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켈리:
영화계의 스타에서 왕족이 되기까지
그레이스 켈리: 영화계의 스타에서 왕족이 되기까지
그레이스 켈리는 1951년부터 1956년까지 활동하며 단지 11개의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6년 동안
그레이스 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시상식의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26세에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결혼하면서 연기를 은퇴했다. 동화같고 낭만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레이스 켈리는 1982년에 자동차 추락 사고를 당하면서
5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진을 통해 그레이스 켈리의 인생을 되짚어보도록 하자.
그레이스 켈리 (Grace Kelly)
그레이스 켈리는 195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 당시 가장 인기있는
여배우 가운데 한 명이었다.
배경
그레이스 켈리는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1929년 11월 12일에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그레이스 패트리시아 켈리이다.
어린 시절
부유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켈리가는 그레이스 켈리의 아버지인 존 B. 켈리가
필라델피아의 이스트 팔스에 지은 저택에 살았다.
커리어
어릴적부터 그레이스 캘리는 여배우의 꿈을 키웠다. 1948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출연한 뒤
켈리는 연극 '올드 레이디 로빈스'로 텔레비전 데뷔를 했다.
'14시간' (1951)
텔레비전 드라마의 성공은 영화 출연으로 이어졌다. 그레이스 켈리는 헨리 헤서웨이 감독의 작품
'14시간'에 출연했다.
'하이 눈' (1952)
영화 '14시간'을 촬영하는 동안 게리 쿠퍼는 촬영장을 방문했다. 그는 나중에 서부 영화인
'하이 눈'에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출연했다.
'하이 눈' (1952)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에서 에이미 파울러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시상식의 일곱 부문에 올랐으며
네 개 부문에서 수상을 차지했다.
모감보' (1953)
1952년, 그레이스 켈리는 케냐의 나이로비로 날아가 영화 '모감보'를 촬영했다. 이 작품에는 클라크 게이블과
아바 가드너가 출연했다.
'모감보' (1953)
린다 노들리 역을 맡았던 그레이스 켈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이얼 M을 돌려라' (1954)
'다이얼 M을 돌려라'는 그레이스 켈리가 알프레드 히치콕과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히치콕은 1950년 스크린 테스트에 등장한 켈리를 기억했고 그녀의 상대역으로
레이 밀랜드와 로버트 커밍스를 캐스팅했다.
칭송을 받은 그녀
그레이스 켈리와 함께 출연했던 남자 배우들은 켈리의 프로 정신과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하이 눈'에 출연했던 게리 쿠퍼는 켈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섹스심벌과 다르다."
'이창' (1954)
그레이스 켈리는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에 다시 한번 출연했다.
비평가들은 영화 '이창'을 알프레도 히치콕의 명작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창' (1954)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였던 작품 '이창'으로 그레이스 켈리는 미국 여배우 여우 주연상과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회상 속의 연인' (1954)
1954년, 그레이스 켈리는 작품 '회상 속의 연인'에 출연했다. 그녀는 동료 배우 윌리엄 홀든이 맡은
알콜중독 남편에게 고통받는 아내 역을 맡았다.
스카상을 받은 작품
그레이스 켈리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에메랄드' (1954) 안타깝게도, 그레이스 켈리의 다음 영화 '에메랄드'는 성공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기상 악화와 설비 부족으로 힘든 촬영을 진행했다.
'원한의 도곡리 다리' (1954) 그레이스 켈리는 1954년 영화 ''원한의 도곡리 다리'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한국 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비평가와 대중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나는 결백하다' (1955)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인 '나는 결백하다'은
그레이스 켈리와 캐리 그랜트가 출연한 로맨틱 스릴러 작품이다.
'나는 결백하다' (1955)이 영화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그러나 그레이스 켈리는 프랑스의 꼬뜨 다쥬흐 촬영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백조' (1956)영화 '백조'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으로 그레이스 켈리는 유럽 왕족의 딸인 공주 알렉산드라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 켈리는 그곳에서 미래 남편인 레니에 3세를 만났다.
'상류 사회' (1956) 그레이스 켈리의 마지막 작품은 바로 상류 사회를 다룬 로맨틱 뮤지컬 코미디이다. 그녀는 프랭크 시나트라 그리고 빙 크로스비와 함께 이 작품에 출연했다.
모나코 왕비 '상류 사회'가 개봉될 당시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결혼했다. 사실 켈리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왕자가 준 까르티에 약혼 반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모나코 왕비가 되었다.
왕족 결혼식 1956년 레니에 왕자와의 결혼식은 일반적인 결혼식과 종교적인 결혼식으로 구성된 동화속에서 나올 것 같은 행사였다. VIP 손님으로는 애리스토틀 오나시스, 캐리 그랜트, 데이비드 니븐, 글로리아 스완슨, 아바 가드너 그리고 아가 칸이 참석했다.
어린이 레니에 3세가 캐롤라인 공주를, 그레이스 켈리가 알베르 왕자를 안고 있다. 캐롤라인 공주는 1957년에 태어났으며 알베르 왕자는 1958년에 태어났다.
가족 생활 모나코 왕가의 가족사진, 캐롤라인 공주, 레니에 3세, 그레이스 왕비, 알베르 왕자 그리고 1965년에 태어난 스테파니 공주. 왕족의 의무 1959년 12월 런던에서 크리스마스 쇼핑을 한 왕족 커플.
영화 제목처럼 상류 사회에 들어간 그레이스 켈리 할리우드를 떠난 그레이스 켈리는 끝없이 상류 사회의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은 1961년에 백악관 만찬에 참석한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
자선 행사 1979년 로즈볼 행사에 참석한 그레이스 켈리. 이 행사는 프린세스 그레이스 파운데이션 자선 재단에 이익이 되는 행사이다.
완벽한 커플 이 커플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1970년대말, 그레이스 공주는 시 낭독과 다큐멘터리 및 TV 영화의 나레이션을 하는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비극이 곧 다가왔다.
© 비극 1982년 9월 13일,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 근처에 운전을 하다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딸인 스테파니 공주는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그레이스 켈리는 운전을 하다가 통제를 잃고 가파른 산비탈 아래로 추락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그녀는 다음날 사망했다. 다행히도 스테파니 공주는 약간의 부상만 당했다. 사진은 9월 18일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에 참석한 레니에 3세와 아이들.
장례식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 대성당에 잠들었다. 그녀의 무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는다.
동화의 끝 레니에 3세는 2005년 4월 6일에 사망했으며 아내 곁에 묻혔다. 그는 재혼을 하지 않았다. 사진은 모나코 대공궁을 떠나는 관을 따라나서는 수많은 모나코 왕족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