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즉흥적으로 만드는 음식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보챈다 하여 금방 주방에서 데쳐서 내놓는 음식은 더더욱 아니다. 아무 때나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한여름에는 만드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일반 가정에서는 추운 겨울날 빈 고래에 불길을 쐬어야 할 때쯤에나 생각해 보는 음식이다. 한해를 두고 이것저것 챙겨보고 만드는 음식. 아이들이 학교를 쉬는 겨울방학에나 겨우 별러서 만드는 음식이 엿이다. 그러니 더위가 거리를 휘몰고 다니는 여름에 이 맛을 보려면 사서 먹을 수밖에 없다.
텅 빈 마을에 엿가위 치는 소리가 요란하면 아이들은 바빠진다. 마루 밑이든 뒷간이든 아니 뒤지는 곳이 없다. 헌 것이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들쑤신다. 찌그러진 양재기도 좋고, 떨어진 헌 신짝이라도 있으면 횡재를 만나는 것이다. 벌써 입 안에 도는 단맛은 아이의 눈을 부릅뜨게 만든다. 뭐든 찾아서 엿과 바꾸기 위해서다. 거미줄을 뒤집어 쓴 아이는 여전히 빈손이다. 동생의 신발을 들고 갈등하던 녀석의 눈빛이 빛난다. 주위에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지 살핀다. 삽짝을 나서는 순간만은 아버지의 회초리도 머릿속에 없다.
이토록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아무 때나 마련해 줄 수 없으니 안쓰럽다. 집 앞의 전답은 넉넉하지 못하고, 일여덟이나 되는 자식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가 없다. 벼르고 별러야 겨우 한번 엿을 고게 된다. 그것도 아이들이 한 학기를 마치고 상장을 들고 와야 격려의 고리를 걸어 이루어진다. 화목 준비는 순전히 아이들 몫이다.
“모두 우등상을 탔구나. 잘 했으니 엿 과 줄게. 산에 가서 고주박을 해 오렴.”
아이들이 신이 났다. 헛간에 있는 바소쿠리를 꺼내어 지게에 얹고, 새끼도 꼬아 완벽하게 준비한다. 제 짝을 차지 못한 작대기도 맞추고, 나뭇간에서 도끼도 꺼내 지게에 건다. 토끼몰이라도 가듯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산으로 오른다. 그러나 헐벗은 민둥산엔 땔감이 없다. 산의 속살이 드러난 비탈을 뒤지다보면 이따금 썩다 말은 고주박이가 눈에 들어온다. 도끼로 후려치면 나무토막이 곤두박질친다. 썩다 남은 그루터기가 제 몸의 반을 떨쳐내고 뼈대만 쥐고 웅크린다. 바소쿠리에 한가득 짊어지고 내려오면 부엌이 부산해진다.
낮이 짧은 겨울에는 점심도 건너뛰기 일쑤이니, 곡류로 엿을 고을 수는 없다. 고구마 통가리에서 부러지고 상처 난 것과 외틀어진 것을 꺼내어 씻은 다음 가마솥에 쏟는다. 산에서 지고 온 고주박을 아궁이에 밀어 넣고 불을 붙인다. 삶아진 고구마에 찬밥 덩이를 집어넣고 형제들이 둘러앉아 으깬다. 순서에 따라 불린 엿질금이 뿌려지고, 반나절이 지나도록 삭힘의 시간이 주어진다.
긴 시간의 기다림은 즐거운 일로 삭혀낼 일이다. 산에서 내려온 머슴아들은 우애를 한껏 즐긴다. 좁은 마당에서 공을 찬다. 어디 공이 있겠는가. 짚가리에 붙어 앉아 새끼를 꼬고, 그것으로 똬리를 틀어 만든 공이다. 힘을 주어 걷어차도 멀리 나가지 않으니 좁은 마당에서는 안성맞춤이다. 가까이 떨어진 공을 서로 잡겠다고 한 덩이가 되어 까르르 웃는다. 형제애를 키우는 데는 이만한 것이 다시없다.
