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eview MDCCLXIV / 김영사 30번째 리뷰] '김용의 3부작'의 첫 작품인 <사조영웅전>의 대단원이 열렸다. 이 소설의 주제는 '영웅이란 무엇인가?'라고 앞서 밝혔다. 그리고 그 영웅을 가리기 위해서 '화산논검대회'가 열렸던 것이다. 1차 대회는 왕중양, 황약사, 홍칠공, 구양봉, 단지흥, 구천인이 참석해 우열을 가리려 했다. 그러나 구천인은 철장방의 내부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대회에 불참하였고, 나머지 다섯 명이 몇 날 며칠을 싸운 뒤에 전진교의 왕중양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우승자에게 '구음진경'이라는 무공비급을 차지할 권리를 주었다. <사조영웅전>의 이야기는 바로 '구음진경' 때문에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웅의 첫 번째 조건은 '강한 힘'을 소유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강호의 영웅들은 호시탐탐 '구음진경'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그로 인해 목숨까지 헤치고, 또는 잃어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 비급에 담긴 무공이 너무나도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그랬던 것이다.
'구음진경'에 담긴 무공을 익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초 작성자인 '황상'이 도가의 경전을 섭렵한 뒤에 불로장생의 비법으로 무술의 내공과 외공을 닦는 비결을 '구음진경' 한 권으로 요약해 놓았던 것인데, 황상이 속세를 떠난 뒤에 오래도록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다시 세상밖으로 그 존재가 드러나자 '구음진경'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커지면서 '제1차 화산논검대회'가 개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왕중양'이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기에 '구음진경'을 차지했으나, 왕중양은 '도가의 도사' 신분이었기에 '구음진경'을 자신이 차지한 뒤에 홀로 그 비급의 무공을 습득하고, 그의 제자와 그의 후학들에게만 '구음진경'의 무술이 전수되었을 때 벌어질 파란을 떠올리면서, 오히려 '구음진경'을 연마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도교에서 '소유욕'이 세상 만물을 불행으로 이끄는 원인이라고 보는 사상에 비추어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한 쪽이 '강한 힘'을 갖게 되면, 언젠가는 그 힘을 상대할 '더 강한 힘'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서로 '강대강의 대치국면'이 연이어 발생하면, 끝내는 '모두가 파멸을 하고도 남을' 가공할 힘을 갖게 되어 이득보다 해악을 더 많이 끼칠 것을 걱정한 것이다. 오늘날의 '핵무기'를 떠올리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대국이라 자처하는 나라들이 '핵무기 경쟁'을 벌여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를 절명시킬 만큼 핵무기의 파괴력을 높여놓았고, 그렇게 강력한 무기 제조법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힘 쎈 나라' 축에 끼려고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기 시작하다, 급기야 핵무기를 절대로 가져서는 안 될 나라들도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남몰래 핵무기를 보유하여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왕중양의 '선견지명'은 이런 핵무기 경쟁과 위협으로 인한 파멸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왕중양은 절세의 무공을 갖추고도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걸 눈치 챈 구양봉은 왕중양이 죽으면 '구음진경'을 차지할 목적으로 쳐들어갔으나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친다'는 계략으로 구양봉은 실패하고 만다. 그럼에도 왕중양은 '죽음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고, 자신의 의동생인 주백통에게 '구음진경'을 맡겼으나, 신혼여행 중이던 황약사 부부의 꾀에 속아넘어가 '구음진경'을 통째로 외워버린 황용의 어머니에 의해 '상권/하권'으로 나뉘어 도화도에 보관(?)하게 되었다. 그러다 황약사의 제자였던 진현풍과 매초풍에 의해 '구음진경 하권'이 세상밖으로 나가게 되었고, 그 하권에 수록된 '최심장'과 '구음백골조'라는 무공만으로도 강호의 영웅들을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로써 세상 사람들은 '구음진경'을 갖고 싶어하게 된 것이다.
