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서예교실(2012.2.23)
*삼남면 주민자체센터 인터넷 주소 : http://cafe.daum.net/samnamjumin
에 접속하시어 메뉴중에 “프로그램소개“--중에서 ”서예교실“ 에 들어가시면 서예반의각종 자료있아오니 많이 이용하시고 좋은 자료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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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동시(啐啄同時)
이 말은 '벽암록'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닭이 알을 쪼는 것을 '탁'이라 한다.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부화가 가능하다는 비유에서 유래됐다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마지막 관문이 껍질 깨기이다.
알은 단단하기만 하고 부리는 연약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나름대로 공략 부위를 정해 부리로 쪼기 시작하지만 힘이 부친다.
이 때 그 기별을 안 어미닭은 그 부위를 밖에서 쪼아 준다.
알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아리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줄」이라 하고, 밖에서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탁」이라 하는데, 줄과 탁이 동시에 일어나야만 목적한 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줄탁동시(啐啄同時)'입니다.
‘줄탁’의 행위는 대단히 미묘한 것이어서 '줄'과 '탁'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생명은 부화되지 못한다.
알의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뜻과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비로소 생명이 탄생되고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족관계, 사업관계, 국제관계, 인간관계 등 모든 ‘관계’가 이 줄탁동시의 노력과 조화가 있을 때 바르게 이루어진다.
- 벽암록 (碧巖錄) 에서 -
행복한 가정은 부부(夫婦)가「줄탁동시」할 때 이루어지고
훌륭한 인재는 사제(師弟)가「줄탁동시」할 때 탄생하며
세계적인 기업은 노사(勞使)가「줄탁동시」할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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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조람경(秋朝覽鏡)가을아침 거울을 보고--설직(薛稷) 자:飼桶
客心驚落木(객심경낙목) : 나그네 마음 잎 지는 나무에 놀라고
夜坐聽秋風(야좌청추풍) : 밤에 홀로 앉으니 가을 바람소리 들린다
朝日看容髮(조일간용발) : 아침에 얼굴과 구레나룻을 보니
生涯在鏡中(생애재경중) : 내 삶이 거울 속에 있구나
황진이(黃眞伊)의 한시 및 시조
조선시대의 시인 겸 명기(名妓) 황진이,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자세한 내용는 밝혀지지 않으며 중종 임금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며,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으며,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대표작으로《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咏初月詩)》그외 <청신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밤>,<내언제신이없어>,<산은 옛산이로되>,<어저 내일이여>등이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에 전하고 있다.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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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자, 기계(妓界)에 투신, 문인(文人) ·석유(碩儒)들과 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小栢舟(소백주) - 잣나무 배 <황진이>
汎彼中流小柏舟 (범피중류소백주)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 배
幾年閑繫碧波頭 (기년한계벽파두)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後人若問誰先渡 (후인약문수선도)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文武兼全萬戶侯 (문무겸전만호후)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 세월이 흐른 뒤, 황진이가 자신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지었을 법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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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가 화담 서경덕을 유혹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30년 수행의 고승이라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파계시킨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어느 비 오는 날 황진이가 소복을 하고 지족암을 찾아갔다. 그리고 선사에게 말했다.
지족선사. 당시 송도 인근에는 아주 유명한 스님이었다.
면벽 10년의 묵언수행(默言修行). 그는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벽만을 바라보며
반쯤 감은 눈을 아래로 깔고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그렇게 수행하기를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그는 오로지 벽을 향하여 앉아 한 마디 말도 않은 채 정말이지 장승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 송도에서 한창 이름을 날리던 황진이도 그의 명성을 들었다.
요즘처럼 비가 오락가락하는 여름날. 황진이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왕실의 종친이라는 유학자 벽계수도 무너뜨린 그녀가 아닌가. 그녀는 홀로 지족선사가 수행하고 있다는 굴을 찾아간다.
마침 비가 내려 흠뻑 비에 젖었다. 겉옷을 벗어 들었다.
하얀 속옷 치마 저고리. 비에 젖은 옷은 그녀의 몸매를, 아니 알몸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벽을 향하여 앉은 지족의 옆에 살며시 다가간 황진이.
