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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선(無事禪)>
무사선(無事禪)에는 두 가지가 있다.
당대(唐代) 조사선(祖師禪)시대의 무사선과
송대(南宋)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가 비판한 무사선이다.
이 둘은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다르다.
― 당(唐)대 무사선(無事禪) ―
당(唐)대 무사선(無事禪)은 곧 조사선(祖師禪)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대 선승들은 모두 무사(無事)를 수행의 목표로 삼았다.
조사선 시대 무사선의 지향점은 본래무사(本來無事)를 모토로 해서,
일상생활에서 평상무사(平常無事)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깨닫기 위한 인위적인 수행은 오히려 향외치구심(向外馳求心)이 되며,
그것은 도(道)를 장애하는 번뇌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심(無心), 무위(無爲)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일상에서 평상무사의 실현, 일상 자체가 수행이고 깨달은 자의 삶 추구였다.
무사(無事)의 어의(語義)는
‘아무런 일이나 문제가 없는 것’ ‘평온함’을 뜻한다.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라고 정의하고 있는 바와 같이,
무사는 당대(唐代) 조사선이 추구했던 수행의 도달점(목표)이었고,
동시에 깨달은 자의 삶의 모습이었다.
즉, 깨달아야 한다는 의식이나 인위적인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평상무사, 즉 일상 그 자체가 수행이 돼야 하고,
깨달은 자(부처)의 삶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선 시대 무사선의 지향점은 …
‘무심(無心), 무위(無爲)한 입장과 관점에서 깨달아야 한다는 의식이나
인위적인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평상무사, 즉 일상 그 자체가 수행이 돼야 하고,
깨달은 자(부처)의 삶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사’ ‘본래무사’ ‘평상무사’의 사상적, 철학적 바탕은
혜능 대사가 말한 무념위종(無念爲宗)으로 수행의 근본을 삼음과,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이 말하고 있는 무수무증(無修無證)이다.
즉 ‘본질적으로 닦을 것도 깨달을 것도 없다’고 하는 관점에 있는 무사로,
이것은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본 무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번뇌 망념과 집착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그 결과 닦아야 할 일(事)까지도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런 존재를 ‘임제록’에서는 무사인(無事人, 일없는 사람),
또는 요사인(了事人, 일 마친 사람)이라고 했다.…
당대(唐代) 조사선은 곧 무사선(無事禪)이었다.
이 시대 선승들은 모두 무사를 수행의 목표로 삼았다.
그것을 당대의 선승 영가 현각(永嘉玄覺, 665∼713)은
<증도가(證道歌)>에서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閑道人)’이라고 표현했다.
절학(絶學)은 무학(無學)과 동의어로,
‘배워야 할 것은 다 배우고, 닦아야 할 것은 다 닦았기 때문에
더 이상 배운다거나 닦아야 할 것이 없는 한가한 도인’이라는 뜻이다.
무위(無爲)는 곧 무사(無事)로 무사선을 잘 표출하고 있는 말이다.
이어 나오는 문구는 불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인데,
(본래무사이므로)망상을 제거하려고도,
진(眞)을 구하려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사선 시대의 무사선은
송대(남송) 대혜 종고(1089∼1163)가
‘무사갑리(無事甲裏, 안일 무사한 것),’
무사계리(無事界裡,
무사에 빠져서 진정한 불도수행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
또는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하고 있는
무사선과는 다르다.
당대 조사선 시대의 무사선은 본래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평상무사(平常無事)로,
무심한 경지에서 인위적인 조작을 떠난 것,
모든 수행을 완료한 사람, 수행해야 할 것은
다 수행해서 마친 사람(了事人), 그리하여
숙제나 과제 등 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無事人)을 가리키며,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절대적인 존재(無事是貴人)를 가리킨다.
무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임제 의현(臨濟義玄)이 강조하고 있는데,
그의 법어집 <임제록(臨濟錄)>에는 무사가 무려 14회,
그리고 무사인,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 무사인이 가장 존귀한 사람),
수처무사(隨處無事, 가는 곳마다 무사), 평상무사(平常無事, 평상한 무사) 등
무사와 관련된 어휘가 적지 않게 나온다.』 ― 윤창화
― 송(宋)대의 무사선(無事禪) ―
송(宋)대의 무사선(無事禪)은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비판한,
즉 송대(남송) 간화선에서 비판한 무사선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고요하게 앉아 있는 것(默照),
즉 무사안일과 무위도식에 대한 비판이었다.
