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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향기 ~ 스크랩 김기택, <사무원>
물의나라 추천 0 조회 68 11.06.30 19: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겨울을 기다림


두꺼운 털같은 추위
둥글게 말아 웅크리면 따뜻해지는 추위
너무 껴입어서 무거워지는 추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공격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추위
이빨도 발톱도 없는 꼬리를 흔드는 추위
배고프면 더 신나게 흔드는 추위
숨쉴 때마다 텅 빈 위장에 밥 대신 들어앉아
배고픈 배 흔들며 뛰어노는 추위
뱃가죽과 등뼈가 서로 얼어붙으면
저절로 허리가 공손하게 굽어지는 추위
정신통일하여 밥생각을 하면
가만히 졸다가 따뜻해지는 추위

 

(8)

 

 

     苦行을 끝내다

 

 

가는 나뭇가지팔을 뻗어
시냇물을 마시니
찬 기운이 갈비뼈를 따라
소용돌이치다 퍼진다.
마른 다리 아래로
시든 고욤처럼 매달린 불알,
까치가 날아와 쪼아보다 간다.
상쾌한 남루.
창피까지 벗어버린 나체.
지저분한 개밥 찌꺼기에도
새롭게 돋는 맑은 식욕.
고통 속으로 느릿느릿 새어나가
돌아오지 않는 마음들.
마음이 씻겨나간 자리에 남은
상처들. 헐렁한 가죽들.
시냇물이 온몸으로 퍼지며
상처를 간지럽게 더듬는다.
고름이 터져나오던 자리마다
새로 어린 살이 붙는다.

(9)

     봄  날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가는 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
잘만 하면 한순간 뽀오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 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 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 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대던 봄볕에 못 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만에 환해져 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14)

 

     사무원

 

이른 아침 6시부터 밤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에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라벡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害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 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 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가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 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에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 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19)

 

 

     우리 나라 전동차의 놀라운 적재효율 


빈틈마다 발 하나라도 더 집어넣기 위해
밀고 밀리고 비비틀고 움츠린 끝에
사람들은 모두 사각기둥이 되어 있다.
승객들을 벽돌처럼 맞추어 빈틈을 없애버린
놀라워라, 전동차의 저 완벽한 적재 효율!
전동차가 급정거하자 앞쪽으로 사람들이 기운다.
사각기둥들은 일제히 흐트러지며 찌그러지고
그 동안 조용하게 질서를 지키던 비명들이
찌그러진 사각기둥에서 일제히 터져 나온다.

           영자야엄마나여기있
           어밑에아기가깔렸어
           요숨막혀내핸드빽내
           구두나좀내리게그만
           밀어어딜만져이짐승
           쌍년아야귀찢어져손
           가락에귀걸이걸렸어            
           어딜자꾸만주물러소
           새끼침튀겨개년말새

드디어 전동차 문이 폭발하듯 열리고
파편처럼 승객들이 퉁겨 나간다.
승객들이 미처 다 밀려나가기도 전에
한 떼의 사람들이 또 밀려들어온다.
빈틈, 퉁겨져 나간 사람들 뒤에 생긴
저 좁디좁은 빈틈을 향하여
머리와 팔다리와 구두들이 밀려온다.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벽도 온몸으로 부딪쳐 밀면
발자국 하나 디딜 공간이 나온다는 것을
노련한 승객들은 잘 알고 있다.
차곡차곡 우겨 넣어진 사람들을 한 번 더 누르며
전동차 문이 있는 힘을 다해 닫힌다.
전동차가 출발한 다음에도 비명과 신음이
찌그러진 사각기둥마다 새어나오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정사각기둥을 되찾아가고
몸 비틀 때마다 벌어지던 빈틈도 모조리 메워버린다.
빠르고 정확하다, 우리나라 승객들의
자동화된 저 순발력!
비명과 짜증이 제 자리로 돌아가자
찌그러졌던 사각기둥들은 어느새 반듯하게 펴지고
사람들은 다시 질서정연하고 고요해진다.

 

(24)

 

 

     또 겨울을 기다림 



 허, 고것 참 맵다! 참 맵다! 노인은 굽어진 등뼈로 힘차게 허리를 펴본다. 


