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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토왕성폭포 빙벽대회를 끝으로 짧은 동계시즌이 끝나는 2월 초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형님! 저 석문입니다. 3월 중순경에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등반 갈 예정인데 같이 가실래요?” 우리나라의 짧은 겨울이 아쉬워 늘 로키산맥의 수백 미터를 뻗어 내린 하얀 빙벽을 동경하며 그 멋진 빙벽을 오르는 상상을 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 고맙다. 같이 가자.” “세 명이 갈 거예요. 종능이라고 형님 아시죠? 저하고 친구인데 괜찮은 놈이에요.” “응, 조금 안다. 너 하고 절친한 사이라면 아무 문제없다. 가서 멋지게 등반하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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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에 개척된 하프너의 M8+루트를 등반하는 최석문.
전화를 끊고 나니 내 몸속 곳곳에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며 흥분이 밀려왔다. 최석문(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고산거벽등산학교 강사)·안종능(넬슨스포츠·고산거벽등산학교 강사)과 몇 번의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다양한 등반을 위한 장비, 의류 등을 챙기다 보니 짧은 준비기간이 끝나고 출국 날짜가 다가왔다.
선운산 속살바위를 연상케 하는 하프너
포항 시골 클라이머들의 질투와 부러움에 가득 찬 환송을 뒤로 하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에어캐나다 소속의 밴쿠버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한 시간 전에서야 우리 공감 캐나디안 로키 등반대원 세 명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벌써 오래전부터 준비된 만남인 것처럼 아무런 어색함 없이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많은 원정대가 겪는 ‘1차 크럭스(등반 루트에서 고난도 지점을 뜻하는 말로 여기에서는 오버 차지를 의미)’를 통과하기 위해 공항 바닥에 6개의 카고백을 펼쳐 짐 정리를 하는 작은 소동 후 밴쿠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의 이번 원정은 캐나디안 로키의 밴프국립공원과 제스퍼국립공원 일대 믹스루트 등반과 알파인 등반이 주목적이다. 이곳으로 가려면 밴쿠버에서 국내선을 타고 캘거리로 이동 후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동절기에는 캠프사이트가 폐쇄돼 있으므로 등반 컨디션을 크게 좌우하는 숙소는 로지를 이용하는 것이 편한데 우리는 캔모어와 레이크루이스에 있는 ACC(캐나다 알파인클럽) 산장을 이용했다. 처음 이용시 ACC 회원에 가입을 하면 캐나다 내 ACC에서 운영하는 모든 시설에 대해 할인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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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프로페서. WI5의 7피치를 등반 중인 안종능. 2. 터미네이터 월 제3피치를 등반하는 필자와 최석문.
밴프(Banff)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시차 적응과 워밍 등반을 위해 밴프 장비점에서 추천받은 프로페서(Professor, 280m·7피치·WI4~5)를 등반하러 출발했다. 밴프 뒤에 우뚝 솟은 런들산(Mount Rundle)에는 우리의 가장 큰 등반 대상 중 하나인 터미네이터 월(Terminator Wall)과 프로페서 폴(Professor Fall), 10년 후(Ten years after) 등 7개 정도의 크고 작은 빙벽과 믹스루트가 있다. 프로페서가 우리의 등반대상은 아니었으나 터미네이터 월 등반을 위해선 사전 정찰이 한 번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에 주차장에서 2시간의 지루한 어프로치를 마다 않고 빙벽으로 향했다.
- 빙벽장에는 먼저 도착한 캐나다 클라이머 두 명이 등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등반을 보며 차 한 잔을 마신 후에, 혹시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염려하며 양해를 구한 후 심각하게 등반하고 있는 그들의 곁을 빠른 속도로 오르며 로키 산맥의 빙질을 확인했다.
거의 모든 피치가 WI4 정도였으며 마지막 피치만 우리의 입맛을 당기게 했다. WI5급의 40m가 넘는 수직벽. 석문의 깔끔한 선등과 종능과의 동시 등반으로 마지막 피치를 오르며 로키에서의 첫날 워밍업 등반을 마무리했다.
프로페서는 런들산을 바라볼 때 터미네이터 월의 좌측 하단부에 위치하며 93번 도로에서 상단부가 확인된다. 우리의 등반시스템은 8mm 더블로프를 사용하고 후등은 2명이 동시 등반하는 방식을 채택해 빠른 속도로 많은 등반을 할 수 있었다. 빙벽등반 대부분의 피치에 이 방식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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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상하단 등반거리 370m의 위핑 월 빙벽. 2. 위핑 월 상단 3피치를 등반하는 안종능.