다시 말하면, 무사갑리(無事甲裏-안일 무사한 것),
무사계리(無事界裡-무사에 빠져서 진정한 불도수행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
또는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고 비판한 무사선 이었다.
그런데 대혜 종고의 1차적인 비판 대상은
임제종 황룡파의 동림 상총(東林常總, 1025∼1091)이었다.
대혜는 임제종 양기파로 같은 임제 계통이었는데,
그는 선종의 일화를 모아놓은 <종문무고(宗門武庫)>라는 책에서
“조각(照覺, 동림상총의 시호)은 평상 무사함과
지견해회(知見解會, 알음알이)가 없는 것으로써 도(道)를 삼고 있으며,
더욱더 묘오(妙悟, 깨달음)가 있음을 구하지 않는다”라고 해서
평상무사, 안일무사에 빠져서 묘오(妙悟)가 있는데도
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것은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의
묵조선(黙照禪)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무사선(無事禪)을 비판하는 입장의 간화선 창시자
대혜 종고(1089~1163)는 굉지 정각(宏智正覺)의 묵조선(默照禪)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고요하게 앉아(묵조) 있을 뿐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다고 질타하면서
이러한 무사안일과 무위도식을 비판하여 무사선이란 말을 썼던 것이다.
이런 비판을 했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묵조선(默照禪)은
간화선(看話禪)과 함께 조사선의 대표적 수행법으로 자리하며
크게 성행한 행법이었다.
묵조(默照)는 참구하는 본인이
이미 제불(諸佛)과 동체(同體)의 상태에 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묵묵히 말을 떠나 좌선하는 곳에
그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진리 그 자체의 작용이 일어나고,
지혜의 빛이 나오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모든 인연을 놓아버리고 만사를 휴식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오로지 지관타좌(只管打坐) 해서 견성(見性)한다는 것이다.
‘묵(默)’이라는 글자는 무명(無明) 중생의 깊은 침묵 선정 속에서
터져 나오는 지혜의 불꽃소리인 동시에 광명이라는 말이며,
‘지관(止觀)’ 할 때의 ‘지(止)’에 해당하며,
근래 남방불교에서 말하는 사마타(śamatha)에 해당한다.
‘조(照)’라는 글자는 어둠이 걷히면서 햇살이 밝아오는 모습이니
무명의 어둠이 차츰 사라지면서 지혜광명이 드러남이다.
이는 ‘지관(止觀)’ 할 때의 관(觀)에 해당하며,
남방불교에서 말하는 위빠사나(vipassana)에 해당한다.
몸으로는 묵묵히 좌선으로 일관하는 ‘묵(默)’,
마음으로는 본래부터 깨달은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조(照)’가
묵조선 수행의 근간을 이룬다.
남방불교에서의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함을 말한다.
‘묵(默)’이란 무분별을 의미하고,
‘조(照)’는 본원과의 계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래 부처의 상태에 있는 자신의 본원자성(本源自性)을
묵묵히 관조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서, ‘묵’은 침묵한 채 마음을 오롯하게 해서
좌선(坐禪)하는 것을 뜻하며,
‘조’는 지혜로써 본래 깨끗한 마음의 성품을 비추어보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묵조선은 좌선을 통해 본래의 불성을 스스로 깨닫는
‘본증자각(本證自覺)’에서 출발하는 선을 말한다.
※본증자각(本證自覺)---묵조선(默照禪)은 참구하는 본인이
이미 제불과 동체(同體) 상태에 있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부처의 경지가 완벽하게
본구(本具:본디부터 갖추고 있음)돼 있으므로
이 본구성(本具性)을 자각하고 외경에 얽매이는 것을
돌이키면 된다는 것으로서,
이는 교리적으로 본각사상(本覺思想)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이를 본증자각(本證自覺)이라고 한다.
묵조선은 오직 고요하게 참선을 통해 마음의 본질을 깨우쳐 들어가는 것이다.
