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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 ˚。 생활의 정보 스크랩 함경아(미술가)
유망 추천 0 조회 42 09.06.25 10: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미술가 함경아

 

 

 


 

 

이러한 근성은 함경아의 초기작 《체이싱 옐로우(Chasing Yellow)》에서부터 제대로 드러났다.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노란색을 입은 사람을 보면 따라다니면서 인터뷰하고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이 비디오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 중 특히 노란 승려복을 입은 스님의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보세요. 이렇게 생겼는데 안 따라 갈 수가 없잖아요. 이 분은 싱가폴에서 만난 분인데 그때 당시 여든 다섯 살이었어요. 물어봤더니 5살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노란 옷을 입었대요.” 대개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 것처럼 작가가 들려주는 에피소드는 끝이 없었다. 집안 곳곳(심지어 화장실까지)을 조화와 조악한 장식품으로 가득 채워 놓고 혼자서 사는 노란 티셔츠의 남자, 베트남의 비행기 안에서 만난 중국계 캐나다 사람인 노란 점퍼의 남자, 가업을 이어 배우를 하는 노란 가부키 의상의 남자…. 그렇게 16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고, 과연 세상에는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이 저마다의 역사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었고, 각각의 삶 자체가 ‘아트’였다.

 

단지 노란색 옷을 입었다는 단순한 모티프를 좇는 이 예측불가능한 작업에서 너무나 행운이게도 ‘드라마틱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는 노란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을 따라 스쿨버스까지 타고 집까지 쫓아갔어요. 그러니 그 엄마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이 정신 나간 여자가 노란색 옷 입었다고 애를 따라서 집 안까지 들어왔으니.” 심지어 모든 여정을 마치고 공항에 가는 길에 또 다시 노란색 옷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그 사람을 다시 쫓아가기도 했다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드라마틱한 만남’은 우연인 듯하지만 결국 작가의 부단한 노력 끝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가브리엘 오로츠코, 올라퍼 엘리아슨, 피에르 위그, 피필로티 리스트,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 앙리 살라, 프란시스 알리스 등 현대미술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2001년 첫 회로 열린 요코하마트리엔날레에 소개됐다. 그 이후에도 티라나비엔날레 등에서 선보였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몇 년간 노란색을 쫓아다녔던 작가는 다시 노란 바나나를 추적하기에 이르게 된다. 2006광주비엔날레에 출품했던 《허니 바나나》는 바나나의 생산 및 유통 과정을 쫓아 제주도는 물론 필리핀과 동유럽 등지를 돌며 만든 작업이다. 어느 날 불현듯 작가는 엉뚱한 질문이 생겼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던 바나나가 지금은 어째서 그렇게 저렴할 수 있을까, 너무 궁금하지 않아요?” 바나나의 가격이 떨어진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참으로 막막하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격으로 언제 어디서든 ‘바나나’라는 단어만 보이면 일단 추적하기 시작했지요.”

 

작가는 《유기농 바나나 비닐하우스 재배에 관한 비밀 프로젝트》의 현장을 갔다. 또한 필리핀 한 섬의 차로 달려가도 끝없이 펼쳐진 바나나농장과 수확 현장도 찾아갔다.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바나나는 ‘농약 덩어리’와 다름없었고, 그래서 필리핀 땅 전체가 죽어가고 있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촬영 및 인터뷰가 쉽지 않았고, 아무리 예술 작업이라고 해도 보안상의 이유로 여러 이해집단으로부터 협박을 받기도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NGO의 멤버에게 도움을 받거나 현지인들에게 조르기도 하면서 작업을 꿋꿋하게 진행해 나갔다. 그깟 바나나가 뭐라고. 알고 보니 작가에게는 20살 즈음 겪은 작은 일화가 있었다. “우리 가족이 제주도에 사시는 아버지 친구 분 댁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바나나 비닐하우스를 운영하시는 분이었는데, 바나나가 워낙 고급 과일이었으니까 떵떵거리며 잘 사셨죠. 근데 저희가 갔을 때는 썩어가는 바나나 더미 가운데 망연자실한 채로 주저앉아 계신 거예요. 아마도 그때가 필리핀에서 다량으로 저가에 바나나가 수입되는 계약이 성사된 직후였나 봐요. 얼마나 낙담했던 상태였는지 그 아저씨는 친구 가족이 온 것은 안중에도 없을 정도였죠.” 작가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한 사람의 삶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나 FTA 협정 등 국제무역환경의 변화는 한 개인의 생사를 좌우하기도 한다. 즉 작가에게 있어 바나나는 그냥 바나나가 아닌 거대 자본의 힘에 냉소를 보내는 매개체인 것이다.

