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동네 방앗간 최씨 아저씨네 대청마루
에서 증조부 제사가 열리고 있다.
유세차(維歲次) 갑진년(甲辰年) 1월 3일
효자 토마...중략...상향(尙饗)
상향~ 하고 제사 축문 읽기가 끝나고 이제
곡(哭) 하세요하면 사람들이 곡을 한다.
에고~ 에고~ 아이고~ 아이고~ 등등...
남자들은 짧게 몇번 하고 바로 끝낸다.
빨리 탕국에 제주(祭酒) 한잔 하고픈 마음인지...
그런데 여자분들은 조금씩 감정이 격해지면서
곡이 끝나지않고 더욱 커져가며 이제는 서러운
감정에 가슴을 두들기며 울기까지한다.
전쟁통에 청상과부가 된 개똥이 엄마...
놀음판 싸움에서 신랑이 죽어버린 말똥이 엄마..
장날 소팔러 갔다가 신랑이 죽은 소똥이 엄마..
읍내 주막 아지매와 눈맞아 달아난 서방이
밉고도 그리운 화천댁 아줌마...
그들에게 제사 축문 끝난후 곡(哭)을 하는건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사람들 앞에서 마음껏
울면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니...
특히 개똥이 엄마의 곡(哭)은 유명 극단배우의
연기 뺨치는 명품이었다. 장단도 잘 맞추고...
소똥이 엄마는 또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둘이
일고수일명창식으로 아주 공연하듯 곡을 했다.
세월은 흐르고, 마을의 방앗간도 없어지고
서럽게 울던 아줌마들도 모두 뒷산 볕좋은 서방
옆자리에 누웠다. 철쭉 한그루씩 앞에 껴안고...
증조부 젯밥 차렸던 손자부부가 이제는 영정
사진으로 상(床)위에서 젯밥을 받는데, 이제
곡(哭)하세요라는 말도 축문도 없고 아해들의
스마트폰 톡톡~ 되는 소리만 들린다.
울어줄 남자도 여자도 없다.
그만큼 가슴속 서러움도 없어진 것이라면
좋겠지만, 가끔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자신의 서글픈 삶을 한탄하며 귀신도 달아날
곡(哭)을 하고나서 탕국에 음복주 한잔하는
재미도 쏠쏠할텐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