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태조암에는 법당과 요사채만 있어 산속 작은 암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
1675년 조선시대 위봉산성과 함께 건립
19세기 말경 조성된 만불탱화 일화 유명
조선불교 초대교정 박한영 스님 출가사찰
전북 완주 태조암(太祖庵)은 지금은 위봉산이라 불리는 주출산 정상인 되실봉(524m) 아래 위치해 전주 시내와 드넓은 호남평야를 굽어보고 있다. 예로부터 되실봉을 중심으로 위봉사쪽에 비가 내리면 위봉폭포로 흘러가고, 태조암쪽에 내리는 비는 송광사앞으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 정상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태조암이 창건된 것은 1675년 위봉산성이 축성될 때다. 1592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전주 경기전에 보관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조경묘의 전주 이씨 시조 위패를 피신시키기 위해 쌓은 위봉산성안의 행궁과 함께 태조암도 창건됐다.
실제로 조선말(1894년) 동학 농민혁명이 일어나 전주부성이 농민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어진과 위패가 태조암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산자락 아래의 위봉사를 에두르는 산줄기 전체가 성곽을 이루고 있다. 위봉산성은 거의 허물어져 일부를 제외하고 돌무더기로 남아있고, 행궁은 자취를 찾을 수 없지만 태조암만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오랜 역사를 켠켠히 이겨내고 있다.
작은 불상을 모신 법당이 고졸미를 자아낸다. |
태조암은 창건당시 행궁 수호사찰이었지만 지금은 비구니 선원을 운영하는 위봉사의 산내암자로 오롯이 수행가풍을 이어가고 있다. 송광사방면서 휘돌아 굽이도는 3km 정도 뱁재(위봉재) 정상에 위치한 위봉산성에서부터 태조암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송광사 방면서 오르는 고갯길은 뱁재지만, 위봉사 방면서 오르는 길은 무주령(無主嶺)이다. 이는 주인없는 고갯길이란 뜻이다. 같은 고갯길이 두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흥미롭다. 고개 정상에 오르면 원형만 남아 있는 위봉산성 서문 앞 길가에 차를 세워두어야 한다. 이 곳에서부터 찻길이 없고 임도를 따라 30분 걸어 올라야 태조암이 보인다. 이정표는 0.97km를 알려주지만 몸이 느끼는 체감거리는 훨씬 길다. 그 만큼 가파르다.
암자를 오르는 길은 역시 숨을 몰아쉬며 걸어야 제격이다. 하늘을 뒤덮은 울창한 숲이 이끄는 대로 걸어 올라야 제 맛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인적없는 울창한 숲 그늘 산성길을 홀로 걷다보면 어디선가 불쑥 옛 병졸이 퇴어나올 것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 옛날 전란에 대비해 쌓은 성곽이란 말이 실감난다.
태조암을 오르자 사람은 없고 수백년은 족히 돼보이는 느티나무가 객을 반긴다. 장마철 변덕스런 비를 맞고 간신히 도착한 태조암은 전주시내가 한눈에 들어 올 정도로 멋진 풍광이다.
이런 국가대표급 자연에 비해 태조암은 대웅전인 법당(法堂)과 요사채가 붙어있는 인법당(人法堂) 한채인 단촐한 구조다. 천상 수행자가 아니면 이곳에 오래 머물기도 어려울 듯한 그야말로 깊은 산속 작은 암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고 외경심이 든다.
태조암과 관련해서 신비스런 일화가 전해진다. 19세기 말경 태조암서 여섯 스님이 극락정토 만다라(만불탱화)를 조성했는데, 탱화가 조성될 당시에 태조암쪽 산마루가 온통 탱화에서 방광(放光)하는 빛으로 휩싸여 마을 사람들이 산불이 난 걸로 착각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 극락정토 만다라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9천500명의 아미타여래를 표현한 불화이다. 현재는 위봉사에 봉안돼 있는데 8폭만이 남아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도상(圖像)을 보여주는 탱화로 부처님의 표정은 물론이고 두발과 의상까지 다채롭게 묘사된 점이 특징이다.