14시간의 비행과 16시간의 시차는 우리의 컨디션을 엉망으로 만들며 새벽 2시면 눈이 떠져 아침을 기다리게 했지만 우리의 등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몽롱한 정신을 추스르며 20m 높이의 스포츠 믹스루트가 산재해 있는 하프너 크릭(Haffner Creek)으로 향했다. 어제 캘거리에서부터 내내 운전을 한 종능은 이번 등반의 모든 흐름을 좌우하는 매니저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었다.
출국 전부터 손에서 놓지 않던 믹스등반 가이드북을 틈만 나면 펼쳐 좋은 등반 대상지를 추천했고, 등반지가 결정되면 어프로치에서부터 하강 루트에 이르기까지 빠짐 없는 정보를 수집해 등반 계획을 수립하는 등 이동할 때나 물건을 살 때나 늘 우리를 리드했다. 6년 전 신혼여행을 이곳으로 온 경험과 명확한 판단력 그리고 학구적인 면 때문에 자연스레 우리의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된 것 같다.
마블 캐년(Marble Canyon) 주차장에서 하프너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은 많은 클라이머들이 다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린 가이드북이 안내한 대로 길을 찾다가 바로 근처에 나 있는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약 30분 동안 허리까지 빠지는 심설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진입로를 발견해 등반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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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수퍼 테리픽 해피 아우어(Super Terrific Happy Hour·M9-)를 피겨4 자세로 오르는 안종능. 2. 하프너. 모조(Mojo·M8+)를 등반하는 최석문.
평일인데도 미국 클라이머와 캐나다 클라이머들이 여럿 등반하고 있었다. 로 하프너(Low Haffner)와 어퍼 하프너(Upper Haffner)로 구성된 등반지 전체를 돌아보며 M5급부터 M10-급까지 다양하게 개척돼 많은 클라이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곳이 선운산의 속살바위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먼저 드라이툴링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M7급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다양한 난이도의 여러 루트를 등반해 이곳에서 믹스등반 난이도의 정도를 다 같이 느껴보자는 것이 대장인 석문의 생각이었다. 자유등반 난이도와 비교하는 것은 약간 모순이 있지만 우린 어려움의 정도를 자유등반과 비교해 토론하며 M9-급까지 여러 루트를 이틀 동안 즐겁게 등반했다. 우리의 등반에 관심을 갖고 몰려드는 키 큰 클라이머들의 시선을 받으며.
- 최고의 빙벽 대상지 위핑 월
석문과 종능이는 이곳저곳 원정을 많이 다녀서인지 요리를 참 잘한다. 식량을 구입할 때도 인스턴트는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등반할 때는 잘 먹어야 한다며 양념거리와 김치만 국내에서 구입해왔고 아침 저녁을 직접 조리해 맛있는 식사를 제공했다. 내가 할 역할은 쌀을 씻어서 밥을 하는 게 고작이어서 더 이상 실력 발휘를 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형님은 가만히 계셔도 돼요. 저희가 다 할게요.” 두 사람은 늘 이런 말로 나에게 예의를 지켰다. 또 친구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품위 있는 행동으로 깊은 우정을 보여주었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자일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 이놈들아!” 공동으로 사용하는 ACC 산장의 부엌을 코리안팀 전용으로 사용하며 맛있게 아침을 먹고 나서, 캔모어에서 약 2시간의 드라이브 끝에 도로 가까이 위치하면서 남향이라 햇볕을 받아 유난히 크고 하얗게 뻗어 내린 빙벽 앞에 차를 세웠다. 등반 예정인 위핑 월(Weeping Wall) 빙벽이었다. 아마도 로키 산맥에서 가장 넓게 형성되는 빙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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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터미네이터 월 제4피치를 등반하는 필자. 2. 스탠리 헤드월 제3피치. 필자가 신설이 많은 침니 구간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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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핑 월은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되는데, 상단에는 중앙 빙벽 외에 M8급의 믹스드 이모션(Mixed Emotion) 루트를 포함한 2개의 믹스루트도 개척돼 있었다. 그리고 하단 주변에는 약 60m 높이의 작은 빙벽도 여럿 보였다.
이틀간의 하프너 등반에서 우린 드라이 툴링의 묘미에 흠뻑 빠져 있던 터라 빙벽만 찍고 오르는 단순한 등반이 조금 싱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빙벽의 규모에 마음이 끌려 선등을 번갈아 가며 빠른 속도로 등반해 나갔다.
