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과학자,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이론 증명
2015.11.20 2:13 오후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인과율 또는 인과의 법칙이다.
이 원리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하기 쉽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명백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혹은 원인과 결과가 시간적으로 너무 떨어져서 있는 경우 등은 인과 관계의 존재를 단정짓기 어렵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를 믿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인과응보를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영국 카디프 대학과 미국 텍사스 대학의 연구자들은 통계학을 이용해 “선악응보”의 인과 관계를 연구했다.
튼튼한 신체를 가진 소년 범죄자의 건강 상태가 중년이 되면 급속히 악화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입원 치료를 받거나 몸에 장애가 나타나는 현상이 일반 사람보다 몇 배나 더 높다. 이는 범죄자 특유의 좋지 않은 심리 상태와 생활 습관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나쁜 짓을 하면서 얻은 ‘악보’(惡報)로 볼 수도 있다.
또 신경 화학 영역의 연구에서 다음과 같은 현상도 발견됐다. 사람이 배려의 마음을 가지거나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신경 세포의 건강을 촉진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 체내에서 분비돼 면역 세포의 기능이 활발해지고 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가 된다.
반대로 나쁜 마음을 품거나 부정적인 사고를 하면 세포를 건강하지 못하게 촉진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 분비돼 건강이 악화된다. 이는 ‘선악응보’라는 인과 관계의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미국의 연구에서는 좋지 않은 심리 상태가 유지되면 체내에 독소가 생긴다고 판명됐다. 이 연구에서 특수 처리해 얼린 유리컵에 입김을 불어 넣어 컵 벽면에 붙는 성분을 조사했다.
보통 무색 투명 물질이 부착하지만 숨을 불어 넣는 사람이 화를 내거나 원한, 공포, 질투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을 경우 부착한 물질은 평소와는 다른 색을 띤다. 이들 물질을 화학적으로 분석했더니 모두 몸에 해로운 물질이었다.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안 좋은 행위를 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나쁜 행동을 하기 전에 이미 자신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붓다도 의도를 카르마(業)이라고 하였다. 생각이 곧 물질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예일대학과 캘리포니아대학은 ‘사회관계의 좋고 나쁨이 사망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공동 연구를 실시했다.
무작위로 선택한 7천명을 대상으로 9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남을 기꺼이 돕는 사람은 마음이 좁고 남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사람보다 건강 상태가 훨씬 좋았고 후자의 사망률은 전자보다1.5~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종과 계층, 생활 습관이 달라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가들은 이 결과를 토대로 “착한 일을 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2천년 전 옛 사람들은 이런 인과관계를 이미 알았다. 공자의 “인자수(仁者壽)”라는 말은 배려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장수한다는 뜻이다.
또 한방의학의 고전인『황제내경』 중에는 “恬淡虚無、真気従之。精神内守、病安従来”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깨끗하고 순진한 마음을 가지면 진기(眞氣)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고 안으로 지키면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고대의 이론과 현대의 연구 결과 모두 “선에는 선의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의 보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대기원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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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윤회와 인과응보의 실례
작자: 정련(淨蓮)
【정견망】공산당이 화란(禍亂)을 일으킨 어지러운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당의 무신론에 세뇌당해 神의 존재를 믿지 않고 인과응보를 믿지 않으며 돈을 위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다.
하지만 신불(神佛)은 확실히 존재하며 사람의 생사윤회 역시 진실로 존재한다. 나는 여기서 나와 아들의 윤회이야기를 통해 생명윤회가 실제로 존재함을 입증하고자 한다.
나는 1997년 운좋게 법(法)을 얻어 수련했다. 당시 나는 막 30이 넘었고 아들은 아직 어렸다. 그러나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빠져 있었다.
운좋게 가장 고통스러울 때 법을 얻어 수련하게 되었고 법륜대법 사부님의 자비와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법리(法理)는 나의 고통을 무마해주어 시든 생명이 부활하게 했다. 부모님과 아이도 다 수련하게 되었고 생활은 다시 행복과 따뜻함에 충만하게 되었다.
수련 후 내게 많은 신기한 일이 일어났는데 한번은 수련 중에 내 전생(前生)을 보았다. 그것은 지난 세기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초기였고 나는 조선과 가까운 단동(丹東) 산골에 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머리가 좀 둔하고 단순하며 멍청한 농촌 부녀자였다. 나는 늘 교활한 시어머니와 남편의 학대를 받았다. 집에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내게는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다 먹었다.
