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이 되십니까? (시 42:1-11)
태풍에 3시간 동안 껴안고 버틴 80대 부부 119대원이 극적 구조
태풍 '미탁'이 강타한 지난 3일 새벽, 턱밑까지 물이 차오른 침수 주택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노부부가 건강하게 퇴원해 소방대원들의 구조활동에 보람을 더하고 있다.
7일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3일 새벽 3시 6분께 삼척시 원덕읍 마을 일대가 집중호우로 침수돼 주민들이 대피하던 중 "이웃 중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와 연락이 되지 않고, 피신 여부를 알 수 없다"는 119 신고를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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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소방, 3일 새벽 침수주택서 노부부 구해..건강히 퇴원
폭우에 고립된 주민 구조 (삼척=연합뉴스) 3일 새벽 제18호 태풍 '미탁'으로 4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강원 삼척시 원덕읍 갈남리 한 주택에서 소방대원이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2019.10.3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conanys@yna.co.kr
(삼척=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태풍 '미탁'이 강타한 지난 3일 새벽, 턱밑까지 물이 차오른 침수 주택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노부부가 건강하게 퇴원해 소방대원들의 구조활동에 보람을 더하고 있다.
7일 강원도소방본부에 따르면 3일 새벽 3시 6분께 삼척시 원덕읍 마을 일대가 집중호우로 침수돼 주민들이 대피하던 중 "이웃 중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와 연락이 되지 않고, 피신 여부를 알 수 없다"는 119 신고를 접수했다.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노부부 주택은 산에서 내려오는 토사와 빗물로 지붕 아래까지 잠겨 있었고, 물살마저 강해 접근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에 삼척소방서 김흥묵 소방위와 정선희 소방장, 남동림 소방교는 지붕을 타고 올라가 집 주변을 찾던 중 집 뒤편에서 송모(88)씨와 아내 주모(87)씨를 발견했다.
송씨 부부는 물이 가슴까지 잠긴 상황에서 집 밖 벽면에 붙어 벌벌 떨며 서로 껴안고 있었고, 아내 주씨는 한손으로 밧줄을 잡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대원들은 송씨 부부를 업어 지붕 위로 안전하게 구조, 다른 대원들 도움으로 지휘차로 옮긴 뒤 동막 IC로 이동해 구급차에 송씨 부부를 인계했다.
폭우에 고립된 주민 구조 (삼척=연합뉴스) 3일 새벽 제18호 태풍 '미탁'으로 4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강원 삼척시 원덕읍 갈남리 한 주택에서 소방대원이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2019.10.3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conanys@yna.co.kr
3시간 동안 비를 맞았다는 송씨 부부는 체온 측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있었으나 다행히 혈압이나 맥박 등은 양호했다.
구급대는 차량 난방기와 모포로 송씨 부부의 보온조치를 하며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 도착 전까지 송씨는 34.3도로 체온이 떨어져 있었고, 주씨는 체온이 측정되지 않았다.
송씨 부부는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다음 날 퇴원해 현재 횡성에 사는 아들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위 김모씨는 "당시 불어난 물로 장인·장모 집에 접근할 수가 없어 걱정이 컸는데 119에서 구조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김흥묵 삼척소방서 119구조대 팀장은 "건강하게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잠시 먹먹해졌다"며 "안전하게 구조하게 돼서 구조대원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앙인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앙인의 삶을 무력과 시키는 것 그것은 낙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을 희망을 잃어버리게 하여 급속히 교회로 전염되게 하면 교회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입니다.낙심은 그리스도인을 무섭게 파괴하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파괴시키는 사단의 무기입니다. 낙심은 마음의 병균입니다. 낙심은 마음의 바이러스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전염되면 그것은 가정으로 이웃으로 퍼저 신앙 공동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말 큰 사전에 보면 낙심(落-떠어질 락 心-마음심)이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풀어짐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낙망(落-떨어질 락 望-바랄 망)이란 희망을 잃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낙망은 솨하흐입니다.
