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09.월요일
필독
지난주,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마치 자기 휘하 사병인 줄 착각하는 듯한 이재오의 가열찬 삽언이 있었다. 총리실 불법내사 관련 수사가 '무혐의'로 흐지부지되던 일요일, 대미 빵셔틀 외교로 야기된 중동산 모래바람 후폭풍을 쌩까려는 듯 가카는 "전격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본 기자, 지난 주 내내 휴가중이었으나 타고난 매의 눈까지 임시휴업을 하지는 않은 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은은한 병맛의 징후를 느꼈다. 21세기 대한민국, 이 숨가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위무하며 흐르는 모종의 낭만을.
다이나믹 코리아?
한주의 다사다난함을 예고하는 듯한 쭝앙의 기사 한 꼭지에 걸린 헤드라인이 본 기자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수갑 찬 박정희 눈가가 붉어졌다... "한번 살려 주십시오"
기사는 쭝앙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시리즈의 한 편으로, 이번 편의 필자는 백선엽이다. 우리는 박정희가 백선엽에게 목숨을 구명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남로당의 핵심 간부 중 하나였던 그가 동료들을 몽창 팔아넘기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그런데 기사는 생뚱맞게도 무척 서정적으로 시작된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전등불은 아직 켜지 않은 상태였다. 사무실 안으로는 아직 겨울 석양의 자락이 조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어둠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면서 사무실 전체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반공의 화신 백선엽과 (미래의) 멸공의 화신 박정희, 두 사나이는 아름답게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본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박 소령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상황이 10여 초 흘렀던 것 같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승과 저승으로 엇갈릴지 모를 운명에 놓인 박 소령과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는 시간으로는 꽤 길었다는 느낌이었다.
이윽고 박 소령의 얼굴이 잠시 움직였다. 어둑해진 사무실이었지만 내 눈도 그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얼굴을 조금 찡그리는 듯하더니 박 소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간단했다. 아무런 수식이 없었다. “한번 살려 주십시오….”"
기사의 백미는 다음 부분이다.
"그 모습이 의연(毅然)하기도 했지만, 처연(悽然)하기도 했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선 사람임에는 분명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반드시 해야 할 말 한마디만 얼른 내뱉는 점에서 그는 꿋꿋했다. 비굴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의연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이 4차원적인 언어의 조합은 마치 하얀 백사장... 통기타를 둘러맨 그이는 마치 은하수가 풍덩 빠진듯 우수에 젖은 눈으로 너의 애널을 조교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혹은 다정하게 살인을 저질렀다, 내지는 지적으로 침을 뱄았다는 말과도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색함을 어색하지 않(은 듯하)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보수세력의 오랜 습관이자 전략이다.
기사의 목적은 간단하다. 박정희는 빨갱이었고 변절자였으며 이기적 고발자였다는 사실에 낭만을 입히는 것이다. 그러면 팩트가 무뎌진다. '겨울 석양의 자락'과, 두 남자의 침묵과, 한 남자의 '의연함'에. 이 아름다운 문장들에 의해 독재자의 수치스러운 과거는 아련한 회고가 되고, 운명이 되고, 인간 드라마라 되고, 낭만 서사시가 된다.
이 로맨틱한 이야기에 합리적 이유가 끼어들어갈 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성과 상식은 아마도 우리 범인들의 전유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럽시다…, 그렇게 해보도록 하지요.""
이 나라의 보수세력이 그려내는 독재자는 더할 나위 없이 로맨틱하다. 입으로 전해지는 박정희의 인간미, 어떤 개인이 겪었다고 하는 그의 카리스마, 독일로 떠나는 광부들을 붙잡고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 대목, 서민들 생각에 소주에 오징어 안주로 만족했다는 그의 소탈함...
범죄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로맨스에 의해 두런두런 설화가 엮어지고, 그가 안가(安家 : 20세기 대한민국의 독재자를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1인용 사창가. 섹스포스 1.)에서 여대생 끼고 시바스리갈 마시며 놀다가 자신의 심복이 쏜 권총에 명을 달리했다는 구질구질한 역사는 근대화 영웅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는 느와르로 윤색된다.
