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령화 선배’ 일본의 의료 해법
‘셀프케어’재활환자들은 병상에서 밥 못 먹는다
고령자 스스로 건강을 돌보는 셀프케어가 이제는 필요하다. / 셔터스톡
일본의 재활 환자들은 병상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식사를 병상으로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밥을 먹으려면, 병동마다 둔 식당으로 나와야 한다. 휠체어를 타든, 간병인의 부축을 받든, 식당으로 나와야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병실 밖으로 나오는 셈이다.
일본 재활 병원의 이러한 풍경은 ‘셀프 케어’라는 일본의 의료 철학을 보여준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조선일보에 ‘셀프케어’를 통해 초고령 사회를 대처해나가는 일본의 의료 철학을 소개했다.
김 기자에 의하면, 일본에 있는 재활 병원들의 목표는 환자의 완치가 아니다. 그보다는 장애가 남아 있든 없든, 환자가 돌봄 없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밥을 병상으로 가져다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병원 안에 사는 집이나 동네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환자들에게 살아가는 훈련을 시킨다.
환자들이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파란 신호가 켜지는 20~25초 안에 건너가는지를 보고, 목욕탕 계단을 넘어갈 수 있는지도 본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서 조리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부족한 동작이 보이면 이를 집중적으로 개선시킨다.
환자가 이런 과정을 거쳐 어떻게든 100~200m 걸어갈 수 있게 되면, 의료진은 환자를 퇴원시킨다. 이는 의학적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이 아니고, 일본에서는 그 정도 걸으면 어디에나 편의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병원의 대처가 환자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일본의 인프라를 생각하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편의점을 혼자 갈 수 있으면,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편의점서 장도 보고, 은행 업무도 하고, 책과 꽃도 사고, 우편을 부치고 받는다. 이러한 편의점이 일본 전역에는 2023년 기준 5만6700여 개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일본에 편의점보다 약국이 더 많다는 점이다. 약국은 약 6만1700여 개로, 편의점보다 5000여 개나 더 많고 우리나라의 3배가 넘는다. 약 조제 없이 일반 약과 건강용품만 파는 ‘드러그 스토어’도 2만2000개에 이른다.
일본의 약국은 의약품 공급뿐만 아니라 건강관리의 보급창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
‘건강을 지키는 문’인 구강의 건강을 위한 구강용품 코너에는 별의별 치실이 있고, 희한한 칫솔들이 걸려 있다. 장난감 같은 설태 혀 클리너도 놓여 있다. 혀 운동 시키는 설압기도 눈에 띈다.
이렇듯, 재활병원의 방침과 편의점과 약국의 인프라로 알 수 있는 일본의 의료 철학은 ‘셀프케어’, 즉 자기돌봄이다.
이는 병원 의존을 피하고, 타인의 돌봄을 줄이고, 인생 끝까지 스스로 일상생활을 꾸려가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은 국민이 그렇게 하도록 생활과 의료 인프라를 마련했다. 개인도 국가도 의료 부담을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의사 왕진과 가정 간호가 한 해 수천만건 이뤄지는 것도 병원에 기대지 말고, 가능한 한 집과 동네에서 지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수요가 늘 것이라고 예상됐던 병원의 병상 수는 되레 줄어들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사례를 통해 김 기자는 번잡한 식당서 물이 셀프이듯, 고령 사회선 이제는 건강도 셀프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에도 코앞으로 다가온 초고령 사회라는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스스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집과 동네를 건장한 생활터로 키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