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이 나를 향해 야릇한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박영숙의 눈이 어둠 속에서 묘하게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그때 박영숙이 펄떡거리는 숭어의 배를 가르더니 회를 뜨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서야 그녀가 칼을 꺼낸 이유를 깨달았다. 공연히 긴장을 한 것이다. 그녀는 순식간에 회를 떠서 그릇에 담았다.
‘허, 이 여자 칼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걸.’
나는 속으로 탄복했다.
“맛을 보세요. 싱싱해요.”
박영숙이 회 한 점을 집어서 나에게 주었다.
“고맙소.”
나는 회를 받아 입속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회는 싱싱하고 고소했다. 나는 박영숙의 능란한 칼질 덕분에 싱싱한 회로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바람은 잔잔했고 파도는 철썩이면서 바위를 때렸다. 나는 회를 먹은 뒤에 다시 바다에 낚시를 던졌다. 박영숙이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지 물었다. 또 내가 결혼을 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녀는 내가 어떤 작자인지 살피고 있었다. 나는 몇 개의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으며,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애인이 있지요?”
“예.”
“왜 결혼을 안 하세요?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결혼은 상대방을 구속하니까요. 자유롭지가 못하지요.”
“자유롭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외롭기도 하니까….”
박영숙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가 외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하늘에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박영숙의 어깨를 살며시 안았다. 박영숙이 나를 찾아온 것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러세요?”
박영숙이 나를 뿌리치려고 했다.
“나는 당신을 갖고 싶소.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주겠소.”
나는 박영숙을 와락 껴안고 격렬하게 키스를 했다.
“안돼요.”
박영숙이 나를 완강하게 떠밀었다.
“왜 안 되는 거요?”
나는 박영숙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녀는 계속 나를 거절했다. 나는 안달이 나서 그녀를 껴안고 속옷을 벗기려고 했으나 그녀는 더욱 완강했다. 나는 몸이 바짝 달아올랐으나 그렇다고 그녀를 강제로 범할 수는 없었다. 강제로 여자를 범하면 범죄가 되는 것이다. 나는 범죄자가 될 수는 없었다.
“미안해요. 남편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에요.”
박영숙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글:이고운 그림:김선학 <795>
나는 그녀의 몸도 뜨거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그녀가 나를 거절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거절을 하면서도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그럼 왜 거절을 하는 겁니까?”
“결혼을 할 것도 아닌데 한때의 충동으로 남자와 즐길 수는 없어요.”
“남편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면서요?”
“네. 그저 명목상의 남편일 뿐이죠. 집을 나간 지 오래되었어요. 잘은 모르지만 행방불명이 되고 실종신고를 한 지 몇 년이 지나면 이혼이 성립된대요. 곧 이혼할 거예요.”
박영숙의 남편은 오랫동안 실종 상태다.
“그러면 결혼할 남자와만 사랑을 할 생각입니까?”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박영숙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박영숙은 이미 김영균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박영숙이 상당히 교활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을 섞게 되면 달라질 것이다. 나는 바다만 바라보았고 침묵이 흘렀다.
“언제까지 여기 머물 거예요?”
“글쎄요. 당신이 허락할 때까지 머물 생각이오.”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리 빈틈없는 여자라고 해도 틈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일 떠나요.”
박영숙이 웃으면서 눈을 흘겼다.
“어디로 갑니까?”
“여름추리소설학교에 참가 신청을 했어요.”
“그게 뭘하는 곳입니까?”
“추리작가와 독자들이 만나는 곳이에요. 2박3일 동안 강의도 듣고 술도 마시고 그래요.”
나는 박영숙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추리작가라면 살인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쓴다. 그런 작가들 모임에 박영숙이 참가한다는 것이 수상했다. 박영숙이 그곳에서 살인의 방법이라도 배우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추리소설 씁니까?”
“아니에요. 휴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참가신청을 했어요. 회비만 내면 2박3일 동안 먹고 자고 쉬다가 올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작가들도 만날 수 있고….”
“혹시 나도 가도 됩니까?”
“아마 될 거예요. 인원이 다 찬 것도 아니니까요.”
“그럼 내일 같이 출발합시다.”
“아침 10시까지 서울 합정동으로 가야 돼요.”
“알았습니다.”
나는 박영숙에게 아침에 전화를 해달라고 말했다. 박영숙은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돌아갔다. 내가 데려다 주겠다고 했으나 그녀는 혼자서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사양했다. 나는 박영숙이 멀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바위 위에 누웠다.
‘박영숙은 갈등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박영숙이 김영균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김영균과 관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글:이고운 그림:김선학 <796> |
첫댓글 즐~감!
ㅎ늘 감사히 잘읽고 갑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으며
추천은 기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