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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 스크랩 2015.07.12 하나님의 옷장/ 설교: 권종호 목사
관리자 추천 0 조회 264 15.07.20 16: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하나님의 옷장
로마서 8:31-32 이번 주 금요일인 17일부터 올해 우리교회 여름행사가 시작됩니다. 17일과 18일에는 시온찬양대 수련회가 경기도 가평에 있는 다윗동산에서 있습니다. 18일 토요일과 19일 주일에는 유아교회 성경학교가 교회에서 있습니다. 어린이교회 성경학 교는 24일 금요일부터 26일 주일까지 역시 교회에서 있습니다. 청소년교회는 27일 월요일부터 29일 수요일까지 경기도 마석의 감리교회 제2연수원에서 열리는 평화캠프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청년교회 영성수련회는 8월 2일 주일 저녁부터 4일 화요일까지 강원도 주문진에 있는 은샘성결교회에서 있습니다. 이 모든 여름행사를 위해 온 교우가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후원도 많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올해 우리 감리교회 여름성경학교의 주제는 ‘하나님의 옷장’입니다. 옷장은 옷을 걸어두는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하 나님의 옷장’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옷을 걸어두시는 공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옷을 걸어두실까요? 하나님께서 입으실 옷을 걸어두실까요? 아니면 인간에게 입히실 옷을 걸어두실까요? 성서는 후자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옷을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성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떤 옷을 입히신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교육국에서 발행한 여름성경학교 교재에는 네 가지 옷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끄러움을 덮으시는 옷입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시고, 그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셨습니다. 모든 것을 풍성하게 넘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담과 하와가 거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곳은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특별한 두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 다. 그리고 아담에게, 모든 것이 다 가능하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들에게 이러한 제한을 두셨을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창조하신 분, 자신의 주인이신 분을 쉽게 잊는 인간들이, 고개를 돌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기억할 것이고, 만물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인이심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 억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드신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볼 때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욕심 때문에, 잊게 되었습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러자 뱀의 말대로, 눈이 밝아졌습니 다. 그런데 이것은 불행이었습니다. 눈이 밝아진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었고, 수치심과 두려움에 점령 당하게 되었습니다. 범죄하고 난 뒤에,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벗은 몸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엮어, 벗은 몸을 가렸습니다. 하지만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겉모습을 갈렸을지 모르나, 죄로 가득한 속마음은 가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들을 불러 자신들의 죄를 고백할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을 피해버린 것입니다. 뒤이어 죄의 동기를 묻는 하나님께, 그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보다는, 남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죄는 이렇게 증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죄를 범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친히 가죽옷을 지으셔서, 그들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신 것입니다. 이 가죽옷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가죽옷은 짐승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는 영적법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청각교육재료였습니다. 나아가 사람의 죄가 가리려면 누군가 대신 죽 어야 한다는, 장차 있을 희생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죽옷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직접 가죽옷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옷은 아담 과 하와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은혜의 옷입니다. 그 옷이 우리의 잘못까지 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러한 모습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입히시는 두 번째 옷은, 용서의 옷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유가 있습니다. 비유에는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재산을 달라 고 요구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사용되던 ‘재산’이란 단어는 ‘우시아스’로, ‘본질’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산은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는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이러한 본질을 떼어달라며, 무례한 요구를 했습니다. 유대인의 상속법으로는 아버지가 생존했을 때에 유산을 받으면, 작은아들의 경우 1/9 정도밖에 받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아들은 성급하게 유산을 요구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려는 강렬한 욕망을 드러낸 것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을 떠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뜻을 굳이 막거나, 억지로 붙들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악한 본성으로 자유분방하게 살고자 할 때에, 하 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신 것입니다(롬 1:28). 둘째아들은 자기를 붙들고 있던 가족의 끈을 끊어버리고, 할 수 있는 대로, 가족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갔습니다. 하 지만 가져갔던 재물을 모두 날려버린 후에, 설상가상으로, 그가 머무는 나라에 극심한 흉년까지 찾아왔습니다. 둘째아들의 상황은 아주 나빠져서, 최악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워 야 할 만큼, 비참한 상태로 전락한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모습이 이렇듯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의 모습도 마 찬가지입니다. 그 때 비로소 둘째아들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했습 니다. 진정한 회개가 자신의 처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잘못된 삶의 자리에서 의연히 떨쳐 일어나는 것이라면, 비유 속 의 둘째아들은 회개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째아들이 돌아갈 것을 결심하기 훨씬 전부터, 아버지가 그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기다림이, 아들을 향한 그 사랑이, 그를 집으로 향하도록 끌어당긴 것은 아닐 까요? 아버지는 돌아오고 있는 둘째아들을 멀리서부터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는, 그를 향해 뛰어나 가 입을 맞추게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사나 환영의 의미만은 아닙니다. 용서와 받아들임입니다. 아버지의 용서의 표현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며, 신을 신기는 모습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아버지는 “제일 좋 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한 옷 ‘스툴렌’은 발까지 내려오는 남자용 헐렁한 겉옷입니다. 