짙은 회색빛을 함께 공유했다. 안주머니에서 습
관처럼 꺼낸 까맣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선그라스는 작은 그의 얼굴을 가리우며
아직은 밝은 햇빛과의 차단막을 만들어냈다.
"지사 쪽이랑 만나는 김에 숙소까지 옮겨버리자구, 그 쪽의 거처로 옮기는게
낳겠어. 어짜피 짐 같은거야 없으니 옮기는거야 그리 어렵진 않을거야."
"니 생각이 옳을것 같다, 나가자."
++++++++++
"와아아아아~~~~~!!!!!!!"
수영은 두 명 남짓 들어갈 작은 모터보트에 앉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소리를 꽥꽥
지르며 두 팔을 하늘로 마구 마구 흔들어댔다. 모터 보트 안으로 튀기는 차거운
물방울이 자신의 얼굴에 맞부딪쳐도, 상관 없다는 듯 부우웅- 소리를 내며 신나게
파란 길을 가르는 모터 보트는 멈출 줄을 모른다.
주황색 구명보트를 착용한 수영과 지원은 시원스레 앞머리를 넘기는 봄 바람의
싱그러운 내음을 만끽하며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양 옆으로 갈라지는 강물을
환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우왓!! 물 많이 튀긴다!!"
"괜찮어, 이런거 무서워 할 유수영이 아니잖어~ 새삼스레 뭘 그래~"
"기분 캡이다-!!!!"
"나두우우우~~!!!!"
"유수영!!!!"
"왜!!!!!?"
"너 무지하게 예쁘다구!!!!"
"...뭐야~!! 민망하게스리."
"은지원이, 유수영 정말 많~ 이 사랑해!!!"
"야아아~!!!!"
수영은 키득 키득 웃는 지원의 등쌀을 떠밀며 계속해서 손을 뻗어올리고 소리를
질러댔다.
"유수영은~~~ 은지원 많이 안 사랑해~!!!!"
"....뭐야, --;"
"짜식, 삐지긴.. 거기서 '안' 자 빼면 될거 아니야!!!"
"하하하...."
지원의 너털웃음이 하늘에 공명음을 그리듯 윙 윙 대며 귓가에 자꾸만 맺혔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손을 수영의 어깨에 가볍게 올려둔채, 수영과 함께 하늘로
뻗어오른 손가락을 바라보는 지원은 그냥, 이 상태에서 지구 끝까지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직업이든, 집이든, 무엇이든 간에 모두
다 떨쳐버린채 옆에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는 붉은 머리의 이 자유로운 여자
와 그냥 어디론가 새어버리고 싶었다.
예전의 힘겨웠던 시간만큼 이젠 지원은, 수영과의 앞엔 눈부시고, 밝은 미래와
꿈만이 지속될거라고 믿었다. 그래... 별거 아닐테지. 귀여운 아내와 함께 자
그마한 뜰이 내다보이는 예쁜 주택에서 자신을 닮은 아이 한 두명 양 손에 들
어올리고선, 파릇 파릇하게 돋아난 연두빛 잔디밭 위에 멋드러지게 세워논 파
라솔... 그곳에 앉아서.. 그냥, 즐겁게 웃으며... 그렇게,
평범한 다른 가정처럼 예쁘게 살 수 있을테지...
"야! 다왔어. 내려~ 뭘 그렇게 생각하냐?"
"응?"
"내리라구."
"아... 벌써 다 왔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멍해보이게."
"그냥.. 이런 저런거... 야~! 밥 먹자. 나 아침도 못 먹었어. 조~기 식당
보인다. 먹고 싶은거 있냐?"
"움... 바닷가재 먹구 싶다."
"...--;...니가 재벌이냐? 그거 얼마나 비싼대. 1인분 만원은 넘길거다.
그리고 양도 별로 안 많구...먹는데 망치 같은걸루 뚜들겨야 될껄? 너
귀찮은거 싫어하잖아. 단순한 너에게 먹을 때 중노동이란 어울리지 않
아. 그냥 간단하게 먹자."
"안 사줄렴 그냥 돈 없다고 하지, 뭔 궁색한 변명이 글케 많냐, --...."
"우동 먹자.^^;"
지원은 낄낄 거리며 입술을 삐쭉 내미는 수영을 토닥 거리며 유람선 앞에
마련된 하얀 3층짜리 식당 건물에 들어섰다. 주말도 아닌지라 사람이 그
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수영이나 지원처럼 평범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왔
다갔다 거리는 몇 커플이 눈에 띄일 뿐. 지원은 이리저리 둘러 보다 우동
가게를 찾곤 그 곳으로 수영의 손을 끌었다.
"하필이면 바닷가재 옆 식당에 들어올건 또 뭐야...-.-.. 또 먹고 싶잖아."
"그렇게 먹고 싶냐?"
"예전에 드라마에서 누가 먹는거 봤는데... 진짜 먹구 싶었어. 너도 알잖
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게 먹는거라구."
"모르는건 아닌데...(--)"
"아냐~ 그냥 먹자. 우동도 맛있어."
"................"
"................"
"으휴......"
지원은 혀를 차며 나무 의자에 앉아있는 수영을 다시 일으켜세웠다. 두 눈을
크게 뜨고선 멀뚱 멀뚱 쳐다보는 수영이 지원을 돌아보며 왜 그러냐는 식으로
눈짓을 했다.