허나 '구음진경'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왜냐면 왕중양이 유언으로 '전진교의 사람은 절대로 구음진경의 무공을 익혀선 안 된다'고 남겼기 때문이고, 황약사 또한 '구음진경'을 얻은 이후에 급작스럽게 아내가 죽고, 어린 딸인 황용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두 명의 제자가 '구음진경 하권'을 가지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황약사는 절대무공을 익히기도 전에 '구음진경'을 잃어버린 셈이다. 그러다 곽정이 도화도에 도착해서 주백통과 만나 의형제를 맺으면서 부지불식간에 '구음진경'을 배우고 말았다. 창졸지간이라 배움의 기간이 짧았고, 수련기간 또한 짧아 '구음진경'을 제대로 시전할 수 없었지만, 책의 내용을 통째로 암기해버리는 행운(?)을 얻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주백통은 곽정에게 '구음진경'을 가르치다 그만 '무공'을 익혀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이후 홍칠공이 구양봉의 독수에 휘말려 무공을 모두 잃고 죽을 위기에 처하자 '구음진경' 중 내공치료법에 해당하는 '역근단골편'을 연마해 회복하게 되었고, 일등대사가 된 '단지흥'도 황용의 목숨을 구하다가 영고의 독수에 당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구음진경' 가운데 내공연마 방법이 수록된 구결을 해석하면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렇게 '구음진경'이 세상에 모습을 차차 드러내게 되면서 '무림의 서열'이 빠르게 변하게 되었다. 이제 곧 '제2차 화산논검대회'가 개최될 당위성이 갖춰지게 된 셈이다.
그런 가운데 서독 구양봉도 '구음진경'을 곽정에게서 얻게 된다. 허나 곽정은 구양봉에게 온전한 '구음진경'을 전수해준 것이 아니라 '열에 아홉은 진짜'지만, '하나는 가짜'로 적은 괴상망측한 '구음진경'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구양봉이 익힌 '구음진경'은 독특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원래 '상승의 내공'을 연마할 때는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주화입마(정신착란과 반신불수를 일으키는 내공의 불협화음)를 일으키기 마련이지만, 구양봉은 비록 악한이긴 하지만 '무학의 일대종사'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실력을 갖춰기에 죽지도 않고 '요상한 무공'을 완성해내는 기염을 토하게 된 셈이다. 그 결과 '제2차 화산논검대회'에서 최종승자를 차지한 것은 바로 '서독 구양봉'이었다. 허나 그는 대회기간이 다가오자 무리하게 '엉터리 구음진경'을 연마하다 그만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미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제정신을 차리진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영웅이란 누구란 말인가?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저렇게 미쳐버리고 말았으니, 그를 영웅이라 칭해야 옳단 말인가? 아무리 '강한 힘'을 소유했다하더라도 온전한 정신을 갖추지 않으면 '영웅'이라고 불릴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나치의 히틀러가 강력한 독일군대를 앞세워 세계정복을 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그가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을 무참히 살상한 죄를 물어, 그에게 '영웅' 칭호를 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몽골의 최고 수장 '칭기즈칸'도 마찬가지다. 그의 군대는 마주치는 적을 압도하며 '패배'를 몰랐지만, 점령지의 주민들을 모조리 학살하는 등 그가 저지른 행위는 '잔혹'하고 '끔찍'한 만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처럼 아무리 '강한 힘'을 갖고 영웅적인 행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인류의 공영'을 해치는 짓을 한다면 진정한 영웅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럼 영웅의 두 번째 조건은 '선한 마음'인 걸까? 착한 마음씨를 가진 등장인물은 '곽정'이다. 그는 머리는 우둔한 편이지만 '한 번 마음 먹은 것'은 기필코 해내고야 마는 '끈기'를 지녔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인내심'도 대단하며, '강한 힘'을 갖게 되었더도 '함부로' 쓰지 않고, 자기를 위하기보다는 남을 위해서 '큰 힘'을 쓰는 정정당당한 영웅호걸다운 풍모를 갖췄다. 그렇다면 '곽정'이 진정한 영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까? <사조영웅전>의 이야기속에서 그가 '사소한 약속'조차 하찮게 여기지 않고 '꼭 지키려' 애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은 언제나 '그의 주변사람들'이었고 말이다. 물론 곽정은 '성장기 소년'에게서 엿볼 수 있는 질풍노도의 모습 보였고, 중요한 시기마다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곽정은 '소년 영웅'이라기보다는 '착하고 우직한 시골소년'의 순수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순수함' 때문에 그는 종종 '야만적'인 모습도 보이곤 한다. 그의 사부인 '강남오괴'가 황약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단단히 오해를 하자, 곽정은 사랑하는 '황용'이라도 무섭도록 야멸차게 내밀어버리고 말았다. 정작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완안홍열'은 번번히 놓치면서도 '다음 기회를' 노리던 여유로운 모습이 돌변해 자신의 사부들이 죽은 사실을 눈앞에서 확인하지 '황약사와 황용'에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그리고 그 화난 모습은 평소에 지녔던 '선한 마음'에 비례해서 더욱더 크게 분노하고 만 것이다. 이런 곽정을 두고서 '소년 영웅'이라는 칭호가 어울리겠는가?
