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h Piaf / 에디뜨 삐아프
<사랑의 찬가>를 듣노라면 사랑을 잃은 슬픔의 고통으로 금세라도 쓰러질 듯
열창하는 에디트 피아프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이 한 곡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멋지고 훌륭한 가수라는 것이 증명된다.
에디트 피아프가 '모로코의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진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을
처음 만난 것은 1946년 말의 어느 날 파리의 클럽 ' 디 쌩크 ' 에서였다.
피아프는 마르셀 세르당을 처음 본 순간부터 자기의 인생을 지켜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이라고 느끼고 그와 맹목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 무렵 피아프는
뉴욕의 이름난 나이트 클럽 '르베르사유'에서 노래 부르며 미국인들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있었고, 1948년 9월20일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토니
제일을 이기고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이 된 세르당 역시 구김살 없는 환한
미소와 침착하고 겸손한 태도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세르당은 비록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했고 배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하고 착한 남자였다.
피아프는 세르당의 그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성실함을 사랑했다.
남성미가 넘치는 우람한 체격의 세르당이 한 걸음 걸으면 '파리의 참새'라는
별명을 가진 피아프는 세 걸음을 걸어야 할 정도로 작은 몸매를 가졌는데
그런 두 사람의 로맨스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다. 1949년
10월 28일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 같았던 피아프는 세르당이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운명의 그날, 파리에 있던 세르당은 배를
타고 뉴욕에 있던 피아프에게 가기로 되어 잇었다. 그러나 출발하기 하루 전
피아프는 세르당이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그에게 전화로 " 이젠 더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 비행기를 타고 오셔야겠어요. 배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자기 곁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알았어요 에디트, 되도록 빨리 당신에게로 가겠소. 당신에게 키스
를..."하지만 이 말을 마지막으로 세르당은 영영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세르당이 탄 비행기가 아조레스 제도의의 어느 산꼭대기에 추락하면서
영원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도 불꽃과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 내 잘못이야. 내가 그이를 죽였어!" 자책감과 절망의 끝에서 방황하던
피아프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밤마다 세르당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심지어는 강령술로 세르당의 영혼을
부르기 위해 커튼을 치고 불을 끈다음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려 놓고
밤새도록 그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피아프는 욕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악보 하나를 완성했다.
그 노래가 바로 사랑을 잃은 슬픔속에서 사랑을 확인하며 탄생한 노래,
<사랑의 찬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