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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D형의 큐폴라 구조도 |
이들 장갑판은 용접방식에 의해 접합되지만 용접부를 "ㄷ"자 형태로 만들어 맞물리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여 용접 시간을 단축하고 충분한 강도를 얻을수 있게 했다. 일부 차량은 용접 방식이 아닌 인터 록 방식이 사용되었다. 한편 대전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자재에 문제가 많아 장갑판 자체의 강도는 상당히 저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차제 전면에는 D형의 경우 좌측에 개폐식의 조종수용 바이저가 있고 우측에는 무전수가 사용하는 기관총 발사용 4각 포트가 설치되어 있다. 조종수는 주행시 바이저를 닫고 조종석 위에 있는 2개의 페리스코프를 사용하지만 이 페리스코는 무전수석에도 장비되고 있다.
한편 조종수용 바이저의 내측부분의 차내는 방탄 유리가 장비되어 있는데, 그 강도는 소총탄 정도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강력한 것이었다.
또한 페리스코프에는 글래스 블록 90이라는 적층 방탄 글래스가 수납되어 있다. 최전부와 최후부에는 4mm 두께의 크리스탈 글래스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20mm 두께의 글래스 3매가 배치되며, 각 글래스 사이에도 얇은 글래스들이 샌드위치 되어 있다. 거기에 뒤쪽에는 10mm 간격을 두고 10mm의 이너 글래스가 장비되어 이들을 모두 합치면 글래스의 두께는 90m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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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A/G형의 큐폴라 구조도 |
D형에 이어 생산된 A형에서는 당초 D형과 마찬가지의 4각형 기관총 포트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1943년 11월-12월 경부터 벤츠가 개발한 80mm 장갑판용 볼 마운트가 장착되었다. 이 볼 마운트는 기관총 조준용 TZF12a 조준기가 장비되어 있어 이전에 비해 대보병 사격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 볼마운트의 채용으로 무선수용 페리스코프는 폐지되었다.
한편 G형부터는 전면장갑의 방어력 향상을 위해 조종수용 바이저가 폐지되었다. 그 대신 조종수용 해치 전방에 선회식 페리스코프가 장비되었으며, 좌전방의 폐리스코프 역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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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G형 후기 생산형부터 도입된 소염식 배기관 |
조종실 중 포신의 바로 아래에 해당되는 부분은 단순한 환기용 개구부가 설치되어 있고, 그 바로 위에 주포 고정용 트래블링 록이 설치되었다.
리어 패널의 좌우에는 잡물상자가 장비되며 배기관 사이에 엔진 점검 해치가 있고 그 해치 중앙부에 강제 시동용 크랭크를 삽입하는 구멍이 있다. 그리고 해치의 우측에는 관성식 스타터의 개구부가, 우측에는 냉각수 난방용 개구부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이들 개구부의 우측에는 아이들러의 전후 위치를 조절하는 조절부가 있고 이 부분에는 장갑 커버가 씌워져 있다.
엔진 점검 해치의 바깥쪽에는 잭이 옆으로 장착되어 있지만, D형의 생산도중 양쪽 배기관 사이에 세운 상태로 장착되도록 변경되었으며 A형의 생산도중 좌측의 배기관 좌우에 공기흡입관이 함께 설치되었던데 비해 G형에서는 냉각계통의 개량으로 공기흡입관이 폐지되고 좌우 1개 파이프의 단순한 형태로 변경되었다.
한편 G형 후기부터는 대형 원통형의 소염식 배기관이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장비한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
기관계통
Panther의 개발과정에서 여러 가지 엔진이 검토되었지만 결국 양산형에 채용된 것은 마이바하 HL210P30이었다. 이 엔진은 독일 전차용 엔진으로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냉 V형 12기통으로 배기량은 21,350cc, 회전수 3,000rpm에서 650hp를 발휘했다. 이 마이바하제 엔진의 수자가 배기량을 나타낸다.
그러나 생산이 진행되고 나서 한단계 더 출력이 높은 HL230P30이 등장하여 이 엔진이 장비되게 된다. 이 신형엔진은 기본적으로는 HL210의 발전형으로서 경합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량은 약 350kg 증가하여 건조중량이 1,200kg에 달했다. 이 때문에 출력은 50hp 정도 증가하여 700hp가 되었디만 차량의 주행 성능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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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G형 후기형에 채용된 전투실내 난방 장치 & HL210 P30 엔진 |
엔진의 전고는 1.19m, 전장의 91%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Panther의 차고는 불가피하게 높아진다. 이 엔진 바로 위에 점검 해치가 있고 엔진 바로 밑에 토션바가 있어 그 이상 차고를 낮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엔진의 좌우에는 냉각장치가 각기 독립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이들 냉각장치는 각기 전후 독립된 라디에이터와 중앙에 있는 16매 날개의 배기용 강제 팬으로 구성된다. 좌우의 라디에이터는 파이프로 연결되고 엔진실 후부의 냉각수 주입용 탱크에 접합되어 있다.
냉각수 주입 탱크의 옆에는 연료주입구를 가진 연료탱크가 있다. 이 부분을 통해 주입된 연료는 배관을 통해 좌우 각 2기씩 독립되어 설치된 연료탱크로 보내진다. 연료탱크는 총 5개소로 연료 탑재량은 합계 약 760 리커가 된다. 이 가운데 130리터는 예비연료로 규정되어 있다.
운용상으로는 도로주행시 시속 25km로 주행하여 약 260km의 항속거리를 발휘하고 있으며, 예비연료를 사용하면 항속거리를 약 45km 연장할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연료탱크는 수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 화재사고가 다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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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의 연료탱크 배치도 (각형 공통) |
이것은 우선 연료탱크의 용접이 불량했기 때문에 약간의 틈새가 생겨도 기화가스가 새어나와 공기보다 비중이 무거운 가스가 기관실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높아진 엔진 배기관의 열과 접촉하면 불이 붙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료탱크에 환기용 파이프를 추가하고 연료탱크 자체도 개량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 문제는 G형에 이르러 엔진 냉각기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실시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이것은 시험기간이 충분했다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쿨스크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실전화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Panther에는 설계당초부터 엔진실내에 자동소화장치가 도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장치는 연료 펌프, 캬프레이터, 스타터의 3개소에 온도측정 장치와 소화액 분출 노즐을 붙여 온도가 160도를 넘으면 작동, 자동적으로 7초 동안 소화액을 뿜어내는 장치였다. 이 소화액은 세차례 분사가 가능하게 되어 있으며, 뒤에 같은 장치가 Tiger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자동소화장치는 온도측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하고 장치도 오작동하는 예가 많아 격벽에 새로 수동식 소화기가 추가되게 된다.