이 뜻은 "풀이 죽게 하다. 구부리다. 누이다"라는 말입니다. 병균에 감염되면 사람이 몸이 풀이 죽고 누어 꼼짝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낙심에 마음이 감염되면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도 만나기 싫습니다. 일하기도 싫습니다. 교회에 나오기도 싫습니다. 후회의 아픔에 사로잡힙니다.Ⅰ. 우리가 왜 낙심합니까?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는 결과 때문에 낙심합니다.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기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낙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낙심합니다.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낙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당할 때 낙심합니다. 꿈이 좌절된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 앞에서 낙심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결과가 드러나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됩니다. 기도 응답이 더디 올 때 낙심합니다. 낙심하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근거해 보면 3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을 수 있습니다.1.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안될 때 낙심합니다(2).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낙망하고 있습니다(5,6,11).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서 떨어져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갈 수 없습니다. 이 기자가 다윗이라면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 나와 올라 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포로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 내야 갈 수 없고, 노력해도 되지 않고, 이루어 낼 내야 이룰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면 실망합니다.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성적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그런데 이제 수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바라는 바 점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업하는 분들이 연초에 계획을 세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원하는 바 반절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사람은 낙심하는 것입니다.2. 일이 안된 이유를 모를 때 낙심합니다(2,9)시편 기자는 어느 때 예루살렘에 올라갈까 모르는 상황에서 애타게 절규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잊었는지, 어찌하여 원수들이 핍박하는지를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알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그 이일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을 알게 되면 실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그 원인을 처방하여 다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원인도 없는데 일이 안되면 더욱 실망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사랑을 베풀었는데 억울함을 당합니다. 그러면 낙심합니다.3. 일의 결과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때 낙심합니다(3,10).사람들이 이 시편 기자가 다윗이라면 "너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더니 결과는 무엇이냐, 결국 아들에게 쫓겨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더니 겨우 그 결과가 포로냐?"라는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겠냐는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 학교, 직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Ⅱ.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1.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나의 한계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1,2,6,8)시편 42편에는 인칭 대명사가 51개가 등장합니다. 시인은 계속적으로 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를 강조하면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무능력한 나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낙심합니다. 성전에 오르고 싶으나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1)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였습니다.(1). 2)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2). 우리는 초점을 연약한 나에게 맞추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무능력합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일이 안될 때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관점은 무능한 나에서 돌려 하나님을 향할 때 우리는 낙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에 들어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돌아가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무능력을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도에서 열심히 선교사역을 한 스텐리 존스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전도 하였지만 완악한 인도 사람들은 회개 하지 않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스텐리 존스는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사기도 떨어져 사과나무 밑에 쓰러져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 나무 사이에서 존스 피곤하지 지쳤지? 예 하나님 지쳤습니다. 왜 지쳤느냐?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저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저들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는데 선교사처럼 열매가 없어 낙심하며 피곤에 지쳐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열심히 공부는 하였지만 성적은 여전히 부진합니다. 올해 전도 열심히할려고 했는데 결실이 없습니다. 하나님 위해 돈 좀 많이 벌어 보려고 했는데 성과가 없습니다. 아버지로, 어머니로, 자식으로, 부모로 한 번 잘 해보려고 했는데 결과가 없습니다.
혹 낙심된 성도님 안계십니까? 처음 시작할 때 굉장한 의욕과 열심을 가지고 시작했던 그 일로 부터 손을 떼고 후회하며 좌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하나님은 낙심한 스텐리 존즈 선교사에게 말했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 같으나 뿌리가 땅에 묻혀있고 잎이 태양을 향해 펼쳐 있고 채널이 나를 향해 맞춰져 있을 땐 언젠가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낙심하지 말아라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이다"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7)"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열매 맺게 해 주십니다. 내 능력은 부족하지만 우리 하나님이 맺히게 해주십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의 씨를 뿌리십시오.누가복음 18장 7절, 8절을 보십시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2. 이유를 몰라 낙심하지 말고 약속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6).오늘 본문을 보면 "어찌하여(5.9.11)"라는 질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이 잘 안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문제가 풀립니까? 이유를 안다고 모든 문제의 답이 있습니까? 인간 사회에는 이유를 안다할 지라도 풀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연 "왜 이런 일이 내게 임했을까? ..왜 하필이면 나라는 말인가?..."라고 질문하면 낙심합니다. 그러나 이 낙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아는 것보다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유를 모두 다 알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밥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밥을 먹습니까? 자동차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자동차 탑니까? 어떤 사람은 신앙도 다 이해하고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다 이해하고 믿겠습니까? 믿으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이란 설명보다는 약속에 의지하는 삶입니다.