줄이 모자랄 땐 약간의 연등을 하며 세 피치를 끝내고 올라서니 기가 막히게도 우리가 올라온 높이만큼의 벽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벽이 크다 보니 높이에 대한 감각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하단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등반대의 “베리 스트롱(Very strong!)”이란 칭찬에 목에 약간 힘을 주고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위핑 월 상단을 힘차게 등반해 나갔다.
6피치, 총길이 370m의 빙벽 등반을 끝내고 하강을 완료하니 6시간40분이 소요되었다.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위핑 월은 숙련자가 리드해준다면 초중급자들 누구나 큰 부담 없이 기량껏 등반할 수 있는 대상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면 밤 9시가 넘을 것이고 10시가 돼서야 늦은 저녁을 먹을 것 같았다. 매일 저녁 종능은 허리 살이 얇아지고 있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환상적인 등반지 스탠리 헤드월
스탠리 헤드월(Stanley Headwall)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한 폭의 병풍처럼 펼쳐진 180m 높이의 환상적인 멀티피치 믹스루트는 마치 등반 천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등반 천국이었다. 가이드북에서 보던 사진과는 또 다르게 웅장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벽이었다.
걸음을 재촉해 신설이 쌓인 설사면을 가로지르며 벽 밑으로 접근하는데, 뉴질랜드 클라이머들이 프렌치 토스트(French Toast) 루트를 등반하고 있었다. 우린 나이트메어 온 울프 스트리트(Nightmare on wolf street / V, M7+, WI6+, 175m) 루트를 등반하기로 하고 출발지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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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장순례 위치도
제 1피치는 M7+의 믹스루트로 석문이가 앞장섰다. 날카로운 피크와 아이젠 발톱이 바위를 파고드는 듯 경쾌한 소리가 몇 분 동안 들리는가 싶더니 “완료!” 라는 외침이 들렸다. 제 2피치의 빙벽구간은 종능이가, 그리고 제 3피치는 5.9 정도의 침니 구간을 신설이 쌓인 관계로 끙끙 소리를 내며 내가 올랐고, 4피치는 석문이가 올랐다.
우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번갈아 선등하며 거침없는 속도로 스탠리 헤드월의 등반을 이어갔다. 마지막 제5피치까지 완벽한 등반을 펼친 후 하강을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6시간이었다. 점점 등반이 재미있어졌다.
마치 고구려의 주몽이 인근 부족을 하나하나 점령하듯 우린 거대한 로키 산맥에서 가장 멋진 벽들을 하나하나 우리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치밀한 작전과 준비, 뛰어난 용병들로 조용히 빠르고 완벽하게.
멋진 등반 후의 하산은 참으로 신나고 행복하다. 아침에 2시간 동안 힘들게 올랐던 설사면을 40분 만에 쏜살같이 내려왔다. 조금이라도 일찍 숙소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 로키에서 가장 센놈을 상대해야 한다.
“석문아!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에 와인 한 잔 하자!”
“예, 그러시죠!”
- 가장 센 놈 ‘터미네이터 월’
매일같이 밴프를 지나 다니며 눈으로만 노려보던 터미네이터 월에 드디어 출사표를 던졌다. 이곳에서는 등반을 안 하는 사람도 ‘터미네이터’라 하면 모두 눈을 크게 뜨며 아는 체할 정도로 유명하다. 결론은 로키에서 가장 센 놈이라는 얘기다. 이날은 로키에서 센 놈과 한국에서 센 놈들이 한판 대결을 벌이는 기념할 만한 날이 될 것이다.
로키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주변의 풍경에도 익숙해지고 아침 저녁으로 변화되는 날씨의 흐름도 대충 파악이 되었다. 이곳은 저녁 무렵이면 산 정상부부터 구름이 몰려들며 신설이 내리는 날이 많아, 매일 아침 산의 모습이 달라지곤 한다.
따라서 어프로치 조건 또한 매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터미네이터 월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며칠 전 프로페서를 등반하기 위해 올 때와는 달리 신설이 많이 쌓여 최악의 조건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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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미네이터 월 제2피치를 오르는 필자.