한번은 내가 몰래 계란 두 개를 주워 부엌 아궁이에 묻어놓고 다 익으면 먹으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력이 나빠 잊어버렸는데 나중에 재를 고르던 시어머니가 계란을 발견하고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남편에게 나를 죽도록 패라고 했다. 과거의 남자들은 불효라고 할까봐 어머니의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정말 나를 죽도록 때려 나는 온 마당을 도망다녔다.
그 때 남편에게는 10대 조카딸이 하나 있었는데 마음이 아주 선량했다. 나는 늘 그 아이와 함께 지냈다. 우리는 가끔 함께 산에 올라가 돼지를 방목하곤 했다.
그녀는 나를 큰어머니라 불렀으며 우리는 매우 친하게 지냈다. 나는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마침 6.25전쟁 기간이라 국경 마을에서는 늘 포성이 들리곤 했다.
백성들은 늘 전쟁의 재앙을 피하려고 마음을 졸였다. 나는 이 때문에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고 아이는 만 두 살이 못되어 죽었다. 실상은 굶어죽은 것이다.
몇 년 후 나는 또 딸은 낳았는데 나중에 1960년대가 되어 어렵게 살다가 나는 이 세상을 떠났다.
한편 나와 사이가 좋았던 조카는 나중에 도시로 시집갔고 1960년대 중반 첫째 아들을 낳았다. 그때 나는 그녀의 큰 딸로 태어났다.
그녀(조카)는 금생에 내 어머니가 되었고 우리는 함께 수련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자기의 죽은 할머니(즉 지난 생의 나의 시어머니) 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속에서 영문도 모를 증오가 일어났다. 당시 나는 웬일인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지금은 당연히 그녀가 과거에 나를 학대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내가 본 전생의 장면들을 모친에게 들려주자 깜짝 놀라셨다. 왜냐하면 그녀는 종래 내게 자기와 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내가 아주 똑똑히 알고 있었고 심지어 할머니의 외모와 장식까지도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또 재미있는 일은 그 생에서 나는 실수로 끓인 죽을 질녀의 발에 쏟아 화상을 입혔는데 금생에 어머니도 내가 어릴 때 실수로 끓인 죽으로 내 발에 화상을 입혔다. 정말이지 과거의 빚을 갚았다.
금생의 나는 또 전생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바로 학교 다닐 때 머리가 매우 나빴다. 하지만 사람됨은 매우 단순하고 질박하다.
법을 배운 후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주시어 무엇을 배워도 총명함을 느끼며 집에 자료점을 만들었다.
한편 내 아들에 대해 말해보자. 전생에 굶어죽은 내 아들은 나중에 대만에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대학에 다닐 때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내가 금생에 결혼해 아들을 낳을 때 그는 또 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3,4 살 되어 말을 하게 되자(1990년대 초반) 늘 나와 모친에게 대만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상한 것은 우리는 아이에게 대만이란 지명을 말해준 적이 없었다.
아들은 그곳에 동창과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여기로 왔니?”라고 물어보자 그는 기차에 부딪혀 죽었는데 나중에 이곳으로 왔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때 수련하기 전이라 이 말을 듣고는 좀 겁이 났었다.
아들은 어릴 때 밥을 전혀 먹지 않았다. 나는 이것 때문에 매우 불안해하면서 그가 굶어죽을까 겁이 났다. 그에게 밥을 먹이는 일은 어려워 보였다.
수련 후 알게 된 것은 전생에 내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어려서 굶어죽었기 때문이다. 금생에 우리는 돌고 돌아 모자의 연을 이어가며 마침내 법을 얻어 수련하게 되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법을 말하는 것을 들었고 지금은 자라서 철이 들었다. 그는 아주 효성스럽고 늘 내가 대법 일을 하는 것을 돕는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다. 신불(神佛)은 확실히 존재하며 사람이 죽어도 원신(元神)은 불멸한다. 다시 말해 윤회전생은 진실이다.
공산당의 무신론은 진정으로 사람을 해치는 어리석은 사악한 설이다. 선악에 보응이 있음은 변하지 않는 하늘의 이치다.