사실 <사조영웅전>에서는 진정한 영웅을 찾을 수 없다. 황상, 왕중양, 칭기즈칸, 곽정 등이 '영웅의 후보'에 들 수 있겠으나 이들 모두에게는 '결격사유'가 나름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바로 '구음진경' 말이다. 오늘날도 치면 '핵무기 제조법'에 빗댈 수 있는 이 막강한 무공비급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사조영웅전>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이나 완안홍열 같은 이들은 '무림(강호)의 사람'이 아닌 탓에 '구음진경' 같은 무공비급을 탐하지 않았지만, 군대를 다루어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비급, '무목유서'를 탐했으니, 이 또한 '핵폭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세상에 '구음진경', '무목유서', 그리고 '핵폭탄'과 같은 절대적인 강한 힘을 갖게 될 때 '어떻게' 다뤄야 가장 바람직한 일인가 말이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그 힘'을 제대로, 제 때에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닌 '전인류의 공영과 평화'를 위해 그 큰힘을 써야만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사서독 남제북개 중신통'은 모두 진정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무능한 황제와 신하들이 나라를 말아먹은 '송나라'도 영웅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무능한 송나라를 대신해서 '천하'를 다스리려던 금나라 또한 영웅 자격을 논할 수 없다. 그렇다면 12세기, 새로운 패권 국가로 떠오르는 '몽골'은 어떤가? 소수 부족국가로 송나라와 금나라에 치이며 살아가던 '몽골족'을 통합하여 전세계를 주름잡고서 '몽골제국'으로 거듭난 칭기즈칸은 영웅의 칭호를 받기에 걸맞은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세운 '몽골제국'은 강한 힘으로 반항하고 저항하는 세력들을 억누르는데 썼으므로 '자격박탈'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향후 '몽골제국'은 몽골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한족'을 비롯한 다른 민족을 억압하고 수탈하면서 불과 200여 년만에 단명하고 말았다. 영웅의 나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럼 '진정한 영웅'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강한 힘으로 약자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강한 힘으로 부당한 무리들을 소탕하고, 그 무리들이 저지르는 불의를 박멸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 참지 않고 '그 큰힘'을 발휘해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하고도 '자기 욕심'을 채우지 않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어야 비로소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진정한 영웅'이 존재할 수나 있는걸까? 그렇기에 우리는 '완성형 영웅'이 아닌 '성장형 영웅'을 눈여겨 보게 된다. <사조영웅전> 속에서는 '곽정'이 바로 그런 인물일 것이다. 그는 비록 아직 영웅이라 불리기에 많이 부족한 인물이지만, 그 부족한 인물이 '성장'하면서 진정한 영웅적인 면모를 갖춰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흐믓해 할 것이다. 김용 작가는 이런 영웅적인 '곽정'을 한족 출신의, 한족에 의한, 한족을 위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어 범세계적인 영웅이 아닌 '중화민족'에 한정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어서 많이 아쉽다. 암튼, 이 '성장형 영웅'인 곽정의 모습은 <신조협려>에서 더욱더 빛을 발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영웅'인 양과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더욱 새로워지고 말이다.
https://blog.aladin.co.kr/728876216/15532648
https://sarak.yes24.com/blog/zizi0908/review-view/19813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