“소녀는 병부교 부근에 사는 진이라고 하옵니다. 대사님의 우레 같은 고명을 듣고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나이다. 소녀는 일찍이 지아비를 잃고 청상이 되었는데, 마침 의지하고 살 자식 하나 없기에 궁리를 거듭하다 이 몸을 부처님께 바치고자 결심하고 대사님의 제자가 되고자 찾아왔나이다. 원컨대 소녀의 청을 물리치지 마시고 제자로 거두어주소서!”
지족선사가 보기에 깊은 산중 암자에서 불도만 닦고 살았지만 참으로 이런 절색은 본 적이 없는지라 마치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하여 자신의 수행을 시험해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니 자칭 청상과부라는 젊은 여인의 소복이 비에 젖어 탐스럽게 굴곡진 싱싱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닌가. 지족선사는 여인의 아름다움에 취해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이것이 필시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둔갑한 여우가 틀림없어! 두려운 생각이 든 선사는 열심히 염주를 굴리며 속으로 쉴 새 없이 염불을 했다.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 이게 무슨 변고인가.
여자가 입고 있던 옷을 하나하나 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청상과부라고 한 것을 보면 아마도 당시 황진이의 나이는 30세 전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창 물이 오른 풍만한 나신을 보자 선사는 눈알이 팽팽 돌아 미칠 것만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선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청상과부 아닌 황진이에게 덤벼들었다. 그렇게 해서 지족선사의 30년 수행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으며 이때 생긴말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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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천하제일의 풍류남아를 자처하던 벽계수가 송도로 간다니까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다.
“자네도 마침내 송도 명기 황진이의 치마폭에서 놀아보게 됐네 그려!” 그러자 벽계수가 코웃음을 쳤다.
“흥, 아무리 황진이라도 내게는 어림도 없지! 만만히 보고 덤비기만 하면 다리야 나 살려라하고 도망치게 만들어버리겠네!”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송도로 내려온 벽계수였다. 벽계수의 왕림을 환영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과연 벽계수는 잔치가 끝날 때까지 황진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며칠 뒤 벽계수가 만월대로 달구경을 나갔다. 그때 어디선가 이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노랫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는데 자세히 볼 필요도 없이 선녀의 목소리같이 아름다운 그 노래의 주인공은 황진이였다.
황진이가 다가와 벽계수의 말고삐를 잡자 벽계수가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와 황진이의 손을 더듬어 꼭 잡았다. 그렇게 하여 벽계수는 황진이와 한 해 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천부적 미모와 재주를 타고났건만 남녀차별과 신분차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명월이란 기생으로 일생을 보내야 했던 황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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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과 황진이의 사랑이야기
다음은 서경덕. 조선 중종 때의 유명한 도학자이다.
1489년에 태어난 그는 18세 때에 <대학 >을 배우다가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명확히 함, 혹은 자기 마음을 바로잡고 선천적인 좋은 지식을 갈고 닦음)'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원리에 의지하여 학문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과거 시험에는 뜻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명령으로 사마시(司馬試 생원과 진사를 뽑는 작은 규모의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했을 뿐 벼슬살이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오로지 도학에만 전념하였다.
집은 극히 가난하여 며칠 동안 굶주려도 태연자약하였으며, 제자들의 학문이 진취된 것을 볼 때에는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평생을 산림 속에 은거하여 산 것을 볼 때에는 세상에 대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치의 잘못을 들을 때에는 개탄함을 금하지 못해 임금께 상소를 올려 잘못된 정치를 비판했다고 한다.
이 서경덕이 바로 송도 부근의 성거산(聖居山)에 은둔하고 있을 때였다.
자연히 그의 인물됨이 인근에 자자하게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을 황진이도 들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황진이가 서화담을 찾아왔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도 돌아갈 생각을 않고 있더니 갑자기 “아이구, 배야! 아이구, 나 죽네!”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뒹구는 것이었다. 물론 꾀병이었다.
화담이 한 채밖에 없는 자신의 이부자리를 깔아주고 그 위에 눕혔다. 황진이의 비명은 잦아든 대신 신음으로 바뀌었는데, 그 신음이 마치 사내를 유혹하는 교성처럼 요상했다.
