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 인생 시다운 시
김영찬
누구나 비 오는 날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릴 수 있지
우산한테는 미안한 일
하지만
종점에 닿거들랑
누구한테든
낯가리지 말고 지붕이 되어주거라!
그것은 내 인생
필생의 시다운 시
리부리 무티libri muti
말 없는 책
거기에
말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서 낙서로만 남게 될지라도
내 인생 참다운 시
나는 가끔
새 구두를 사 신고
꽃길이 아닌 비포장도로로 나서지
걷다가 흔하디흔한 개여뀌 꽃대 앞에 멈추어 서서
발뒤꿈치 들고
머리 위로 흩어져 사라지는 구름을 향해 손짓도 하지
그것은 별로
시인답지 않은 클리셰가 아니냐고
친구들은 말하지
하지만 그것은 잎자루가 짧은 여뀌꽃을 위한
최소한의 관심과 애착
푸른 도넛 속을 관통하는 바람의 길을 내주는 일이지
내가 쓴 시는 아무것도 아닌 헛기침의 가치
잠꼬대에 의미를 붙이는 일이지
어떻게 이 엉뚱한 편견을
무마할 것인가
그것은 악몽을 길몽으로 바꿔주는 퇴마사의 역할보다
쉬울 수는 없지만
악운을 피해 행운으로 건너뛰려고
in vain,
도로徒勞에 시달리며
일생을 낭비하는 악취미라 할지라도 하는 수 없지
그렇잖은가
악몽을 통과하는 방편으로 불가피한 수사법
최적의 문장을 찾느라
밤잠을 설치지
이면지를 구겨 코를 풀고
잉크와 시간을 낭비하더라도 행복에 겨운 일
인생을 즐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생의 절반을 허비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쁨을 찾아 일단 쓰고 보자고
나는 다짐하지
내 시를 읽고 흔한 겉치례로 밥 한번 먹자고 건성으로
말하는 이도 있지
그것이 실제가 되어 때로는
술 한 잔 쏠테니 어서 나오라는 사람을 위해
나는 또 쓰지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쎄라비, 쎄시봉~ 시봉시봉 c'est la vie
c’est si bon si bon
내 인생의 도린곁에 피어나는
꽃 한 송이
a poem in my life
필생의 시
운이 좋은 날은 운율 좋은 시를 한 편 건질 수도 있지
대박 날 수도 있는 일
내 인생의 희가극, 오페라 부파opera buffa와 같은
시의 전도여
쎄라비 쎄시봉 시봉시봉
그것은 내 인생
언제든 우연과 어깨 부딪쳐 시가 된다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의 시
‘내가 가닿을 수 있는 곳까지가 (바로) 너다.’*
*최형심의 시, 「여름에 딸린 방」중에서. 단 (바로)는 제외
계간 『시와세계』 2024년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