 수십 년간 얼었다 녹았다 하느라 쭈글쭈글해진 얼굴가죽을 추위가 맘껏 후려친다. 성에가 서걱거리는 눈은 연신 끔벅거리며 눈물을 추스른다. 코는 너무 매워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턱은 단단하게 굳어 이젠 떨리지도 않는다. 귓날은 곧 유리처럼 깨질 듯 얇게 얼어 있다. 귓구멍 속으로는 뱀 혓바닥 같은 바람이 날름거리며 쉬익쉭 소리를 내고 있다.

 어험! 고놈 참 고약허기도 허다. 요 독오를 대로 오른 놈 좀 갖다가 한 여름에 약으로 쓰면 참 용하것다. 험, 어험!

(27)

 

 

     걸레질하는 여자

 

 

걸레질을 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여야 한다.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무릎걸음으로 공손하게 걸어야 한다.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
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어디든 떠돌아다니고 기웃거리고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 눌러앚는 먼지들:
오라는 곳 없어도 밤낮없이 찾아오고
누구와도 섞여 한몸이 되는 먼지들: 
하지만 정성이 지극하면 먼지들도 그만 승복하고
고분고분 걸레에 달라붙는다.
걸레 빤 물에 섞여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그렇게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매일 五體投地하듯 걸레질을 한다.

 

(34)


 

     닭살   

 

 

좌판 위에 쌓인, 털이 없어 추운
한 무더기 하얀 닭살.
온몸 가득 탱탱하게 돋은
오돌도돌한 닭살.
억센 손아귀가 낚아챘을 때
놀라 온몸이 가려웠을 닭살.
식칼 앞에서 전율했을 때
더 힘차게 돋아났을 닭살.
추울수록 힘이 생겨
딱딱하게 발기되는 닭살.
발 없는 다리 머리 없는 목에서도
조금도 움츠러들 줄 모르는 닭살. 
고기가 된 지금도 가시처럼
꼿꼿하게 머리를 내미는 닭살.

 

(37)

 

 

     신생아 1

             

저 혼자 열심히 바둥거리며 움직이는
아기의 작은 팔다리를 보니
아무래도 땅 위의 것 같지가 않다.
저 움직임은 무중력 속에서 살았었거나
바다 같은 부력을 타고 다니다 왔으리라.
양수가 출렁이는 둥근 우주,
아기는 아직도 여기가 땅인 줄 모르는 모양이다,
제 하늘에서 떠다니다 문득 딱딱한 방바닥을 느끼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때때로 아기는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세상 밖 어딘가를 보고 있다.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니
여전히 몸이 생기기 전의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제 몸이 없는 줄 알고
크고 아득한 표정을 만들어
아기는 저 혼자 가만히 웃음 짓는다.
그러다 갑자기 제가 몸속에 들어 있는 것을 느끼고는
금방 사람의 얼굴이 되어 또 울음을 터뜨린다.

 

(46)

 

 

     신생아2

           
아기를 안았던 팔에서
아직도 아기 냄새가 난다
아가미들이 숨쉬던 바닷물 냄새
두 손 가득 양수 냄새가 난다

하루종일 그 비린내로
어지럽고 시끄러운 머리를 씻는다
내 머리는 자궁이 된다
아기가 들어와 종일 헤엄치며 논다

(47)

 

 

     아기재우기 
 
얼른 재우고
딴짓하고 싶은 마음에
안고 업고 자장가 불러
겨우 아기를 눕힌다.
드디어 자는구나 싶어
조심조심 일어나 나가려는데
호랑이 눈처럼 떠지는 아기 눈.
포효하는 울음소리.
놀라 허둥지둥 달려와
한참 등을 토닥거리다가
이젠 정말 잠들었구나 싶어
고양이 걸음으로 나와
살살 문을 닫으려는데
네 이놈! 어딜 가는고!
호통치는 울음소리.
어이쿠 큰스님 한분이
들어앉아 계셨구나.
머리 긁으며 냉큼 달려와
다시 아기 등을 두드린다.