전설따라 삼천리는, 그가 죽는 순간에도 술 따르라고 끌고 온 딸내미뻘 여대생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였더라는 몸개그로 끝을 맺는다.
한때 '다이나믹 코리아'란 관광구호를 두고 말들이 많았더랬다. 저 문구를 만든 사람들은 서울과 부산의 인파와 자동차 경적소리가 무척 자랑스러웠나 보다. 그러나 외국인(주로 서양인)들은 과개발로 급속히 팽창한 개발도상국의 도시에 딱히 칭찬할 말이 없으면 다이나믹하다는 사교성 맨트를 날린다. 방콕이나 호치민시티, 베이징도 다이나믹하다는 말은 똑같이 듣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흔해빠진 다이나믹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매력인 로맨틱을 어필하도록 하자. 29만원 신화의 주인공이 그 특유의 '남자다움'과 '의리'로 사랑받는 이 주체할 수 없는 로맨틱함을 말이다. 그 의리가 비록 조폭의 의리고, 그가 넘치는 남성호르몬을 주체하지 못해 조국을 강간했을지언정 우리는 로맨틱하니까.
로맨틱 가카.jpg
나랏님은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은 나랏님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 로맨틱한 이미지의 거품을 걷어내면, 시장 상인들이 인간 띠를 두른 경호인력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얼어붙어 있어야 했던 썰렁한 사실만 남는다.
로맨틱 코리아
이땅의 보수는 감성적이다. 로맨스를 사랑한다. 그들은 위인전을 사랑하며,삼국지의 비장함을 현대에 되살리기를 원한다(삼국지의 영어명은 'The Story of the Three Kingdoms'가 아니다. 'The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이다.). 그들은 특히 정치에 로맨스가 살아있길 원한다. 정책과 철학, 이념의 부재를 덮을 수 있는 포장지가 로맨스밖엔 없기 때문이다.
이재오가 돌아왔다.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헤매다가 미국으로 쫓겨갔다가 비빌 언덕이 생기자 냉큼 달려온 그도 찌라시들에 의해 로맨스의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잠룡', '은둔고수'로 불리며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는 타국에서 홀로 이땅의 진흙탕을 바라보며 어떤 깊은 생각을 했을까? 그걸 우리가 알 리 있겠는가. 어쨌든 수신(修身)을 거듭하며 내공을 쌓았을 것은 분명한 일.
또, 그는 보통 남자가 아니다. 그는 킹메이커이며 '왕의 남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다시 나타났다. 조조의 땅에서 돌아와 화려한 복귀전을 치른 관우처럼 민주당의 장상을 일합에 쓰러뜨리더니, 급기야 특임총리로 내정되어 정권 2인자의 책무를 맡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간의 침묵을 깨고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에 시험을 보는데 그러지 말고 대졸이든 고졸이든 취업 인력을 지방공단이나 중소기업에서 1, 2년 일하게 한 뒤 입사 지원자격을 주는 거다. ... 봉급도 별 차이 없다. 내 애가 대기업에 다니지만 초봉이 150만원이다. 중소기업도 160, 170만원 준다. 그런데도 대기업만 쳐다본다. 종합병원가려면 동네병원 진단부터 받아야 하듯 대기업 가려면 중소기업 의무적으로 해 보고 보내야 한다."
미국에서 배워 왔음이 분명한 공산주의사상은 교육정책에도 적용된다.
"그 다음에 재수생들을 없애야 한다. 떨어진 애들 재수 삼수 학원 보내는데 다 사회적 비용이다. 우선 공장이나 농촌에서 일하게 해야 된다. 1, 2년 일하고. 그 성적을 갖고 대학가라 이거야."
-그런 법안을 만드실 생각인가.
"그럼 그럼 만들어야지."