태조암은 또한 현 조계종 전신인 조선불교 초대교정(현 종정)을 지낸 박한영 스님의 출가사찰이기도 하다. 완주 삼례출신의 박한영 스님은 불심깊은 어머니가 위봉사서 금산 스님의 생사법문을 전해주자 이에 감명 받아 19세에 금산 스님을 찾아가 태조암으로 출가했다고 전해진다. 태조암은 사명 그대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선사들의 향훈이 촉촉이 흐르고 있었다.
태조암 가는 길
■대중교통: 전주대∼수만리 행 106번 버스(하루 6회운행 막차 수만리행 20:00, 전주행 21:40) 전주 시내버스(063)272-8102
■자가용: 호남고속도 익산JC∼익산 장수간 고속도로~ 741번 지방도(송광사. 위봉사), 혹은 익산∼비봉(741지방도)∼고산∼동상(호반 드라이브)
주변 둘러볼만 한 곳
■위봉산성 (사적 471호)
전북 완주의 위봉산(524m)에는 유사시 전주의 경기전에 있는 태조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조선조 숙종 때에 축성된 위봉산성이 있는데, 산자락 아래의 위봉사를 에두르는 산줄기 전체가 성곽을 이루고 있다. 조선 후기 변란을 대비하여 주민들을 대피 시켜 보호할 목적으로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숙종 원년(1675)~숙종 8년(1682)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벽 둘레는 약 8,539m, 성벽 높이는 1.8~2.6m, 성 안 면적은 1백66만여㎡에 이른다.
관련 시설물로는 성문 4개소, 암문지 6개소, 장대 2개소, 포루지 13개소, 추정 건물지 15개소, 수구지 1개소가 확인되었다. 일부 성벽을 제외하고는 성벽 및 성문, 포루, 여장, 총안, 암문 등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다른 산성과는 달리 군사적 목적뿐만이 아니라 유사시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행궁을 성 내부에 두는 등 조선 후기 성곽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위봉폭포
위봉산성이 동문쪽에 있는 위봉폭포는 높이가 60m이며, 2단으로 쏟아지는 물줄기는 옛부터 완산 8경에 드는 절경으로 유명하다. 폭포주변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빼어난 경관을 이루며, 가까운 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것을 기념하는 웅치전적지 (전라북도기념물 제25호)가 있다.
■위봉사
위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 말사이다. 백제 무왕 5년인 604년 서암대사가 창건, 1359년(공민왕 8)에 나옹선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당시의 규모는 28동이었고 암자도 10동이나 되는 대가람이었다. 1911년에는 선교31본산의 하나로 전라북도 일원의 46개 사찰을 관할하였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지금은 그 규모가 매우 축소되었다. 1990년에 위봉선원을 짓고 삼성각을 보수하였다. 1991년에는 나한전을 중건하고 일주문을 세웠다. 1994년에는 극락전을 건립하여 아미타여래상을 봉안하였으며, 2000년에는 범종각을 지었다. 조선말에 건축한 요사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됐다.
■공기마을 편백나무숲
완주군 상관면 죽림리에는 밥공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공기마을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뒤편으로 펼쳐진 10만여 그루 편백숲은 1976년 박정희 정부의 산림녹화사업으로 조성됐지만, 외부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2년여 전,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 '최종병기 활'이 개봉된 뒤부터다. 40년 가까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울창한 편백숲이 치유의 숲으로 알려진 것이다. 숲을 둘러보는 길은 여러 갈래다. 등산로를 따라 578m 옥녀봉, 570m 한오봉까지 올라가 능선을 타는 방법과, 6㎞ 길이의 산책로인 임도를 걷는 방법이 있다. 또 지난해 주민들이 흙길로 만든 2㎞ 남짓의 편백숲 오솔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대아 수목원
산림휴양, 산림문화공간, 자연환경, 식물종의 다양성 확보를 바탕으로 산림자원 조성을 목적으로 1995년 개원했다. 155ha의 면적에 금낭화 자생군락지와 산림문화전시관, 산림생태체험관, 분재원등을 갖추고 있다. 산책로와 임도를 따라 올라볼수 있는 3개의 전망대가 위치하고 있어 어린이, 청소년들의 자연체험 학습장으로 손색이 없다. 입장료는 무료다. (063)243-1951
태조암과 함께 축성된 위봉산성 입구
[현대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