(49)

 

 

      화 석

 

 

그는 언제나 그 책상 그 의자에 붙어 있다.
등을 잔뜩 구부리고 얼굴을 책상에 박고 있다.
책상 위엔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두 손은 헤엄치듯 서류 사이를 돌아다닌다.
하루 종일 쓰고 정리하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거북등 같은 옆구리에서
천천히 손 하나가 나와 수화기를 잡는다.
이어 억양과 액센트를 죽인 목소리가 나온다.
수화기를 놓은 손이 다시 거북등 속으로 들어간다.

때대로 그의 굽은 등만큼 배가 나온 상사가 온다.
지나가다 멈춰서서 갸웃거리며 무언가 묻는다.
등에서 작은 목 하나가 올라와 고개를 가로젓는다.
갑자기 배 나온 상사의 목소리가 커진다.
목은 얼른 등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르고
굽어진 등만 더 굽어져 자꾸 굽실거린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모래밭에서 한참 거북등을 굴려보다 싫증난 맹수처럼
배 나온 상사는 어슬렁어슬렁 제 정글로 돌아간다.

겨울이 지나고 창 안 가득 햇살이 들이치는 봄날,
한 젊은이가 사무실에 나타난다. 구둣소리 힘차다.
그의 옆으로 와 멈추더니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는 기척이 없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붙어 있다.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굽은 등등 툭툭 친다.
먼지가 일어나고 등이 조금 부서진다.
젊은이는 세게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조그만 목이 흔들리다가 먼저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이어 어깨 한 쪽이 온통 부서져내린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거북등처럼 쩍쩍 가라져버린 그의 몸을 들어낸다.
재빠르게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고 새 의자를 갖다놓는다.

(58~59)


 

 

     플라타너스 잎 하나

 

 

급히 팔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어
돌아보니
막 떨어지고 있는
커다란 손 같은 낙엽이었다
팔 없는 손은 내 팔을 더 붙잡지 못하고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마침 뒤에서 오고 있던 발 하나가
무심히 밟자
바스락!
발 밑에서 무수한 틈이 갈라지는
쇳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발이 멀리 가버린 뒤에도
소리들은 틈 사이에 남아
오랫동안 저희들끼리 바스락거렸다
가을 햇빛이 주름살을 쓰다듬듯
깨어진 마른 핏줄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넓은 잎은 크고 앙상한 손바닥을 오므리며
바스러진 틈으로 빠져나가는 허공을
오래오래 쥐고 있었다

(82)

 

 

 김기택의 시에는 물기와 온기도 별로 없다. 사람들은 적당한 물기와 온기를 좋아한다. 촉촉함과 따스함이 없는 시, 바로 메마르고 추운 시는 그래서 외로운 길을 걷는다. 김기택의 시가 독자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어지간히 옳다. 그러나 이 말 자체로는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다.(88)

 

 자연인 김기택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직장에도 나가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시인 김기택은 수도하는 승려이다. 그가 수도하는 장소는 선방이 아니라 도시의 한복판이다. 그는 하찮은 일상 속에서 용맹정진하고 진일보하려고 한다. 그의 시는 나날의 일상 속에서 진행되는 각별한 수도의 일기이며 그 보고라 할 만하다.(91)

 

 놓고 생각하면, '일상을 통한 득도'라고 부를, 이와같은 소망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풍문으로 주워들은 것이지만, 불가의 득도는 단지 면벽(面壁)의 전형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일 무엇이나 고양된 정신의 경지로 우리를 안내하는 노끈이 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속세에 사는 우리에게도 길은 있다. 김기택의 시쓰기는 분명 그 한 길 위에 있는 듯하다.(97)

 

이희중, '수도하는 시인' 중에서

 

******

 

 세상엔 말없이 행하는 사람이 있고  깨달은 후에 말을 남겨 가르치려는 자도 있으며,  남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손해가 되면 행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저 시류에 맞춰 속물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속물처럼 살아가는 육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은 영원에 대한 갈증으로 목마른 법이다. 


 인간은 단련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영과 정신과 육체이다.  갈수록 인간을 억압하는 자본주의적 인간의 횡포 속에서 굳이 선사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단물이든 쓴물이든 한 편의 시가 위로와 각성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루라도 경계하지 않으면 그저 한없이 커져만 가는 욕망의 아귀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에 있지 않을까. 


 아무나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런 영혼들의 고뇌하는 인간 정신의  아름다운 투지 앞에 옷깃을 경건하게 여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자조와 탄식을 넘어서는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신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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