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많이 알려져서 아는사람이 꽤많음
2008년 금융위기로 많이힘들때 사회에 귀감이 된다고하여 tv에 소개되었던 이종룡씨
원래는 옷가게,과일장사를 하던사람이었는데 1995년에 시계도매업하는사람이 사업을 싸게정리한다는소리를듣고 그걸 인수하게되면서 불행이 시작되었음. 인수과정에서 1억을 빌렸고 처음1년은 하루순수익이 백만원이될정도로 잘되었는데 IMF가 오면서 거래처들이 끊기고 매출이 크게줄자 1억대출로 시작한 빚은 계속해서 늘어나게됨.빠르게 접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실패를 만회해보려고 계속해서 돈을빌려 다른곳에 투자했지만 결국 2000년에 부도를내고맘
처음에는 아내와 야반도주를했지만 결국 경찰에 잡히게되었고 빚쟁이들이 찾아와 항의하자 결국 전재산이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나머지 빚3억5천만원은 일해서 반드시갚겠다라고 약속하고 풀려남
그리고 그의 알바생활이 시작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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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년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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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후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몸을 혹사시키는 이종룡씨
2012년 이종룡씨의 일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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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도 거른적이 많다. 시간은 곧 돈이라고 생각하는 알바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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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빚을 갚기위에 이를 악무는게 버릇이 되어 송곳니가 거추장스러워 벤치로 송곳니 두개를 뽑아버린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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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을 만진적이 없다는 이종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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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집에 귀가한후 2시간 취침후 10시에 신문속지끼우는 알바를 하는 이종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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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끝나고 목용탕에서 청소알바를 하고 그게끝나면 다시 새벽4시에 신문배달을 하는 이종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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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입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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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빚과의 전쟁 일대기를 적은 책까지 나왔음
가격은 1만원정도 대부분 절판되었고 e북으로 6천원정도에 구매가능함
목차를 보면 어떻게하면 몸을 혹사시키는지 잘나와있음
프롤로그 --- 나는 하루 20시간 일하고 400킬로 이동한다
1장 밑바닥에서 발견한 생존법칙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나, 사장하던 사람이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언제까지 도망치기만 할래?
마음이 아프면 몸살이 난다
나한테는 송곳니가 없어
2장 나는 10년 동안 알바만 했다
알바라고? 나한테는 직장이야!
쪽팔리면 뭐 어때!
눈이 높으면 가족이 고생해
때밀이는 아무나 하나?
알아야 면장도 하는 거야!
거절당하고 싶으면 초인종을 눌러!
마음을 열어야 지갑이 열리지
고객을 훔치는 통닭 한 마리
배달도 하고 판촉도 하고
아르바이트에도 개편이 필요해!
알바가 알바를 쓴다고?
나는 미친놈이었다
직업병은 특권이야
나는 한 달에 일곱 번 월급 받는다
3. 인생의 독약, 빚!
빚지면 죽는다
새는 돈부터 막아야지
줄여라! 줄여라! 자꾸 줄여라!
250원이 적은 돈이라고?
빚 갚는 것도 재미있대!
빚 청산 프로젝트!
리스트를 작성하라!
빚, 한 푼도 남기지 마라
4장 시계 좀 보고 삽시다!
자투리 시간이라고? 내겐 ‘알토란’ 같은 시간이야!
나는 1년을 380일로 산다
외출 준비 5분이면 끝
잠자는 시간이 제일 아까워
자장면 늦으면 화부터 나지
인생을 바꾸는 매직타임 30분!
“막 하면 안 돼. 순서를 정해야지!”
시계에서 눈을 떼지마!
게으른 농부는 석양에 바쁘다
미룬다고 할 일이 없어져?
5장 인생은 언제나 생방송이다
아 옛날이여!
몸에 시간을 주지 말자!
나쁜 남자, 나쁜 습관
‘한번 해볼까’는 곤란하지!
오늘이 바로 최고의 날이야!
목욕탕? 나한테는 별장이야!
침대는 가장 위험한 장소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
6장 나는 나를 넘어섰다
성공하려면 타이밍을 포착해!
스트레스를 아군으로!
며느리도 모르는 나만의 노하우를 개발해봐!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SPEED
약속 시간을 지켜준 컵라면 하나!
신용을 잃은 자, 목숨을 잃은 자!
돈과 행운은 사람을 타고
독불장군은 없다!
배려로 움직이는 스타렉스
혼자만 잘 살면 재미없잖아
에필로그 --- 나는 지금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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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쓴 책을보면 쉬지않는 그를보면서 저렇게 걱정하는사람들이 많았다고함 (결국 ....)