잠수장치는 당시 독일군 공병이 사용하는 돌격교가 16톤을 넘는 물체가 통과할수 없었으므로 개발중 40톤이 넘을 것이 확실시되었던 Panther에 스노켈을 이용한 잠수장치 도입이 추진되었다. 이 장치는 Tiger 계열에도 채용되었으며, 당시 독일 중전차들의 경향이었다고도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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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에 처음 채용된 엔진 자동 소화장치 & 소화 노즐의 정비장치 |
잠수장치의 채용으로 개구부가 되는 부분, 즉 각 해치, 포탑링 등에는 수밀기구가 장착되었고 기관실 후부에 세워지는 스노켈 파이프에 의한 엔진에 대한 흡기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부분은 물이 스며들도록 하여 잠수전에 강제 냉각 팬을 정지시켜도 냉각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장비로 수심 4m 까지 잠수도하가 가능하였다. 이 스노켈 장비차는 기관실 후부에 전방을 지지점으로 열리는 커버가 설치되어 있어 식별이 용이하다.
하지만 조속한 실전화의 부작용으로 초기생산형은 잠수장비가 적용되지 않은 채 완성되었으며 실제로 장비가 개시된 것은 1943년 6월 이후였다. 그러나 실제로 Panther를 운영해본 결과 16톤 돌격교를 통과할수 있었기 때문에 8월에 잠수장치의 폐지가 결정되고 따라서 이 잠수장비를 완전히 갖추어 완성된 Panther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조종수석과 무전수석 사이에는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전달받는 변속기와 동력을 기동륜에 전달하는 파이털 드라이브가 있다. 변속기는 명문 ZF의 AK7-200이 사용되었으며, 1942년 2월부터 설계되어 8월에 시제품 2기가 완성되었다. AK7-200은 싱글 메시식의 전진 7단 후진 1단의 수동식 변속기로 3,000rpm시 1단으로부터 시속 4.1km, 8.4km, 13.3km, 20.8km, 30.8km, 42.5km, 55.5km로 되어 있고 이 경우 선회에 요하는 반경은 1단부터 각기 5m, 11m, 18m 30m, 43m, 61m, 80m 였다. 따라서 이론상 7단의 최고속도로 달리고 있는 Panther가 선회하려면 160m의 원을 그린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그때까지 650hp의 엔진에 사용하는 변속기는 처음 개발된 것으로 역시 문제점이 많이 발생했지만 G형에 이르러서는 거의 극복되게 된다. 이는 데뷔전인 쿨스크전에서 200대가 참가한 Panther D형이 5일후인 7월 10일 각종 기계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가동전차가 겨우 10대까지 줄어들었음에 비해 1944년 12월 15일 시점에서 동부전선 전체가 보유한 737대의 Panther 가운데 가동수가 500대를 넘었다는 사실이 입증해 준다.
변속기와 함께 연결되는 조향변속기는 MAN에서 개발한 것으로 단일 반경 방식이 채용되었다. 당초 계획으로는 최초 100대에는 제작기간 단축을 위해 종래대로 클러치와 브레이크 방식을 채용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이방식으로 완성된 것은 겨우 23대 였고, 이들도 뒤에 단일 반경 방식으로 개수를 받게 된다. 한편 Tiger는 2단 반경식을 채용하고 있었지만 이 방식은 조종은 쉽지만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주력전차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선회하는 측의 기동륜의 회전수를 떨어뜨려 선회를 하고 작은 반경으로 선회하는 경우에는 선회측의 기동륜을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선회를 행하였다. 하지만 좌우의 조향 레버를 이용해 조작하여 선회하는 방식을 승무원들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했다. Panther에서 Tiger로 전환하는 것은 쉬웠어도 그 반대는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서스펜션
Panther는 3호 전차에서 실용화되고 Tiger-I/II에도 도입된 금속제 봉의 탄성을 이용한 토션바 방식의 현가장치를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전차가 보기륜당 하나의 토션바를 이용하는데 비해 Panther는 상하 가동폭을 넓히기 위해 보기륜 1조당 2개의 토션바를 사용하는 더블 토션바를 사용하는 더블 토션바 방식을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 방식은 보기륜의 상하 가동폭 510mm을 가능케 하였으며 진동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 결과 정지 사격시 조준기로 목표를 신속하게 포착할수 있었고 속도 향상에도 공헌하는 등 당시로서는 가장 우수한 방식이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구조가 복잡하여 교환이나 수리가 어려워 결국 Panther 이외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제2/7 보기륜에 해당하는 서스펜션에는 쇽업서버가 장비되어 있다. 이것은 시제차량이 제1/8 보기륜에 장비되었던 것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지지만 다중식 보기륜으로 인해 장비할 공간이 없어 제2/7 보기륜의 차내측에 장비되는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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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에 채용된 더블 토션바의 배치도 |
그러나 G형 부터는 이 속업소버가 없어도 주행성능이 그리 영향이 없다는 결론에 따라 폐지되고 만다.
보기륜은 다중배열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표면접지압을 균등하게 하기 위함으로서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1)각 보기륜의 간격이 사실상 없어져 트랙에 대한 접지압이 균등해진다.
2)보기륜의 사이즈가 커져 야지 주행시 보기륜의 상하이동이 무리없이 행해진다.
3)고무 타이어에 가해지는 압력이 작아 고무소모를 억제시킬수 있다.
하지만 교환과 정비에서는 상당한 시간을 요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고 특히 동기에는 보기륜 사이에 진흙 등이 낀 뒤 얼어 붙어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결국 이 방식은 전쟁후 세계 어느 전차에도 채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득보다 실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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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타이어식 보기륜(왼쪽)와 스틸 보기륜(오른쪽) 단면도 |
보기륜은 직경 860mm로 독일 전차 중 가장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다. 보기륜 주위에는 솔리드 고무 타이어가 장착되고 주행시 진동으로 고무 타이어가 벗겨지지 않도록 24개의 볼트로 고정되어 있다.
한편 고무자원 절약의 일환으로 Tiger-I 후기형이나 Tiger-II, Panther-II 등에서 사용된 고무 내장식 800mm 직경 철제 보기륜도 일부 적용되었다. 하지만 전쟁 종결 당시에도 구무 타이어가 붙은 표준형 보기륜의 재고는 많이 있었으므로 실제 철제 보기륜이 장비된 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기동륜의 바로 안쪽에 작은 휠이 장비되고 있는데, 트랙의 떨림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러 휠은 직경 650mm, G형의 생산도중 보다 간략화된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트랙은 리처사가 개발한 것으로 독일전차의 표준이라고 할수 있는 싱글핀, 싱글 블록 방식의 주조제이다. 제식명칭은 Kgs64/660/150이며, 여기서 K는 주행용 트랙, g는 합금을 이용한 강제, s는 드라이브 핀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뒤의 숫자는 순서대로 트랙의 형태, 폭, 피치를 나타낸다. 트랙은 한쪽 86매가 표준이었으며 아이들러 휠의 위치를 조정하여 텐션조정을 하게 되어 있다. 미끄럼 방지무늬는 당초 요철 모양에서 A형 부터는 入 무늬의 것이 채용되었다. 그리고 A형의 생산도중 동기 미끄럼 방지 기구를 장착할수 있도록 되어 트랙 5매 또는 7매마다 장착하였고, 이때에는 시속 15km 이하로만 주행해야 했다.