발표시간: 2014년 3월 12일
인과응보
(정견망) 필자의 친척 중에 작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어릴 때 “고모부, 장사를 하면 어떻게 돈을 벌어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는 “한근을 팔 때 9냥 어치만 준단다.” 당시 나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때 나는 이웃집 할머니로부터 선악(善惡)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인과응보를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속으로 ‘무게를 속여 돈을 벌어서 잘 지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성장한 후 나는 고모부의 장사가 잘되지 않고 살림이 빠듯해진 것을 발견했다. 아들들은 전부 멍청했고 억지로 장가를 보냈지만 살기가 어려웠다. 이는 무게를 속여 현세(現世)에 보응을 받은 것이 아닌가?
중학교 다닐 때 우리집 앞에는 노점상이 많았다. 모두들 학생들의 돈을 벌려는 것이다. 그중 한 노점상 할머니가 자랑하듯이 말했다.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을 척보기만 해도 한눈에 그의 돈을 얼마나 빼낼 수 있을 지 안다.” 다시 말해, 속일만한 사람을 알아챌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질량을 속이거나 남을 곤경에 빠뜨려 재물을 버는 것을 정당하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전통문화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했을까? 정견망에 실린 문장(《一杆空心“發家”秤 招致幾樁因果報》)에서 이 문제를 잘 설명해준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청나라 말기 북경 동쪽 노룡 지역에 조덕방(趙德芳)이란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형편이 아주 좋았고 사람이며 재물이 모두 풍족했다. 슬하에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고 또 각자 결혼해 아내가 있었다.
그가 60세 되던 해에 세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잘 들어라. 당초 나는 남을 속여 출세했으며 마음을 속여 이익을 취했고 맨손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내가 가업을 세운 것은 바로 속이 빈 저울이다. 천칭에 수은을 채우면 물건을 살 때 20냥을 한근으로 쳐서 살 수 있는데(옛날에 16냥을 한근이라 했다) 팔 때는 14냥을 한근으로 했다.
20년 전 나는 수천 근의 면화를 샀는데 한 근마다 4냥을 더 얻었다. 면화를 파는 손님은 손해를 보아 밑천을 물어주고 화병으로 한을 품고 죽었다. 내 마음속에 이 일이 늘 부끄럽고 편안하지 못하구나.
또 약재상이 하나 있었는데 역시 나 때문에 죽었다. 또 있다... 오늘 나는 이런 가업이 있을 뿐 아니라 자손이 가득하다. 하지만 죽은 상인들을 생각하면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고 편히 잠을 잘 수 없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나는 오늘 이후부터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 너희들 앞에서 이 속이 빈 천칭을 부수고 더는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세 아들이 듣고 말했다.
“아버님 진작 그렇게 하셨어야지요. 저희는 모두 아버님을 지지합니다.”
노인은 즉시 그 저울을 부수어 버렸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말처럼 착한 일을 하고 선을 베풀었다.
하지만 풍운을 예측 못하듯이 뜻밖에 조원외가 저울을 부수어 버리고 착한 일을 한 이후 집안은 오히려 불행이 연달았다.
한달도 안 되어 큰 아들이 급사했고 며느리는 다른 사람에게 개가했다.
노인이 큰 아들 장례를 치르자마자 갑자기 둘째가 또 폭사했으며 며느리 역시 개가했다.
그가 둘째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또 셋째가 사망했다. 셋째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기에 개가할 수 없었다.
집안에 줄초상이 생기자 노인은 매우 괴로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저울을 속여 검은 돈을 벌 때는 오히려 자손이 그득하고 재물이 잘 일어났는데 이제 좋은 일을 하는데 도리어 상사가 생기는구나. 이것으로 보니 인과응보는 순전히 허구이구만.”
이웃들도 듣고 모두 하늘이 눈이 없어 불공평하다고 했다.
어느 날 셋째 며느리가 출산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삼일이 넘어도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산파를 여럿 불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어떤 사람은 아이 때문에 산모가 살수 없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산모 때문에 아이가 살 수 없다는 등등 말만 많았다. 노인은 집에 잇달아 불행이 오는 것을 보고 초조하여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했다.
바로 이때 떠돌이 스님 한 사람이 탁발하러 이 집에 들렀다. 대문 안에서 집사가 말했다.
“대사님, 동냥을 다른데 가서 하시면 안 됩니까? 우리집 셋째 부인이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 사흘이 지나도 못 낳고 있습니다. 주인어른께서 경황이 없어 접대할 정신이 없습니다. 게다가 불교와는 인연이 없으니 아마 아무것도 희사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아, 걱정 마시고 가서 원외에게 알려주십시오.