진심이라니까~ 허허
이 양반의 뇌세포는 어디로 소풍간 걸까. 혹시 이 삽언에 숨은 뜻이 있는 것 아닐까. 실상은 단순하다. 저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저의라고 부를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냥 지적 부도, 개념 파산의 상태다. 이 상태가 정치인 이재오의 성적표다. 그래서 그에게도 로맨스는 필요한 것이다.
내놓을 건덕지가 없으면 생긴 게 멋지면 된다. '39년 만의 최연소 총리' 김태호로 대변되는 이번 개각도 마찬가지다.
로맨틱 김태호
젊은 인재가 총리로 지명되었을 때는, 연륜이 부족함에도 가카의 간택을 받지 않을 수 없을만한 재능과 실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젊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은 것이다. 젊어서가 아니라. 그런데 우리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있지도 않았다가 어제저녁 갑자기 등장한 '40대 기수론'의 물살을 타고 우리 앞에 문득 다가왔다. 차기 대권주자로 촉망받아왔다고 하니 뜬금없어도 그런 줄 알자. 우리는 그를 인정해야 한다.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똥지게를 메고 자란' 빈농의 자식, 소장수의 아들 김태호. 그는 불굴의 최연소 도지사가 되더니 최연소 총리가 되는 성공신화를 썼다. 찌라시들이 밀고 있는 감동스토리의 중심엔 소박한 농부의 꿈을 키우던 소년 김태호가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 계기란 바로 아버지의 한마디.
"농부가 되더라도 농약병에 있는 영어는 읽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냐."
이 이벤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김태호는 없었을 뻔 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아아, 참 다행이다. 그때 계속 공부하기로 결심해줘서. 로맨틱 스토리의 절정은 연합뉴스에서 완성된다. 이 명문장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1971년 김종필 전 총리가 45살의 나이로 11대 총리에 오른 지 39년만에 40대 총리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된 것. 3공화국 이후 처음 있는 파격 인사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비견되며 `40대 기수론'에도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누가 영국 총리와 그를 비견했을까? 우리는 몰라도 된다.
"파격 인사의 주인공 김 후보자는 이미 몇년 전부터 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차세대 리더로 손꼽혔던 걸까? 역시 우리는 알 수 없다.
"신선한 사고와 깨끗하고 젊은 이미지, 강단있는 지도력을 인정받으며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잠룡'으로 거론되는 등 정치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
... 이후 김 후보자는 차기 총리와 장관 하마평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렸고, 결국 40대 총리의 `깜짝 발탁'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또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처럼 정치 엘리트 코스를 빠르게 밟아왔지만 그의 시작은 미약했다.
1962년 경남 거창군의 벽촌에서 소를 키우던 빈농의 3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난 김 후보자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을 이겨낸 성장 과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김 후보의 부친도 이 대통령의 모친과 비견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김 후보의 부친은 교육열이 대단해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에야 소장수 일을 그만뒀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는 효심마저 장착했다.
"그는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심도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경남지사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첫 일정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백두산으로 관광을 다녀왔다."
어른을 공경한댄다. 쓰러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마지막 대목에서 정말로 쓰러졌다.
"부인 신옥임(46)씨와 1남1녀. 특기는 태권도, 취미는 바둑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이 12~15세용 위인전에서 핑크빛 로맨스의 거품을 걷고 나면 소박하게도 다음과 같은 사실만 남는다.
- 소가 아직도 큰 재산이던 시절에, 소를 사고 팔 만큼의 재력은 있는 농가에서 태어나 진학에 진학을 거듭해 대학원까지 나온 김태호는 정치에 입문해 도지사가 되었다가 총리로 내정됐다.
행간을 쑤셔보면, 정운찬 총리 내정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청문회에서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자 한나라당은 "왜 정운찬이 총리가 되면 안 되느냐?"고 역정을 냈다. 사실 진실은 이 질문의 역에 있었다. 왜 굳이 정운찬이 총리가 되어야 하는가? 민주당 의원들의 다구리에 의해 도덕성의 바닥이 드러났고, 경제정책을 묻는 민노당 이정희 의원의 카운터 펀치에 능력도 없음이 드러난 그는 왜 총리가 되어야 했는가? 그 답은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의 지원사격에 있다.
