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뭇 내가 생각한 '마더'와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천안문 마더'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마더를 생각하고 갔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봉준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주 개성적인 케릭터라고나 할까?
자식을 위해 살인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엄마...
요즘 아이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 엄마들의 상을 패러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화 '살인의 추억'과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를 섞어 놓은 듯한 웃지 못 할 스토리 구조.
역시 봉준호는 관객에게 쉽게 답을 주지 않았다.
영화가 끝날 무렵까지도 범인이 누구인지 함구하고 시치미를 뚝 떼며 영화를 끌고 가는 그만의 기술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미스테리 스릴러라 하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멜로물이라 하기엔 섬뜩한 면이 없지 않아 있고...
조금은 풀린 듯한 김혜자의 집착 연기는 저러다 배우가 미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아들의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간 장애인 동철이에게 "너 엄마 없니?"라고 말하는 마더의 복잡한 심경을 감독은 놓치지 않고 김혜자의 미묘한 표정으로 처리한다.
감독은 절대로 관객들이 원하는대로 영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관객의 몰입을 방해 할 정도로 주변 인물들의 대담성을 영화 내내 개입시켜 주위를 분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범인에 대한 은근한 복선을 아주 희미하게 노출시키는 센스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개입되는 사건들이 암울한 현실을 보도성 강하게 고발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일탈행위, 가지고 배운자들의 부도덕성, 경찰들의 비인간적 심문 수사, 외면당하고 있는 장애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모르고 살아가는 부분,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사는 부분을 되돌아 보게 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조금은 무거우면서도 우울한 영화였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아마도 자식을 위한 엄마의 사랑이 악행으로 변하는 순간에 '아'하고 외마디 소리만 지를 뿐 감정적으로는 동조해버린 나 자신의 도덕성이 의심스러웠을까?
누구 말처럼 '박찬욱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영화를 만든다면 봉준호는 우리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만든다'는 말이 딱 들어 맞는 영화였던 것 같다.
오늘 '마더'를 보고 와서 평소에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마더'였을까를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본다
첫댓글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보시고 나서 이렇게 감상까지 올리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토요일쯤 꼭 보러 가야겠어요.
영화는 제게 쥐약과 같은 것입니다. 단 한번도 잠이 들지 않고 단숨에 본 영화는 없으니까요. 그것은 영화관에서나 집에서나 마찬가지. 얼마 전 ‘태백산맥, 은마는 오지 않는다, 남부군’ 영화를 본 후 원작소설과 비교해 소논문을 쓸 때도 거의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한편을 보는 데 일주일 혹은 열흘 가까운 시간을 소요해야 했으니...그러니 영화 얘기가 나오면 저는 그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ㅎㅎ
전 반대입니다. 전 아무리 지루한 영화를 보더라도 잠든 적이 거의 없습니다. 20대 때는 용돈 다 털어 영화관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눌원 소극장'과 '부산카톨릭 센타'에서 제 3세계 영화를 1000원에도 볼 수 있었거든요. 이란 영화부터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영화까지 친구랑 수업 빼먹고 보러 다녔습니다. 요즘이야 인터넷이 워낙 발달하여 각종 영화 접하기가 쉽지만 80년대 말 90년대 초는 영화관 아니면 영화 구경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잖아요. 주로 조조 할인으로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조조 할인이 있는지...
글꽃님 이제보니 영화 광 팬이셨군요. 겉보기와는 사뭇 다른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네요.이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하나 봐요^^
제가 겉보기에는 누런 책을 들여다 볼 것 같죠?ㅎㅎㅎ 다들 지금이야 가정을 꾸리고 살지만 20대 때에는 강한 불을 안고 살았지 않을까요? 전 요즘도 가끔 가슴 속에서 불이 일어 날때가 있어요. 몸이 힘겨워 진다고 심연의 청춘마저 외면 할 수는 없지요. 문제는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몇 날 며칠을 부르르하며 지낼 때가 문제지요. 이래서야 어디 제대로 된 '마더'라 될 수 있을런지...
세상에나, 가슴에 불을 안고 살아도..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데도 그렇게 침착하고 차분 할 수 있는거여요? 글꽃님의 숨겨진 내면 세계를 다 알려고 하다간 정말 다칠 수도 있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