 

 

 

그러나 함경아는 사회운동가처럼 지극히 시사적이거나 정치적인 담론을 따라 작업을 하는 여타의 작가들과는 확실히 다른 지점이 있다. 바나나 작업의 시작이 아버지 친구의 일화에서 발동된 것처럼 먼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안공간루프 디렉터 서진석은 이러한 함경아식의 접근법을 두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함경아는 자신의 주관적 기억들과 일상들을 연결시키며 자신 안에 생성된 혹은 반영된 사회를 지극히 독창적인 감성으로 나타낸다. 사회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며 사회와 자신 간의 얽혀 있는 실타래들을 풀어가고, 자신의 사적인 영역과 사회 권력의 영역이 관계를 맺는 체계 속에 담긴 논리적인 공식을 발견하는 데 있다.”

 

함경아가 늘 진지하고 무거운 작업을 하는 것만도 아니다. 작품을 보면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부분도 많다. 《Police/POL is》에서 작가는 도쿄 시부야 광장의 경찰소 앞에서 경찰복을 입고는 1m 간격으로 실제 경찰과 나란히 선 채로 경찰관 같지 않은 경찰관을 흉내 낸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 작업은 있으나마나 한 공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웃음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한국의 부천아인스월드, 한국제주스몰월드, 중국의 베이징월드파크와 신천윈도우오브더월드, 일본의 토부월드스퀘어처럼 ‘월드’라는 테마로 조성된 공원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트래블 앤 저니》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 있는 장소에서 관광객 특유의 정형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어대는 코믹한 모습을 통해 관객은 충분히 작가의 감성에 동화될 수 있다.

 

한편 전 대통령의 자택 화장실 공사를 하면서 쏟아져 나온 폐자재들을 모아 만들어 화제가 됐던 《오데사의 계단》에서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작품이 전시될 당시 한 일간지 기자가 찾아와서는 전직 대통령의 추문이 드러날 만한 증거가 없는지 마치 사건장소를 수색하듯이 작품의 구석구석을 살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자는 골프공이나 영어교재, 기껏해야 ‘각하’의 전화번호가 적힌 비서관의 수첩 말고는 별다른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작가 박찬경의 말을 빌자면 함경아는 “진실에 대한 사건기자의 조급성에 대해, 이면이 없는 생활인의 감각으로 응답”한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계단 구조를 통해 권력의 아이러니를 표현했고, 맞은 편 벽에는 총알을 쏴서 응축적인 메시지를 새겼다.

 

 

 

 

2008년 작가는 쌈지스페이스에서 10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Such Game'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전시에서 작가 특유의 냉소와 유머와 다양한 매체의 활용으로 작가의 역량을 여과 없이 발산했다. 전시는 크게 자수 프로젝트, 백자 프로젝트와 석유 찌꺼기로 만든 《페르시안 카페트》 등의 설치 작업으로 구성됐다. 재료에 의한 제한을 전혀 받지 않고, 작가의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만한 방식이 자유롭게 구사되어 있었다.

 


작가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구닥다리 미술 개념으로부터 탈피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특히 자수 프로젝트는 저 멀리 북녘의 수공예 노동자들의 손을 빌렸다. 작가는 인터넷을 통해 전쟁과 테러에 관련된 기사와 이미지를 수집한 다음, 북한 출입이 가능한 제3자를 통해 중국을 지나 북한으로 자수 도안을 전달했다. 북한 수공예 노동자들에 의해서 솜씨 좋게 수놓아진 그림이 전시장에 걸렸다. “전시장에 진열된 것만 작품이 아니에요. 북한 사람이 자수를 놓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떠도는 외부의 그림과 텍스트를 어쩔 수 없이 읽고 보게 되는 행위, 그것이 바로 '삐라’와 비슷한 기능이 아니었을까요? 제한적이지만 공간적 거리와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뛰어 넘는 소통의 시도 자체와 그것을 둘러싼 전 과정 모두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함경아는 올 가을에 아트선재센터에서 대규모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지금도 작가는 무언가를 열심히 쫓고 있거나, 혹은 하지 말라는 무언가를 몰래 진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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