무장
Panther의 주포는 라인메탈사가 개발한 70구경 75mm 전차포 KwK42가 사용된다. 이 주포는 1941년 7월 18일 자의 개발요구에 따라 거리 1,000m에서 140mm의 관통력을 가지도록 하라는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전차의 주포들이 20mm 기관포, 24구경 75mm 단포신 전차로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전차포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전차포는 개발 당초부터 순수 전차 탑재목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라인메탈사는 처음에는 60구경을 채용하였지만 기술적 검증을 거쳐 70구경으로 포신길이를 연장하였고 1942년 6월에 인도될 예정이었지만 포탑이 완성된 것이 9월 16일, 그리고 포신의 장비가 각종 의장품의 장비로 완전히 완성된 포납을 MAN에 보낸 것은 10에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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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형의 주포 탄약고 배치면도 |
KwK42는 당시 Tiger-Idl 장비한 88mm KwK와 함께 최강의 전차포였다. Pzgr39/42 철갑탄(탄약중량 14.3kg, 탄환중량 6.8kg, 포구 초속 925m/초)을 사용할 경우 1,000m에서 111mm, 2,000m에서 89mm의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탄두에 텅스텐 탄심을 적용한 Pagr40/42(탄약중량 11.5kg, 탄환중량 4.75kg, 포구 초속 1,120m/초)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1,000m에서 149mm, 2,000m에서 106mm를 관통할수 있었다. 하지만 텅스텐 탄심은 자원부족으로 보급되는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탄환 중량이 작아 원거리에서의 명중률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었다. 독일군측의 기록에 의하면 Pagr39/42의 경우 1,000m에서 명중률은 100%, 2,000에서는 92%로 되어 있지만, 실전에서는 각기 97%와 49%로 저하하고 있다. 반면 Pzgr40/42의 경우 병기시험장에서 같은 사거리에서의 명중률이 각기 94%, 56%였고 실전에서는 각기 56%, 20%로 크게 저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포탄은 D형과 A형의 경우 79발, G형은 82발을 탑재한다. 포신의 수명은 약 3,000발이지만 사용탄종에 따라 다소 달라지며 특히 Pzgr40/42의 경우에는 1발 발사가 다른 탄환 4발의 발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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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형의 주포 탄약고 배치 |
주포의 발사는 포수석에 있는 전기식 사격장치로 하게 되고 동축기관총은 포수가 페달을 밟아 발사하게 되어 있다. 포신은 포수의 조작에 따라 -8도~+20도 까지 조정할수 있었다. 조준기는 처음에는 쌍안식 TZF12가 장비되었지만, A형의 생산도중 단안식의 TZF12a로 변경되었다.
부무장으로는 동축기관총으로 MG34(F형에서는 MG42)를 주포 우축에 장비하고 무선수가 차체 전방을 통해 발사하는 MG34가 장비되어 있다. 이 무선수용 기관총은 D형에서는 장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A형의 볼마운트식 총구가 도입되고 나서 정식장비로 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차장용 큐폴라에 장착되는 대공기관총은 기본적으로 무선수용 기관총을 빼내서 장착하는 것으로 대공용으로 사용할 때는 전방기관총은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전선에서 MG34 정도의 기관총은 입수하기 쉬웠을 것이므로 큐폴라 위에 대공기관총을 추가로 장착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7.92mm 탄의 탑재수는 150발 벨트 34개, 즉 총 5,100발이 표준이다.
그리고 Panther에서 처음으로 채용되고 Tiger-II까지 이어지는 장비로 포탑 내부의 콤프레셔에서 발생시킨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포신내의 가스를 자동으로 배출시키는 보어이배큐에이터가 장비되었다. 이것은 주포 사격시 주포가 후퇴하였을 때에 바로 포신내의 가스가 벤틸레이터로 연결되는 튜브를 통해 바로 배출시키는 장비였다.
포탑
포탑도 차체와 마찬가지로 경사장갑이 대폭 도입되었다. 전면 100mm/12도, 측면 45mm/25도, 후부 45mm/25도로 후부 패널은 측면판보다 약간 안쪽으로 용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포방패는 100mm 두께의 주조제로 F형을 제외하고는 각형 공통이지만 G형 후기에서 방패 아래부분이 각진 형태로 변경되었다.
포탑의 선회는 엔진에서 변속기로 이어지는 샤프트 중간에 포탑 선회용 모터가 장비되어 여기에서 포탑 바스켓의 바닥에 설치된 유압 장치의 구동력을 전달하여 포탑을 선회시켰다. 포탑의 선회속도는 고저 2단계로 되어 있고 포수석 전방에 위치하는 포탑 선회모터에 장착된 레버로 선회속도를 선택하였다. 360도 회전에 요하는 시간은 엔진의 회전수에 비례하지만 엔진 1,000rmp시 고속선회를 하면 46초, 3,000rpm에서는 15초 였다. 레버가 저속으로 되어 있을 때에는 1,000rpm에서 93초, 2,000rpm에서는 45초 였다. 한편 포수측에 장비된 수동선회 핸들을 이용하여 수동으로 포탑을 돌리는 경우에는 수동으로 선회가 가능했고, 탄약수석에도 보조 선회 핸들이 설치되었다. 이 핸들을 한번 돌리면 포탑이 0.366도 회전, 360도 회전에는 984회 핸들을 돌려야 한다. 대체로 수동으로 포탑을 선회시키는데 4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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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용 적외선 야시장치 |
조준기
생산당초 Panther의 조준기로는 독일군 전차의 표준 조준기라고 할수 있는 TZF12 쌍안식 조준경이 장비되었다. 이 조준경은 A형의 생산도중 단안식의 TZF12a로 변경되었는데, 양자 모두 접안 렌즈를 보면 우측에 동축기관총과 유탄의 조준거리, 좌측에 철갑탄의 조준거리가 나타난다. 가운데 7개의 작은 3각형과 중앙의 대형 3각형이 보이고 그 안에 보조눈금과 주눈금이 있다. 중앙의 3각형으로 목표를 조준하고 거리에 따라 눈금을 조정하여 사격했는데, 철갑탄의 경우 Pzgr39/42는 3,000m, Pzgr40/42는 2,000m, 그리고 Sprgr42는 2,000m까지 조준할수 있다.
주행중인 목표에 대해서는 목표의 속도를 감안하여 목표의 미래위치에 탄을 발사해야 하므로 컴퓨터 장치가 없던 당시로서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한편 원거리에서는 당연히 명중률이 저하되므로 가능한한 1,500m 내에서 사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3,000m 사거리에서 T34를 격파한 기록도 있지만 이것은 예외라고 볼수 있고 쿨스크전 당시에는 2,000m에서 격파한 사례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2,000m 사거리는 빈번히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TZF12의 경우 배율은 고정식 2.5배, 시야 28도(1,000m 앞의 시야는 489m)이지만 TZF12a에서는 2.5배와 5배율을 선택할수 있다. 5배율의 경우에는 시야가 14도(1,000m 앞에서의 시야는 249m)로 축소된다.