"대신에, 다음에 만날 땐 떡볶이 2인분이다."
"야... 괜찮은데... 진짜 나,"
"니가 자꾸 저 쪽을 보잖아."
"....--....."
지원은 수영의 머리를 톡 , 톡 건드리며 우동가게와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차려진 바닷가재 전문 식당으로 들어섰다. 벽 쪽에 크게 걸려진
여러 종류의 게나 바닷가재 사진에다, 그림들..... 째각 째각 거리는 몇 안
되는 손님들의 포크질 소리. 지원이 말했던 것 처럼 조그마한 나무 망치로
무언가를 두들기고 있는 사람들. 수영은 조심스레 손가락을 깨물며 눈알을
이리저리 돌렸다.
"진짜... 비싸게 생겼다..."
"비싸게 생긴게 아니라, 비싸."
지원은 슬쩍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안에 들어있는건 주민등록증과
만원짜리 몇장... 십원짜리 한 두개.
"...1인분 먹자."
그런 지원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수영은 배시시 웃으며 지원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적은데... 양이."
"그 대신 질이 죽이잖어. 그 정돈 참을 수 있어."
"암튼... 유수영."
"내가 뭘~!?"
"예쁜 짓만 골라서 한다구.^^"
행복하게 웃어보인 두 사람은 곧 (약간 쪽팔리긴 했지만) 바닷가재 가장 작은
사이즈로 1인분을 시키곤 한강이 잘 보이는 창가 쪽의 자리에 가 앉았다. 새
파랗게 밀려드는 강물을 보며 한참이나 손가락으로 창문을 꾹꾹 찍어대던 수영
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가격의 메뉴판을 보면서 휘둥그래진 눈으로 지원을
불렀다.
"이것 봐... 가장 비싼거 가격... 장난 아니다, 진짜."
"봐바. 우왓~! 졀라 비싸네, --; 이거 몇번만 먹으면 내 월급 쫑나겠다.
진짜, 이런거 맨날 먹고 사는 사람들 있을까?"
"있겠지... 대중이 아저씨나... 종필이나... 회창이나...^^..."
"하핫..^^; 암튼 유수영... 나중에..."
"어?"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은... 이거 먹으러 오자."
"어?"
"이거... 제일 비싼거 먹으러 오자구. 나중에,"
"...그래. 그 땐 2인분 시키구.. 후훗"
직접적으로 말한건 아니지만 수영이나, 지원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심결에
들은 말이나.. 무심결에 던진 말이나... 모두 정해진 미래에 따른 행복한 발언이
라는걸 말이다. 아랫입술을 윗입술로 덮으며 살짝 눈웃음을 진 수영은 신발을 까
닥 까닥 거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
"?"
"저거 봐. 사람들 떼거지로 온다. 조폭인가봐. 몽땅 검은색으로 쫙 뺐는데?"
지원은 조폭이란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수영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식당 문 밖에서 몇 남자들이 모두 비슷 비슷한 옷차림을 한 채, 일정한
발걸음으로 이 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들 중 맨 앞서오는 사람의 얼굴을
잠시 살피던 지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더듬 더듬 안 주머니의 핸드폰
을 찾았다.
"어.. 수영아, 잠시만."
핸드폰 플립을 열며 일어선 지원은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몸을 뒤돌려 걸어나갔다.
고개를 갸우뚱거린 수영은 멋모른채 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
았다. 그들 중, 유난히 머리색이 노랗고 호리호리한 하얀 피부의 남자에게 잠시
시선이 스쳤다. 까만 선그라스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남자치곤 참
예쁘게 생겼다는 이미지를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꼭...
누구처럼.
어랏?
아닌가... 방금 이 쪽을 쳐다본거 같은데, 저 노랑머리.
수영의 옆 테이블로 자리를 잡는 남자들이 하나 둘씩 의자에 앉는다. 수영과
마주보이는 자리에 앉은 노랑머리 남자는 자꾸만 수영과 테이블로 시선을 교
차시켰다.
선그라스 때문에 눈 방향을 알 수가 없잖아....
힐끔 힐끔 그 쪽을 쳐다볼 때마다 노랑머리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인가...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본 수영은 곧 자신의
기억력의 한계를 생각해내며 포기해버렸다. 테이블에 놓인 투명한 물컵에 꼿힌
빨대를 이빨로 잘근 잘근 씹던 수영은 그 남자들을 바라보다 지원이 간 화장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왜 안오는 거냐...
+++++++++
- 뭐?
"확실해. 한강 고수부지.. 어, 여기가 어디더라.. 유람선 앞에 위치한 식당 내
바닷가재 전문점이야. 바보같이 기지 말고 빨리 출발해."
- 그럴리가... 분명히 몇시간이나 앞에서 지켰는데...
"등신새끼들.. 호텔 문이 하난가!? 말로만 조직이 아니라구... 분명 기발한 데로
빠져 나왔을거야. 인원이 모조리 다 거기로 가 있으면 어떻게 해!?"
- ... 알겠다. 곧 가지.
지원은 서둘러 플립을 턱으로 밀어 닫고는 화장실을 나섰다. 저 만치 이빨로
빨대를 잘근 잘근 깨무는 수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