“두 분 다 찢어지게 가난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친은 국화빵 장수를 하시고, 정운찬 후보의 모친은 삯바느질을 하면서...”
이 패스를 이어받아 정운찬의 과거사 연대기가 구술되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명절하고 제삿날 빼고는 밥을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얘기나, 아침에는 옥수수떡을 저녁에는 옥수수 죽을 먹었다는 얘기. 점심시간에 도시락이 없어 뒷동산에 가서 혼자 노는데 비가 오고...
결국 김태호도 정운찬처럼, 가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비결을 복기해야 했던 것이다. 가카의 성공모델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거라고, 가카와 찌라시 모두 의심치 않는다는 얘기다. 성공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 그리고 그 환상, 그 욕망.
당시 딴지에서 제작해 썼던 이미지
애초에 대통령후보 이명박에 투영된 욕망은 한나라당 선거캠프에서 슬로건으로 내놓은 <모두가 성공하는 국민성공시대>가 아니었다. <내가 성공하는 나의 성공시대>였다. 이들은 특정 개인의 로맨스에 의해 한때 전국의 유권자들을 홀린 이 착시현상이 유지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태호 본인도, 자신을 위한 거품 제조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금 20~30대 청년층이 상실감에 빠졌다. ... 소 장사 아들로 태어난 제가 도의원과 군수를 거쳐서 최연소 지사를 두 번이나 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기회의 땅인지, 용기를 갖고 뛰면 된다는 자신감을 (청년층에) 주고 싶다"
"이 대통령이 저를 총리로 부른 것은 20~30대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서민출신이고, 농민 출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희망을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태양계에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논리가 완성된다. 소장수의 아들에 불과했던 그가 <총리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그러므로 김태희는 딴짓하지 말고 어서 본 기자의 품으로 달려오기 바란다. 예비 대머리인 나도 그대와 같은 애인을 둘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이땅의 모든 탈모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겠으니 말이다.
그런데 본 기자가 김태희와 모텔로 2박 3일 여름휴가를 떠난다 할지라도 내 입만 째질 뿐, 탈모인들의 휑한 두피에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왜 김태호가 총리가 되어야 하는가? 그 답은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삼국지식 로맨스에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가카는 "김 후보자가 나이가 젊은데도 불구하고 언행이 깊고 신중하며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다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카와 '남다른 젊은이'
김태호를 총리로 발탁한 것이 정말 파격적인 인사라면, 그 인물 자체가 파격적일 터. 사실 그는 화려한 전력이 있다. 그는 경남도지사 시절 마포 공설운동장에 3만 명의 도민들을 모아놓고 '경남도민 총궐기대회'를 열어 참여정부 화형식을 거행한 바 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공직자가 역시 선거를 통해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의 화형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은 분명 시민의 상식을 뒤엎는 파격임을 솔직히 인정하는 바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정운찬이 거대설치류의 클론이었던 것처럼, 김태호도 가카의 세포분열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운찬과 김태호는 여러가지 면에서 대칭을 이룰 수밖에 없다.
정운찬의 경우 이론이 삽질을, 학자라는 포지션이 2메가짜리 컴(퓨터 달린)도저를 중화시키는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이번엔 젊은 피 수혈을 통한 동맥경화 예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충청도 출신의 정운찬은 세종시 몸빵용이었다. 경남에서 토목공사의 화신이자 '4대강 전도사'로 불렸던 김태호는 당연히 4대강 몸빵 총리다.
정운찬은 소모품이었고, 쓰임이 다 되자 즉시 폐기되었다. 김태호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물론 제품의 잔존가치가 남아있는 한 분리수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카가 느꼈다는 '깊은 감명'은 믿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본체와 아바타는 결코 동등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클론 넘버 2. 김태호의 정체다. 새로 갈아 탄 싱싱한 아바타에 가카가 얼마나 든든할지는 알 바 없다. 아바타는 몸빵의 효과가 전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미미하다. 국민은 아바타가 아니라 본체를 본다. 아바타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서 본체가 안전하다고 믿는 건 본체 자신만을 위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그 믿음은 본체 바깥세상엔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썰렁한 사실 하나만 덩그러니 남는다 - 복제쥐 하나가 더 생겼다.