화담은 옆방으로 건너가 밤늦게 책을 읽었다. 황진이가 이 영감이 언제 건너와 덮치려는가 하고 쉴 새 없이 교태성 신음을 날려 보냈으나 화담은 밤새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얼마후 황진이는 다시 화담을 찿아갔다.그날은 비 오는 날이었다.
하얀 속치마 저고리, 그 위에 흘러내린 비. 비에 젖은 하얀 비단 속옷이 알몸에 밀착되어 가뜩이나 요염한 기녀의 몸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차림으로 계속 비를 맞으며 서경덕이 은거하고 있던 초당으로 들어갔다.
물론 서경덕 혼자 있는 집이었다.
그러나 서경덕은 지족과 달랐던 모양이었다.
조용히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은 오히려 황진이를 반갑게 맞이했고, 비에 젖은 몸을 말려야 한다며 아예 황진이의 옷을 홀딱 벗긴 모양이었다.
옷을 벗기고는 직접 물기를 닦아주는 서경덕의 자세에 오히려 황진이가 부끄러울 판이었다.
그래도 황진이는 "저도 사내인 것을……" 하며 은근히 오기를 가졌던 모양이었다.
황진이의 몸에서 물기를 다 닦아낸 서경덕은 마른 이부자리를 펴 황진이를 눕히고는 몸을 말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 꼿꼿한 자세로 글읽기를 계속했다. 날은 어두워졌고 이윽고 밤이 깊었다. 황진이가 잠을 잘 수 있겠는가. 삼경쯤 되자 이윽고 서경덕이 황진이 옆에 누웠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이내 가볍게 코까지 골며 편안하게 꿈나라로 가버리는 서경덕. 아침에 황진이가 눈을 떴을 때 서경덕은 이미 일어나 밥까지 차린 모양이었다. 대충 말린 옷을 입고는 부끄러워서라도 황진이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황진이는 성거산을 다시 찾았다.
물론 의관을 제대로 갖추고 음식을 장만하여 서경덕을 찾아갔다.
역시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이 이번에도 반갑게 맞았고, 방 안에 들어선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큰절을 올리며 제자로 삼아달라는 뜻을 밝혔다.
빙그레 웃는 서경덕. 이 후의 일은 상상을 할 수 있다.
어느 야사에도 서경덕이 황진이와 놀아났다는 기록은 없다.
둘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오직 흠모 혹은 존경이라는 단어뿐이다.
황진이가 문득 서경덕에게 이렇게 말했다.
<송도에는 꺾을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사옵니다.>
서경덕이 황진이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첫째가 박연폭포요, 둘째가 선생님이십니다.>
서경덕이 미소를 지으며 셋째를 물었다. <바로 저올시다.>
송도에 있는 것 중 도저히 꺾을 수 없는 세 가지 혹은 가장 뛰어난 세 가지.
송도삼절(松都三絶)은 그렇게 황진이의 입을 통해 만들어졌다.
서경덕도 동감이나 하는 듯이 소리없는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서경덕이 아무리 도학자이고 뛰어난 사상가라고는 하나 당시의 신분으로 보면 양반이요,
그도 역시 사내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을 했고 첩까지 두었다.
그리고 여자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진이와의 관계는 왜 그렇게 아름답고 순수했을까.
이는 황진이도 마찬가지였다.
서경덕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는 스승을 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로지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지 사내로서의 서경덕이 아니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성거산에 은거하여 살던 서경덕이 가끔은 황진이를 그리워했던 모양이다. 그가 남긴 시조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마음이 어린 後ㅣ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萬重雲山에 어늬님 오리마는,
지는 닢 부는 바람에 幸여 긘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고 보니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다
만겹으로 구름이 둘러싸인 성거산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오겠는가
그런데도 불어오는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소리를 듣고
혹시 그녀가 왔나 하는 마음에 방문을 열어본다.)
마음이 어리석고 보니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다,
만겹으로 구름이 둘러싸인 성거산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오겠는가,
그런데도 불어오는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소리를 듣고
혹시 그녀가 왔나 하는 마음에 방문을 열어본다. 대충 그런 뜻이다.
조선조의 벼슬아치나 유학자들이 임금을 생각하며 일반적으로 부르는 님이 아니다.
