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최저임금 9860원 결정되자 일부 언론 “도쿄보다 높다”
전문가 “일본과 비교 부적절, 물가 상승 있던 한국과 달라”
일본, 장기 저성장에 저임금 기조 ‘30년간 평균임금 제자리’
“최저임금 과도하다는 일부 의견, 전체적으로 언론이 과도 인용”
2024년도 한국 최저임금이 결정되자 '일본 최저임금보다 앞섰다'는 제목의 기사들이 나왔다. 물가 상승 전망치보다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에 노동계와 경영계 평가가 엇갈리지만 한국 최저임금이 과하게 높다는 인식을 주게끔 보도됐다. 이런 식의 나라 간 단순 비교가 부적절할 뿐더러 장기 저성장으로 저임금이 유지되고 있는 일본 경제 상황의 맥락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최근 최저임금을 연속 크게 올리며 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 진작을 꾀하고 있다.
▲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한 시민이 이날 오전 결정된 최저임금에 관한 의견을 묻는 스티커 설문에 참여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9일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했다. 올해 9620원보다 240원(2.5%) 오른 것으로 역대 두 번째 낮은 인상률이다. 올해 물가 상승 전망치인 3.5%(한국은행)보다 낮은 인상률에 노동계는 실질 임금 감소를 주장했다.
이후 최저임금 9860원이 오히려 '일본 도쿄보다 높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뉴스1은 지난 21일 <한국 내년 최저임금 일본 도쿄 앞섰다…OECD에선 10위권대 중반> 기사에서 "한국의 최저임금 예정치 9860원을 엔화로 환산하면 1086엔으로, 현재 도쿄의 시간당 최저임금인 1072엔보다도 더 높다"며 "가장 물가와 임금이 비싼 도쿄를 비교했는데 한국보다 낮으니 다른 지역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 했다.
▲ 2024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이후 최저임금 9860원이 오히려 '일본 도쿄보다 높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네이버 갈무리
▲ 지난 20일 한국경제 1면 기사.
한국경제도 지난 20일 1면에 <내년 최저임금 9860원, 도쿄보다 높다> 기사를 내고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지방 편의점주가 아르바이트생을 쓸 때 일본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도쿄보다 돈을 더 줘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며 "물가가 오른 만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해당 보도들엔 중요한 맥락이 빠져 있다. 일본의 국가적 특징에 대한 설명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릴 만큼 장기 디플레이션(장기 물가하락)이 심각했던 나라다. 당연히 저임금 기조도 유지됐다. 아사히신문은 2021년에 일본의 평균임금이 30년간 거의 제자리인 것을 지적하며 "'아베노믹스'도 흐름을 거의 바꾸지 못하고 '잃어버린 30년'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신문 또한 지난 12일 일본 최저임금 증가율은 명목과 실질 모두 OECD 평균치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 2021년 10월 19일(현지시간) 아사히보도 갈무리. 위 그래프가 1990~2020년 주요국 명목 GDP 추이, 아래 그래프는 같은 기간 주요국 평균임금 추이. 붉은 색이 일본이다. 일본은 두 수치 모두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일본의 2020년 평균임금(PPP, 구매력 평가 기준)은 35개 회원국 중 22위(3만 8514달러)에 불과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3위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상당히 낮은 순위다. 지난 30년간 일본은 평균임금이 4.4%로 거의 제자리였다. 미국 47.7%, 영국 44.2%, 독일 33.7%, 프랑스 31.0% 등 다른 나라는 일본과 달리 큰 상승폭을 겪었다. 한국과도 일본은 이미 2015년부터 차이가 벌어졌다. 미국은 1990년과 비교해 339만 엔이 늘어났지만 일본은 18만 엔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일본은 원래 '경제 대국, 생활 빈국'이라고 불리던 나라다. 물가 상승이 꾸준히 있던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 국민들의 삶을 희생해 잃어버린 30년을 돌파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며 "저성장으로 물가가 안 올라가니 임금을 크게 안 올리는 방식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또한 지난달 16일 편집국 부국장 칼럼에서 "지난해 일본의 평균임금은 4만1509달러로 OECD 평균보다 30% 낮다. 순위도 38개 회원국 중 26위로 하위권"이라며 "국가의 위상과 개인 삶의 질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최근 임금 인상을 통해 소비 진작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폭도 3.3%(961엔)로 사상 최대였고 정부는 올해 4.1% 이상 인상이 필요한 최저임금 '1000엔'을 공언한 상황이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자 실제 현장의 임금 인상도 이뤄지고 있다. 일본 경영계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봄 대기업의 임금 인상률은 3.91%로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임금 인상→소비 확대→경제 성장'의 일본 정부 논리는 오히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쪽이지만 이러한 맥락은 언급되지 않는다.
▲ 지난 4월 경총은 보고서를 내고 한국 최저임금 수준이 'OECD 8위'라고 주장했다. 자료='2022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및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갈무리.
특히 최저임금 보도엔 기본적으로 필요한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한국 최저임금 수준 OECD 8위'라는 한국경영총협회(경총) 보고서도 나라별 계산 기준이 다르다는 설명이 빠져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체적으로 언론 보도가 최저임금이 과도하다는 일부 얘기를 과하게 인용한다. 경총 보고서도 나라별로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고 바로 잡아 유통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큰 의미 없다" "부실" 지적에도 매년 반복되는 최저임금 보고서 보도]
김성희 교수는 "(해당 보고서에 나오는) 한국 최저임금이 G7 국가들하고 비교해서 가장 높다는 주장도 비교 기준을 조정하면 틀린 것으로 나온다. 한국 최저임금이 중위임금 대비 60%를 넘어섰다는 것도 실제론 55% 수준"이라며 "일본과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전체적인 경향성까지 문제 제기가 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받는 국민들이 500만 명이 넘는데 과연 공정하게 다뤄지고 있나"라고 말했다.
나라 간 단순 비교를 통해 최저임금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에서 "국제 순위를 단순 비교를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범위도 다르고 계산법도 다르기 때문"이라며 "추세 정도는 참고할 수 있겠지만 나라마다 시스템이 다르다. 예를 들어 복지나 실업 급여가 잘 돼 있는 나라가 있고,부족한 나라가 있다. 또 각 나라에서 최저임금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그런 걸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