- 다행히 운이 좋아서인지 로키 산맥 가이드들로 구성된 등반 팀을 어프로치 초입에서 만날 수 있었다. 1m90cm는 훨씬 넘을 것 같은 큰 키의 캐나다 가이드들은 터미네이터 월을 등반하러 온 동양인 ‘꼬마’ 세 사람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앞에서 허벅지까지 빠지는 신설을 러셀하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
어프로치에 4시간 이상을 소모하며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벽 밑에 도착했다. 앞서 도착한 캐나다 팀은 유일하게 등반이 가능해 보이는 중앙 빙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 팀이 등반하기엔 빙폭이 너무 좁고 위험했다. 우린 선택의 귀로에 섰다. 내일 다시 오든지, 아니면 등반이 불가능할지도 모를 오른쪽의 멋진 믹스루트를 등반하든지.
짧은 망설임 뒤에 우리 셋은 센 놈들이 가는 길을 선택했다. 루트명 ‘Sea of Vapors(시 오브 베이포)’(WI7, M7+, 165m). 5급 빙벽의 첫 피치는 내가 선등을 준비했다.
전날 작전회의에서 제 1피치가 믹스 구간인 줄 알고 내가 선등을 자청했다. 석문이만 매번 재미있는 믹스 구간을 선등한다고 투덜거리며. 그런데 또 빙벽구간이었다.
“허허, 어쩔 수 없지. 내 복인걸.”
가볍게 1피치를 완료하고 세 사람이 1피치 종료지점에 모였다.
“저쪽 캐나다 팀들, 형 빙벽 하는 것 보고 눈을 못 떼던데요.”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우린 제 2피치 루트 관찰을 시작했다. 처음 7m 정도의 암벽구간만 루트 관찰이 가능할 뿐 이후로는 보이질 않았다. 루프가 시작되는 양호한 얼음이 있는 곳까지는 30m 정도이며 그 사이에 바위구간의 고정 확보물은 확인할 수 없고 오른쪽으로 코팅한 것처럼 얇게 붙은 얼음만이 등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것도 물기가 없는, 일명 마른 얼음으로. 등반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등반을 시작하면 다운도 불가능할 것이다. 선등을 준비하는 석문이가 열심히 루트 관찰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난 지나가는 말을 던졌다.
“내가 갈까?”
“형님! 무슨 말씀을.”
- 석문이가 출발을 했다. 긴장한 탓일까? 담배를 피워서일까? 석문이의 기침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제 2피치를 등반하는 약 40분 동안 난 석문의 확보를 보며, 시야에서 벗어나 보이진 않았지만 내 손을 빠져나가는 자일의 흐름에서 그의 숨소리와 긴장감, 두려움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어 무아지경의 등반세계에서 오름짓을 이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후등으로 종능이와 함께 오르며 석문과 연결된 자일을 통해 전해받은 내 느낌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오른 길은 등반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후등으로 오르는 동안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스노 샤워를 맞으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등반했지만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이 살벌한 구간을 선등한 석문이의 등반세계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어나갔다.
제 3피치는 WI6급의 어려운 빙벽구간이었으나 종능은 침착하면서도 안정된 모습으로 선등했으며, 마지막 25m 정도의 빙벽을 내가 등반하며 터미네이터 월 ‘Sea of Vapors’를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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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탠리 헤드월 마지막 피치에 모인 대원들. 앞줄에서 시계방향으로 김대우·최석문·안종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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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의 하산 끝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밤 10시. 새벽 5시부터 움직였으니 정말 긴 하루였다. 차에 도착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무거운 빙벽화를 벗고 하루 종일 고생한 발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다. 종능이가 차 안에서 홍삼액을 꺼내 하나씩 건넸다. 시원하면서도 독특한 홍삼 맛이 혀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전해졌다.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너무도 기쁘고 행복했다.
‘석문아, 종능아. 너흰 정말 센 놈들이다.’
석문이, 종능이!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정말 센 놈들이다. <계속>
/ 글 김대우 대우암벽교실 대표 · 향로산악회
사진 공감 캐나디안 로키 원정대
- 가장 센 놈 ‘터미네이터 월’
- 환상적인 등반지 스탠리 헤드월
- 빙벽장에는 먼저 도착한 캐나다 클라이머 두 명이 등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등반을 보며 차 한 잔을 마신 후에, 혹시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염려하며 양해를 구한 후 심각하게 등반하고 있는 그들의 곁을 빠른 속도로 오르며 로키 산맥의 빙질을 확인했다.
첫댓글 아~ 빙벽 보니까 가고도 싶고~ 무지하게 하고 싶네요~~~~*^^*...아~ 겨울이 언제 올련고~~~ㅋㅋㅋ..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