완전한 삼매 속에서 마음을 집중해서 고요한 마음의 근본을 바라보는 수행으로
무념(無念)을 주로 삼고 무상(無想)을 종으로 삼는 수행법이다.
지관(止觀)수행을 통해 바로 법성을 깨우치도록 하는 것인데,
말이 쉬워서 곧바로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들어간다고 하나,
망상으로 가득한 일반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명나라 이후에는 간화선 수행에 밀려 명맥이 끊기고 만다.
오늘날은 일본의 조동종에서 이런 수행을 할 뿐 대부분 선불교에서는 묵조선을 행하지 않고 있다.
― 묵조선(觀照)과 간화선(看話禪) ―
묵조선과 간화선은 그 수행법에 있어서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을 든다면
간화선은 화두참구를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이고,
묵조선은 화두를 들지 않고 오로지 묵묵히 앉아서(默坐)
본래 청정한 마음(本來淸淨心, 불성), 즉 자성(自性)과 본성을
관조(觀照)하는 수행법이다.
대혜 종고 쪽에서는 화두를 참구하면 묘오가 있다는 것이고,
묵조, 무사선에서는 일체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묵묵히 앉아서 번뇌 망상을 잊는 것,
그때그때 일어나는 허망한 생각을 잊는 것,
그것이 곧 불도수행이라는 것이다.
대혜 종고 선사는 간화선만이 바른 선(禪)이고,
그 밖의 선(禪)은 모두 사선(邪禪)이라고 규정하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무사선은 전통을 무시한 경박한 선의 대명사처럼 되었지만,
사실상 무사(無事)라는 말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보통 우리는 어떤 변화에 직면하게 될 때 무사하기를 기원하지만,
삶에서 변화란 필연적이고 또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있음을
성찰해본다면 우리의 삶은 단 한 순간도 무사하지 않다.
또한 인간은 변화에 저항하면서 무사를 희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苦)에 직면한다.
불교에서 내세우는 이러한 고통의 해결책은 열반이다.
열반이란 바꾸어 말한다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무사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중국화한 선불교(禪佛敎)에서 무사(無事)의 의미는
초기불교의 열반(涅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임제록(臨濟錄)>에는 무사(無事)라는 어휘가 14번 넘게 나온다.
무사가 귀인(貴人, 부처)이라는 말과 무사인(無事人)이라는 말도 눈에 띤다.
임제(臨濟義玄) 선사는 밖으로 구하는 마음을 쉬는 것이
바로 무사라고 말한다.
우리의 타고난 마음 자체가 본래 아무 일 없이 무사한데도
그 사실을 모르고 밖으로 구하는 마음을 내어
여러 가지 경계에 빠지게 되면 결코 무사한 본성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임제 선사의 무사는
마음이 고요한 본성에 머무는 평화로운 상태라면
수행자가 할 일이란 단지 일상적인 행위에서 무사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일 뿐,
달리 특별한 게 없다.
그래서 임제 선사는 “불법이란 단지 평상무사(平常無事)”라고 했고,
또 이러한 무사를 성취한 사람을 무사인(無事人)이라고 불렀다.
무사(無事)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본래성은 선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6조 혜능(慧能: 638~713) 대사의
무념(無念, 대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본성에 머무는 마음),
남전(南泉普願, 748년 ~ 834년) 의
평상심(平常心, 시비분별과 조작이 없는 마음),
황벽(黄檗希運, ? ~ 850년)의
무심(無心, 어지러이 마음을 쓰지 않고 오직 견해를 그치는 것) 등도
외부 경계에 물들지 않은 본래무사의 본성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인위적 수행의 불필요함을 주장하는 데서
무사선(無事禪)이라는 부정적인 용어가 출현하게 된 듯하다.』― 장은화
『사실 무사선은 그 본래 의도와는 달리 말류(末流)로 가면서 폐단도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본래무사, 평상무사의 미명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동림 상총과 대혜 종고는 같은 임제종이었지만 수행법은 달랐다는 것이다.