Panther D
Panther D형은 1942년 12월부터 생산된 Panther 시리즈 최초의 양산형이다. 당초 MAN의 도면 등에는 A형으로 기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양산차에 D형의 기호가 붙여졌다. 발주량은 당초 1,000대였지만 생산도중 개량형인 A형이 완성되어 발주수는 850대로 하향조정되었고 최종적으로 842대가 완성되었다. 각사별 생산수는 MAN 24대, 벤츠 250대, 헨쉘 130대, MNH 220대 이다.
D형은 기본적으로 시제 2호차와 동일하다고 볼수 있지만 일부 사양은 변경되었다. 우선 전투중량이 VK30.02(M)에서는 35톤이었지만 Panther D형에서는 44.8톤으로 무려 10톤이 가까이 증가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VK30.02의 공표된 중량이 설계중량인 때문으로 실제 무게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설계치보다 10톤 가까이 증가한 것은 보다 강력한 전차에 대한 요망으로 장갑 두께를 늘리고 장포신 70구경 75mm포를 채용한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한편 엔진은 당초 마이바하 HL210에서 생산도중 출력을 50hp 정도 증가시킨 HL230으로 변경되었다.
T34로부터 배운 경사장갑은 시제차량과 거의 변화가 없지만 시제차량에서는 포탑내 공간을 늘리기 위해 차장용 큐폴라 부분이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비해 양산형에서는 포탑의 기본형태 안으로 옮겨졌다.
포탑의 좌측면에는 차외로의 연락을 위한 소형 해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 해치는 외부로부터 물건을 주고 받거나 전투중 탄피를 밖으로 배출하는데 사용된다. 포탑 후부에는 탈출용 해치가 설치되었고 측면과 후부에는 피스톨 포트가 설치되었다.
시제 2호 차량의 주포는 구형의 단작동식 머즐 브레이크가 장비되었지만 생산개시 시점에는 보다 효과가 높은 2중 작동식으로 변경되었는데, 아마도 단작동식으로 만들어진 차량은 10대 미만일 것으로 추측된다.
차체 우측 전방에는 직사각형의 커버가 있는데 이것은 무선수가 차내에서 기관총이나 기관단총을 밖으로 사격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이미 3/4호 전차에서 호평 받은 볼 마운트식 기관총을 애초 도입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실전에서 사용해 보니 효과가 없었다고는 생각할수 없고, 아마도 두터운 80mm의 경사장갑(수평길이 140mm)에 맞는 볼마운트를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여러 곡절 끝에 생산에 들어간 Panther D형이었지만 1943년 1월말까지 완성된 것은 3대 뿐이었고 이 차량으로 운영해본 결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실전전력으로 투입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지적된 문제점이 50가지 이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리하여 다시금 문제부분의 개수작업에 착수하게 되지만 이것이 생각만큼 빨리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각종 산고를 거쳐 나오는 주력전차의 개발과정에서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양산단계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고 역으로 말한다면 히틀러가 그만큼 조속히 Panther를 실전투입하고 싶다는 욕망을 강하게 표현한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중에서 주요한 것을 살펴본다면, 우선 포탑을 선회할 때 조종수 및 무전수 해치를 간섭해 버리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포탑의 모서리 부분을 비스듬히 3cm 절단하는 것으로 해결 되었지만 기본설계도면 자체가 문제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주포의 부각을 -7.5도 이하로 하는 경우에는 조준기가 포탑내의 주포 마운트에 부딛혀 포탑 전면에 3각형 강판을 용접하여 그 이상 포신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리고 부각상태에서 리코일 가드가 차장석을 간섭하여 차장석을 보다 후방으로 이동시켰고 큐폴라 해치도 개폐 레버와 선회 핸들의 위치관계가 나빠 열기가 어려웠다. 큐폴라 해치의 관계는 4월이후의 생산차부터 해결됐다.
이밖에도 수십가지의 문제가 있었지만 이것들을 모두 해결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므로 일단 생산부터 하고 나서 나중에 개수작업을 하는 것으로 하고 생산이 속행되었다. 이리하여 1943년 4월 이후 그때까지의 생산차량은 데마그사에서 병기국 제6과의 지시에 의해 개수작업을 벌이게 된다. 한편 생산중의 차량은 개수가 완료되면 그 개수를 반영하여 계속 생산하도록 했다. 데마그사의 개수작업 중 주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차체 |
연료탱크 재용접, 연료 탱크 환기공 신설, 3단식 연료 메뉴폴드를 무단식으로 변경, 변속기와 조향장치 등을 새로 교환, 브레이크 기부 강화, 제2/7 쇼크 업소버를 강화형으로 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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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탑 |
큐폴라에 TSRI 페리스코프를 신설, 주포의 리코일 가드에 금속판 장착, 포탑내에 트래블링 록 신설, 주포 조준기 마운트 강화, 동축 기관총 탄피 배출 튜브의 위치변경, 동축 기관총 발사 케이블을 2.5mm 구경으로 강화, 발사 페달 위치 변경, 연락용 측면 해치와 탈출용 해치의 힌지 강화, 빗물막이 신설, 탈출해치의 개방위치에 고정구 신설, 포탑 바스켓의 강화 |
한편 복잡한 기구를 폐지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잠수장치는 폐지되었고 그에 따라 방수봉합도 간이형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은 8월부터 생산된 차량으로 이전의 잠수장치 없이 완성된 차량에는 스노켈 연결부위를 금속판으로 막거나 금속망을 설치하였다.
이들 개수와는 별도로 생산중에 단계적인 개량이 가해져 Panther는 결국 실용시험 기간이 아주 짧은 대신 실전을 통한 개수가 헤아릴수 없이 행해졌다.
우선 생산초기에는 포탑 측면에 연막탄 발사기가 설치되었지만 실전에서는 적의 소구경탄에 간단히 파괴되었고 재장전하려면 승무원이 밖으로 나와야 했으므로 1943년 7월 생산분부터는 폐지되었다. 4월부터 생산된 차량에는 대전차 라이플에 대한 방어책으로 쉬르첸이라고 불리는 사이드 스커드를 차체 좌우에 장착했다. 8mm 두께의 이 장갑판은 한쪽 6매(G형 5매)로 구성되어 착탈이 가능했다. 그리고 큐폴라 해치의 개방위치 변경, 압축공기를 이용한 포신내 가스 배출장치 도입 등이 행해졌다.
5월 생산차부터는 엔진이 HL210P30에서 HL230P30으로 변경되었고 이 엔진의 변경은 생산 251호 차부터 적용되었다. 엔진변경으로 출력은 50hp 정도 증가하여 700hp가 되었지만 HL210이 경합금을 이용하여 경량화 되었던 반면 HL230은 경합금을 사용하지 않아 엔진중량은 350kg 정도 증가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데마그사 개수차량은 쿨스크전을 앞두고 그라펜베이 훈련장에서 최종 개수가 실시되었다. 이 개수는 훈련중 발생한 문제점을 반영한 것으로 기동륜 후부의 댐퍼 강화, 연료탱크 커버에 환기 파이프 추가 등의 개수를 실시하였다.
