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수, 러시아주재공사, 영국주재공사를 역임한 후 J.먼로가 대통령인 때는 국무장관이 되어 ‘먼로 선언’의 기초를 맡았다. 1824년 선거에서 제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의회 내에서의 정당 간의 불협화음으로 그의 대담한 국내개발계획 등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1828년 선거에서는 A.잭슨에게 패하였고, 1831년 하원의원으로서 정계에 복귀하여 사망할 때까지 17년간을 하원의원으로 활약하며 노예제 및 멕시코전쟁을 반대하였다.
냉철한 성격 때문에 일반인에게 큰 인기는 얻지 못하였으나 높은 지성과 교양은 크게 평가되었으며, 자연과학분야에서도 스미스소니언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설립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대 토머스 제퍼슨:1743년 4월 13일(양자리)
독립선언서 작성
대통령 시절 제퍼슨의 가장 큰 업적은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이었다. 동쪽으로는 미시시피 강에서 서쪽으로는 로키산맥에 달하는 루이지애나(현재의 ‘루이지애나 주’는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대략 오늘날 미국의 중부 지역에 해당되며, 100년 넘도록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번갈아 가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본국과 멀리 떨어진 아메리카 식민지를 경영할 능력이 없었던 반면, 미국인은 이미 상당수가 국경 너머인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프랑스와 에스파냐 모두를 장악한 나폴레옹이 아이티의 흑인 혁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재정 압박을 느끼자, 이를 눈치 챈 제퍼슨은 신속하게 협상을 벌여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의 가격에 사들였다.루이지애나 매입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미국의 광활한 영토가 수립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이었다. 212만 제곱킬로미터의 그 넓은 땅을 매입함으로써 미국의 영토는 삽시간에 두 배로 늘어서 현 영토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혀
제퍼슨은 미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워싱턴이나 링컨이 미국 민주주의의 실천가였다고 한다면, 제퍼슨은 그 이론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제퍼슨이 천명한 미국 민주주의의 대의는 바로 독립선언서에 담겨 있다.
4대제임스 매디슨:1751.3.16 (물고기자리)
정치학자. 헌법제정회의에서 헌법초안 기초를 맡아 ‘미국헌법의 아버지’로 불린다. T.제퍼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낸 후 대통령이 되어 제퍼슨의 중립정책을 계승하였다
1776년 버지니아 식민의회 의원, 1784~1786년 버지니아주의회 의원, 1787~1788년 대륙회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1787년 헌법제정회의에는 버지니아 대표로 출석, 주로 헌법초안 기초를 맡아 ‘미국헌법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 후 1789~1797년 연방 하원의원, 1798년 연방파가 제정한 외인법 및 치안법에 반대, 버지니아 결의를 기초하여 주권론(州權論)을 주장하였다. 1801년 T.제퍼슨 행정부의 국무장관이 되고 1808년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제퍼슨의 중립정책을 계승하였으나 마침내 1812년 미국-영국전쟁에 말려 들었다. 정치학자로서는 영국의 정치철학에 조예가 깊고 헌법옹호론으로 집필한 《The Federalist Papers》는 미국 정치학의 고전이 되었다.
5대 제임스먼로:1758.4.28 (황소자리)
미국의 정치가로 버지니아 주지사, 국무장관 등을 거쳐 두 차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미주리협정을 맺었고 캐나다와의 국경을 확정하였으며 외교의 기본정책으로 먼로주의를 선포하여 유럽 제국의 신대륙에 대한 간섭을 저지하였다.
윌리엄앤드메리대학교 재학 중 미국독립혁명전쟁에 참전하였고,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 연합의회 의원, 상원의원, 프랑스 주재 공사, 버지니아 주지사를 거쳐서, 1803년 루이지애나 구입 교섭을 위해 프랑스에 특파, 이어 런던에 건너가 대통령 T.제퍼슨의 중립정책유지를 위해 노력하였다. 1811년 다시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후, J.매디슨 행정부 국무장관이 된 후 1816년과 1820년 두 차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재임시 내정면에서는 지역 간의 화해에 노력하였고, 외교면에서는 에스파냐로부터 플로리다를 매수하여 미주리협정을 맺었고, 캐나다와의 국경 확정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1823년 먼로주의를 선포하여 미국 외교의 기본정책으로 삼음으로써 유럽 제국의 신대륙에 대한 간섭을 저지하였다. 임기 만료 후 1826년 버지니아대학교 이사장으로 추대되었고, 1829년 주헌법개정회의에 참여하였다.
6대존 퀀시 애덤스1735.10.30 (전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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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11.24 21:48
첫댓글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사자별로없어서 살짝실망중이였는데
오바마대통령이 사자라 급방긋 ㅋㅋ
^^ 그분 사자답죠?
물고기 자리도 있네요 ㅋㅋ 우리나라 왕들의 별자리 중에서 물고기 자리는 거의 없었는데
그러네요 미국은 물고기자리도 꽤 보이네요
은근 천칭자리가 재법 보이네요. 신기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