'롸멘틱' 코리아
그러나 가카는 이미 한 번의 실험을 통해 세포분열의 질과 효율을 높였다. 두 번째 실험체는 조금 더 완성도가 높다. 첫 번째와는 달리, 토목삽질의 유전형질을 본체와 공유하고 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도, 실험을 계속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어쩌면 본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영속시키기 위해 두 번째 클론에게 바통-차기 대권주자 자리-을 넘겨줄 수도 있다.
김태호를 둘러한 로맨스 버블은 '후계자'의 자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거품은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로맨스를 모방한 것이다.
쭝앙은 개각을 앞둔 8월 8일자 새벽에 올린 사설에서 "역사는 현재를 상대화하는 미덕이 있다. 현재를 절대화하면 상황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는 해석 불가능한 외계어로 운을 땐 후 뜬금없이 YS와 DJ의 개각을 칭찬한다. 특히 고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차기 문제를 개각을 통해서 해결하려 했다. 비주류 노무현을 해양수산부 장관에 발탁한 건 집권 후반기 DJ 개각의 백미였다. 노무현의 등장은 늙은 정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치열한 당내 경쟁을 이끌어내 한나라당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흥행의 마술을 연출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사족을 달아주는 센스는 잊지 않는다.
"다만 노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집념은 DJ에 비해 약하고 나이브했다. 발탁된 사람들도 권력의지나 정치역량이 부족했다."
사설은 볼 만한 사람은 다 볼 수 있도록 안개를 적당히 씌워놓은 결론에 다다른다.
"이 대통령은 금명간 있을 개각에서 과감한 인물을 발견해 낼 것인가. ... 이 대통령이 두려워할 건 그렇고 그런 편안한 방식의 개각이 정권 재창출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은 젊었고, 예상 외였으며, 신선했다. '과감한 인물 선택'의 결과물인 그는 이인제를 관광보내고 이회창마저 꺾으며 대통령이 되는 신화를 만들었다. 삽질과 독재, 탐욕으로 스스로 궁지에 몰린 저들이 바라고 있는 것도 바로 신화다. 아브라카다브라! 신화는 현실의 모든 어려움을 기적으로 바꿔준다. 가카는 제 2의 DJ가 되고 싶은 것이다. 클론 2호가 제대로 된 싹수만 보여준다면.
아니나 다를까, 쭝앙은 김태호가 총리로 내정되자마자 아마존 정글리즘을 연상케 하는 '메기론'를 들고 나왔다. 강력한 메기를 풀 안에 집어넣으면 긴장한 고기들이 활력을 찾는다는 얘기다. 여기서 메기는 대권에 근접한 인물을 뜻한다. 메기가 대권주자가 되거나, 아니면 메기에게 자극을 받은 다른 생선이 대권주자가 되거나. 당연한 말이지만, 김태호는 메기라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본 기자가 입가에 피어오르는 썩소를 자제할 수 없는 것은, 아직 수양이 덜 된 인격 탓만은 아니리라. 낭만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거품을 걷어내고 남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변호사로 잘먹고 잘살다가 고문당한 학생들의 몰골을 보고 "뚜껑이 열려서" 돌연 아스팔트 변호사로 변신하고, 지역주의의 맨땅에 몇 번이나 머리를 찧은 바보의 로맨스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효자' 따위의 로맨스로 흉내내려고 하는 건 미학적 하극상이다.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분하고 살아야지.
착시현상을 일으키려면 멋지게 혀를 굴려줘야 된다. 롸맨틱 코리아. 그러나 오색 영롱한 거품은 롸맨티스트들의 머릿속에나 존재할 듯하다. 기름기를 뺀다고 롸맨스가 로맨스가 되지는 않는다. 롸맨스의 끈적함이 사라진 자리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태호 드립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한번 아까의 결론에 도달한다.
복제쥐 2호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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