1943년 하기공세의 지연이유가 Panther의 실전화가 늦어진 때문이 컸지만 7월의 쿨스크전에 있어서도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실전에 투입된 D형은 엔진고장이 속출하였고 연료 파이프에서 누출된 연료에 불이 붙어 화재를 일으키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투에서 일어난 손실보다 승무원들이 스스로 내버린 차량이 더 많을 정도였다.
한편 7월부터 생산된 차량은 방어상 문제가 있다 하여 포탑 좌측면의 연락용 해치를 폐지하고 우측 전조등 폐지, 연료 급유구와 인테이크 주위에 빗물받이 신설, 차장 큐폴라에 대공기관총용 링 설치 등의 개수가 실시되었다.
8월 생산차부터는 주행중 고무 타이어가 벗겨지지 않도록 보기륜의 고무 타이어 고정 리벳수를 16개에서 24개로 증가시키는 한편 주포 방패의 조준구에 빗물받이를 신설했다. 그리고 주포발사 가스를 신속히 배출하도록 발사가스를 직접 벤틸레이터로 가도록 하는 파이프가 설치되었다.
9월부터는 A형의 생산이 시작되는데 이 시기부터 시작된 찌메리트 코팅은 거의 A형에만 적용되게 된다. 한편 이시기부터 트랙의 미끄럼 방지 무늬도 "入"자 모양으로 변경되었다.
Panther A형
D형의 생산개시후 얼마 안된 시기인 1943년 2월 18일, 포탑을 개발한 라인메탈사는 병기국 제 6과와의 회의를 가져 D형의 포탑 관계를 중심으로 한 개량계획을 논의했는데, 이 개량형이 9월부터 생산되는 Panther A형이다.
A형의 생산은 MAN 645대, 벤츠 675대, MNH 830대, 데마그 50대로 총 생산수는 2,200대에 달한다. 한편 헨쉘은 Tiger-I과 함께 Panther 회수형인 BergePanther를 생산하게 된다.
D형에서 A형으로 발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포탑이다. 우선 포탑내 좌측에 L4S 포탑 선회유압 장치를 신설, 레버 조작으로 고저 2종의 기어를 선택할수 있도록 하여 선회속도를 2가지로 변경시킬수 있었다. 이와함께 생산성 향상이 추구되어 포탑 측면과 전면 장갑판의 연결이 단순해지고 방패와 접하는 기부의 형태도 변경되었다.
한편 시계가 나빠 불평이 많았던 큐폴라는 주조제 신형으로 변경되어 둘레에 페리스코프가 7개 장비된 신형이 채용되었다. 이 큐폴라는 장갑 두께도 60mm에서 80mm로 강화되었다. 큐폴라 상부에 설치된 페리스코프 가드 위에는 대공기관총용 링이 용접되어 있다. 단 벤츠의 A형 초기 생산차량 50대는 큐폴라의 실루엣이 마치 기계로 깎아낸 것 같은 모양으로 중기 이후 생산차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이밖에 포탑의 개량은 11월 중순의 생산차부터 주포조준기가 쌍안식 TZF12에서 TZF12a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포방패의 조준구도 2개에서 1개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 놓은 재고가 있어 일부 차량은 바깥쪽 구멍을 용접하여 막아버린 것도 존재한다. 이보다 약간 앞선 11월 초순에 생산된 651호 차량부터는 포탑 바스켓의 지주가 강화되었다.
1943년 9월 부터는 독일군의 전 기갑차량에 자기흡착 대전차지뢰 방어용 찌메리트 코팅이 실시되어 Panther A형도 거의 예외없이 찌메리트 코팅이 적용되었다. 그리고 9월부터는 강화형 보기륜이 적용되었고 트랙에 미끄럼 방지기구도 도입되었다. 이 미끄럼 방지기구는 트랙 5매 내지 7매 마다 장착되며 이때에는 시속 15km 이상으로는 주행할수 없었다.
11월 생산차부터는 엔진을 조정하여 3,000rpm에서 2,500rpm으로 떨어뜨려 엔진의 부담을 줄여 본연의 성능이 나오게 되었다.
한편 견인차량의 부족으로 1943년 9월 생산차량부터 차체 후부에 견인구 장착용 패널이 설치되어 11월부터 12월에 생산된 일부 차량에 실제로 견인구가 장착되었다.
11월 중순이후는 종래의 4각형 기관총 사격부 대신 80mm 장갑용 볼마운트가 완성되어 MG34 기관총이 볼마운트에 장착되게 되었다. A형의 스타일이 완전히 완성된 것은 이시점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43년 12월 생산차부터는 포탑 3개소에 설치된 피스톨 포트가 폐지되고 포탑 상부에 근접방어무기(S마인 발사기)를 신설할 것이 결정되었지만 일단 장착용 구멍은 설치하고 그 구멍은 장갑 커버로 덮은체 생산이 속행되었다. 실제로 이 장비가 실용화 된 것은 1944년 3월에 이르러서 이므로 그 이전에 완성된 일부 차량은 추가로 근접방어무기를 장착했지만 대부분 장비하지 못한체 전투를 벌여야 했다.
12월에는 차체 상부와 측면장갑판의 용접부를 보다 강력한 방식인 인터록 방식으로 변경하려 했지만 아직 공장에서 이 기술을 익히지 못하여 종래의 용접방식으로 제작된 차량도 많았다.
1944년 1월 이후 생산차에서는 전투실용 히터가 채용되었다. 이것은 기관실 좌측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로부터 공기배출용 팬을 역으로 장착, 열기를 역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기관실과 전투실의 격벽 일부에 구멍을 뚫어 따뜻한 공기가 들어가도록 만든 것이었다. 물론 겨울 이외에는 팬을 본래 방향으로 돌려놓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팬을 역으로 장착함으로서 좌측 배기 파이프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 버린다는 문제점이 있어 좌측 배기관 좌우에 각기 흡기관을 신설하여 해결했다.
1944년 2월부터 생산된 차량은 우측 배기관 아래 있던 엔진 시동용 관성 시동장치로 이어지는 크랭크 봉을 삽입하는 구멍 아래에 서포트 가이드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리어 패널 중앙부에 설치된 점검 해치의 크랭크식 시동장치 커버의 좌우로 엔진 강제 시동장치를 장착하는 어태치먼트가 신설되었다. 이 엔진 강제 시동장치란 동기에 얼어붙은 엔진의 플라이 휠과 여기에 부수되는 치차등을 보통은 크랭크 봉을 이용하여 시동하던 것을 얼어붙어 회전이 불가능할 경우 이용하는 것으로서 소형 가솔린 엔진을 구동시켜 이 동력을 엔진으로 전달하는 간단한 기구이다. 이 시동장치의 변형으로 포르쉐사는 퀴벨바겐의 동력을 이용하는 강제시동기를 1944년에 개발했다. 이것은 퀴벨바겐의 엔진으로부터 동력을 전달하는 어댑터를 장착하고 여기에 Panther(다른 전차도 가능)의 시동기 장착용 어댑터에 조인트 소켓이 붙은 연장 구동축을 연결시켜 Panther에 장착된 가이드 브리지와 연결시키는 것으로 퀴벨바겐과 강제 시동기가 있으면 간단히 시동을 걸수 있었다.