아이가 골절이 되어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었습니다. 의사는 부러진 뼈를 맞추고 기부스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가 X-Ray 사진을 가지고 환자에게 뼈의 성분, 골절의 이유, 수술시 약품투여 방법, 그 약품의 효능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한다면 그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차라리 앞으로 2주 후면 낮게 됩니다. 라고 그 사람에게 말한다면 더 용기를 주고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의뢰하고 살아갑니다.6절에 보면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를 기억하였다고 했는데 이 시편 기자가 다윗일 경우는 지금은 비록 쫓기는 신세이지만 그의 왕국이 영원하리라는 삼하 7:12-16의 약속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환경이 낙심할 만한 상황이지만 약속을 믿고 희망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유는 몰라도 약속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희망이 있습니다.아브라함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약속 붙들고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지형과 앞으로 무엇이 전개될 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약속해 주었을 뿐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약속을 붙들고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약속 붙들고 나가십시오. 이해되는 것보다는 약속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미국의 전 대통령 트루먼은 퇴임 후에 고향 미주리 주 인디펜더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트루먼이 기념 도서관에 갔을 때 어린 학생들이 지도 선생님과 함께 그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그 중 한 아이가 물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제 나이였을 때 인기 있는 반장이셨지요?”
“정반대란다. 눈이 나빠 안경이 없을 때는 맹인과 같았고 재주도 없고 운동에도 소질이 없었으며 누가 큰소리만 쳐도 바들바들 떠는 겁쟁이였단다.”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성경 말씀을 믿었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이야.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든 중단 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단다. 하나님께서 내 등 뒤에 서 계시니까 말이다”라면서 자기의 등을 보여 주었습니다.
트루먼은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기 확신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서 함께하십니다. 자신 있게 세상을 사십시오.
세 번째는 여전히 찬송하는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불안이 언습 해 오고 낙심 된 일을 만나고 절망하고 낙망할 때 우리는 불평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전히 찬송한다. 여전히 찬송한다는 것은 계속 적으로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찬송만 하는 것입니다. 환경을 초월해서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매를 맞았습니다. 살이 찢기고 상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손발은 차꼬에 채워져 있습니다. 그때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환경은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 매를 맞아서 살이 찢겨져 있는 그런 상황, 차꼬에 채워져 있는 그런 상황이지만 오히려, 여전히 하나님께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송한 것입니다. 기적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운데 능력이 나타납니다. 찬송 가운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송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불안이 찾아오고 근심이 찾아오고 염려가 찾아올 때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아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편기자는 이런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낙심, 불안, 근심이 찾아왔을 때,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여호와께, 그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예레미야 3장 3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도는 하나님 자녀들의 특권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종양이 3cm, 5cm 세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의사가 수술하라고 해서 입원을 했는데 주위에 많은 분들에게 기도요청을 하고 자신도 계속 찬송하면서 기도하는데 열이 올라간 거예요. 열이 40도까지 올라간 거예요. 열이 내려가야만 수술할 수 있는데 그게 9일 동안이나 지속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9일 만에 열이 내려서 수술하려고 다시 검사를 했는데 그 열 때문에 종양이 녹아져 없어져버린 거예요. 그래가지고 세 개가 하나도 없이 다 녹아져가지고 수술을 하지 않고 암이 치료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기도의 능력입니다. 찬송의 능력입니다.