이런 형태의 옷은 주로 왕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입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아들에게 높은 지위의 사람들만 입는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이것은 둘째아들의 권위와 지위를 다시 인정함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용서는 이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추궁이나 꾸짖음 없는 완전한 용서를 베풀었습니 다. 용서의 옷을 입히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입히시는 세 번째 옷은, 강하게 하시는 옷입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 보면,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강 하게 하시는 옷을 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입고 구원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 고 선한 행실의 열매를 맺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 간다는 것은, 영적으로 무장하여, 수시 로 다가오는 삶의 도전에서 승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도전에 대하여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마귀들과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영적전쟁은 창조 때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잠깐 싸우고 마는 간단한 전쟁이 아닙니다. 메시지 성경을 발간한 유진 피터슨은 이 싸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싸움은 잠깐 출전해서 쉽게 이기고 금세 잊고 마는, 한 나절의 운동경기가 아닙니다. 이 싸움은 지구전, 곧 마귀와 그 수하들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는,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이러한 영적도전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간단히 끝날 전쟁으 로 여기거나, 한 번 이겼다고 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싸움에서 이길 만큼 강건해질 때에, 비로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서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 가 있습니다. 강건해지는 것이 우리의 능력으로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능력은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꼭 필요합 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마귀들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무기 전신갑주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전신갑주를 주심은, 우리가 마귀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는 진리와 의, 평안,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바울은 이를 군사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했습니다. 띠, 호심경, 신, 방패, 투구, 검은 군인들이 전쟁에 나갈 때에 무장하는 도구들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군사 용어를 쓰면서까지 우리에게 강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직면한 위험이 전쟁 처럼 심각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은 심각하고 긴박한 것입니다. 전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신갑주를 입는 것 곧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으로 무장하는 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한 필수요소는 기도입니다. 전신갑주의 모든 부분은 기도를 통해 덧입혀집니다. 바울 도 기도를 통해서 전신갑주가 더욱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취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8절에서,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전신갑주를 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영적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전신갑주를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입히시는 네 번째 옷은, 아름다운 신부의 옷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시는 마지막 소망 이 나타납니다. 비록 지상의 악이 파괴적인 일을 하지만,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악은 무너질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쓰여 질 당시에, 소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기본 신앙고백인 ‘예수는 주’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운 물음에 직면했습니다. ‘이방종교적인 성격을 가진 사회행위에 계속 참가해야 하는가? 자신을 주권자로 인정하라는 황제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 가?’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그들 삶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렸고, 그 어려움 앞에서 그들은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주님이라 고 고백한 그들은 처벌받았고, 유배를 가게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당면한 두려움 때문에, 일부 공동체에 서는 이교관습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은 유배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핵심적인 내용은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하나님 만 예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받은 말씀은 시대에 타협하지 말고, 신실함을 지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핍박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소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기쁨의 자리에서, 신랑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새 예루살렘으로 지칭되는 그의 신부에게 예복을 하사합니다. 특히 옷을 주는 것은 어린양입니다. 어린양이 그의 아내에게 선물할 예복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세마포를 입도록 허락될까요?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의하면, ‘성도의 옳은 행실’이 세마포 옷을 입게 합니다. 옳은 행실이란, 요한계시록 전체가 강조하는 주제로, 날마다 우리가 씨름하는 여러 악, 불의, 그릇된 충성 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신실한 행실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묵상하기에 좋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 셔서, 승리의 미래를 약속해 주시는 분이시고, 승리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신부예복을 입혀주시는 분이심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성서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입히시는 옷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옷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 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덮으시는 옷도, 용서의 옷도, 강하게 하시는 옷도, 아름다운 신부의 옷도, 모두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옷장은 평범한 옷장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사 랑이야기가 담겨있는 옷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사도 바울의 증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 람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셨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이 완성되기까지 요구되는 모든 것을 은사 곧 선물로 주신다 고 증언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들을 내어주신다는 것은, 그 나머지 모든 것도 아끼지 않고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다른 모든 것도 선물로 주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이 여름에,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늘 감사하며 사는 성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2015. 7. 12. 주일예배 설교) 로마서 8:31-32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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