이들의 신형장비를 채용한 결과 이제까지 리어 패널 중앙의 점검 해치의 외측에 장비되어 있던 잭이 양 배기관 사이에 세워진 형태로 장착되게 된다. 이와 함께 잭 자체도 20톤급으로 강화되었지만 이러한 변경은 단계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생산시기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1944년 4월 11일자 육군 병기국 제6과는 이제까지 차장용 큐폴라에 장비되고 있던 야간 표시기를 폐지하도록 지령을 시달했다. 이것은 적외선 투광기와 적외선 스코프를 조합한 야간 투시장비의 개발이 그 배경으로 MNH사의 보고서에 의하면 1944년 4월 3일 완성된 차체부터 야간 표시기가 폐지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Panther A형의 월생산수에 비추어 보면 약 500대 정도가 야간표시기를 장비하지 않은체 완성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A형에 적외선 야시장비가 갖추어진 적도 없다. A형에서 마지막으로 추가된 것은 필체라고 불리는 간이 크레인 장착구로 6월 생산차량부터 장비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포탑 상부의 3개소에 용접된 작은 돌기물로서 장착구의 중앙에 뚫린 나사구멍에 조립식 2톤 크레인의 지주를 접속하고 엔진 등을 자력으로 교환하기 위한 것이다.
생산시기면으로 본다면 이 필체를 장착한 차량은 약 100대 정도로 생각되지만 전선에서 수리를 위해 돌아온 차량에도 장착되었으므로 많은 A형에서 장비된 사례가 보이고 있다.
Panther G형
Panther G형은 A형에 이어 등장한 형식이지만 그 실체는 A형에 Panther II의 개발에서 얻은 노하우를 적용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장갑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 G형의 등장으로 Panther 시리즈는 완성에 이르렀다고 할수 있다.
G형의 생산은 1944년 3월부터 개시되어 1945년 4월 생산중지 될 때까지 MAN 1,143대, 벤츠 1,004대, MNH 806대로 총 2,953대가 생산되었다.
G형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D형과 A형의 경우 차체 측면 장갑판이 연료탱크 부분에서 2단으로 되어 있던 것이 단순한 1매판 형식으로 바뀌고 전방에서 후방으로 약간 넓어지는 직선이 되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측면장갑판의 각도는 40도에서 30도로 변경되고 두께도 40mm에서 50mm로 강화되었다. 이러한 장갑강화로 중량은 305kg 증가했으므로 차체 전면 하부의 장갑 두께는 60mm에서 50mm로 변경시켰다. 또한 차체 하면 앞부분의 장갑두께도 30mm에서 25mm로 변경하여 250kg을 경감시킬수 있었다. 한편 조종실에서 전방부분의 상면장갑판도 16mm에서 40mm로 증가되었지만 이 부부네 대한 중량증가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무튼 이러한 조치로 장갑방어력은 D형이나 A형에 비해 상당히 강화되었다.
또한 Panther II에서 적용된 전후폭을 감소시킨 기관실 에어 인테이크 덕트도 적용되었는데, 이것은 적의 화염병 공격으로부터의 최약부분 면적을 작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 조치로 라디에이터에 대한 공기흡입량은 줄어들었지만 라디에이터의 성능 개량으로 이 문제를 극복했다. 그리고 A형에서 채용된 추가 흡기관은 필요없게 되어 다시 이전의 단순한 형태로 변경되었다.
조종실 해치는 D형과 A형에서는 일단 위로 들어올렸다가 옆으로 슬라이드식으로 회전시켜 개방하는 방식이었지만 G형에서는 양옆에 힌지를 달아 위로 젖혀 여는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해치 자체의 형태도 타원형에서 4각형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은 종래의 해치가 전장에서의 파편 등에 의한 손상시 개방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과 함께 보다 빨리 탈출할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변경과 함께 내탄성 면에서 문제가 되었던 조종수용 전방 바이저가 폐지되고 신형 선회식 망원 페리스코프가 조종수석 상부에 설치되었다. 이것 또한 Panther II에 도입된 것이었다. 그 밖에 A형과 다른 점으로는 전조등의 위치 이동, 쉬르첸이 5매식으로 변경되고 거는 방법도 단순해졌으며, 잭 받침대 확대, 견인 와이어를 직경 32mm 길이 8.2m로 변경, 전투실내 탄환 래크 형태 변경, 탄환 탑재량 82발로 증가, 탄약고에 4mm 두께 슬라이드식 커버 도입 등이 있다. 이러한 변경 들은 G형의 생산초기에 모두 적용된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는 단계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당초 직선차체로 불리는 시제차량은 1944년 3월 2대가 완성되었고, 4월 생산이 시작되었다. 10월 26일자의 생산계획에는 당시 개발중이던 F형으로 생산이 전환되기까지 2,650대를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F형의 등장이 계속 늦어져 생산수는 예상보다 증가하게 되었다.
1944년 5월부터 생산된 차량은 배기관의 마운트 부분이 A형이 주조식에서 용접식으로 변경되어 모양도 둥근 모양에서 각진 모양으로 변경되었다. 이어서 6월에는 야간에 달아오른 배기관이 적에 눈에 띄지 않도록 배기관 파이프 부분에 덮개가 설치되었다.
7월 생산차량은 차장용 큐폴라의 페리스코프 고정구가 개량되고 조종실 상부 벤틸레이터 장갑 커버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병기 제 6과에서는 큐폴라에서 상부로 돌출시켜 사용하는 TSR1 페리스코프의 마운트를 폐지하도록 하고 조종수용 선회식 페리스코프 위에 빗물받이를 추가하도록 요구, 8월 생산차부터 적용되었다.
8월에는 조종수와 무선수 해치를 내부에서 볼트를 풀면 그대로 개방될수 있도록 변경하였고 주포 방패 윗부분에 장갑 커버가 신설되었다. 그리고 같은달 19일 부터는 공장에서 위장도색을 한 채로 출고하라는 지령이 내려져 여기에 적용된 위장도색이 이른바 "매복위장" 또는 "빛과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으로 보통의 3색 위장 위에 각기 다른 색으로 작은 반점을 찍어 넣은 위장이다. 이 위장은 바로 전선에서 널리 퍼지게 되어 공장에서 출고된 것보다 훨신 많은 독일 전차들이 이 위장을 도입하였다. 한편 위장도색이 적용되고 바로 뒤에 여러 가지 색에 의한 차내도색이 폐지되고 녹방지 처리만이 실시되었다.