동림 상총의 황룡파는 조사선 즉 무사선(혹은 묵조)이었고
대혜의 양기파는 간화선이었던 점을 본다면
임제종이라고 해서 모두 간화선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간화선만이 바른 선(禪)이고, 그 밖의 선(禪)은 모두 사선(邪禪)이라는 규정은
대혜 종고(간화선)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 윤창화
― 고려의 무사선(無事禪) ―
고려 말 무너져가는 불교를 지탱해준 기둥의 역할을 다한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은
각기 중국 원(元)나라로 건너가서 임제(臨濟)의
제17대 법손(法孫) 석옥 청공(石屋淸珙, 1272~1352) 선사의
가르침을 받아 함께 임제선(臨濟禪)의 법맥을 이었으나
선풍(禪風)은 보우와 백운은 다른 바가 있었다.
같은 석옥의 제자이면서 보우는 간화선(看話禪)을 강조했고,
백운은 오히려 간화선을 넘어선 구경지적(究竟地的)인 공부를 중요시했으며,
무심무념(無心無念)의 무심선(無心禪)을 주창했다.
무심선(無心禪)은 임제종(臨濟宗) 법맥을 계승하되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과 달리 일체망념(妄念)을 여읜
진심(眞心)인 무심무념(無心無念)을 궁극의 경계로 삼는 선법이다.
여기서 ‘무심(無心)’이란 생각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오염된 마음, 번뇌에 물든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심의 경계를 위해서 참선하는 것이 무심선(無心禪)이라 하겠다.
이는 중도사상(中道思想)에 입각한 것이고,
연기적 생명의 실상에서 무아(無我)를 체득해 가는 선이다.
즉, 무심선은 의식(意識)을 벗어나고
범부의 길이나 성인(聖人)의 길을 벗어나서
무위(無爲)와 무심(無心)으로 자연의 도(道)와 합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은
이러한 무심선의 생활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무심선은 중국 원나라 석옥 청공(石屋淸珙, 1272~1341) 선사와
고려 말 우리나라에 와서 2년간 머문 적이 있는
인도인 지공(指空, ?~1363) 선사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백운(白雲) 화상 등이 묵조선(默照禪) 계통의
무심선(無心禪)을 주창해 많은 후학들을 지도했다.
백운 경한(白雲景閑)의 선풍은 이름처럼 성품이 천진스럽고
전혀 거짓이나 조작이 없고, 형상을 빌어서 이름을 팔지 않았으며,
참으로 속세를 여읜 진경(眞境)에서 노니는 것이었다는 평이다.
백운(白雲)이라는 명칭은 당시 사회의 상황과 불교계의 상황이
흑운(黑雲)과 풍운(風雲)으로 즐겨 등장했던 것에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흑운과 풍운이란 비바람을 몰고 다니는 난세의 기류를 상징하는 반면에
백운은 해와 달이 두둥실 떠올라 맑은 하늘가에 깨끗하게 떠 있는
한 점의 한가로운 구름을 드러내어
부처의 대자비가 구름처럼 자유자재하게 법우를 내려주는 것에 비유되었다.
백운선(白雲禪)의 특징은 임제 선을 수용하면서도
무심(無心)과 무념(無念)을 강조하여 무심선(無心禪), 곧 무사선(無事禪)이었다.
그는 조주(趙州)로부터 연원된 무자(無字)와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과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화두를 강조하며 가르침을 펴면서도,
끝에 가서는 화두를 버리고 무심(無心)에 들도록 가르쳤다.
백운은 온 대지가 다 해탈문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마음은 일체에 대한 집착을 벗어난 무심의 경지에 통하는 것으로서
대상에 대해 일체를 파악하고 느끼고 활용하면서도
그로부터 초연할 줄 아는 무심의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이 무심의 경지에서
대지를 바라보면 바라보는 대지가 모두 법신임을 말한다.
그리고 무심도인의 경지에서 토해내는 설법으로
스스로 깨친 자[自然覺者]임을 설했다.
그의 무심선은 이미 중생을 부정한 경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까닭에
절대선(絶對禪)으로 등장하되
그대로 대긍정의 무사선(無事禪)으로 활작용한다.
그 경지는 모두가 범행(梵行)을 구족하여
중생국토가 그대로 동일법성이고, 지옥과 천당이 모두 정토이며,
유성(有性)과 무성(無性)이 나란히 불도를 성취한다고 헸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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