그리고 다시 2년뒤인 2014년
이종룡 씨의 사연은 지난 2008년 MBC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소개가 됐고 그 이후 2010년 OBS <전설의 시대>, 2011년 SBS <궁금한 이야기 Y>, 2012년 MBC <TV특종 놀라운 세상>에 잇따라 출연하며 그 사연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2012년 5월 KBS1 <강연 100℃>에 출연한 이후 갑자기 소식이 뚝 끊겼다. 자연스레 이 씨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으나 최근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던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 씨가 대장암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진위 여부를 놓고 네티즌들은 갑론을박을 벌여왔고, <일요신문>에 의해 그 소문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요신문>은 이 씨가 책을 출간한 출판사에 아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지만 신분공개를 꺼린 아들은 출판사 관계자에게 아버지의 사망소식만 전했을 뿐 정확한 사망시기와 경위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고 한다. 또한 취재진은 과거 이 씨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러 곳들도 수소문했으나 2012년 이후 그를 본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소식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 씨를 학원차량 운전사로 고용했던 한 태권도장 관계자는 “사망 소식은 듣지 못했으나 2012년 그를 본 게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씨는 1960년 전라북도 군산 출신으로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전주시 효자동에 위치한 시계도매점의 사장이었다. 잘나갈 땐 월 매출이 3000만 원에 육박할 정도였다. 명품으로 온 몸을 휘감고 다니며 돈을 흥청망청 쓰며 생활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갑작스레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사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거래처가 하나둘씩 끊겼고 곧이어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그러면서 1억 원의 대출로 시작한 그의 사업 빚은 천정부지로 늘어났다. 게다가 막연한 기대감에 빨리 사업을 접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끌다가 빚은 결국 3억 5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결국 이 씨는 부도를 내고 말았고 아내와 함께 야반도주를 택했다. 고소를 당하기도 했으나 주소지가 불투명한 상태라 기소중지가 되기도 했고 군산검문소에 걸려 수갑을 차고 유치장에 끌려가는 경험도 해야만 했다. 끝내 구속위기에 처한 이 씨는 자신이 이렇게 무너지면 가족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마지막으로 작은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4000만 원을 겨우 받아 합의를 보고 위기를 넘겼다.
이후 이 씨는 돈을 갚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떡 배달, 학원차량 운전, 목욕탕 청소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 씨는 2009년 대우자동차가 경영난으로 떡 배달 계약을 해지했을 때도 그는 곧바로 다른 아르바이트로 대체하는 등 절대 쉬는 법이 없었다.
또한 이 씨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신문 배달하러 가는 30초 남짓한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신문 헤드라인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익혔다. 차가 신호에 걸릴 때면 <좋은 생각> 같은 작은 책을 틈틈이 읽기도 했다. 예상보다 아르바이트가 30분 정도 빨리 끝날 때면 폐휴지를 줍는 부지런함도 보였다. 이렇게 그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총 20시간으로 이동하는 거리만도 약 400㎞에 달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대가도 생겼다. 한 달을 기준으로 신문 배달 70만 원, 목욕탕 청소 60만~80만 원, 학원차 운전 70만~80만 원, 떡 배달 150만~180만 원. 여기에 신문 판촉 수당 및 폐지 판돈을 합치면 450만 원 정도 생겼고 350만 원을 뚝 떼어내 10년 동안 빚을 갚는 데 사용했다. 원금과 이자를 갚는데 거의 모든 돈을 쏟아 부은 셈인데 2008년 10월 마침내 그는 빚을 모두 청산했다. 하지만 이 씨는 빚을 갚고도 돈을 쉽게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고 2009년 이러한 사연을 담아 <3억 5000만 원의 전쟁>을 출판하고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아르바이트로 빚을 갚고자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씨에게도 숨기고 싶은 치부가 있었던 것. 처음에는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임시방편으로 일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고졸 학력에 변변한 기술 없는 40대 남자가 제대로 된 직업 갖기는 어려웠다. 그를 불러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고 심지어 공사판에 가도 제대로 된 기술이 없어 인부들의 심부름만 할 뿐이었다.
그는 새벽에 신문배달과 저녁 목욕탕 청소를 하고 한 달에 150만 원 남짓 벌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수입이 생기자 그의 나쁜 버릇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바로 음주와 도박이었다. 점점 집에 술에 취한 채로 들어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한번은 이틀 밤을 화투장을 들고 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간 그는 컴컴한 거실에서 흐느껴 우는 부인을 발견했다. 집에 전기와 가스가 나간 것이었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 고생하고 있다고 깨달은 그는 펜치를 가져와 송곳니 두 개를 뽑으며 열심히 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때부터 그는 아르바이트도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혹여나 나쁜 습관들이 다시 도질까 아르바이트 개수를 늘려서 몸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한 달 용돈도 2만 원 남짓이었다. 하루로 계산하면 약 700원꼴이다. 이렇게 이 씨는 잡생각 없이 혹독하게 일만 했다. 그렇게 ‘알바왕’ 이종룡 씨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렵사리 되찾은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빚을 다 갚던 날 이 씨는 “아내와 함께 살 수 있는 전셋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지만 고된 아르바이트의 후유증으로 그 작은 소망마저 이루지 못한 채 결국 가족 곁을 떠나고 말았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안타깝게 대장암으로 2014년2월 사망했음. 잠을 자지않는것도 대장암과 관련이 꽤있다고하네요
첫댓글 과로로 인해 대장암으로 사망.
너무안타깝네요
너무안타깝네요
저 분은 양심 있는 분입니다.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업가들이
부도/고의부도를 내고는
그간 숨겨놓은 현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아세요??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 있음.
사업 부도나서 빚이 10억 가까이 되는데 안 갚고, 채권추심 피하려고 위장이혼 하고,
숨겨놓은 현금으로 외제차 굴리고 여행 다니며 잘 살고 있음.
ㅋㅋ
개인회생하면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