1944년 9월 부터는 찌메리트 코팅이 폐지되고 녹이 슬지 않도록 발라주는 산화방지 도료를 브라운색의 대용으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포 조준기 외부에 빗물받이가 앞으로 더 연장되었다.
한편 9월부터 생산된 차량의 가장 큰 변경점은 적외선 야시장비의 도입이다. 이 야시장비는 1936년부터 개발에 착수 1943년에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지만 당시로서는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방치되었다가 노르망디 전선이후 야간작전의 중요성이 높아져 도입이 결정된 장비이다.
이러한 야간투시장비는 차장용 큐폴라와 주포 조준기를 각기 독립된 적외선 라이트와 스코프를 장비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리어 패널 위측의 잡물상자는 각형의 장갑상자로 변경되어 주간에 야시장비를 수납하도록 되었다. 그리고 전투실 좌우의 3발씩의 탄약고 대신 야시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는 GG400 발전기와 배터리가 신설되었다.
이 야시장비는 계획대로라면 9월에 50기, 10월에 70기, 11월에 80기, 12월에 100기가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이장비의 생산에 시간이 많이 걸려 차량 자체는 야시장비 장착 준비를 끝냈지만 결국 실제로 장비된 것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1월에는 이전의 사양으로 돌아왔고 최종적으로 야시장비를 장착한 Panthers는 113대로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 9월 생산차에는 Panther의 결점이라고 할수 있는 주포방패 하부에 적탄이 명중하는 경우 적탄이 아래 방향으로 바꾸어 조종실 상부 장갑을 관통해 버리는 현상을 없애기 위해 포방패 아래 부분을 각진 형태의 수직면으로 변경했다.
MAN에서는 생산차의 일부중 보기륜을 Tiger-I/II에 이용되는 금속제 보기륜으로 변경했지만 이 보기륜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철제 보기륜은 Panther II에 이용된 Tiger-I/II의 것과 같은 직경 800mm(기본 보기륜 직경은 860mm)의 것이 이용되었으나 서스펜션 암에 맞추기 위해 허브의 형태는 Tiger-I/II와 다르게 되었다. 또한 라디에이터의 배기 팬이 강화형으로 변경되고, 탄약고의 슬라이드식 장갑 커버도 폐지되었다.
Panther 각형별 도해
포탑의 형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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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의 형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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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전면 장갑의 형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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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 후부의 형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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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러 휠의 형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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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her F형
Panther F형은 Panther 시리즈의 최종형으로서 1943년 말에 개발이 시작되었다. 기본적인 개념은 장갑의 강화와 생산성 향상에 있었다. 이에 따라 라인메탈사는 우선 Panther II에 탑재하기 위해 설계되었던 포탑을 베이스로 개발을 진행하여 1944년 3월 1일 기본도면을 제출했다.
이 포탑이 이른바 "슈말트롬"이라 불리는 포탑으로서 "폭이 좁은 포탑"을 의미한다. 이 포탑은 이전의 포탑에 비해 전면면적이 아주 좁아지고 포방패도 주조제의 소형이 장비되었다. 그리고 포탑의 양쪽에는 스테레오식의 거리측정기가 장비되었다. 이 도면을 검토한 육군 병기 제6과는 이 신형 Panther에 대한 기본 성능요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포탑 중량을 늘리지 않고 장갑을 강화
- 내부 용적을 확보하면서 포탑 면적을 감소
- 지휘전차용 안테나 기부와 야시장치 장착구를 표준으로 장비
- 생산기간과 코스트 절감
- 무장은 75mm KwK42 또는 개량형 KwK44
- 동축기관총으로는 MG42 채용
- MP44 곡총신형을 2정 장비
이것은 발당형의 기본사양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Panther F형을 Panther의 정상적인 진화모델로 간주하고 있다.
라인메탈에서 작성한 도면과 병기 제6과에서 내놓은 요구는 다이믈러 벤츠사로 보내져 동사는 바로 설계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시점에서부터 일어났다.
유명한 서적인 "Panther와 그 계열차량"에 따르면 1944년말 벤츠사가 개발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1944년 8월 20일에 촬영된 G형에 슈말 트룸을 적재한 시제차량이 존재하므로 1944년 말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설사 이 사진이 G형 차체에 슈말 트룸을 그려넣은 합성 사진이라고 해도 그 기본형은 완성되어 있는 것이므로 적어도 1944년 5월 전후에 설계작업이 시작된 것은 분명한 듯 하다.
Panther F형의 슈말 트룸은 결과적으로 제6과가 요구한 것보다 더 스마트한 외관을 가지게 되었다. 장갑두께는 전면 120mm(G형 100mm, 이하 동일), 측면 60mm(45mm), 상면 40mm(16mm), 후부 60mm(45mm)로 크게 강화되었지만 포탑 전면의 장갑이 소형화되고 포탑 상부의 면적도 감소되고 있다. 또한 대형 포방패 대신 돼지코형이라 불리는 소형 주조제 포방패가 채용되어 포탑 중량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차장용 큐폴라는 키가 낮은 신형으로 교체되었고, 상부에는 7기의 페리스코프와 커버, 그리고 대공기관총가와 쌍안식 망원경 등이 장비되는 마운트가 설치되었다. 이 때문에 대공기관총용 레일은 폐지되었다.
무장은 체코의 스코다와 협력하여 개발한 KwK42의 개량형인 KwK44/1이 장비되었다. 포가가 새로 설계되고 생산공정을 간략화 하기 위해 용접부분을 많이 생략되어 이 또한 중량경감에 기여했다. 압축공기를 이용하는 포신내의 가스 배출장치는 새로 장착된 리코일 실린더와 일체화 되었다.
Panther F형의 시제 1호차의 포구에는 머즐 브레이크가 장착되었지만, 2호차 부터는 폐지되었다. 이것은 주퇴기가 강화되어 후좌력이 12t에서 18t으로 늘어난 때문으로 양산차에서도 머즐 브레이크는 채용되지 않았다.
주포에는 당시 새로 개발된 단안식 신형 TZF 13 조준기가 장착되었다. 이 조준기는 종래의 단안식 조준기 TZF 12를 갱신하기 위해 4,802기가 발주되었다. 하지만 이 조준기의 개발에는 예상외의 시간이 걸려 1944년 10월과 이듬해 1월에 각각 1기만이 완성되었다. 이 때문에 이전부터 개발중이던 자이로식 안정장치를 갖춘 차세대 조준기 SZF 1이 급거 장비되었다. 이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시제차량의 포탑 상부에는 모두 장갑 커버가 달린 TZF 13용 개구부가 모두 있는 것이 특징이다.
SZF 1은 시험용으로서 1944년 중반 우선 10기가 발주되었고 45년 1월에는 1,000기가 발주되었지만 1944년 9월부터 12월 동안 완성된 것은 불과 5기이고, 45년 1월부터 2월 동안 개량형 SZF 1b가 4기 납입되었다.