서경덕의 시조에서는 분명 여인을 그리는 남자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현상이다.
서경덕이 이 시조를 부를 때에 누군가가(마당을 쓸던 하인일 수도 있고, 제자일 수도 있다) 들었던 모양이다. 그대로 황진이에게 전해졌다.
황진이는 어땠는가. 그녀 역시 비록 스승으로 서경덕을 모시고는 있지만 끔찍이도 그를 사모했던 모양이다. 서경덕이 부른 시조에 곧바로 화답한다.
늬 언제 無信하야 님을 언제 속엿관데
月沈 三更에 온 뜻지 全혀업네
秋風에 지는 닙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내가 언제 신의도없이 님을 속였겠는가. 절대 그런 일이 없다
그런데 달 밝은 깊은 밤에 무기력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없다
즉 허전하다, 가을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내가 어쩌겠는가)
내가 언제 신의도없이 님을 속였겠는가, 절대 그런 일이 없다,
그런데 달 밝은 깊은 밤에 무기력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없다,
즉 허전하다, 가을 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까지 내가 어쩌겠는가. 이런 뜻이다.
분명 서경덕의 시조 종장에 대한 답이다. 나도 당신이 그리운 것을,
당신이 나를 그리며 나뭇잎 소리를 내 발걸음 소리로 착각하는 것까지 내가 어쩔 수 있겠는가, 뭐 그런 뜻이다. 그만큼 나도 당신이 보고 싶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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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린 후(後)ㅣ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늬 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혀 긘가 하노라.
[현대어 풀이]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이 모두 어리석구나.
구름이 겹겹이 쌓여 험난하고 높은 이 산 중으로 어느 임이 나를 찾아오겠는가마는,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와 바람부는 소리에 혹시 임이 오는 소리가 아닌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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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자 서경덕은 명기 황진이와 사제지간으로도 지냈다고 한다. 학자 서경덕에게도 제자로서의 두터운 정이 생겨나 은둔 생활 중, 마음으로 서로를 기다리고 있는 심정을 꾸밈없이 표현하였다.
[이해와 감상]
화담에게 글을 배우러 오던 황진이를 생각하면서 지은 노래라고 하는데, 학문밖에 모르는 서화담도 황진이의 여성적인 매력에는 역시 마음이 흔들렸던가 보다.
초장에서는 어리석은 자신을 고백하며 후화하고 있고, 중장의 '님'은 황진이로 짐작되며, 종장에서는 임에게로 향한 그리움이 못내 사무쳐, 낙엽지는 소리와 바람부는 소리가 들려도 기다리던 임의 발자국 소리로 착각할만큼, 화자의 애틋한 마음이 간절하기만 하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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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포가(秋浦歌)-이백(李白)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 백발은 길이가 삼천 길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 근심 때문에 이렇게 자랐다.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 모르겠구나, 맑은 거울 속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 어느 곳에서 서리를 얻어왔나.
추포가9(秋浦歌9) / 이백(李白)
江祖一片石 (강조일편석) 강조의 한조각 돌
青天掃畫屏 (청천소화병) 푸른 하늘이 쓸어낸 병풍이다
題詩留萬古 (제시류만고) 병풍에 시를 지어서 만고에 남기려니
綠字錦苔生 (록자금태생) 푸른 글자에 비단 이끼 돋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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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포가12(秋浦歌12) / 이백(李白)
水如一匹練 (수여일필련) 물은 한 필의 비단
此地即平天 (차지즉평천) 땅은 넓은 하늘같구나
耐可乘明月 (내가승명월) 차라리 밝은 달 타고
看花上酒船 (간화상주선) 꽃구경하러 술 실은 배에 올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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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포가13(秋浦歌13) / 이백(李白)
淥水淨素月 (록수정소월) 푸른 물에 깨끗하고 흰 달
月明白鷺飛 (월명백로비) 달빛은 밝은데 흰 백로가 날아드네
郎聽採菱女 (랑청채릉녀) 총각이 마름 따는 처녀 노래를 듣네
一道夜歌歸 (일도야가귀) 밤 길 집으로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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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山兮要我 - 청산은 나를 보고 -나옹선사 (懶翁禪師)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료무애이무증혜)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2연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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