서로 다른 재료가 섞여 제 성질을 내려놓고 함께 삭혀짐으로써 엿물이 될 수 있다. 제 자신을 내려놓았다는 표시로 밥알을 띄우면 베주머니에 부어 힘껏 짜서 약한 불에 다시 올린다. 가마솥에서는 졸임의 시간이 시작된다. 아궁이에 고주박을 밀어 넣으며 쉼 없이 주걱을 저어댄다. 겨울 한기를 품은 고주박은 열기에 꺾기지 않으려 몸부림하며 연기를 내뿜는다. 눈물을 훔치며 젓는데도 엿물이 솥 가장자리에 붙어 약한 탄내가 인다. 기겁하여 문질러낸다. 걸쭉해지면 주걱질은 멈춘다. 아궁이의 타던 고주박도 끄집어낸다. 불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물을 뿌리면 순식간에 하얀 연기가 부엌을 가득 채운다. 연기가 빠져나가고 부엌이 한산해지면 엿도 식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걸쭉한 엿물은 손을 대도 될 만큼 충분히 식었다. 식은 엿을 적당량 떼어내어 잡아당긴다. 당길수록 엿은 늘여진다. 늘어난 엿에 전분을 뿌려가며 수타면을 뽑듯이 판에 내리친다. 내리치고 내리치며 전분 뿌리길 여러 차례. 길게 늘여진 것은 다시 반으로 접고 내리치기를 반복하면 엿은 짙은 색을 잃어간다. 그때마다 엿은 공기를 받아들인다. 저 만의 엿 기운을 고집하지 않는다. 당기는 사람의 사랑도 받아들이고 공기도 끌어안으며 가슴을 내어준다. 짙은 색깔은 서서히 변하여 하얀색으로 바뀐다.
엿가락은 충분히 식어 단단해졌다. 하얀 가락에 분이 입혀지면 아이들의 환호가 터진다. 엿이다. 형제들이 둘러앉아 한 가락씩 집어 들고 엿치기에 들어간다. 하얀 분이 묻어나는 엿가락을 꺾어 구멍을 들여다본다. 구멍이 크다. 서로의 구멍을 대어본다. 누구의 엿이 제 가슴을 더 열어 공기를 많이 받아들였는가를 겨룬다. 구멍이 큰 것이 이기는 것이다. 실죽처럼 속이 꽉 찬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엿은 보잘것없는 재료로 만든다. 하지만 그 맛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더 진귀하다. 땔감도 장작보다는 고주박이 제격이다. 또 끈적거리고 붙는 성질로 하여 우애를 묶어 주기도 한다. 제일로 치는 엿은 구멍이 크게 난 가락엿이다. 제 성질 고집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 받아들이고 조금은 비워두는 너그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찾아와도 함께 할 형제들은 멀리 있고, 엿 고아 주시던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엿가락 생각이 나서 시장에 들러 엿 가게를 찾는다. 겨우 눈에 띈 가게의 창문엔 호기스럽게 ‘쌀엿, 보리엿, 호박엿, 약엿’이란 문구가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첫댓글 돈묵친구의 엿 맛이 뭉뚱 묻어나
그립다 그 시절
어렵던 생각에 순간 눈물이 괸다
그 시절의 추억이 자꾸만 잊혀져 가니 안타까워.
그래도 남은 것을 찾아보려 해.
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아.
이젠 '아'도 '어'로 들을 줄 아는 나이가 되었지.
너그럽게 살아야 할 텐데......
나는 이글을 실감나면서 감명깊게 읽어서
갑자기 주중에 우리집을 찾은 딸에게 읽어보라고 하니
우선 무슨말인지 솔직히 잘 모르면서도
뭔가 아느 것처럼 그런대로 통박으로 아는체를 한다.
그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우리들은 잘 알지만
세대가 다른 아이들은 잘 모른다.
내새끼면서 외국인처럼 이질감을 느낀다.
이처럼 소중한 엿을~
강교수님
"애라, 아나 쑥떡 엿이나 먹어라" 하고
엿을 무척폄하하는 말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세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1965학년도 서울시 중학 입시에서 ‘엿을 만들 때에 당화작용을 하는 물질을 묻는’ 문제에서 정답은 ‘디아스타’였으나, 학부형들의 항의로 ‘무즙’ 역시 답으로 하는 과정에서 생긴 말.
두 번째는 서양에서는 입을 벌리고 죽었을 때, 입에 엿을 넣어 입이 붙게 하였으므로 ‘엿 먹어라’는 ‘입 닥쳐’란 의미였음.
세 번째는 조선시대 광대 집단인 남사당패가 여성의 성기를 ‘엿’이라 이르던 데에서 비롯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확정적으로 속단하기는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