한편 포탑 양면에 장비된 스테레오식 거리 측정기는 Panther F형에서 처음으로 장비되는 것이었다. 기선장은 1.32m, 15배라는 높은 확대율과 4도의 시야를 가지며 당초 차장과 포수 모두 조작할 수 있도록 요구되었지만, 결국 포수만이 조작하도록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개발이 완료된 것이 1945년 4월로서 패전까지 1기가 완성되었을 뿐이다. 예정상으로는 7월부터 양산이 시작되도록 되어 있었고 주포 발사시의 충격이나 포탑 선회에 따른 측정 왜곡이 생길 염려가 있었지만, 스프링식 베어링을 채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대전후 미육군의 M47 전차가 장비한 스테레오식 거리측정기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던 점을 생각하면 독일군도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포탑의 선회는 변속기로부터 얻은 동력을 유압 모터에 전달하는 종래와 같은 방식이지만 이제까지의 페달식 대신 포수가 스위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포탑의 전주선회에는 30초가 소요되었다. 한편 보조 동력장치로서 포수의 앞쪽에 수동식 선회핸들이 있으며, 이 경우 전주회전에는 약 4분이 소요되었다.
이 F형에도 지휘차 사양이 존재하는데, 차장용 큐폴라 우측에 지휘용 안테나 마스트가 설치되어 있다. 시제차량에는 이 부분을 3각형의 철판으로 덮어두고 있다. 이러한 덮개는 2종이 존재하며, 그렇다면 이 포탑은 적어도 3기가 완성되었을 것으로 생각할수 있다. 즉 제1호 포탑에서는 우측 상부의 탄약수용 페리스코프가 있지만 2호 포탑에서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포탑 후부에는 F형에 이르러 피스톨 포트도 부활했다.
차체는 그때까지의 G형 차체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전훈을 반영하여 일부 개량이 실시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조종실 전방 상부만 장갑 두께가 40mm였던 것을 포탑링 부분까지 40mm로 강화한 것이다. 그리고 후방도 16mm에서 25mm로 강화되어 용접 라인의 위치가 G형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해치는 양쪽으로 여는 슬라이드식으로 변경되어 해치 옆부분에 가이드가 신설되었다. 이 때문에 차체 측면과 전면의 장갑판을 용접하는 부분의 절단선이 약간 변경되었다.
보기륜은 양산차의 경우 스틸제가 사용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45년 2월 20일 병기국에서 나온 하달에 모든 생산차량에 금속제 보기륜을 장착한다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F형을 생산하기로 되어 있던 벤츠사의 제40 공장에서 금속제 보기륜의 재고는 없었다는 점이 전후에 확인되었고 고무 타이어가 붙은 것 밖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초기 생산차는 고무 타이어가 붙은 종래형이 장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F형의 생산은 1945년 1월 30일자로 세워진 계획에서는 3월부터 벤츠사에서, 4월부터는 MAM, 크룹, 니벨룽엔베르케, 5월부터는 MNH가 생산을 개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실제로는 벤처의 제 40공장에서 생산중이던 몇대의 F형이 발견되었을 뿐으로 F형으로서 완전히 완성된 차량은 없었다.
Panther II형
D형의 생산에 들어가지 전부터 히틀러는 벌써 Panther의 장갑강화형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히틀러의 1류급에 속하는 병기 판단력에 기인한 것으로 장래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합군의 강력한 전차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면장갑 80mm로는 불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선 D형의 생산이 시작된 1942년 12월 27일자로 30-50mm 증가장갑을 장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III호 전차나 IV호 전차처럼 전면장갑판의 면적이 좁은 전차와는 달리 Panther는 전면장갑의 면적이 넓어 증가장갑을 장착하는 경우 중량과다의 문제가 발생하여 이 안은 폐지되었다.
여기에 이어서 각부의 장갑을 강화한 발달형이 계획되었다. 이것이 바로 Panther II로 1943년 1월 벌어진 회의에서 히틀러는 Panther의 전면장갑을 100mm, 측면장갑 60mm로 강화한 신형 Panther의 개발을 지시, MAN이 개발에 착수했다.
2월에 열린 회의에서는 MAN의 개발담당자인 베르케 박사가 Panther는 양산형이 아직 실전에 투입되지 않았으므로 장갑이 불충분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을 내릴수 없다하여 이것을 단순한 장갑강화형으로 하기 보다는 당시 개발이 진행중이던 Tiger3(향후의 Tiger2)와 부품의 공통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 이것이 받아들여져 Panther 2로 명명된 신형전차의 개발이 진행되게 되었다.
이 안에서는 엔진과 변속기, 철제 보기륜 등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트랙의 폭은 660mm로 Tiger3의 철도 수송용 트랙과 같은 것을 사용하도록 했다. 포탑은 독자적인 설계의 신형이 장비되게 되었으며, 4월에는 명칭이 Panther II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 Panther II의 포탑은 개발이 진행되기는 했어도 결국 완성되지는 못했다.
계획상으로는 1943년 9월부터 D형 대신 생산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모든 공장에서 D형의 발주 수량을 대기도 벅차 생산개시는 빨라야 1944년 말이 될 것이라는 보고가 행해졌다.
하지만 병기국 6과는 계속 Panther II의 생산을 요구, MAN에 대해 4월 5일자로 8월 중순가지 시제 1호차를 만들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MAN은 5월 4일자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Panther II의 차체는 Panther와 공통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Panther II의 개발과정에서 얻은 성과를 Panther의 장갑강화와 생산성 향상에 투입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피력하고, 이것이 뒤에 Panther G로 발전하게 된다. 반면 이런 경위를 통해 Panther II는 흐지부지되어 이 시점에서는 사실상 개발계획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것은 MAN이 제안한 개량형(G형)이 육군 병기국 6과를 만족시켰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 때문에 굳이 이미 존재하는 생산라인을 Panther II용으로 변경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던 것이다. 이후 Panther II는 회의에서 주제가 되는 경우가 없었고, 결국 Panther II는 G형으로 구현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전쟁후 미육군에서 발견되어 패튼 전차박물관에 보내진 Panther II의 시제차량은 "Encyclopedia of German Tanks of WWII"에 의하면 1944년 2대의 시제차량이 발주되어 1945년 완성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고, 이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1943년 4월에 제작요구가 있었고 적어도 1대의 Panther II 시제차량이 포탑을 장비하지 않은체 완성되어 사내에서 각종 시험 등에 사용되다 방치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완성된 그 차체는 장갑 두께를 제외하고는 G형과 아주 유사하며 1945년의 G형 생산차에 도입된 개량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포탑은 1945년 3월 이후 생산된 Panther G형의 것이 탑재되고 있는데, 이것은 독일군이 항복한 뒤 MAN 공장을 점령한 미군의 지시로 본국에 보낼 때 남아 있는 포탑을 적재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픽션등에서 71구경 88mm포를 장비한 Panther II가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정설에 의한 Panther II형이라기 보다 Panther II의 이름을 빌린 것 뿐이고 실제로는 88mm 포 장비형 Panther F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Panther II는 1944년말의 시점에서는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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