이 노승에게 아이를 낳게 하는 출산촉진약이 있으니 이 약을 먹으면 즉시 낳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집사가 이 말을 듣고는 즉시 돌아가 보고했다. 노인은 마침 마음이 조급한 상태인지라 집사의 말을 듣고는 얼른 스님을 청했다. 그래서 스님을 서재로 모셔 상좌에 앉히고 어느 사찰에서 오신 분인지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나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인지라 사찰이 따로 없고 인연 따라 다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약을 꺼내주었다.
노인은 얼른 며느리에게 약을 보내고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후 보고가 며느리가 스님의 약을 먹고 아들을 낳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조덕방은 손자를 얻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스님에게 말했다.
“성승(聖僧)께선 진짜 신선이십니다.”
하고는 즉시 사람에게 분부하여 대청에 한상 크게 차리게 했다. 대화하는 동안 음식이 차려지고 노인은 스님을 청해 자리에 앉게 했다.
노인이 말했다. “스님 제게 한 가지 이해하지 어려운 일이 있어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스님이 묵묵히 허락하자 그는 장탄식을 하며 말했다.
“에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과거에 저는 빈 저울로 무게를 속여 남을 해쳤습니다. 몇 년 전 그 저울을 부셔버리고 그때부터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좋은 일을 했는데 뜻밖에 반년도 안 되어 세 아들이 줄초상이 났고 며느리 둘은 개가했으며 셋째 며느리가 겨우 손자를 낳아 그저 자손이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쁜 짓을 할 때는 부자가 되고 집안이 잘 되었는데 선행을 한 후 왜 악보(惡報)를 받아야 합니까? 선악에 보응이 따른다는 설을 모두지 이해할 수 없으니 스님께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선악의 인과응보는 그림자처럼 확실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내 분명히 알려주리다.
당신의 첫째 아들은 원래 당신이 해쳤던 약재상이요. 당신이 그를 죽게 했으니 그가 당신 아들로 태어나 원한을 갚으려 했던 것이오.
둘째 아들은 당신이 속였던 면화상인이요. 그 역시 당신 집에 태어나 집을 망치게 하여 원수를 갚으러 왔던 것이오.
셋째 아들 역시 당신이 빚진 업으로 여러 가지 악연을 지었소. 그는 당신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재난을 주려고 왔는데 당신이 나이 들면 반드시 심하게 아프고 굶어죽게 하려고 틈을 보고 있었소.
당신이 만약 정말 악을 고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이런 종말이 왔을 것이오. 그나마 당신이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여 운명을 바꾸었기에 하늘이 당신을 망치려던 세 아들을 차례로 데려가 큰 화를 모면한 것이오.”
조덕방이 이 말을 듣고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성승의 가르침에 여러 가지로 감사드립니다. 제 우둔함을 알았고 선악과 인과의 천리(天理)를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손자를 얻었으니 이 아이가 성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진심으로 손자가 아버지 대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인지 또 제게 빚을 받으러 온게 아닌 지 걱정스럽습니다.”
스님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의 업보는 이미 다 갚았습니다. 이 손자는 장래 당신 집안을 밝게 해줄 것인데 이는 당신의 선행으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조덕방은 듣고 매우 기뻐하며 선행에 더욱 더 신심이 굳어졌다.
스님이 또 말했다.
“당신은 천칭 저울로 왜 16냥을 사용하는 지 아십니까?”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북두칠성, 남두육성(南鬥六星), 게다가 복록수(福祿壽) 삼성(三星)을 대표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한냥을 덜 주면 복(福)을 손해 보고 두 냥을 덜주면 녹(祿)을 손해 보며 세냥을 덜주면 목숨(壽)을 손해 보며 더 적게 주면 줄수록 손해가 더 많습니다. 나쁜 저울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짓는 지 생각해보시오.”
조덕방은 스님의 말을 듣고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아 정말로 두려웠다.
그는 경건하게 재차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내심으로 선악인과는 틀림없다는 도리를 믿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고모부가 장사하면서 남에게 질량을 속여 덜 주었기 때문에 아들이 어렵게 살고 또 아들들이 멍청해졌으며 이는 인과응보임을 알았다.
공산당은 이것을 타파해야 할 미신이라고 하는데 인과응보의 이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천리는 곧 천리다.
어느 한 사람이나 조직이 억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천리에 부합하고 천리에 순응하면 반드시 부국강병한다. 천리에 위배되고 역행하는 자는 반드시 징벌을 받는다.
발표시간: 2013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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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