나는 몇 번이고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 이외에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의 지혜로 그러한 사태에 대처하는데 불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링컨) 기도의 능력은 일면으로는 해독제요 일면은 방독제이다. (이엠 바운즈) 기도는 우리가 믿음으로 발견한 주님의 복음에 들어있는 보물을 파내는 것이다 (칼빈)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으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 (스펼젼) 마른 눈 가지고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스펼젼) 기도의 실패자는 생활의 실패자이다. (이 엠 바르너) 기도란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는 손이다. 늙어갈 수록 기도를 더 많이 하라. 그러해야 신령한 일에 냉냉해지지 않는다. (죠지 뮬러)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로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 사탄이 교인들에게서 이 무기를 빼앗거나 그것의 사용을 제지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엔드류 머레이) 기도은 영혼의 피이다 (죠지 허비트) 기도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거울이다. 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이다. (그레이암)
3.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의 평가보다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평가를 기대해야 합니다.(4).사람들이 조롱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과거에는 왕으로 과거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도망자가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로 과거에는 성전에 많은 사람을 인도하였는데 지금은 갈 수도 없는 처지라고 스스로 낙심하는 것입니다.사람들은 이것을 못 견딥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평가자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미래를 바라보며 기대를 가지고 우리에게 살기를 원하십니다.사람들은 과거를 평가하기 좋아하고 그것으로 우리를 낙심시키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평가를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평가란 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에게 왜 이런 어려운 상황, 실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를 주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도 되게 하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도 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사정이 나빠졌을 따름입니다. 어려움 당할 때 좋았던 왕년에 집착하면 낙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아직 인생 끝난 것 아닙니다.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숙제 하다 말고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직 인생의 막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인생 살다보면 낙심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인생 다 산사람처럼 그렇게 지금이 전부라고 평가하지 마십시오. 모든 과거는 디딤돌로 사용되어야지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30년 준비하여 3년 일하였습니다. 모세도 80년의 준비기간이 있었습니다. 지금 잘 되는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신앙의 선배들은 낙심되는 상황에 있었지만 낙심하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17살에 꿈을 꾸며 성경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설레임과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찾아온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죽음의 고비, 인신매매, 노예였습니다. 얼마나 낙심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요셉의 인생의 끝인가요?모세를 보십시오. 40세에 조국을 위하여 큰 꿈을 가지고 출발하였습니다. 민족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던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40년간이나 말입니다. 장구한 세월을 광야에서 고독하게 보내어야 했습니다.다윗은 어떻습니까? 그는 10대에 일국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30세에 왕이 되기까지 청소년기 청년기를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바울은 어떻습니까? 위대하고 극적인 부름을 받았지만 3 년 동안 아라비아에 들어가 침묵의 기간을 보내야 했습니다.생각해 보십시오. 이분들이 겪은 것이 오늘 우리가 겪는 것보다 덜 힘든 것일까요?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들의 인생을 그것으로 마치게 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훈련시켜 하나님의 쓰실 만한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영국의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학교 다닐 때에 낙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도 무수히 많이 실패하였습니다. 링컨도 사업에 실패하고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패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대 그 실패의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미래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생의 과정을 보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니까 제자들은실패한 줄 알고 낙담하고 다 제 갈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부활하심으로 그들을 다 회복시켰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사람들처럼 낙담하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실패도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일 뿐입니다.
우상장사의 아들 아브라함, 부인을 누이라고 속인 실패의 사람 아브라함, 목동 다윗, 여러 번 실패한 어부 베드로,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 바울, 기생의 아들 입다, 바람둥이 삼손, 겁쟁이 기드온, 농사꾼 아모스, 소모는 엘리사... 하나님은 이들 모두에게 낙심할 만한 상황에서도 사명을 주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역경과 시련이 있죠. 괜찮은 삶처럼 보이기에 약함이 없는 줄 알았는데 주저 앉을 때가 있더군요. “고질병”에 점하나 찍으면 “고칠병”이 되구요 “내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를 힘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